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창조경제, 안철수의 새 정치와 함께 '아무도 모르는 세 가지'로 묶였지만, '김정은의 속마음'은 농담일지라도 앞의 두 가지와 급이 엄연히 다르다. 북한의 핵개발이 제지돼야 하는 이유는 수십 가지를 나열해도 모자람이 없겠으나, 어떤 부연도 필요 없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핵놀음 자체가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판돈으로 삼기 때문이다. 핵탄두가 미국을 향하든, 우리를 향하든. 불량한 군사국가를 지배하는 1인자의 속마음을 모른다는 건, 그래서 창조경제나 새 정치의 모호함에 비할 바가 아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여부에 촉각이 곤두섰다. 지난달 30일 북한이 외무성 성명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핵실험"을 언급하면서부터다. 전문가들의 추정으로는 소형화, 경량화된 증폭핵분열탄이라고 한다. 미사일에 탑재할만한 수준으로, 실험이 성공하면 북핵문제는 지금까지와 질적으로 달라진다. 한반도의 운명이 나이어린 북한 지도자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는 셈이다. 누구도 원하지 않는 디스토피아를 피하고자 한다면 핵무기 다루듯 정교하게 북한의 핵 의지를 해체하는 수순을 밟아야 한다. 당장 비핵화를 이룰 수단이 없다면 현상이라도 유지할 관리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가공할만한 위기 앞에 그게 상식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다녀갔다. 기자들 앞에 나란히 선 한미 정상은 상식과 달리 갔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대북 정책에 변화 없음을 분명히 하며 "보다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북한이 먼저 변하지 않으면 대화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의 새로운 형태의 도발은 새로운 형태의 국제적 압박을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북한이 이미 거부한 '드레스덴 선언', 즉 흡수통일 방안을 되풀이했다. 중국의 역할을 반복한 것 외에 6자 회담을 통한 외교적 해법은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북한에게 퇴로를 열어주고자 하는 립 서비스도 없었다.
나아가 오바마 대통령은 "미사일방어체계(MD) 강화에 합의했다"고 했다. 미국은 전시작전권 전환 시기를 연기해준 대가로 한국을 MD체계에 편입시키는 실리를 챙겼다. 북한 입장에선 두 가지 모두 위협이다. 한미 정상은 한미연합사령부를 1978년 창설 이래 처음으로 동반 방문하기까지 했다. "동맹을 수호하기 위해 군사력을 쓰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는 오바마 대통령의 위협적 언사에 박 대통령은 "We go together(우리 함께 가자)"라며 호응했다. 이게 다 4차 핵실험 버튼을 들고 있는 북한 김정은 보라고 벌인 일이다.
당초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 없었다. 일본만 가려던 걸 우리 측이 지난 2월 '외교력을 총동원해' 일정을 바꿨다. 일본에 뒤지지 않는 모양새만 낼 요량이 아니었다면, 그 사이 등장한 북한의 4차 핵실험 징후에 적어도 우리 측의 태도는 달라졌어야 했다. 6자 회담이든 뭐든 위기관리 해법을 마련하고 오바마 대통령을 설득해야 온당했다. 남한이 북한의 4차 핵실험을 강 건너 불구경 할 처지가 아니라면. 박 대통령이 '핵을 가진 북한'을 국민 생명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생각하는 남한의 지도자라면.
결과적으로 오지 않은 것만 못한 방한이 됐다. 윤병세 외교부장관이 말했듯이 북한은 현재 "정치적 결정만 있으면" 언제든 핵실험을 할 수 있는 기술적 준비가 돼 있다. '정치적 결정'은 핵실험이 불가피하다는 정세에 대한 판단과 그에 따른 핵실험 시기의 결정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일촉즉발의 상황을 모르지 않는 우리 정부가 오바마 대통령을 불러 북한에 방아쇠를 당기라고 자극한 꼴이 됐다.
석연치 않다. 혹시, 핵실험이라는 북한의 거대한 불장난을 부추기는 듯한 박 대통령의 이상한 행보도 또 다른 '정치적 결정'에 의거한 것은 아닌지. 가뜩이나 핵실험 임박설을 놓고 한미 당국 간에 미묘한 차이가 지속돼 온 터라 이 같은 의심이 고개를 든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이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다수의 활동이 감지되고 있다"며 4차 핵실험 임박설을 처음 공론화한 시점은 지난 22일이다. 그러나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특별히 발표하거나 확인할 것은 없고 미군과 구체적으로 정보를 공유했는지 모른다"고 확연히 다른 반응을 보였다. 적어도 우리 측의 북한 4차 핵실험 임박설 발표가 한미 간의 조율을 거친 산물이 아니라는 점은 확인된다.
게다가 김 대변인은 "'4월 30일 이전에 큰 일이 일어날 것이다', '큰 한 방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언급들이 북한에서 나오고 있다"고 첩보 수준의 비공식 정보까지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김 대변인은 "북한의 화전양면 전술을 국민들도 알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서 공개한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위기의 극대화를 위해 활시위를 팽팽하게 잡아당긴 듯한 뉘앙스가 역력했다. 세월호 참사 와중에 대부분의 언론은 김 대변인의 발언을 비중있게 받아썼다. 미국의 북한 전문 웹사이트인 <38노스>가 27일(현지시간)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동향과 관련해 "터널 봉쇄 여부는 불분명한 상태"라고 핵실험 임박설과 다른 관측을 내놓았음에도 우리 정부의 태도는 변함없다.
이런 한미 간의 불일치는 같은 정보를 다르게 해석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영역에서 먼저 체감하게 되는 건 한미 간의 정치적 상황 차이다. 당연히 '큰 한방'이 절실한 쪽은 세월호 참사로 최악의 위기에 처한 박근혜 정부다. 이 국면이 전환될만한 충격적 계기로 북한의 4차 핵실험만한 '사건'이 또 있을까. 불리한 국면에선 "충격 상쇄용 아이템을 발굴하라"(해양수산부)는 위기대응매뉴얼을 구비한 정부이다 보니 '정치적 동기'에 대한 의심이 간다. 한반도 위기관리보다 안보 장사에 탁월한 촉을 발휘해온 정부이다 보니 의심은 심증으로 굳어진다.
김정은이 벌인 핵도박판에 박 대통령이 칩을 들고 마주앉은 형국. 이 정부가 국민들의 생명 따윈 관심 없다는 걸 우린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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