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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못 믿겠다!"…'거부권' 행사하는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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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못 믿겠다!"…'거부권' 행사하는 국민

[기고] 침몰하는 한국사회, 다시 일으키려면

맹자가 말하길, "백성이 가장 귀하며, 사직(社稷)은 그다음이고, 군주는 가벼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텔레비전 앞에서 분노와 슬픔이 교차하는 내내 국가가 이 정도로 무기력할 수가 있을 것이라고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적어도 배가 완전히 기울기 전 어떡해서든지 선내로 들어가서 몇십 명의 생존자를 데리고 나오리라 기대했습니다. 국가는 그런 일을 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국가는 국민을 기만했습니다. 이는 국가의 직무유기입니다. 국가에 대한 국민들의 헌신과 충성을 기대하기가 더 이상 어렵게 됐습니다. 국가 없이도 살아갈 수 있겠다는 자조적인 자신감을 토로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망가진 국가의 권위에 대한 시민적 불복종 운동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기도 어쩌면 어렵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도 국가를 떠날 수는 없다"는 정언(正言)조차 '심리적 망명'이라는 엄청난 정치적 내파(內波)를 지닌 올곧은 시민적 저항 앞에서는 포말처럼 이내 소멸되고 맙니다.

▲ 세월호 침몰사건 발생 초기, 정부의 '무능'한 대처에 강하게 항의하고 있는 실종자 가족들 ⓒ프레시안(최형락)

국가에 대한 신화와 관료제에 대한 믿음이 깨진 지는 이미 오래됐습니다. 지금은 정의롭지 못한 국가가 스스로 초래한 정당성의 위기이면서 동시에 도덕적 가치와 신뢰를 상실한 관료제의 위기이기도 합니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길러야 한다"는 미국의 사상가 서로우(H. D. Thoreau)의 100년도 훨씬 지난 주장이 지금 이 땅에서 국민적 공감을 얻어가고 있는 것은 분명 비극적인 아이러니 입니다.

최고 통치권자 대통령이 유가족들 앞에서 "(최선을 다해 달라고 말한) 그게 바로 명령입니다"가 노회한 관료들에게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들렸을 게 분명합니다. 저는 그렇게 해석됐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여태껏 국민적 공분(公憤)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임기 초반인 대통령으로서는 모욕일 수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예상보다 일찍 찾아온 레임덕의 전초일지도 모릅니다. 이를 극복하려면 정면 돌파가 해법입니다.

부족한 자본과 기술만으로 이미 앞서나간 서구를 급히 뒤쫓아 간 '압축혁명' 발전전략을 수립·집행한 것처럼 국가개조 역시 혁명적으로 실시해야 합니다. 성숙한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것들을 경성국가(strong state)의 관성에 젖어 있는 관료제가 이를 제대로 처리하기가 불가능해졌다는 사실이 이번에 극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국가 시스템 개조과정에서 관료는 철저하게 보조자로만 머물러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이들을 또다시 전면에 내세운다면 안약으로 산불을 끄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문제의 진단이 어긋나면 처방 또한 어긋나게 마련입니다. 대통령이 올바른 진단을 했는지는 처방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고 권위주의화 한다고 했습니다. 내면화된 철밥통 관료제는 시민사회로부터 더욱 엄중한 견제를 받아야 합니다. 이는 시대정신이기도 합니다.

엄밀히 말해 세월호 참사는 사회적 세력관계의 산물입니다. 말하자면, 특정 집단들 내 인사이더들 간 암묵적 공모의 결과였습니다. 무슨 마피아라고 불러도 좋습니다. 이들은 자신들과 대척점에 있는 아웃사이더들이야 무슨 소리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사이더들은 아웃사이더들의 이야기는 들은 체도 하지 않습니다. 인사이더들은 그리고 그들끼리만 정보와 아이디어들을 공유하고 이를 집행합니다. 게다가 어떤 경우에라도 다른 인사이더들을 비난하지 않는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자 이들만의 오래된 불문율입니다.

이처럼 권위적인 국가권력 아래에서 관료들의 관성적 저항은 여전히 견고합니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이를 혁파하고 관료들이 배제된 국가 시스템 창출을 수용할 용기가 있는지 "뜨지 않는 간장독처럼 부글부글 끓는"국민들은 지켜볼 것입니다. 분노란 본래 불의에 대한 감정의 이기적인 측면을 내포하고 있기도 합니다. 따라서 분노에서 이기적 요소가 조금씩 배제된다면 그 분노는 분명 정의를 이루는 순수한 매개(媒介)가 될 수 있습니다.

정치권력이 스스로의 존립기반을 시민사회의 자발적 동의에서 구하지 못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음은 자명해졌습니다. 이제는 시민세력이 '거부권'을 행사하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국민들은 대통령을 줄기차게 호명(呼名)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이에 진실 되게 답해야 합니다. 백성이 최고로 귀하다면, 침몰했어야 할 것이 국가를 멍들게 하고 국민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흔을 남긴 무능한 관료제였음을 대통령 스스로 마지막으로 참회하듯 고백하는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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