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북핵위기'의 빌미가 된 핵확산금지조약(NPT, Treaty on the Non-Proliferation of Nuclear Weapons)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살펴보겠다.
1968년 작성되어 1970년 3월 발효에 들어간 NPT는 이름 그대로 핵무기의 확산 금지에 목적을 둔 조약이다. 이 조약의 효력은 애초 25년간으로 규정되었다가 1995년의 총회 결정으로 무기한 연장되었다. 현재 189개국이 가입해 있는데, 가입했다가 탈퇴한 나라가 하나 있다. 북한이다. 유엔회원국으로서 가입하지 않고 있는 나라가 북한 외에 넷 있다.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과 남수단이다. 최근(2011년) 독립한 남수단은 NPT에도 곧 가입할 것이 예상되지만, 나머지 세 나라는 가입에 문제를 가진 나라들이다.
NPT는 한마디로 불평등조약이다. 핵무기 제조능력을 이미 갖고 있는 나라들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그 밖의 미보유국은 핵능력을 갖지 못하게 하는 것이 조약 목적이다(1970년 출범 때는 미국, 소련, 영국만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았고, 1992년 프랑스와 중국이 가입하면서 추가로 인정받았다). 미보유국에게 현실을 받아들이도록 요구함으로써 현상유지를 꾀하는 이 조약이 확산금지의 효과를 어느 정도 발휘해 왔다는 사실은 인정된다. 출범 당시에는 향후 20년 후 25개국 이상이 핵능력을 갖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었으나 그 갑절의 기간이 지난 지금까지 핵무기 보유국은 10개 안쪽에 머물러 있다.
핵무기는 현대세계에서 군사력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따라서 그 보유 여부는 정치-외교에도 엄청난 힘의 차이를 가져온다. 그런데도 미보유국이 보유국과의 힘의 격차를 감수하게 하려면 당연히 미보유국이 손해 보지 않게 해주는 반대급부가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반대급부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기술을 핵보유국이 적극적으로 제공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핵무기가 미보유국에 대한 군사적 위협에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두 가지 반대급부가 있다면 미보유국이 굳이 핵능력 확보를 위해 애를 쓸 필요가 없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칼을 휘두르지 않기로 약속하더라도 실제로는 칼자루를 쥔 입장과 칼날을 쥔 입장이 다르다.
게다가 이 약속은 당연한 원칙으로 인식되면서도 아직 NPT 조문으로 명문화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원칙에 어긋나는 태도가 적지 않게 나타나는데도 제재가 되지 않는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위협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2003년에 제프리 훈 영국 국방장관이 필요할 경우 이라크에 대한 핵공격에 찬성한다고 BBC 인터뷰에서 말한 일이 있고, 2006년에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프랑스에 대한 테러지원국의 권력 중심부를 파괴하기 위해 소규모 핵공격을 행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핵공격 위협
미국의 북한에 대한 핵공격 위협은 1976년 팀스피릿훈련 개시와 함께 일상화되었다.
월남 패망 후 미국은 안보에 대한 불안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던 남한 정부를 달래준다는 명목 하에 경우에 따라 핵무기를 사용할 수도 있다며 공공연하게 북한을 위협했다. 1975년 6월 제임스 슐레진저 국무장관은 남한에 미제 핵탄두가 배치돼 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시인하면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우리가 전술 핵무기를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전개된다면 (…) 실제 그 사용 여부를 고려하게 될 것이다." 이어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미국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시험하는 것은 결코 현명치 못한 행동이다." 그로부터 1년 후인 1976년 2월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미군 전폭기 부대가 잠시나마 남한에 배치됐고 이 사실은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게다가 그해 6월 처음으로 실시된 팀스피릿 연례 합동 군사훈련의 일정도 대규모 병력 이동과 핵무기 사용 훈련으로 구성돼 있었다. (돈 오버도퍼 <두 개의 한국> 385쪽)
여기서 주의할 점은 실제 공격이 아닌 '위협'까지 NPT의 규제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전략무기'로서 핵무기의 특성 때문이다. 실제 공격을 통해서만 효과를 거두는 무기는 '전술무기'다. 위협만을 통해서도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 전략무기의 특성이다. 북한이 핵능력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 '위기'를 구성하는 것도 이 특성 때문이다.
