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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초월' 대통령의 '내 탓' 빠진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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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초월' 대통령의 '내 탓' 빠진 사과

국가안전처 신설, 서랍 속에 묵히더니 재탕 대책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발생 14일 째인 29일, 고개를 숙였다. 희생자 가족들에게는 "사고를 예방하지 못하고 초동 대응과 수습이 미흡했던 데 대해 뭐라 사죄를 드려야 그 아픔과 고통이 잠시라도 위로를 받으실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국민들에게는 "죄송스럽고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관련기사 보기)

국무회의 석상에서 나온 이 발언은 '간접 사과'다. 박 대통령은 추후 대국민담화나 기자회견 등을 통해 다시 사과의 자리를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고 초기 분노한 민심을 다독일만한 사과의 형식으로는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진정성이 담긴 사과는 국무회의 직전 안산에 위치한 합동분향소를 찾은 자리에서 나왔어야 했다. 절규하는 유족들 앞에서도 박 대통령은 애도의 뜻만 표했을 뿐, 사과 발언은 내놓지 않았다. 

유족들은 분노했다. "정부에서 보낸 화환은 꼴도 보기 싫다"며 조화를 치워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박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강병규 안전행정부장관, 서남수 교육부장관 등이 보낸 조화가 장외로 옮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의 사과에는 대통령으로서의 책임의식, '내 탓'이 명시되지 않았다. 사고 예방과 초동 대응 등 '정부의 무능'에 대한 언급이 사과의 내용이다. 정부와 유리된 초월적 존재, '정부 밖 대통령' 같은 인상이다. 

박 대통령이 사과 발언의 연장선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국민과 국가를 위한 충정으로 최선을 다한 후에 그 직에서 물러날 경우에도 후회 없는 국무위원들이 되길 바란다"고 장관들에 대한 문책성 경질을 예고한 대목도 '장관들 책임'에 방점이 찍혀 있다.

전직 대통령들의 사과는 이와 달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3년 서해 페리호 사고 당시 "국민 앞에 거듭 죄송하고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9년 화성 씨랜드 화재 사건 당시 합동 분향소를 찾아 유족들 앞에서 "대통령으로서 미안하다"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이던 2003년 2월 대구 지하철 화재 사건 때 사고 발생 사흘 만에 "하늘을 우러러보고 국민에게 죄인 된 심정으로 사후 대처하겠다"고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2010년 천안함 침몰 사태 때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으로서 무한한 책임과 아픔을 통감한다"고 했다.

이번 사고의 원인에 대한 진단은 근본적인 듯 보이지만, 주로 '과거 정부 탓'으로 화살을 돌렸다. "과거로부터 쌓여온 잘못된 적폐", "악습과 잘못된 관행들", "고질적으로 뿌리내려 고착화된 비정상적인 관행과 봐주기식 행정문화", "고질적 집단주의가 불러온 비리의 사슬" 등의 표현을 곳곳에 사용했다. 현 정부는 "비정상적인 것들을 정상화 하는 노력을 강화했어야 하는데 안타깝다"는 게 고작. 그리곤 박 대통령의 전매특허인 "국가 개조"를 다시 언급했다.

또한 박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가 규제를 푼 선령 제한(20년→30년) 문제를 직접 언급하면서도 현 정부에서 추진된 내항 선박 안전관리체제 이행요건 완화 등은 언급하지 않았다. 선장의 안전관리 책임이 면제된 건 현 정부에서다. 이명박 정부의 규제 완화와 현 정부의 규제 완화는 다르다는 인식으로, 지속적인 규제 완화 정책을 고수해 나가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한편 국면 수습을 위한 회심의 대책으로 '국가안전처(가칭)' 신설을 내놓았다. 이번 세월호 사건 수습 과정에서 드러난 '컨트롤타워' 부재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대책으로, 지휘체계를 국무총리의 총괄 지휘로 명시해 부처 간 알력과 책임 떠넘기기를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지휘체계 혼선을 정리한 의미는 있지만, 뒷북 대처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이미 정부는 지난해 12월 대형사고가 일어날 경우 컨트롤타워가 없는 현 체계로는 재난 대응에 혼선이 생길 수 있다는 내용의 용역보고서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안전행정부가 한국재난안전기술원에 의뢰한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사회적 재난은 안행부가, 인적·자연 재난은 소방방재청에서 실무를 담당하는 등 업무가 중복돼 신속한 의사결정이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통합형 재난관리 총괄기구가 필요하다는 게 골자다. 사실상 사회적 재난과 자연 재난을 통합 관리하는 기구로서 '국가안전처'의 기능과 흡사하다. 서랍 속에 묵혀 온 대책을 새로운 대책인 듯이 재포장해 내놓았다는 얘기다.

아울러 보고서는 재난관리 컨트롤타워가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국가안전처는 총리를 정점으로 체계를 구성해 위기 시 청와대의 역할에 대해선 권한과 책임을 명시하지 않아 책임 피하기라는 지적도 예상된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한 김장수 청와대 안보실장의 발언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결국 박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를 통해 민심 수습과 사태 수습을 위한 본격적인 반전에 나섰지만, '내 탓' 빠진 사과와 과거 정부 책임으로 돌린 사고 원인 진단, 뒷북 대책 등에 대해 민심이 얼마나 호응해 줄지는 미지수다.

이철희 두문정치연구소장은 "진정성 있는 사과와 함께 박 대통령이 책임 의식을 갖고 유족들과 국민들과 공감대를 얻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 측면에선 여전히 미흡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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