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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선 지하철 사고, '무서운 진실'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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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2호선 지하철 사고, '무서운 진실'이 숨어 있다

[기고] 우리 사회의 또다른 세월호, 방치할 것인가

5월 2일 서울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지하철 추돌사고가 발생했다. 세월호 충격이 아직 생생한 가운데 서울 한복판 지하철 역의 추돌 사고 소식은 시민들의 가슴을 또 한 번 철렁 내려앉게 했다. 운영기관인 서울메트로는 "신호연동장치의 데이터 값 변경 이후 발생한 오류로 잘못된 신호가 표시되었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열차 운행의 기본적 전제이자 가장 중요한 것이 신호 체계이다. 신호 체계는, 열차가 운행되기 시작하면 단 한 순간도 운영 기관이 인식하지 못하는 오류를 일으켜서는 안 된다. 열차 운전을 담당하는 기관사는 신호기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바탕으로 운전하게 된다. 만약 신호기가 오류를 일으킬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제정신으로 운전을 할 수 있는 기관사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일정 시간 간격을 두고 궤도 위를 달리는 철도나 지하철의 지상 최대 과제는 앞선 열차와의 추돌을 막는 것이다. 이것은 철도의 탄생때부터 화두였다. 현대적 철도 신호 기술의 핵심은, 열차를 더 조밀하게 운행하면서도 근원적으로 추돌사고를 발생케 하지 않는 것으로 요약된다. 사고가 난 지하철 2호선의 신호체계는 ATS(Auto Train Stop)가 도입돼 있다. 열차 자동 정지 시스템이다.

ATS의 개념에 대해 설명해보자. 긴 선로를 여러 구간으로 나누어 각 구간마다 신호기를 세우는데, 이 구간들을 '블록화'시켜 열차의 충돌을 방지하는 시스템이 ATS다. 달리는 열차의 뒷부분에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몇 겹의 보호막이 형성되어 있는데, 그 보호막 역할을 하는 게 ATS라는 신호 체계다. 만약 뒤에서 오는 열차가 어떤 이유에 의해서건 보호막을 뚫어버리면, ATS는 자동으로 열차를 정지시켜 앞 열차와의 충돌을 막는다. 이번 사고의 문제점은 뒤에서 오는 열차가 접근하고 있는데도 이 보호막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는데 있다. 결국 기관사는 육안으로 '보호막이 없다'는 것을 간파한 후에야 비상 제동을 걸어야 했다 그래서 사고를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기관사의 빠른 상황 판단과 적절한 대처가 대형 사고를 막아냈다는 점이다. ATS시스템은 선로 위에 설치된 송신 장치의 신호를, 열차가 지나가면서 수신하는 방식이다. 때문에 만약 기관사가 육안으로 앞 열차를 확인, 비상 제동 조치를 실시하지 않았다면, 열차가 신호기 위치를 지남으로 해서 제동장치가 자동으로 작동되었다면, 그만큼 제동은 늦어졌을 것이다. 기관사가 없었다면 더 큰 피해를 낼 수 있었다는 말이다.

결국 사람이다.

▲2호선 상왕십리역 지하철 추돌 현장 ⓒ프레시안(최형락)

무서운 사실, 비용절감 컨설팅은 있으되 안전 컨설팅은 없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도저히 있어서는 안 될 사고들이 연이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수 십 년간 한국사회가 지향해온 최고의 가치가 생명이 아니라 돈이었기 때문이다. 철도나 지하철이 갖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언제나 적자 문제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나 공기업의 최고 경영자들은 채찍을 휘둘렀다. 비용을 줄이는 것이 경영자의 최고 덕목이 된 순간부터, 철도와 지하철은 앞 다투어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또 이 결과에 따라 CEO의 연임이나 성과급 보상 등 인센티브가 반영되었다.

구조조정이 경영자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것은 황당한 일이다. CEO가 구조조정을 전문으로 하는 기관에 용역을 맡기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인력 감축 등 각종 조치를 취하는 것은, CEO의 경영 능력과 아무 상관이 없다. 심지어 요즘은 경영 능력보다 노조를 무력화시키거나 시민사회의 반대 여론을 뚫는 돌파 의지가 CEO에게 더 중요한 것처럼 비쳐진다. 결국 모든 가치가 비용 절감으로 모아지는 사회에서 안전은 부차적 요소로 전락하게 된다. 안전이라는 것은 성과가 눈에 띄지도 않고, 비용 대비 효과도 볼 수 없는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30억 원을 들여 매킨지-삼일회계법인에 시와 5개 산하기관에 대한 경영 개선안 컨설팅을 맡겼고, 지난 3월 이 컨설팅 중간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이 보고서의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 관련 항목을 보자. '무인 운전을 도입해 기관사 인력을 없앰으로서 인건비를 대폭 줄여야 한다'거나, '역무직의 대규모 구조 조정을 통한 경비 절감'안이 포함돼 있다. 또 여러 분야의 외주화를 통해 지하철 공사가 직접 하는 사업들을 최소화하는 것도 제안됐다. 목적이 '안전'이 아니라 경영 개선이다 보니, 모든 것이 비용 절감으로 귀결된다. 당연히 안전은 부차적인 문제가 되었다.

