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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국민 참사, 신종 질환 유행시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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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세월호 국민 참사, 신종 질환 유행시키나?

[안종주의 건강사회] 대리외상증후군, 막을 방법은?

대한민국에 새로운 신종질환이 유행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결코 유행해서는 안 되는 질환이다. 300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간 믿기 힘든 비극, 세월호 참사가 만들어낸 질환이다. '세월호 증후군'이라고도 하고 대리외상증후군(정확하게는 대리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또는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안산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곳곳에서 세월호 참사가 일으킨 고통과 슬픔과 연민의 쓰나미가 사람들의 뇌와 마음을 할퀴고 있다. 밥맛이 없다. 소화도 잘 되지 않는다. 밤잠도 설친다. 텔레비전을 볼라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세월호에서 아이들이 금방이라도 생긋 웃으며 살아 돌아올 것 같은 환영에 시달린다. "살려주세요"라는 울부짖음이 환청으로 들린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기뻐해야 할 일이 생겼는데도 마음껏 기뻐할 수 없다.

이런 일이 잠시 스쳐간다면 다행이다.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지속되면 큰일이다. 이미 세월호 참사로 자식을, 부모를, 친구를, 선생을 잃은 사람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 또는 증후군, 더 정확하게는 정신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걸릴 위험성이 높다고 정신과 전문의들은 지적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신체적인 손상과 생명의 위협을 받은 사고에서 심적 외상을 받은 뒤에 나타나는 질환이다. 주로 일상생활에서 경험할 수 있는 사건에서 벗어난 사건들, 이를테면 천재지변, 화재, 전쟁, 폭행, 고문, 성폭행, 인질 사건, 소아 학대, 자동차· 비행기·기차 등에 의한 사고, 그 밖의 대형사고 등을 겪은 뒤에 발생한다. 이 질병은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등 대형 인명 피해가 끊임없이 일어났고, 이때마다 이 질병의 이름이 등장하곤 했다.

증상이 나타나는 시기는 개인에 따라 다르다. 충격 후 즉시 시작될 수도 있고 수일, 수주, 수개월 또는 수년이 지나고 나서도 나타날 수 있다. 증상이 1개월 이상 지속되어야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하고, 증상이 한 달 안에 일어나고 지속 기간이 3개월 미만일 경우에는 급성 스트레스 장애에 속한다.

세월호 참사의 특징은 그 어느 사건보다도 피해 당사자와 가족뿐만 아니라 이들과 직접적인 인연이 없는 대다수 국민에게도 말할 수 없는 큰 충격을 주었다는 것이다. 꿈을 채 피워보지도 못한 어린 학생들이 집단적으로 희생당한데다, 오랫동안 구조되지 못하거나 주검을 건지지 못한 상태로 사건이 진행됐다. 사건 수습 과정이 거의 24시간 동안 열흘 넘게 온 국민에게 텔레비전 등을 통해 생중계로 전해 졌기에 이를 지켜본 국민 또한 엄청난 충격과 슬픔에 젖었다. 세월호 참사는 국민 참사가 됐다.

국민을 억압한 박정희, 국민을 슬픔의 도가니에 빠트린 박근혜
▲ 26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화면세점 앞에서 명동성당까지 행진하는 세월호 추모 행렬. ⓒ프레시안(김윤나영)
세월호 참사는 문득 어느 가수의 노랫말을 떠올리게 했다. 역설적이게도 "웃음 한 번 크게 웃자"라는 가사였다. 하지만 노랫말과는 정반대로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은 웃음을 잊은 지 오래다. 1970년대 유신독재에 항거한 어느 시인은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를 불렀다. 박정희 시절이 민주주의를 잊은 지 오래였다면 박근혜 대통령 시절은 웃음을 잊은 지 오래다.

