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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칼테러' 기자의 결기 담긴 '세월호 한국'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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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칼테러' 기자의 결기 담긴 '세월호 한국' 기록

[서평] 기자 오홍근의 <민주주의의 배신>

민주주의 국가라면 당연히 '정치 과정'의 공정성을 보장해야 한다. 여론 형성과 선거행위가 특정 정치목적의 개입 없이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현실은 이명박 정부로부터 현재까지 언론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재갈물리기, 길들이기가 점증해 왔고, 선거에 이르러서는 국가 정보기관이 조직적으로 개입하여 현 대통령의 당선을 대규모로 지원한 흔적까지 확인되었다. 그러므로 '여론'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현실이고, 치러진 선거 결과의 정당성 역시 검증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후보자가 그러한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느냐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게다가 최근 곳곳에서 국가와 정부를 동일시하는 듯한 반민주적 행태가 빈발하고 있는데, 무슨 까닭인지 정부는 손을 놓고 있으니 현재의 한국을 민주주의 국가, 또는 성숙한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국민과 정부가 함께 노력하는 국가라고 규정하기에 망설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민주주의를 완성한 국가란 지구상에 현존하지 않는다는 차원에서 역설적으로 현실을 긍정할 수도 있다. 비록 정부의 의지는 보이지 않지만 국민의 열망은 여전하다는 측면에서 우리 사회를 가능성 있는 시민사회로 보는 데 인색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기형적 국가주의에 기생하며 더 이상의 민주주의는 필요 없다는 듯, 현실을 옥죄는 일각에 대해서는 그 인식의 단순함과 저열함에 구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국가'를 '말'한다고 곧 국가를 '위하는' 것이라면 '애국'처럼 쉬운 행위도 없을 것이다. '통일'을 '말'한다고 곧 통일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통일은커녕 기본적인 남북대화조차 이렇게 어려운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내용 없는 허언이 난무하는 현실이다. 그것들은 결국 사회적 의제 설정과 목표 달성에 오히려 방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공적 이슈에 대한 특정 판단과 해석의 강요도 같은 경우다. 정부의 입장에 대한 '총화단결'이 필요할 만큼 단순한 상황도, 시대도 아니다. 예컨대 '통일은 대박'이니 뭐니,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단정해서 말하지 말 것을 진심으로 당부한다. 그렇게 단순한 일들이 아니다. 이념과 사고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한 걸음 진보할 수 있을 것이다.

'회칼테러' 저자 오홍근의 '결기'

▲오홍근 <민주주의의 배신>ⓒ산해
이 책의 저자 오홍근은, 기자로서 한때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적이 있다.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사건은 정권에 고분고분하지 않았던 현직 기자, 즉 저자에 대한 군인들의 '회칼 테러' 사건. 1988년 출근길에 벌어진 이 사건의 범인은 두 장성까지 낀 10여 명의 정보사 군인들이었다. 물론 그들 뒤에는 뒷일을 책임질 만한 세력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군인들이 제 인생을 걸고 자의로 그런 엄청난 짓을 저질렀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아무튼 그 사건은 한 사람의 인생에 되돌리기 어려운 '결기'를 불어넣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러한 결기가 이 나라 민주주의를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게 했음도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런 그가 지금도 벌판에서 외치고 있다. "대한민국이 민주주의를 배신한 것인가, 아니면 민주주의가 우리를 배신한 것인가" "도대체 민주주의 할 건가 말 건가?" 엄혹했던 박정희 시대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놀랍게도 테러를 당한 지 25년이 지난 시점, 현재의 대한민국을 향해 내뱉는 한탄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판단이 전제되어 있다. 현재 한국은 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라 운영되는 사회가 아니라는 점, 그리고 현 집권세력이 민주주의에 대한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는 점이 그것이다.

우리가 처해 있는 황당한 현실, 권력에 의해 민주주의가 거부당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깊은 자괴감을 굳이 숨기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국민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대통령을 뽑은 죄밖에 없다. 그렇게 뽑은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보편적 상식과는 다른 것으로 해석해버리거나, 민주주의를 실천할 만한 역량이 부족하다면 우리는 선거를 통해 도대체 무엇을 선출한 것이란 말인가.(오홍근 <민주주의의 배신> 책머리에)

이러한 의문이 정당하다는 것은 최고 리더십의 실체가 확인되지 않는 오늘의 답답한 현실이 여실히 보여준다. 물론 '종북 몰이', '좌파 몰이'에 바쁜데다가 '의사소통'에 관한 한 외계적 준거를 보유한 듯한 현 집권세력은 이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인권, 자유, 평등에 관한 국제적 기준의 평가수치가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를 바란다. 이런 식으로 지속된다면 우리는 허울뿐인 OECD 국가로서 형해화하지 않겠는가.

무엇이 문제일까. 왜 우리 사회는 합리적 논의와 대안 마련에 이토록 취약할까.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운영되는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49 대 51이라는 생각의 분포에 따른 긴장감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선거에서 승리한 '51'의 의식이다. 선거 승리를 '독식'의 당연한 권리쯤으로 과잉 해석한다면 그 '집권'은 국가적 비극의 출발점이 될 수밖에 없는데, 바로 우리 현실이 그렇다. '51'은 민주주의의 원칙에 다수결만 있는 것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의 원칙, 소수자 배려의 원칙도 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또 그에 추종하는 적지 않은 이들은 생존을 위해서는 기득권자들에게 일단 '영혼'이라도 내주는 게 상책이라는 믿음을 버릴 생각이 없는 듯하다.

이런 비민주적 상황 속에서 품게 된 의문이다. "이렇게 허약한 민주주의였던가?" 답은 간단하다. 이승만, 박정희 이래 수많은 이들의 죽음으로 비로소 체험하게 된 소중한 이념이지만 사실 놀라울 정도로 허약한 민주주의였던 것이다. 더욱 확실한 민주주의를 달성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부족했다. 그 결과 지금도 많은 이들이 '새마을 운동' 수준의 의식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은 한국의 민주화에 관한 소문을 듣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노예가 아닌 주인된 자로서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자에 대한 5년 동안의 권한 위임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다.

▲오홍근 작가가 기자 시절 군부로부터 이른바 '회칼 테러'를 당했을 당시 사진 ⓒ오홍근 제공

우리 정치의 자화상 <민주주의의 배신>

결론적으로 저자는 집권 세력의 비민주적 권력욕과 민주주의의 기본 인식에 도달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한계로 인해 21세기의 대한민국이 봉건적 1인 통치의 수렁에 빠지게 되었다고 진단한다. 그것이 절차적 민주주의에 따랐으되 온전한 민주주의를 구가하지 못하게 된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상황인식을 이 책 <민주주의의 배신>에 담았다. 여전히 허약한 상태에 멈춰 서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제 이익이나 취하자고 그러한 상황을 호도하는 이들에 대한 비판이고, '세월호 참사'가 드러낸 한국호의 비참한 실상을 다시 한번 반추해 보는 데에도 도움이 될 내용들로 가득하다.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민주주의란 한번 시동을 걸어 놓으면 자동으로 돌아가는 단순한 기계장치와 다르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제라도 별 생각 없이 지나쳐온 그 망각의 시점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허약한 민주주의'나 원망하며 책임을 전가할 때가 아니다. 저자는 지난 역사와 현실에 대한 성역 없는 비판을 통해 더 늦기 전에 못다한 숙제를 우리 스스로 끝내야 한다는 점, 그리고 더 이상 배신 운운할 필요가 없는 강건한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들의 무한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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