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KBS) 막내급 기자 55명이 7일 오후, KBS의 세월호 참사 보도 방식을 반성하는 대토론회를 제안한다는 성명을 사내 망에 게시했다. '반성합니다. 침몰하고 있는 KBS 저널리즘을'이란 제목의 이 성명에는 공개 채용 38·39·40기가 모두 연명했다.
앞서 이날 오전에는 해당 기수 기자 10명이 '참사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지 않고 정권의 목소리에만 귀 기울인 보도 행태를 비판하고 반성하는 글들을 대표로 올려 파문이 일고 있다.
기자들은 성명에서 "오늘 아침 보도 정보시스템과 게시판에 공개한 반성문은 진지한 고민의 결과물"이라며 "하지만 어떤가. KBS 저널리즘에 대한 성찰과 반성을 요구하는 막내 기자들의 목소리를 수뇌부는 어린 기자들의 돌출 행동으로 치부하려 한다"고 썼다.
그러면서 "KBS 세월호 보도가 선방했다는 간부들의 민망한 자화자찬과 최근 잇따라 불거진 (김시곤) 보도국장의 '문제발언'들. 우리의 '반성'과 간부들의 '문제발언' 가운데 뭐가 더 가벼운 돌출 행동인가"라고 물었다.
앞서 김시곤 보도국장은 뉴스 앵커들에게 '검은 옷을 입지 말라'고 지시한 데 이어 "세월호 참사 희생자 수가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 수와 비교하면 그리 많지 않은 수준"이라고 발언한 사실이 드러나 빈축을 산 바 있다.
성명을 낸 이들은 이어 "오늘 공개한 반성문들은 기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일방적인 삭제를 당했다"며 "우리는 이를 보도본부 내에서의 의사소통을 거부한 수뇌부의 결정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임창건 보도본부장과 김시곤 보도국장에게 다시 요구한다.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 세월호 보도에 관여한 모든 기자들이 참석해 세월호 보도를 반성하는 대토론회를 열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이 토론회에서 나온 반성의 결과물을 우리 뉴스에 반영하길 원한다"고 밝혔다.
"쏟아지는 비판에도 내부에선 성공적 평가…혼란스럽다"
이날 오전에 해당 기수 기자 10명이 사내 망에 올린 글 말미에도 같은 요구가 담겨 있었다. 성명과 마찬가지로 '반성합니다'란 제목으로 시작되는 글들은 KBS 보도가 지닌 문제점과 현장의 취재 기자들이 느낀 답답함과 분노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한 기자는 "취재 내내 'KBS를 어떻게 믿어요?'란 질문을 매일같이 들었다"며 "(안산에) 공식합동분향소가 문을 연 지난달 29일 9시 톱뉴스는 박근혜 대통령의 조문이었고 정부 대책을 요구하던 유가족대책위원회 기자회견은 보도되지 않았다"고 썼다.
'손에 쥔 카메라가 요즘처럼 무겁게 느껴졌던 적이 없다'고 한탄한 기자도 있었다. 이 기자는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 시민들이 쏟아내는 비판의 메시지가 KBS 뉴스에 온전히 반영되지 못했다"며 "(그럼에도) 내부적으로 이번 특보 체제에 대한 성공적인 평가가 있어 더더욱 혼란스럽다"고 밝혔다.
"정부의 숫자놀음에 대한 비판이 너무 늦었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 기자는 "현장의 목소리에 조금만 더 귀 기울였다면 정부의 숫자놀음에 대한 비판이 12일 후에나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그것도 취재 기자의 발제에 떠밀려 비중 없는 뉴스 후반부 단 한 꼭지로 나왔다"고 털어놨다.
"왜 우리는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건가"
또 다른 기자는 "왜 우리 뉴스는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건가"라고 물었다. 그는 지난 4일 박근혜 대통령의 두 번째 진도 방문 당시 "팽목항에서의 혼란스러움과 분노를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며 "톱으로 대통령 방문을 다룬 것도 모자라 두 개의 꼭지로 대통령 동선을 따라 장소별로 보도했다"고 비판했다.
