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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개한 국민이 될지언정 부끄러운 어른은 안 되겠다"

서울 도심의 노란 물결 "팽목항에서 지옥을 보고왔다"

세월호 실종자들의 무사생환을 염원하는 집회가 26일 서울에서 잇따라 열렸다.
전국여성연대와 서울진보연대 등은 26일 오후 6시 30분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화면세점 앞에서 '세월호 실종자 무사귀환 염원, 희생자 애도와 민주회복을 위한 국민촛불' 집회를 열고, 8시 20분께부터 명동성당까지 행진했다.

앞서 이날 오후 3시에는 민주노총이 서울역 앞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 및 산재 사망 노동자 추모제'를 열고, 한국은행 앞까지 행진했다.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추가 생존자를 한 명도 구하지 못한 정부를 비판하고, 구조 실태를 제대로 보도하지 못한 언론을 질타했다.

여의도에서 방송 외주 제작을 하는 청년이라고 소개한 ㄱ(31) 씨는 "어느 훌륭한 자제분 말마따나 저는 '미개한 국민'"이라며 "생업을 제치고 진도에 내려가 함께 울지 못했다"고 말했다.

ㄱ 씨는 "저는 미개한 국민이 될지언정 부끄러운 어른이 되지는 않겠다"며 "미쳐버린 대한민국의 모습을 모두 기억하겠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을 버리고 가장 먼저 가버린 선장, 밥줄 챙긴다고 이리저리 책임 피하는 윗사람들, 기념사진 찍겠다는 놈, 구급약품 밀치고 의자에 앉아 라면 먹은 놈, 그 틈에 선거 홍보 문자 보낸 놈, 폭탄주 마시고 막말 쏟는 국회의원들, '시체 장사' 운운하는 놈 모두 잊지 않고 다 기억하겠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선장이 누구냐"며 "박근혜 대통령은 침몰하는 대한민국에서 탈출하려고 한다. 구조에 성공하지 못해 모두가 절망하는데 '의전 쇼'를 한다. 당신은 나의 대통령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정부가 사고 발생 전에 미리 철저히 안전 점검을 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구조에는 우왕좌왕한 정부가 청와대로 상경하려는 부모님을 막고 채증하는 데만 신속한 모습을 보였다. 쓰레기 같은, 부끄러운 정부"라고 비판했다.
18일부터 20일까지 진도 팽목항에 자원봉사자로 다녀왔다는 진현주 씨는 "18일 저녁 유족들이 전남해양경찰청장과 질의를 하는 와중에도 방송에 '해경 2명이 배 안에 들어가서 구조 활동하고 있다'고 보도되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진 씨는 "정부는 '민간 잠수부가 한 게 없다'고 깎아내리지만, 민간 잠수부들이 해경보다 더 일찍 나와서 구조 활동을 했다"고 덧붙였다.

5박 6일간 팽목항에 다녀왔다는 또 다른 시민 ㄴ(59) 씨는 "팽목항에 지옥을 보고 왔다"며 "대책 없는 대책회의가 대책을 논하고, 순수 자원봉사자가 모든 걸 이끈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팽목항에 부모들의 눈물을 닦아줄 대한민국 정부는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ㄴ 씨는 "새벽 1~2시가 되면 가족들이 빈 바다를 바라보며 아이 이름을 부르고 운다"며 "그 자리에는 (정부 관계자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자원 봉사에 나선 다이버에게 정부는 '구조작업을 하다가 잘못되면 국가가 책임지지 않는다'는 내용의 서명을 받는다"며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 한 어린이가 노란 리본에 '꼭 돌아와야 해'라고 적고 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집회 참가자들은 "미안하다. 얘들아", "보고 싶다"라고 적힌 촛불을 들고 눈시울을 붉혔다. 한 어린이는 "언니, 오빠 사랑해"라고 적힌 메모지를 붙이고, "꼭 돌아와야 해"라는 노란 리본을 달기도 했다.

집회가 끝난 오후 8시 20분께 참가자 1500여 명(주최측 추산)은 동화면세점에서 청계광장을 지나 명동성당까지 행진하며 "아이들을 살려내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지나가는 시민은 '무능한 정권, 아이들을 살려내라'라고 적힌 손팻말에 관심을 보이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9시 20분께 다시 동화면세점 앞에 도착한 참가자들은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고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염원하는 노란 리본을 다는 행사를 한 후 9시 40분께 자진 해산했다.

민주노총, 세월호 희생자와 산재 사망 노동자 추모제

이날 오후 3시에는 민주노총이 '4. 28 세계 산재 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을 앞두고 서울역 앞에서 집회를 열어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산재 사망 노동자를 추모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숨졌던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는 "어린 아들, 딸들이 뱃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려달라고 했을 텐데, 우리 딸 유미도 삼성에서 일하다가 암에 걸려서 '아빠 살려주세요'라고 했었다"며 "어린 아이들이 물속에서 살려달라는 장면과 딸의 모습이 겹쳐서 자꾸 귓전에 맴돈다"고 말했다.

황 씨는 "세월호 사건과 삼성이 닮았다"며 "삼성이 화학물질에 대한 안전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않았듯이, 세월호도 노동자에게 안전교육 하나 제대로 못 시켜 사고가 났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지키지 않으면, 후세들에게 죄 짓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노총은 행사가 끝나고 오후 4시 45분께 서울역에서 숭례문을 향해 행진했다. 이 과정에서 엄기훈 금속노조 경주지부 금강지회장이 1차 도로의 금을 밟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연행됐고, 민주노총이 연행자 석방을 요구하며 한때 행진이 지체됐다.

이후 민주노총은 "간단히 조사한 후 연행자를 석방하겠다"는 경찰의 설명을 듣고 행진을 계속했으며, 오후 6시 30분께 한국은행 앞에서 마무리 집회를 끝마쳤다.

전국여성연대 등 시민단체가 주최한 '세월호 촛불 행진'에 대해서는 지난 23일 서울 종로경찰서가 '행진로가 주요 도로'라는 이유로 불허했으나, 법원이 주최 측이 낸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앞으로는 합법적인 행진이 가능해졌다. 촛불집회는 5월 21일까지 매일 오후 7시에 청계광장 인근에서 열릴 예정이다.

▲ 민주노총이 26일 서울역에서 세월호 희생자와 산재 사망자를 추모하는 집회를 열고 '누구를 위한 국가인가', '산재 사망 처벌 강화'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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