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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보도해야 해. 2분 늦게 방송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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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보도해야 해. 2분 늦게 방송하더라도!"

[TV PLAY] TV 속 세월호 비극

언젠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는 제목의 책을 본 적이 있다. 그 때 연이어 든 생각은 나는 알아야 할 모든 것을 TV에서 배웠다는 것이다. 열 살이 채 되기 전부터 엄마 곁에 앉아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를 보았고, 심지어 영화의 매력도 극장이 아닌 늦은 밤 TV에서 틀어주던 '주말의 명화'를 통해 알게 되었을 만큼 나를 키운 8할은 TV, 그리고 방송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군가는 바보상자라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TV가 단지 멍청하고 무용한 킬링 타임용만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드라마와 예능이, 뉴스와 다큐멘터리가 전하는 이야기가 사람들을 웃고 울게 하고 때로는 각성시키고 반성하게 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최근 많은 사람들의 억장이 무너지게 만든 비극 속에서 방송의 유해함과 무력함에 대한 온갖 단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 팽목항에서 뉴스를 진행하는 JTBC <뉴스9> 손석희 앵커. ©JTBC

지난 열흘간 TV를 보는 게 힘들었던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세월호 침몰 소식이 날벼락처럼 날아든 이후 뉴스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들은 제발 끔찍하지만 깨면 사라지는 악몽이길 바라는 것들이었다. 너무 많은 생명을 잃었다.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재해가 아니라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사고였고 당연히 구해야 하는 목숨이었다는 점이 사고 당사자들과 가족들은 물론 지켜보는 사람들의 숨을 막히게 했다.

이번 세월호 참사는 이 나라의 처참한 현실을 목도하게 했다는 점에서 더욱 아프다. 배와 승객을 버린 선장 한 사람의 비인간적 행태만이 아니라 정부의 무능과 지도자와 정치인의 무책임이 하루가 멀다 하고 전해지는 가운데, 이 소식을 전하는 뉴스 역시 자신들의 저열함을 드러냈다.

뉴스들은 저마다 참사가 벌어진 현장으로 취재진을 보냈고 속보라는 제목을 크게 쓴 자막을 걸고 방송을 했다. 이 뉴스들을 지켜보기 힘들었던 이유는 전해지는 소식이, 너무 어이없고 한심하고 그래서 억장이 무너지고 미안한 이야기라서만은 아니다. 참사 초기 구조자 수에 대한 오보를 내보낸 YTN을 비롯해, 시신에 대한 자극적인 표현을 방송한 KBS의 오보, 무신경한 인터뷰로 손석희 사장이 사과 방송을 한 JTBC 등 하루가 멀다 하고 문제를 드러낸 언론의 행태는 가슴 졸이며 TV를 지켜보는 사람들을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최대한 차분하고 냉정하게 사태를 취재하고 파악하고 분석해 전달해야 할 뉴스가 먼저 흥분했다. 빈약한 취재를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으로 때웠고, 재난보도는 시청자가 아니라 피해자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기본조차 무시했다. SNS에서 미국 드라마 <뉴스룸>의 에피소드가 새삼 회자되고, 세월호 참사를 다루는 CNN의 보도를 우리 언론과 비교하는 모습에 사람들이 공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뉴스룸>에서 한 정치인이 총격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각 방송사들이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속보를 내보내는 와중에 공영 방송이 그 정치인의 사망 소속을 전한다. 타 방송사들이 이를 인용하는 가운데 <뉴스룸>의 무대인 ACN의 보도진은 정보의 출처를 의심하며 사망 소식을 전하기를 거부하고, 결국 그 정치인의 사망은 오보로 밝혀진다. 오바라 빈 라덴의 암살 보도를 다룬 에피소드에서도 마찬가지다. "정확하게 보도해야 해. 우리가 설령 2분 정도 늦게 방송한다 하더라도"라는 <뉴스룸>의 대사는 정확하고 빠른 보도라는 언론의 원칙에서 전자의 중요성을 망각한 지금 우리의 현실과 얼마나 멀리 있는가.

▲ 미국 HBO 드라마 <뉴스룸>. ©HBO

그리고 드라마와 예능은 숨죽이는 길을 택했다. 많은 프로그램이 결방을 결정했고, 특집 보도나 재방송으로 대신했다. 무게를 형언할 수 없는 슬픔 앞에서 다 함께 애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번 세월호 참사 앞에서 각 방송사들이 택한 결방이라는 이 방식은 적극적 애도가 아닌 소극적 몸 사리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적지 않은 손해를 감수하고 결방을 결정한 방송사를 호도하려는 건 아니다.

뉴스를 보다 채널을 돌려 나란히 붙어 있는 홈쇼핑을 보면서 느꼈던 이상한 기분, 살아있는 우리가 아무리 진심으로 가슴 아파한들 우리는 이 비극의 당사자가 아님을 생생하게 깨닫게 되었던 그 순간을 생각해보면 방송사들이 선택한 결방 러시를 이해한다. 다만, 앞서 언급한 뉴스 보도 행태와 나란히 놓고 보면 슬퍼서가 아니라 슬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감에 눈치를 보며 기계적으로 결방을 선택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예정된 프로그램 대신 영화나 드라마, 예능의 재방송을 보여주는 것이 지금 TV가, 방송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애도이자 해야 할 가장 적절한 역할인지 묻게 된다.

물론 이는 온전히 방송만의 책임은 아니다. 지금 세월호 참사는 무시무시할 정도로 위태로운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비단 대통령과 정부 당국, 정치인, 언론만을 비난하기엔 우리 자신 역시 공동체에 대한 허약한 책임과 신의를 갖고 있음을 자각하게 한다. 뉴스가 정확하고 책임 있는 보도라는 원칙과 피해자에 대한 배려를 잃은 보도를 이어가는 것도, 행여 논란이 될까 싶어 결방 외엔 다른 대안을 생각하지 못 하는 방송사도 모두 시청자인 우리가 함께 만든 세상의 일부분이다.

지금 살아남은 사람들이, 살아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이 죄책감이 그저 한 때의 기계적인 감정에 그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계속 지켜보고 계속 질문하고 계속 변화를 요구하는 것, 이것이 세상은 어차피 지옥이야 라는 무력감과 패배감과 싸우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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