무서운 사실을 폭로해볼까? 이제까지 수많은 공기업들은 경영 개선 컨설팅은 받아왔다. 그런데 제대로 된 안전 관련 컨설팅은 받아본 적이 없다. 지금 한국의 기업들에게 필요한 것은 안전과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안전 컨설팅이다.

이번 사고의 원인에는, 지하철 운행에 있어 핵심 요소 중 하나인 ATS 신호 유지 보수 업체와, 그 관리자인 서울 메트로 간의 이원적 체제도 한 몫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서울메트로의 신호팀은 ATS 설비 및 보수업체에 전적으로 의존 할 수 밖에 없었다. 외주업체가 공사를 완료한 후 서류에 확인 사인을 하는 것으로 신호팀의 업무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신호팀 업무는 그때부터 시작되어야 했다. 공사 후의 신호 상태는 이상이 없는지, 오류가 발생하진 않는지 상당기간 추적 관찰을 하는 것이 신호팀의 임무다.

철도운영기관이 다양한 업무들을 외주화 하여 시간이 갈수록 핵심 기술력을 상실하는 것도 문제지만, 외주 업체의 작업 과정을 관리하고 작업 후의 적용 단계를 점검하는 체계를 확고히 하지 않으면, 사고요인이 숨어있을 공간은 더 늘어나게 된다.

▲지하철 사고 이후 안전 요원이 상황을 점검하는 것을 반대편 지하철 승객들이 지켜보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역무원을 '이용객 관리 요원'으로 보는 한국 지하철

앞서 언급한 매킨지-삼일회계법인의 경영개선 컨설팅 내용에는 역무원의 대대적 인력감축안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무리한 인력 감축안은 지하철을 사실상 무인역으로 만들어 버리게 된다. 상왕십리 사고에서 알 수 있듯, 막상 사고가 터지면 수 천 명의 승객은 비상시 대처 매뉴얼이 몸에 익은 정규직 직원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한국 지하철의 특징은 역무원의 역할을 단순한 이용객 관리로만 한정시켜 놓았다는 점이다.

일본 지하철에서는 승강장에서 승객을 안전하게 유도하거나 역 구내 순회를 통해 위험 요소를 해소하는 역무원들의 활동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러시아워 시간이면 일본 지하철 역에는 더 많은 역무원들이 승강장에 배치된다. 반면 서울 지하철에는 이용객이 극단적으로 몰리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이나 신도림, 사당, 강남 역 등의 역에서조차 지하철의 정규 직원을 만날 수 없다. 사람들이 몰리는 역에서는, 비단 열차사고가 아니더라도 인파로 인해서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 요인이 상존한다.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기관이 방치하고 있는 현실인데, 이것이 어느새 정상인 것처럼 자리 잡았다.

상왕십리역 사고에서 승강장에 배치된 역무원이 있었다면 사고 상황을 더 빨리 관제 센터나 관련 기관에 알릴 수 있었을 것이다. 다른 역무원들을 긴급 호출해 승객들의 탈출 유도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위급 상황에서는 비상시 매뉴얼에 의해 훈련된 요원 한 사람이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충돌한 두 열차에서 사고 상황을 가장 빨리 알 수 있는 사람은 비상 제동을 걸었던 뒷 열차의 기관사와 어쩔 수 없이 추돌을 당해야했던 앞 열차 맨 뒤에 승차한 차장이었다.

전동차 한량의 길이는 약 20미터이다. 10량 편성이면 200여 미터의 길이고 추돌당한 맨 앞의 기관사와 추돌한 열차의 맨 뒤 차장은 사고 상황에 대한 이해를 즉각적으로 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열차 충돌로 인한 충격으로 전기가 차단되고, 방송기기 등이 고장 날 경우 상황 파악이나 승객 구호 조치가 더욱 힘들어 지는 것은 당연하다. 충돌 지점에 있었던 승무원들이 중상해를 입기라도 하면, 실질적으로 승객들에 대해 즉각적인 대피조치를 시킬 수 없게 된다.

