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위험을 예방하고 위험을 회피토록 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런 순기능과 함께 언론은 위험을 과장하고 증폭하는 역기능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이런 역기능을 줄이기 위해 언론과 언론인이 보도, 특히 위험이나 위기·재난 보도 때 철저한 윤리 의식으로 무장하고 인권을 존중하며 무책임한 보도를 삼갈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현실은 이런 요구가 무시되거나 때론 철저하게 외면당한다. 그 결과 언론은 피해자나 시민의 불신 대상이 되는가 하면, 심하면 욕설과 함께 폭력적인 공격을 받는다. 언론 수용자, 즉 시민과 언론과의 이런 극단적인 긴장과 갈등은 정치적 이데올로기 성향이 강한 보도와 관련해 가장 심각한 형태로 드러나지만, 세월호 참사와 같은 엄청난 파문을 몰고 오는 대참사 보도에서도 표출된다.
우리나라 언론의 재난 보도는 미국이나 일본, 유럽 선진국에 견주면 윤리와 인권 등 여러 면에서 많은 문제점을 보여 왔다. 신문의 경우 공공성보다는 상업성이 더 강조되어 왔다. 여기에는 상업지가 더 많거나 더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측면도 있다. 방송의 경우 신문보다 공공성이 더 강조되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방송은 공중파든, 종편이든 대체로 정권, 특히 보수 정권 지지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재난이 보수 정권에서 발생했든, 진보 정권에서 발생했든지 간에 왜곡 보도를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말 만들어내던 언론인, 이번에 시민이 만들어낸 '기레기'란 말에 조롱당해
300명이 넘는 엄청난 인명 피해를 가져온 이번 세월호 참사 보도에서도 이런 한국 언론의 일그러진 민낯이 낱낱이 드러났다. 그 결과 가뜩이나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우리 언론은 더욱 불신을 받고 있다. 마침내 기자, 즉 언론인이 쓰레기 같은 존재로까지 비치기도 했다. 그 결과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새로운 말까지 등장했다. 이런 말은 원래 언론이 잘 만들어내는 것이었는데, 이번에는 외려 시민들이 신조어를 만들어내 언론을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아마 대한민국이 탄생한 이후 재난 보도와 관련해 언론을 향한 가장 극단적인 비난·비판이 아닌가 싶다.
따라서 왜 이런 극단적인 용어까지 등장해 유행하게 됐는지 냉철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언론이 건강해야 사회가 건강하다. 반대로 사회가 건강하면 언론도 건강해진다. 만약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면 언론이 왜곡 보도를 하거나 위험을 증폭시켜도 사회는 별다른 저항 없이 넘어간다. 하지만 건강 사회에서 언론의 건강성과 사회의 건강성은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의 논쟁처럼 서로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먼저 이번 세월호 참사 보도에서 언론인이 '기레기'와 같은 치욕적인 비판을 받게 된 데는 우리 언론이 그동안 보여준 선정 보도가 단절되지 못한 탓도 있다. 하지만 2년여 전에 무더기로 종편이 등장한 뒤 처음 발생한 대형 재난 사건이어서, 여기에는 시청률 경쟁, 즉 상업성이 방송사 간 극대화된 것이 중요한 구실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보도와 관련한 채널(제이티비시, 채널에이, 티브이조선, 뉴스와이, 엠비엔 등)이 무더기로 승인되면서 방송언론인의 절대 부족으로 재난 보도와 관련한 취재 윤리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초년병 기자들이 참사 현장 등에 대거 투입됨으로써 일어난 필연적 결과다.
세월호 참사 보도 한국 언론의 추한 민낯을 드러내다
사건 발생 초기 제이티비시는 막 구조된 학생에게 동료 학생이 사망한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비윤리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시청자들의 거센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이 일로 제이티비시 보도 부문 사장이며 메인 뉴스 진행을 맡은 손석희 앵커가 사과하기도 했다. 또 엠비엔은 신원이 검증되지 않은 가짜 여성 잠수사를 출연시켜 승객 구조와 관련해 허위 사실을 발언케 했다. 이 인터뷰로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을 불필요하게 자극하다 진상이 드러나자 보도국장이 황급히 사과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또 대부분 신문과 방송들은 초기 갈팡질팡 대응하는 정부의 발표를 곧이곧대로 보도했다가 학생 전원 구조 또는 승객 대부분 구조 등의 명백한 오보뿐만 아니라, 실종자와 구조자 수를 한두 번이 아니라 예닐곱 번씩이나 정정 발표하는 등 본의가 아닌 오보를 남발하기도 했다. 또 문화방송은 사고가 나자마자 사망자가 받을 수 있는 보험금 액수 보도를 해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뿐만 아니라 국민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이밖에 연합뉴스는 실제 구조 또는 수색에 투입된 인원이나 장비, 항공기가 아니라 간접 지원 인력과 장비, 연 동원 인원과 장비를 보태 실제보다 수십 배나 뻥튀기한 정부의 보도자료를 확인 없이 그대로 실음으로써 '기레기' 대열에 합류하기도 했다.
