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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싶어? '이곳'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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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싶어? '이곳'을 추천!

[정여울의 '마음이 머무는 곳'] 오스트리아 빈, 내 마음을 거울처럼 비추는 도시

여행자가 스케줄을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장소의 스토리텔링을 보여주는 도시가 바로 오스트리아의 빈이다. 첫 번째 빈 방문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곳은 그 유명한 빈 미술사 박물관과 박물관 광장 MQ였다. 그토록 놀라운 작품들이 그토록 짜임새 있게 배치될 수 있다니. 정말 유치한 감정이지만, 나는 그때 속으로 이런 생각을 품었다. 여기가 혹시 내가 오래전부터 꿈꾸던 천국이 아닐까.

특히 피터르 브뤼헐의 그림이 전시된 방과 레오폴드 뮤지엄의 에곤 실레 컬렉션은 영원히 떠나고 싶지 않은 방들이었다. 그림이 내 마음에 쏙 들어오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 그림들 속으로 들어가 어엿하게 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림 앞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빈 의자들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림 앞에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철퍼덕 눌러앉아 그림 속의 사람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능하게 해준 것은 그 아늑한 의자들 덕분이었다. 나의 동행은 목공에 관심이 많아 내가 그 멋진 그림들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고 있는 동안 그는 나무의자의 이음새 하나하나를 카메라에 꾹꾹 눌러 담았다. 그 놀라운 그림들 앞에서 엉뚱하게도 나무의자의 짜임새에 탄복하며 광적으로 셔터를 누르는 그 사람을 보면서 나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개졌지만 낯선 사람들은 오히려 정답게 웃어주었다.

▲ 음악 박물관 계단 이곳에는 모든 사물들이 음악을 은유하고 있다. 평범한 계단에 경쾌한 악보를 그려놓으니 계단을 오르는 사소한 몸짓도 또 하나의 연주이자 퍼포먼스가 된다. ⓒ이승원

빈 시청사 앞에서 축제를 벌이는 사람들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웅장한 구 시청사 건물 앞에서 세계 각지의 풍성한 요리들을 선보이는 부스들이 설치되고, 사람들은 잔디밭이나 야외 벤치에 삼삼오오 둘러앉아 멋진 음악과 야외상영 영화를 즐기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오페라 <리골레토>를 거대한 야외 스크린으로 무료 상영해주는 것이 너무 반가워서 한참 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기도 했다.

두 번째 빈 방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클림트의 그림이 있는 벨베데레 왕궁이었다. 클림트의 <키스>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생에 한 번 가볼 가치가 있는 벨베데레 왕궁은 정성스레 가꿔진 아름다운 정원으로 또 한 번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키스>를 보고 나는 예상보다 장엄한 작품의 스케일에 놀라 그 자리에서 풀썩 주저앉고 싶었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애절한 표정, 절박한 슬픔, 아찔한 공포가 농축된 그림 앞에서 사람들은 떠날 줄을 몰랐다. 벼랑 끝에 선 연인들은 이렇게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당신과 함께라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마지막이라도 얼마든지 겪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지금 이 순간은 가장 슬픈 마지막이 아니라 가장 찬란한 생의 클라이맥스라고.

여행을 오래 다니다보면 '후미진 장소'를 향한 은밀한 열망이 샘솟게 된다. 유명한 장소가 아니기 때문에 인적이 드문 곳도 좋고, 관광객은 없는데 현지인이 많은 곳도 좋아진다. 이제 워낙 많은 장소들이 유명해져버렸기 때문에 사람들은 점점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의 매력'을 찾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은 시간 싸움이다. 엄청난 볼거리를 눈앞에 두고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을 먼저 돌아다니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여행을 오래 하다보면 '한 장소에 길들어 그 장소감을 익히는 시간'에 대한 감각이 생긴다. 나의 경험으로는 한 장소에 최소한 나흘은 있어야 그 도시의 '장소감'을 제대로 익힐 수가 있었다. 여행 정보 책자가 아닌 풍경 그 자체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순간. 그때서야 몸으로 옮겨 다니는 여행을 넘어 진정한 마음의 여행이 시작된다. 세 번째 빈 방문 때가 되어서야 나는 마음의 여유를 갖고 유명하지 않은 곳들을 골라 다닐 수가 있었다. 관광객들이 많이 몰리지 않는 한적한 장소들만이 가진 매력을 알려준 첫 번째 장소는 바로 음악 박물관이었다.