박 대통령의 첫 번째 진도 방문에 대한 KBS의 보도를 '날조'라고 표현하며 강하게 비판한 기자도 있었다. 그는 대통령이 '누구보다 가족분들이 (구조 상황을) 들으셔야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한 후 손뼉으로 화답하는 실종자 가족들이 보도된 데 대해 "'경사 났어? 박수를 치고 그래!'란 편집되지 않은 실종자 가족 반응이 있었다"고 썼다.
이어 "박수갈채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수많은 공무원과 경호원, 연단 위의 박 대통령과 땅바닥의 실종자 가족들을 벽처럼 갈라놓은 그들의 것이었다. 기묘한 편집술 덕에 이들 공무원의 호응이 마치 가족 반응인 것처럼 둔갑한 게 문제다. '날조'다"라고 비판했다. "청와대만 대변하려거든 능력껏 청와대 대변인 자리 얻어서 나가서 하는 것이 오히려 솔직한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매일 보도정보 시스템에 업데이트되는 세월호 관련 연락처 어디에도 유가족이나 실종자 가족과 관련된 연락처는 없었다"는 자조도 나왔다. 이를 쓴 기자는 "리포트에서도 그들(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의 목소리는 점점 사라졌는데도 위에서는 '아이템들이 너무 실종자 입장으로 치우쳤다'며 전화를 했다"고 밝혔다.
글을 올린 기자들은 말미에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 세월호 보도에 관여한 모든 기자들이 참석하는 토론회를 제안한다. 그 결과물을 우리 9시 뉴스를 통해 전달하고 잘못된 부분은 유족과 시청자들에게 분명히 사과해야 한다. 침몰하는 KBS 저널리즘을 이대로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다"고도 썼다.
이에 대해 KBS 보도본부는 "후배 기자들의 다양한 견해를 지금 듣고 있고 필요하다면 토론회도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보도본부 측은 "(기자들의 의견 표출) 현장은 KBS의 건강성과 투명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보도본부에서는 이미 백서를 준비하고 있었다. 기존의 재난 및 사고 보도 준칙도 이번 세월호 사고에는 일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지적에 따라 여러 기자들의 의견을 취합해 수정 보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언론노조 KBS본부 "사장·보도본부장·보도국장 물러나야"막내 기자들의 반성과 원성에 우선 답한 쪽은 전국언론노동조합 KBS 본부(이하 노조)다.노조는 이날 55명의 성명이 나온 직후 연이어 성명을 내고 "부끄럽고 한심한 일이지만 KBS의 현실이고 우리 후배들이 겪은 고통의 시간"이라며 "수신료조차 아깝다는 여론이 SNS(소셜네트워크)를 통해 들끓는 시점에서 반성 없는 KBS의 모습은 과연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라고 물었다.이어 "그런데 이런 후배들의 가슴 아픈 절규를 뒤로하고 회사의 책임자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며 "길환영 사장은 'KBS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타 언론사의 오보나 선정적 보도 경향과는 달리 사회 중심추 역할을 해냈다'고 했고 임창건 보도본부장은 '현장에서 문제 제기 안 하고 뒤통수치듯이 글 쓰는 거 이해 못하겠다. 보도국장 발언 문제 삼은 것과 연계해 생각해 보건대 이번 일도 정파적으로 이용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고 밝혔다.이어 노조는 "김시곤 보도국장은 '후배들 이런 글은 대자보 정치'라며 'KBS가 실종자 가족 이야기를 다 들어줘야 하나'라는 입장을 내놨다"며 "KBS 뉴스를 대표하는 이들에게 대체 무슨 기준이 있는 것이냐. 길환영 사장, 임창건 보도본부장, 김시곤 보도국장은 당장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물러나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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