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은 지구에서 가장 큰 강이다. 그 다음 순위의 강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압도적인 차이가 있다. 아마존의 전체 유역 면적은 705만 제곱킬로미터로 대한민국 면적의 70배나 된다. '아마존 정글'에서 연상되는 약육강식의 세계는 자본주의 정글의 법칙을 통해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로 등극한 아마존닷컴의 행보와 빼닮았다.
20년 전(1994년) 창립한 아마존닷컴은 이제 9만 명 이상의 직원을 거느린 거대 공룡이 되어 지구촌 곳곳에 현지 법인을 만들며 진출하는 곳마다 책 생태계를 뒤흔들며 유통업계 최강자로 부상했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들이 숨어 있었다.
▲ <아마존, 세상의 모든 것을 팝니다>(브래드 스톤 지음, 야나 마키에이라 옮김, 21세기북스 펴냄). ⓒ21세기북스
드디어 아마존닷컴 전자상거래 비즈니스 태풍의 한국 상륙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관련 업계는 초긴장 속에서 추이를 주목하는 상황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마존닷컴은 그들이 주목하거나 거래하는 상품 분야에서 최저가 판매, 끝장 투자, 막가파식 유통권력 행사로 기존 소매업체들을 초토화시키며 승자독식의 역사를 써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마존닷컴의 기업사를 창립자 제프 베조스의 개인사와 엮어 추적한 <아마존, 세상의 모든 것을 팝니다(The Everything Store)>(브래드 스톤 지음, 야나 마키에이라 옮김, 21세기북스 펴냄)는 흥미진진한 역작이다. 아직껏 아마존닷컴의 칼날 맛을 보지 않은 한국의 폭풍전야 상황에서, 이 책은 거대 공룡 기업의 족보와 실체를 유력 언론 실리콘밸리 전문기자의 탁월한 안목으로 일러준다. 전․현직 직원, 제프 베조스, 관계자 등과 300회 이상의 인터뷰를 해서 썼다는 생생한 박진감과 공력이 느껴진다.
책의 제목처럼 아마존닷컴은 세상의 모든 것을 판매하는 '에브리싱 스토어', 즉 최대 최강의 온라인 소매유통 업체를 지향한다. 현존하는 세계 최대의 서점이자 메가 쇼핑몰이며 인터넷 유통시장을 제패한 '인터넷 제국주의' 기업이다. 이런 제국을 만들기 위해 IT, 전자상거래, 물류, 그리고 특정 품목의 전문가 등 사업 관련 분야 최고 인재들을 수시로 영입하고 막대한 자본과 온갖 술책으로 집요하게 기업을 인수하거나 목표물들을 차례차례 먹어치운다. 책으로 시작한 욕심은 영화 같은 콘텐츠부터 아기 기저귀, 식품, 언론, 그리고 핵심 정부 기관들까지 고객으로 끌어들인 아마존 웹 서비스(AWS) 및 크라우드 소싱, 우주항공(우주탐사 회사 '블루 오리진' 운영) 분야에 이르기까지 가리지 않는다.
끝도 없이 많은 돈을 벌려는 이유도 베조스가 어린 시절부터 열광하던 "우주로 가기 위해서"라고 한다. 베조스는 블루 오리진의 목표가 인간을 우주로 실어 나르는 비용을 줄이고 기술의 안정성을 보강하는 것에 있다고 공개 강연에서 밝히기도 했다. 다른 매출들과 마찬가지로 AWS 매출액도 비밀에 부쳐졌지만, 애널리스트들은 2012년에 22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넘치는 카리스마와 예지력을 겸비한 창립자 제프 베조스와 따로 떼어서 생각하기 어려운 사업 방식이나 독특한 기업문화 또한 흥미롭다. 이른바 제프이즘(Jeffism)은 철저한 고객 중심, 장기적 전망, 창조 즐기기 등을 표방했지만, 여기에는 똑똑하게 일하기, 열심히 일하기, 장시간 일하기 같은 (가정을 포기하고) 일에만 집중하라는 문화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같은 천재성 넘치는 IT 리더들과 마찬가지로, 베조스 역시 직원들을 소모품처럼 대하고 공감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 또한 끊이지 않는다. 또 사내 기획 제안에서는 파워포인트나 슬라이드 프리젠테이션을 금지하고 보도자료용 기사(산문) 스타일로 장점을 명확히 부각시켜야 한다.
경비 절감을 위해 회사는 직원들의 주차비와 간식비까지 받아 챙긴다.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물류센터는 쌀쌀한 날씨에도 난방을 하기 어렵다. 아마존은 또 세금을 내지 않는 기업으로도 악명이 높다. 사무소나 물류창고가 있는 미국의 각 주는 물론이고 해외에서까지도 전자상거래 기업임을 내세워 납세의 의무를 교묘하게 피하거나 최소화시키려 노력했다. 베조스가 창업 장소로 시애틀을 선택한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도 세금을 적게 내려는 꼼수였다.