▲ 사실 음악 박물관에 가고 싶은 이유 중 하나가 오케스트라 지휘 체험 때문이었다. 아무 부담감 없이 가상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해보고 싶은 사람들의 열망을 훌륭하게 충족시켜주는 공간이다. 주빈 메타가 화면 속에서 깜짝 등장하여 살짝 '지휘의 비결'을 알려주고, 관객은 자신이 연주하고 싶은 짧은 곡을 선택할 수 있지만, 막상 지휘봉을 잡아보니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하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오케스트라를 지휘해본다는 짜릿한 쾌감을 안겨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승원

음악 박물관에 들어서자마자 거대한 첼로 형상을 한 조각상이 사람들을 반기고 있었다. 나는 아이처럼 서슴없이 다가가 첼로 모양의 조각상을 와락 껴안고 휴대폰을 활 삼아 연주하는 척을 했다. 잠시 내 나이와 처지를 깜빡 잊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그런 나를 보고 키득키득 웃었지만, 나도 스스로 어이가 없어 겸연쩍게 웃어주었다. 부끄럽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평소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 거대한 첼로의 형상을 본 순간 집에 두고 온 내 외로운 첼로 생각이 떠올라 이것저것 따질 새도 없이 덥석 포옹한 것이다. 이렇게 여행을 다니다보면 나도 모르게 스스로 천진무구해질 때가 있다. 아이처럼 행동해도 다들 그러려니 한다. 타인의 익숙한 시선과 편견으로부터의 자유가 우리를 계속 여행으로 등 떠미는 중요한 이유가 아닐까.

▲ 빈 음악박물관 안에는 음악을 시각화하려는 다양한 몸짓이 발견된다. 음악을 들을 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볼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수많은 그림들도 눈길을 끈다. ⓒ이승원

누구나 주사위만 던지면 주사위에 나오는 숫자에 따라 음악을 작곡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재미있다. 주사위만 몇 번 휙 던지면 방금 작곡된 음악이 훌륭한 연주로 변환되어 듣는 이의 귀를 즐겁게 한다. 베토벤의 데드 마스크, 브람스가 작곡을 할 때 쓰던 안경,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그림자 극장'의 형태로 재현해낸 아기자기한 연극 무대 등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는 갖가지 오밀조밀한 '음악 사랑법'이 곳곳에 넘쳐난다.

게다가 기념비적인 연주 실황을 마치 영화를 보여주듯 커다란 스크린으로 '보여주는' 홀이 있어 모든 것을 잊고 잠시나마 음악에 푹 빠져들 수 있었다. 섬세하게 잘 만들어진 공연 실황 프로그램은 공연 현장에서도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을 포착해내기도 한다. 그중 가장 재미있는 것이 지휘자의 표정이다. 실제로 공연을 볼 때는 지휘자의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는데 공연 실황을 녹화한 프로그램에는 지휘자의 얼굴이 가장 중요한 피사체인 것 같다. 그의 손만 지휘하는 것이 아니라 눈가의 주름 하나하나, 비 오듯 흘러내리는 땀방울들, 셔츠의 커프스 버튼 하나하나까지도 그 멋들어진 지휘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것 같았다.

▲ 하루 종일 이 앞에만 있어도 지겹지 않을 것 같다. 슈테판 대성당도 경이롭지만,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여행자들의 천태만상이 언제 봐도 활기차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공짜로 구경할 수 있는 문화 공연도 많고, 갖가지 피부색을 한 사람들이 '나 드디어 이곳에 왔노라'라는 표정으로 뿌듯하게 앉아 있는 모습들을 보면 괜스레 웃음이 나온다. ⓒ이승원
항상 복원 중인 건물들은 갈 때마다 사뭇 다른 느낌으로 여행자를 맞이한다. 첫 번째 빈 방문 때 슈테판 대성당은 성당이라기보다는 무너져가는 폐허 같았다. 가림막으로 간신히 옛 모습을 그려놓긴 했지만, 건물이 시름시름 앓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군데군데 보이는 석상들의 정밀함은 역시 경이로웠다.

두 번째 빈 방문 때 슈테판 대성당은 회복 중인 환자 같았다. 건물 전체에 커다란 멍처럼 번져나가던 돌이끼들이 많이 사라지고, 깨끗한 벽돌들이 마치 상처 부위에 새살이 돋듯 피어오르고 있었다.

세 번째 빈 방문 때 슈테판 대성당은 비로소 언제 그랬냐는 듯 휘황한 자태를 드러냈다. 아직도 보수공사는 진행되고 있지만, 슈테판 대성당은 이제 손님을 맞을 준비가 된 것 같다. 울림이 유난히 크고 깊은 종소리는 마치 심장수술에 성공하여 새 삶을 되찾은 할아버지처럼 예전의 자긍심을 되찾았다. 다시 빈에 갈 때쯤이면, 슈테판 대성당은 '인자한 노인'이 아니라 언제 그랬냐는 듯 '말쑥한 청년'으로 회춘하여 우리를 반겨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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