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선 때부터 시작된 기초연금 논쟁이 지난 5월 2일 국회에서 정부의 '기초연금법 수정안'이 통과됨으로써 막을 내렸다. 정부·여당의 핵심 무기였던 '국민연금 가입기간 연계'와 '물가상승률 연동 산정방식'은 그대로 둔 채, 세 가지의 부수적 내용만이 첨가돼 통과된 것이다.
그동안 정부·여당은 재정부족과 미래세대의 부담 가중 등의 문제를 내세워 자신의 안이 타당하다고 설파했으나 그것은 허울일 뿐이었다. 이 문제들은 총소득이나 국민연금 수급액을 기준으로 해서 기초연금액을 산출하더라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지만, 그들이 결코 양보할 수 없다며 고집을 부렸기 때문이다. 즉 정부․여당은 그들의 무기가 달성할 수 있는 소득재분배 완화와 공적연금 축소라는 목적을 숨겨놓고 있었던 것이다.
기초연금법안에 숨은 칼날
국민연금 수급액의 산정은 소득이 높은 사람은 덜 할당받고 소득이 낮은 사람은 더 받도록 설계되어 있어, 소득재분배가 작동한다. 기초연금의 경우에도 누진성에 기초한 세금을 재원으로 하기 때문에, 소득이 낮은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이득을 보는 소득재분배가 이루어진다. 정부․여당이 타깃으로 삼은 것은 바로 평균소득 이하의 국민연금 가입자들이 받는 소득재분배의 이중 혜택이었다. 둘 다는 과하니 기초연금의 소득재분배 혜택만을 받으라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는 기초연금의 점진적 최소화와 연결된다. 현재 50대 이하 근로계층의 대부분은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20년을 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10만원의 기초연금을 받는 사람의 수가 증가하게 되고, 그에 따라 결국 10만 원짜리 기초연금이 자리잡게 된다. 또한 기초연금은 소득상승률이 아니라 물가상승률에 연동하여 매년 인상되기 때문에 기초연금의 실질가치는 점차 하락하고, 2060년대에 가면 실질가치는 현재가치 5만원으로 반토막난다. 결국 정부의 기초연금안은 공적연금의 소득재분배 기능을 약화시키고 시간이 지날수록 기초연금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공적연금의 역할 자체를 최소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노인빈곤의 재생산과 사회갈등의 증폭
중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이번 통과된 기초연금안은 무엇보다도 현 근로세대인 20대~50대 중 저소득층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한 푼의 현금이 아쉬운 그들로서는 국민연금을 포기하여 국민연금 보험료를 당장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사용하고 나중에 기초연금 만을 받는 선택을 할 개연성이 매우 높다. 즉 그들은 스스로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로 미끄러져갈 것이다. 아울러 기초연금마저 실질가치 하락으로 인해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있는 저소득층을 노인빈곤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어떠한 효과도 낳지 못할 것이다.
또 다른 부정적 효과는 사회갈등을 증폭시키는 데 있다. 소득재분배 기능을 약화시키고 공적연금체계의 역할을 최소화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자신의 노후는 자구책을 통해 해결하라는 묵시적 명령이다. 자구책의 강화는 '국민연금 가입자 대 미가입자' '국민연금 장기가입자 대 단기가입자' '현 노인세대 대 현 근로세대'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모세대 대 자식세대' 등 여러 갈등구도를 양산해낸다. 이러한 갈등구조는 결국에는 국민의 통합 및 연대를 해칠 것이며 이를 봉합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을 크게 높일 것이다.
야당의 반(反)정치, 오판인가 본색인가
정부의 기초연금안을 움직이는 숨겨진 원칙들과 이로부터 초래될 부정적 결과들은 그것을 통과시킨 우리나라의 정치현실을 암울하게 그려냈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정치의 본질은 권력투쟁에서의 승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획득한 권력을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내용에 있다. 즉 제도적 권력을 이용하여 '바른 것' 또는 '옳은 것'을 실천함에 있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정치라는 단어의 '정(政)' 자에 '바를 정(正)'을 붙이는 이유다. 그리고 그 '바름'과 '옳음'은 오늘날 여야를 막론하고 제기하는 민생에 있다. 국민의 생활여건을 향상시키는 것, 국민을 여러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것, 국민을 어려움과 불안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바로 정치의 본질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번 기초연금안의 통과는 민생을 해친다는 점에서 정치에 반하는 것이다.
특히 정부와 새누리당의 지도부의 반국민적 행태에 대해 보여준 새정치민주연합의 반응은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들은 기초연금법 수정안이 통과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보건복지위원회에서는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제1 거대야당의 당수가 직접 참여하여 정족수를 채워주는 촌극을 벌이기까지 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창당과 동시에 '민생에 전력하겠다'는 공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눈앞에 있는 노후안정이란 민생을 보호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그것의 파괴를 제도적 절차를 걸쳐 '아름답게' 통과될 수 있도록 공모한 것이다.
국민은 정쟁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민생과 관련된 것이라면 커다란 관심을 갖는다. 기초연금은 민생의 가장 핵심적인 사안이고 국민연금 가입기간과 연계된 만큼 더욱 그러하기에, 국민의 대다수가 기초연금안의 실질적 내용에 관심을 가질 충분한 조건들이 산재했다. 달리 말하면, 기초연금법안의 잘못된 내용들을 국민에게 알리는 공론화 작업을 통해 대정부·대여 투쟁을 해도 충분히 승산이 있는 것이었고, 그렇게 하는 것 자체가 바로 정치의 본질을 실천하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그것은 현재의 지방선거 국면에서 보다 더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면에서, 이번에 새정치민주연합이 보여준 패배주의적 매너리즘은 단순히 의석수의 논리에서 진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들이 자유지상주의의 길을 받아들이는 세력으로 개종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낳기에 충분하다. 적어도 5월 2일 당시의 지도부와 그에 동조한 국회의원들은 분명히 그러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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