핵무기를 만들고 있다는 의미에서 '핵능력'을 가진 나라는 열 개 미만이다. 그러나 마음만 먹으면 단시일 내에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잠재적 핵능력'을 가진 나라는 그 몇 배 있다. '북핵위기'의 가장 큰 위험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남한, 일본, 대만 등 주변국의 핵무기 개발 의지를 촉발하는 데 있다.
NPT의 궁극적 목표는 핵무기의 완전 철폐에 있다. 미보유국의 핵무기 개발 의지를 원천적으로 없앨 수 있는 길이다. NPT 조문 제6조가 이 목표를 가리키는 것이다. 해석에 논란이 있는 조문이므로 위키피디아 "NPT"에서 원문을 옮겨놓는다.
"The states undertake to pursue negotiations in good faith on effective measures relating to cessation of the nuclear arms race at an early date and to nuclear disarmament, and towards a treaty on general and complete disarmament under strict and effective international control(조약국은 조속한 시일 내의 핵군비경쟁 종식과 핵무장 해제의 효과적 수단을 강구하기 위한 회담에 성의를 가지고 임해야 하며 엄격하고 효과적인 국제통제 하의 보편적이고 완전한 핵무장 해제조약 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미보유국들은 이 조문을 엄격하게 해석해서 보유국들이 이 조문을 어겨 왔다고 주장하는 반면 보유국들은 느슨하게 해석하면서 이 조문의 요구에 부응해 왔다고 주장한다. 한편 인도는 이 조문이 충분히 엄격하지 못해서 조약 자체가 불공정하다는 것을 NPT 가입거부 이유로 내세운다. 2007년에 인도 외무장관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위키피디아 "NPT").
"인도가 NPT에 가입하지 않는 이유는 핵확산 금지에 성의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 조약에 결함이 있고 보편적, 무차별적 확인과 처리의 필요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NPT는 앞서 말했듯, 불평등조약이다. 출범 당시 25년의 조약기간을 정한 것은 그동안에 핵무기를 전면 철폐함으로써 이런 불평등조약의 필요성을 없애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25년이 된 1995년에는 핵군비경쟁의 주역이던 소련이 사라졌으므로 이 목표의 실현에 접근한 상황이었다. 핵무기의 전면 철폐를 위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런데 미국은 NPT의 무기한 연장을 주장하고 총회에서 관철했다.
NPT 목적 달성 방해하는 미국
NPT의 목적 달성을 방해하는 것으로 가장 많은 비판을 받아 온 나라가 미국이다. 가장 큰 비난을 모은 것이 미국 핵무기의 NATO 배치였다. 남한 배치 핵무기와 달리 독일, 이탈리아, 터키 등 NATO 소속 여러 미보유국에 배치된 핵무기는 유사시에 배치되어 있는 국가의 통제를 받게 되어 있다.
이것이 핵무기와 관련 기술의 양여와 수령을 금지하는 NPT 제1조와 제2조의 위반이라는 비판이 일찍부터 제기되어 왔다. 이에 대해 미국과 NATO의 해명은 이렇다. 평상시에는 핵무기가 미국의 통제 하에 있으므로 양여된 것이 아니고, 유사시, 즉 전쟁이 일어났을 때는 NPT가 이미 깨어진 상황이므로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판자들은 평상시에도 핵무기 운반과 작동훈련 등 관련 기술이 양여된 것임을 지적한다.
NPT가 금지한다는 '핵확산'은 기술보유국에서 미보유국으로의 무기와 기술 이전을 말하는 것이다. 가입하지 않은 나라의 독자적 핵무기 개발에 대한 직접 제재는 없다(그런 제재는 유엔 안보리가 할 일이다). 다만, 조약에 가입하고 준수하는 미보유국에 주어지는 혜택, 즉 평화적 핵기술의 양여와 선제핵공격의 금지가 적용되지 않을 뿐이다.
그런데 이런 기준도 지켜지지 않는다. 미국은 2006년에 '미국-인도 평화원자력협조법'을 제정했다. 그리고 2008년 여러 나라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인도 안전기준 협정' 승인을 받아냈다. 원자력기술과 원전을 인도에 마음 놓고 팔아먹게 된 것이다.
이런 조치를 끌어내기 위해 인도는 22개 핵발전소 중 14개를 '민간용'으로 지정, IAEA의 사찰 대상으로 내놓았다. 이에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은 인도를 "비확산 체제의 중요한 파트너"라고 치켜세웠다. 북한에 요구한 엄격한 사찰과는 천양지판이다.