역무원들이 개찰구에서 무임승차를 단속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게 순회를 통한 승객안내와 안전 조치이다. 과거에는 표를 팔고 개찰구를 관리하던 역무 개념으로 역무원들의 업무를 규정했었다. 자동화 기기가 보편화되면서 역무원들은 업무량 감소에 따른 구조조정 대상으로 간주됐다. 그러나 이는 큰 문제다. 위험은 복잡해지고, 또 다양해졌다. 그런 현대 지하철에 요구되는 업무 프로세스에 맞게 인력과 업무를 재조정하는 것이 필요한 상황이다.

▲지하철 사고가 난 상왕십리역 ⓒ프레시안(최형락)

충돌 후 대형사고 벌어질 뻔…열차 사고 피하는 방법은?

사실 이번 사고는 추돌 과정에서가 아니라 추돌 후 상황에서 대형 참사가 빚어질 뻔 했다. 세월호 사고에 따른 학습 효과로 생긴 안내방송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상황이, 정작 올바른 안내조차 무시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다. 이번 사고처럼 열차 추돌사고가 있을 경우 무작정 전동차 문을 열고 선로로 뛰어 내리면 반대편 선로에서 달려오는 열차와 충돌을 피할 수 없다. 더 큰 대형 인명 사고가 긴급 대피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추돌 사고의 경우 선로로 대피하더라도, 승객들은 열차 진행 방향의 맨 앞쪽으로 이동해 고장 나 정차해 있는 열차를 등지고 이동하는 게 안전한 방법이다. 화재 사고나 기타 긴박한 상황에서도 수동으로 전동차의 문을 열고 선로에 내릴 경우 반대편 선로에 열차가 접근하는지를 우선적으로 살펴야 한다. 관계 당국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지하철이나 철도사고에 대처하기 위한 매뉴얼을 더욱 세밀하게 만들어야 하는 과제도 떠 안았다.

이번 사고는 신호시스템의 오류가 직접적인 원인이었지만 낡은 전동차도 피해를 가중시키는데 한 몫 했다. 25년 가까이 운행된 차량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신형 차량은 기술 발전에 따라 제어 방식과 제동 성능도 향상되어 안전성이 높다.

그러나 10량 1편성이 100억 원을 훨씬 넘는 실정에서, 역시 비용이라는 벽에 부딪혔다. 그렇지 않아도 적자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철도와 지하철에서 내구연한이 다한 차량을 폐차하고 신형 차량을 구매하는 것은, 운영기관의 부실을 더 가중시키는 일로 여겨진다. 코레일은 내구연한이 다한 낡은 차량교체를 위해 2조5000억 원의 비용을 들였는데, 이 돈은 지난해 철도민영화 논란 속에 비난 받았던 막대한 코레일 적자의 한 부분이었다.

이명박 정권 시절 국토부가 앞장서서 철도차량 내구연한을 폐지했고 이에 따라 얼마든지 낡은 차량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국토부는 정비 점검을 철저히 하면 된다고 말하지만, 세월호도 침몰 전 받은 검사에서는 모든 항목에서 양호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일본의 철도 차량들이 자체적으로 정한 내구연한이 지났는데도 운행을 계속한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동일본 철도, 도쿄에서 북쪽 지역 니카타까지 운행하는 조에쓰 신간선 2층 고속열차인 E4계 차량은 1997년 도입된 차량이다. 기관사의 시각으로, 한 눈에 봐도 충분히 쓸 만한데 새롭게 제작된 고속열차에 자리를 내주고 현역에서 은퇴했다.

이미 2006년부터 교체 계획을 세웠고 올해 안에는 전면 운행을 중단할 계획이다. 동일본 철도는 차량 노후화와 최신예 차량 도입에 따른 조치라고 밝혔다.

이제는 한국 사회에서 언제 발생할지 모를 시민들의 희생을 전제로 한 정책을, '효율화'의 이름으로 진행되게 해서는 안 된다. 철도나 지하철의 경영 부실을 막기 위해 내구연한이 지난 위험천만한 열차를 일상적으로 타게 만드는 게 제대로 된 사회인가?

적자를 줄이기 위해 진행되는 인력 감축에 따른 정비부실, 무분별한 외주화로 인한 책임소재의 불분명, 불량부품을 둘러싼 비리 커넥션 등, 효율화란 이름으로 사회 곳곳에 만들어지고 있는 또 다른 세월호들을 방치한다면 비극은 주기적으로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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