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사이에 김시곤 보도국장은 굉장한 압박을 받았을 것이라고 예측할 수밖에 없다. 누구의 압박이었을까. 과연, 길환영 사장과 임창건 보도본부장 같은 자기 위 간부들의 압박이었을까."
KBS 기자 출신인 <뉴스타파> 최경영 기자는 9일 밤 팟캐스트 <이철희의 이쑤시개>에 출연해 이같이 말하며, 김 국장의 사의 표명과 길 사장의 사과에 '윗선이 개입했을 것'이라고 의심했다.
최 기자는 "어딘가로부터 사인이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에 (세월호 유가족들이 KBS 앞에서 사과를 요구할 때) KBS 간부가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한 것"이라며 "눈치를 보며 사인을 기다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 기자는 청와대 앞에서 유가족을 면담한 청와대 박준우 정무수석이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를 만나 KBS가 하루 만에 태도를 바꾼 것은 '청와대에서 부탁한 결과'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전했다. 박 정무수석의 말은 <뉴스타파>를 통해서도 그대로 전파됐다.
"언론기관 일에 대해 청와대에서 뭔 말하기가 굉장히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얘길 들어보니까 상황이 대단히 심각하다, 그래서 어렵게 좀 KBS에서도 좀 최대한 노력을 해줄 것을 부탁을 드렸고 아마 그 결과로서 보도국장 사의를 표시하고 길환영 사장이 대표들 만나는 것 같습니다."
최 기자는 이에 대해 "KBS가 완벽하게 청와대 통제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박 정무수석) 스스로 고해성사한 것"이라며 "일상적으로 KBS에 전화해서 '야, 날려야 하지 않겠어?'라고 이야기하자, 그때야 (길 사장이) 부랴부랴 (사과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KBS는 당일 오전까지만 해도 '세월호 참사' 희생자에 대한 '교통사고 비교' 발언은 '오보'라며, 유가족의 사과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오후 2시 김 국장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사의를 표명했다.
그로부터 한 시간 뒤, 길 사장은 청와대 앞 유가족들을 찾아 "KBS 보도국장의 부적절한 발언에 대해 보도국장을 지휘 감독하는 책임을 진 사장 입장에서 유족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 말씀을 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김시곤 나와라" "KBS는 사과하라"라는 유가족의 밤샘 요구에 꼼짝하지 않았던 KBS 간부 두 사람이 16시간 만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며 반성한 것이다.
특히 김 국장은 사의 표명 기자회견에서 '사장 사퇴'를 주장했다. "언론에 대한 가치관과 식견도 없이 권력의 눈치만 보며 사사건건 보도본부의 독립성을 침해해온 길환영 사장은 즉각 자진 사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경영진이 보도본부의 독립성을 침해, 방송법을 위반했다는 폭로다.
김 국장은 이날 JTBC <뉴스9>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길 사장의 보도통제와 관련해 "길 사장은 대통령만 보고 가는 사람"이라며 "권력은 당연히 (KBS를) 지배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길 사장이 '세월호 참사'뿐 아니라 "평소에도 끊임없이 보도를 통제했다"며 그동안 청와대 등 권력층의 지시가 있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대한민국 공영방송이 청와대를 비롯한 권력에 의해 조정되고 있다는 사실이 책임자를 통해 사실상 확인된 셈이다.
김 국장이 갑자기 사의를 표명한 이유, 길 사장이 KBS가 아닌 청와대 앞에서 사과한 이유는 바로 청와대의 한 마디 때문이다. '엄벌'과 '응징'이라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 철학이 보도 중립의 책무가 있는 언론조차 벌벌 떨게 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정부의 수사가 선장과 해운사를 중심으로 한 책임자 추궁에만 머물고 있는 이유다.
최 기자는 "지금 청와대나 정부의 중요 요직에 있는 그 누구도 ('세월호 참사'를) 자기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안 보인다"며 "'내 자식이 당할 수 있는 일'이라고 보지 않고 있다"고 한탄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프레시안 팟캐스트 <이철희의 이쑤시개>를 통해 들을 수 있다.(☞ 팟캐스트 바로 듣기)
* 프레시안 팟캐스트 <이철희의 이쑤시개>에 #3003번(정보이용료 1000원)으로 응원 또는 의견을 보내주세요. SKT, KT, LG U+ 통신사 이용자라면 누구나 참여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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