일부 보수 언론은 대통령이 최선을 다하고 온몸을 던져 참사에 대처하고 있는데도 정부는 허술하게 대응한다는 이중 잣대를 들이댔다. 박근혜 정부와 박근혜 대통령이 각기 다른 주체인 것처럼 호도한 것이다. 언론의 이런 이상한 논리는 박근혜 대통령 개인의 방패막이 구실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또 이들 보수 언론들은 사건 이튿날 대통령의 진도 방문과 10여 일 뒤에 있었던 안산 분향소 조문, 그 뒤 5월 4일의 진도 2차 방문 등 대통령 방문 때마다 유족의 거센 항의와 사과 거부 등 반발을 사고 있다는 점은 축소 보도하고, 대통령의 유족 위로와 사과는 확대 보도해 사건의 진실을 왜곡한다는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이 밖에도 언론의 이번 세월호 참사 보도를 보면 사고의 원인, 수색 활동 성과 등과 관련해서도 크고 작은 오보를 내거나 추측성 보도를 했다. 이를 총체적으로 살펴보면 정권과의 유착에 인한 편향 보도, 예를 들면 대통령이 이번 사건에 대통령으로서 적절했는지에 대한 무비판적 보도 등과 함께 선정 보도, 부정확 보도 등을 문제로 꼽을 수 있다.
정부 발표 여과 없이 보도하던 관행, 오보와 왜곡 보도 양산에 한몫
다시 말해 시급을 다툴 필요가 없는 사안에 신속성을 이유로 마구잡이 보도를 한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배 안에 있던 승객 구조와 나중에 배 안에 갇힌 승객의 사체 수색 등은 분초를 다투는 문제였지만, 주검의 신원 확인과 탑승객 수 등은 그럴 필요성이 없는, 정확성이 중요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초기 많은 사람을 구했다는 성과 홍보에 매달려 구조자를 중복집계한 해경과 정부의 어설픈 발표를 신속보도를 이유로 검증 없이 발표해 구설수에 올랐다. 특종이나 단독 기사에 매달려 중요하지 않은 아이템을 가지고 길게 눈에 띄게 다루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흔히들 방송 기자들이 말하는 좋은 그림을 만들기 위해 패닉(공황) 상태인 피해자(구조자)나 가족들의 얼굴과 모습을 그대로 내보내는 비윤리적 보도를 일삼았다. 이는 그동안 이루어진 관행에 젖어 이런 보도가 취재원들에게 가져올 후유증이 어떤 것인지를 모르거나 생각하지 않은 채 기자들이 데스크에서 시키는 대로 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위기·재난에 대비한 대응 훈련을 게을리 해왔다. 마찬가지로 우리 언론도 특히 김영삼 정부 시절 재난 보도를 많이 해왔지만, 그때는 물론이고 지금껏 재난 보도에 관한 체계적 교육과 훈련을 거의 하지 않았다. 아마 지금까지 새내기 기자들은 물론이고 경력 기자, 중견 기자, 데스크에 대한 위험 보도 또는 위기·재난 보도는 사실상 없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우리나라 기자들을 교육하는 기관인 한국언론재단이 체계적인 재난 보도 교육을 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이 때문에 대형사건 때마다 비윤리적이거나 정확하지 않은 보도가 되풀이됐다.
체계적 위험·재난 보도 교육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이번 세월호 참사 보도는 그 연장 선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여기에다 갑자기 늘어난 보도 종편에 몸담은 신출내기 기자들이 기자 생활을 하면서 한 번 겪을까 말까 한 대형 사건에 준비 없이 현장 기자로 투입되면서 오보와 비윤리적 보도 양산에 한몫 거들게 된 것이다. 이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언론계 내부가 자성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앞으로 이런 문제를 가지고 여러 언론단체나 기관, 언론학회 등이 각종 세미나를 열거나 성찰하는 시간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또 언론학자들도 여기에 가세해 관련 논문을 내거나 연구 보고서를 낼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일도 당연히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고의적 또는 부주의한 오보를 낸 언론사나 명예훼손을 한 언론인과 언론사에 대해서는 강한 자체 제재와 함께 언론감독기관의 강력한 조처가 뒤따라야 한다. 오보와 비윤리적 보도를 일삼은 이번 세월호 참사 보도를 계기로 우리 사회와 언론계는 언론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명제를 다시금 깨달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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