1974년 핵실험에 성공했던 인도의 앙숙 파키스탄은 1998년에야 핵실험에 성공했으나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약 100기를 비축, 인도와 대등한 핵군비를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파키스탄의 핵무기 개발은 알카에다 상대의 동맹관계로 미국의 관용을 얻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알카에다 자체도, 후세인의 이라크도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통해 군사력을 키웠던 사실에 비춰보면, 미국은 참으로 세계평화를 막기 위해 꾸준히 애써 온 나라다. 근년 알카에다에 대한 파키스탄의 애매한 태도가 문제가 되면서야 파키스탄이 인도와 같은 식의 안전기준 협정을 맺는 것을 미국이 가로막고 나섰다.
미국의 세계평화 위협에 대한 비판이 모이는 또 하나의 초점이 이스라엘 옹호다. 이스라엘이 1958년 이래 핵무기를 개발해 왔다는 것은 '공개된 비밀'을 넘어 '공개된 사실'이 되어 있는데도 미국은 IAEA의 개입을 가로막아 왔다. 2009년에야 IAEA 총회에서 이스라엘의 사찰 수용과 NPT 조약 가입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는데, 너무나도 당연한 내용의 이 결의안이 찬성 49 대 반대 45(기권 16)로 겨우 통과되었다고 한다.
1998년 11월에 쓴 글 하나가 오늘의 주제에 맞는 것이 있어 붙여놓는다.
"궁구막추(窮寇莫追)"
이스라엘이 핵무기를 갖고 있다는 것은 비밀 아닌 비밀이다. 이스라엘은 건국 초부터 '디모나'란 암호명의 핵무기 개발계획을 추진, 1970년경 성공을 거뒀다. 여기에 참여한 기술자 한 명이 영국 반전주의자들에게 기밀을 누설했다고 1986년 본국으로 납치돼 국제적 물의를 빚은 일이 있다. 바누누란 이름의 이 죄수는 간첩죄로 12년간 독방에서 면회조차 못하고 지내다가 몇 달 전 겨우 산책을 허락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핵무기 보유에 대해 이스라엘은 긍정도 부정도 않고 버틴다. 긍정했다가는 서방세계, 특히 미국의 여론이 악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핵무기 통제 압력이 들어올 뿐 아니라 미국의 군사-경제원조도 끊길 염려가 있다. 그래서 밖에서 자기네 핵무기를 갖고 무슨 소리를 하든 아무 대꾸가 없다. 주변 아랍국들은 이스라엘 핵무기에 국제규제를 가해야 한다고 야단이지만 미국이 주도권을 가진 국제기구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고립된 나라는 핵무기에 매력을 느낀다. 남한도 1970년대 말 핵무기 개발을 추진했다는 통설이 얼마큼 확인되고 있는데, 이때는 월남 패망과 주한미군 철수 시작으로 안보위기감이 높은 때였다. 북한이 공산권 붕괴 후 핵무기 개발에 나선 것도 소련이란 방패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소련 해체로 북한은 천애고아 같은 신세가 됐다. 군사-경제 양면에서 소련은 절대적 의지의 대상이었다. 무기 사올 돈이 없는 북한의 군사력은 몇 년 안 가 장비의 낙후로 제풀에 무너질 전망이다. 개방으로 산업경제를 일으킬 길도 열심히 알아봐 왔지만 미국의 경제제재가 움직이지 않고 있다.
4년 전 제네바에서 합의된 4개항 중 하나는 북한과 미국의 관계정상화였다. "합의 후 3개월 내 양측은 통신 및 금융거래에 대한 제한을 포함한 무역 및 투자제한을 완화시켜 나감"이란 대목은 6.25 이래의 경제제재를 풀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합의 몇 주일 후 공화당이 미국 선거에서 대승, 의회를 장악한 후 미국 측 의무 이행을 늦춰오고 있다.
도적을 쫓아도 막다른 골목으로는 쫓지 않는 것이 옛사람들의 지혜였다. 북한이 무기개발에 매달리는 것은 막다른 골목으로 뛰어드는 짓이다. 외화획득도, 자기방어도 그 길밖에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한국 측 햇볕정책을 미국 측이 수긍하고 금창리 핵 의혹 문제에서도 한 발 물러선 것은 남북관계의 큰 진전이다. 상대방을 비난만 하기보다 내 할 도리를 잘 살펴야 싸움을 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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