군사독재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시민들은 목이 마르다. 그리하여 외친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꽃다운 생명이여!" 하지만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다. 허공에 맴돈 외침은 분노의 목소리로 증폭된다. "아이들을 살려내라! 박근혜가 책임져라!" 지난 26일 저녁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분노한 촛불 시민들이 터트린 울분의 목소리다. 그 현장에 가지도 않은 나의 귀에 왜 이런 외침이 들리는 걸까? 실제로 들리는 듯한 환청이다. 이런 환청을 듣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 관련 기사 : "미개한 국민이 될지언정 부끄러운 어른은 안 되겠다", 경찰, '세월호 추모 행진' 금 밟았다고 연행)

대한민국 국민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그 가족이 겪는 고통과 똑같은 아픔을 느끼고 있다. 내 아들을 살려내라고 대통령을 향해, 총리를 향해, 장관을 향해 울부짖었던 그들의 목소리는 미개한 백성의 악다구니가 결코 아니었다. 자식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요, 절규였다. 5000만 국민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수백만 국민을 울린 한 시민의 글, "문제는 진정성과 책임"

그 아우성은 엊그저께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려 수백만 국민의 심금을 울린 한 시민의 '당신이 대통령이어서는 안 되는 이유'란 글이 잘 대변해주고 있다. 구구절절 국민의 마음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았다. 이런 분이 있어서 우리는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고 희망을 보는 것이 아닐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조직에선 어떤 일도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리더가 책임지지 않는 곳에서 누가 어떻게 책임지는 법을 알겠는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일일이 알려줘야 하는 대통령은 필요 없다. 사람을 살리는 데 아무짝에 쓸모없는 대통령은 필요 없다. 결정적으로, 책임을 질 줄 모르는 대통령은 필요 없다. 죄책감을 느끼지도 못하는 대통령, 이들과 결코 다르지 않다. 사람에 대해 아파할 줄도 모르는 대통령은 더더욱 필요 없다."

이 글은 진정성과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한다. 거짓으로 골백번 아파하는 것보다 진정으로 한 번 아파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관련 기사 : 청와대 홈피 마비시킨 글, 뭐기에?)

이제 세월호 참사로 가족을 잃은 슬픔에 빠진 학부모들과 유가족들뿐만 아니라 국민 치유에 나설 때다. 그 치유의 시작은 하루 빨리 배 안에 갇힌 주검들을 유가족들의 품에 안기게 해주는 것이다. 이 사건과 관련한 이들을 그 책임에 걸맞게 처벌하거나 조처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돈에 눈먼 시계공이 만든 사회

이와 함께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는 일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개조에 나서야 한다. 먼저 대한민국은 돈에 눈먼 사회였다는 사실을 선언해야 한다. 그 선언을 기초로 사회를 뿌리부터 혁신해야 한다.

돈이라면 법도 무시했다. 불법, 탈법, 편법 등이 춤추는 사회였다. 부도덕과 무책임이 오히려 당당하게 행세했다. 대통령부터 책임지지 않으려는 사회, 문제가 드러나도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회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돈에 눈먼 사회에서는 온갖 불법, 탈법, 편법이 활개 쳐도 이를 제대로 볼 수 없다. 이번 세월호 사건은 이를 너무나 똑똑히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은 눈먼 시계공이 만든 사회다. 정치인은 눈먼 시계공이다. 눈먼 시계공이 만든 시계가 제대로 작동될 수 없듯이, 눈먼 정치인과 관료가 이끌어가는 사회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겠는가? 눈먼 시계공들이 사회 재난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겠는가? 눈먼 시계공들이 대한민국이 고장 났을 때 제대로 고칠 수 있겠는가?

▲ 29일 오전 안산 합동분향소를 찾은 박근혜 대통령이 유족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연합뉴스

눈먼 시계공들은 그대로 둔 채, 눈먼 시계공들이 만든 제도와 시스템, 관행은 그대로 둔 채 대통령의 사과 발언으로 책임을 덮으려 한다면 제2의 세월호 참사가 우리를 또 덮칠 것이다. 그리고 국민은 또 한 번 대리외상증후군의 유행이라는 위험에 놓일 것이다.

대한민국은 돈이 모든 것을 이루어주고, 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을 깨부수어야 한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눈먼 시계공이 만들고, 눈먼 시계공들이 운영하는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는 참사였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눈먼 시계공들과 이들에 기생하는 집단들을 샅샅이 색출해야 한다. 세월호 선장과 선원, 관료들과 2인3각인 된 관피아 세력, 정·관·언 유착 세력들을 뿌리 뽑아야 한다.

이것을 빨리, 확실하게 이루어내는 것이 세월호 참사로 인한 대리 외상후 증후군의 유행과 유가족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의 악화를 막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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