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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의 'IMF둥이'들…한국은 잔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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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의 'IMF둥이'들…한국은 잔혹했다

[편집국에서]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 다시 그것이 문제다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던 시기였다. 연초부터 대기업이 무너졌다. 대마불사(大馬不死) 신화를 스스로 비웃듯 그해에만 12곳의 대기업이 쓰러졌다. 곳곳에서 위기 신호를 보내는데도 정부는 태평했다.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이 좋아 위기가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많은 국민들도 설마설마했다. '선진국 클럽'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드디어 들어갔다며 정부와 다수 언론이 축포를 터뜨린 게 불과 1년 전이었다. 그런데 국가 경제가 무너진다? 그렇게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1997년 11월 21일, 운명의 그날이 청천벽력 같이 다가온 것도 그 때문이다. 위기가 아니라던 정부는 돌연, 나라가 파산 직전이라고 발표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해야 하는 처지라고 했다.

방만한 경영을 일삼은 재벌과 이를 규제하기는커녕 눈앞의 성과(OECD 가입)에 혹해 충분한 준비 없이 자본 시장 개방 폭을 키운 정부의 합작품이었다. 박정희 정권 이래 외형 성장에 치중한 관행도 한몫했다.

무능한 국가. 국민들은 충격에 빠졌다. 그리고 곧 공포와 맞닥뜨려야 했다. 가족과 함께 거리에 나앉을 수 있다는 두려움. 과장이 아니었다. 잔혹한 현실이었다. 구조조정 칼바람이 몰아쳤다. 많은 이가 평생을 바친 일터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났다. 고용 불안은 일상이 됐다. 열심히 일하면 부자는 못 되더라도 중산층으로서 가족과 단란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소박한 믿음도 산산조각 났다.

충격과 절망 속에서도 희망과 기쁨은 피어나는 법. 혼돈의 1997년 그해에도 새 생명은 탄생했다. 이 'IMF둥이'들은 구제 금융 위기라는 고통스러운 터널을 지나야 했던 많은 이들에게 살아가는 이유였을 것이다.

그로부터 17년. 'IMF둥이'들을 태운 배가 침몰했다. 이번에도 이상 징후는 뚜렷했다. 그러나 선사(船社)는 이를 무시했다. 감독 당국도 제대로 규제하지 않았다. 규제 완화라는 미명 아래 낡고 위험한 배들의 수명을 늘려준 것이 바로 정부였다.

침몰 소식에 국민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래도 배와 함께 그 많은 사람이 가라앉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소식이 최초로 전해진 시각, 당시 상황 등을 고려할 때 '바로 구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할 근거는 충분했다. 마땅히 그래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안타까운 소식이 날벼락처럼 날아들었다. 전원 구조했다는 당국의 공지에 가슴을 쓸어내린 것도 잠시,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그 후 아직까지 단 한 명의 실종자도 구조하지 못한 무능한 국가. 슬픔에 젖어 분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국민들은 다시 맞아야 했다.

▲ 경기도 안산 올림픽기념관 내 체육관에 설치된 안산 단원고 2학년생 및 교사들의 임시 합동 분향소. ⓒ프레시안(최형락)

세월호 아이들의 삶 전체에 드리운 IMF 위기의 그림자

세월호 참사는 IMF 구제 금융 위기를 떠올리게 한다. 과정에 여러모로 유사한 대목이 있어서만은 아니다. 세월호 아이들의 삶 전체에 IMF 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IMF 위기를 겪으며 한국 사회는 그전보다 더 노동자에게 적대적으로 변했다. 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된 재벌 체제와 무능한 정부는 위기 극복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노동자에 대한 공세를 강화했다. 날치기로 통과시켰다가 1996∼1997년 총파업에 밀려 시행하지 못했던 정리 해고를 IMF 위기 후 법제화한 것이 단적인 예다.

그 결과 재벌 체제는 위기 후 오히려 더 강화됐다. 그와 반대로, 위기 초래와는 거리가 멀었던 노동자들이 온몸으로 그 짐을 감당해야 했다. 'IMF는 I aM Fired(나 해고됐어)'인 다수와 'I aM Fine(난 좋아)'이던 소수의 격차가 결코 정당화할 수 없는 수준으로 커졌다. 가격이 폭락한 자산을 헐값에 사들여 큰돈을 번 것에 더해 노동자의 목줄을 틀어쥘 수 있게 된 이들에게 'IMF 체제'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니었다.

노동자 중에서도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 대기업보다는 중소·영세 기업에서 일하는 이들이 더 큰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그러한 중소·영세 기업이 모인 반월·시화공단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 일상인 곳으로 꼽힌다. (관련 기사 : "월 200만 원만 준다면, 사장님께 큰절이라도…") 세월호에 탑승한 학생의 상당수가 바로 이 반월·시화공단 노동자의 자녀다.

자녀들은 부모의 신산한 삶의 풍경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법. 수학여행비를 걱정해야 했던 가정, 오래된 연립 주택에 사는 이들이 적잖고 일하러 간 엄마와 아빠를 대신해 조부모가 아이를 돌보는 집이 많은 동네 등은 이 학생들이 어떤 삶을 살았을지 말해준다. 재벌까지는 아니어도 어깨에 힘주고 다닐 정도는 되는 업체의 사장도 꿈꾸기 어렵고, 그보다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덫에 걸린 가족의 모습이 먼저 보였을 것이다. 그런 학생들의 눈에 극심한 격차 사회는 어떻게 비쳤을까.

양극화의 비정한 현실을 느끼며 자라야 했을 학생들은 양극화를 강화한 IMF 위기를 맞는 과정과 닮은 참사를 겪어야 했다. IMF 위기 후 돈의 논리가 더 활개 치고 사람 목숨은 그만큼 뒷전으로 밀린 현실은 이번에도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IMF 위기 때 질리도록 경험한 무책임한 정부, 무능한 국가는 국민들의 가슴에 또 대못을 박았다. 끼리끼리 해먹는 '그들만의 리그' 역시 어김없이 악취를 풍겼다.

모두 IMF 위기 원인으로 꼽히던 것들이다. 그러나 변한 건 없다. 더 나빠졌을 뿐이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의 오늘을 상징한다. IMF 위기 후 다시, 그러나 잘못 틀을 짠 사회의 결과물이 세월호라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세월호의 'IMF둥이'들에게 한국은 잔혹했다. 물론 세월호의 다른 승객들도 이 잔혹한 마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렇게 잘못 짠 사회의 틀을 그대로 두면 또 어떤 결과를 맞이하게 될지, 생각하기도 무섭다. 제대로 다시 짜야 한다. 그것이 희생자와 실종자, 그리고 살아 돌아온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잊지 말자. 탐욕스런 자본과 무능한 국가가 알아서 척척 그렇게 해줄 일은 없다. 규제는 암 덩어리라고 합창하는 저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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