책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아마존닷컴이 분명 혁신적인 기업이지만, 새로운 세상을 위한 선교사를 자처함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자본의 이익에만 복무하는 용병의 길을 걸어왔다는 사실이다. 제프 베조스가 애독했다는 <좋은 기업을 넘어…위대한 기업으로>(이무열 옮김, 짐 콜린스 지음)에 빗대자면, 아마존닷컴은 '좋은 기업'도 '위대한 기업'도 아닌 '돈밖에 모르는 천민 자본주의 기업'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게 만든다.
아마존의 책 생태계 독점 가속화와 '위험한 의존'
아마존닷컴은 더 이상 인터넷서점이 아니다. '에브리싱 스토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관심이 쏠리는 것은 지난 20년간 책 생태계의 큰 변화를 이끌어 왔다는 점이다. 세계 최초로 성공한 인터넷서점의 비즈니스, 자동적인 최저가 판매 보장, 유사한 관심사를 다룬 책을 추천하는 맞춤형 서비스, 원클릭 주문, 중고책 동시 판매, 마켓플레이스 수수료 수익, 책 내용 미리보기 서비스, 책 내용 찾아보기(본문 검색) 서비스, 최초이자 최대로 성공한 전자책 사업 모델, 저자 직접 출판 등은 책과 관련된 아마존닷컴의 돋보이는 수익 창출 의지와 노력의 산물이었다.
제프 베조스는 아마존을 경원시하는 출판계를 의식해 "아마존이 출판 산업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미래가 출판 산업에 나타난 것"이라고 표현한다. 나아가 디지털 시대에도 서점으로서 계속 성공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잡아먹는 것이 남에게 잡아먹히는 것보다 낫다"는 믿음으로 전자책 사업에 올인한다. 그의 육성을 좀 더 들어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다. "여태껏 쌓아올린 사업(인터넷서점)을 죽여(서라도), 종이책을 파는 모든 사람들을 실직자로 만들 것처럼 디지털 사업을 진행"하도록 명령한다(290~291쪽). 베조스는 아마존이 세상을 디지털 독서의 시대로 이끌지 않으면 애플이나 구글이 그 일을 할 것이라고 믿으며 심한 강박증을 보였다.
▲ 한국이 주빈국(마켓 포커스 국가)으로 참여했던 2014 런던북페어에서 아마존닷컴 후원으로 마련된 ‘킨들 다이렉트 출판’ 성공 작가 홍보 세미나에 몰린 관중 및 관련 부스. ⓒ백원근
전자책 사업에 돌입하면서 아마존은 전자책 단말기 킨들을 개발하는 한편으로 콘텐츠 확보를 위해 출판사들을 강하게 압박, 회유, 협박했다. 디지털화 작업(전자책 발행)이 더딘 출판사들은 아마존의 종이책 검색 결과와 고객 추천에서 불이익을 받도록 하겠다고 윽박질렀다. 출판사들의 목숨이 걸린 종이책 판매를 볼모로 전자책 사업을 강제로 견인한 것이다.
인터넷 판매에서의 막강한 시장 지배력을 무기로 한 아마존의 "정신분열적 공격"(310쪽)에 출판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고, 아마존은 모든 인기 도서와 신간 전자책 가격을 출판사와의 정식 협의도 없이 비밀리에 9.99달러로 정하는 폭거를 자행했다. 애플 아이튠스의 디지털 싱글 가격이 99센트로 성공하는 것을 보고 베조스가 '직감'으로 매긴 가격이 바로 9.99달러였다.
아마존닷컴이 인터넷서점을 거쳐 전자책 사업에서도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기까지, 그들이 진출한 출판 생태계는 융단 폭격을 맞았다. 일방의 성장은 새로운 부가가치 시장의 창출이라기보다는 다른 일방의 죽음을 숙주로 삼기 때문이다. 미국은 물론이고 아마존이 진출한 나라의 출판사들은 절대 유통권력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상태에 빠졌고, 특히 도서정가제가 없는 나라의 토종 인터넷서점이나 오프라인 서점들은 최저가 할인과 각종 마케팅에 완벽하게 무장 해제당했다.
전자책을 필두로 인터넷서점, 저자 직접 출판 등 아마존의 한국 진출은 막강한 영향력과 자본을 토대로 한국 출판의 지각변동을 촉발시킬 것으로 보인다. 아마존의 입성을 계기로 유통 대전을 통해 종이책과 전자책의 매출 증대를 은근히 바라는 출판사들의 기대가 얼마나 순진무구한가를 이 책은 깨닫게 한다. 유통 독점화에 의한 책 생태계 파괴를 미연에 방지할 연대 전략의 마련이 시급한 때라는 경계심을 품게 만드는 것이다.
대자본과 거대 콘텐츠 저수지를 가진 미국 출판사들, 그리고 해외의 출판유통 업체들이 속절없이 잠식당한 아마존의 전략에 맞서 우리 출판계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고 선택지는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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