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와 외교부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북한의 핵실험 임박설을 주장하면서 핵실험 강행 시 강력한 제재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22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아래 발언은 박근혜 정부의 인식을 잘 보여준다.
“북한은 모든 국제사회를 상대로 절대 이길 수 없는 게임을 하고 있다. 만약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감행한다면 그것은 전체 판도를 바꾸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될 것이다.”
이 발언의 취지는 4월 10일 “북한이 추가 핵실험에 나선다면 상상할 수 없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윤 장관의 앞선 발언에 잘 담겨 있다. 중국도 북한의 핵실험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는 만큼, 제재와 압박의 양상은 지금까지와는 다를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러한 경고는 이전 핵실험을 앞두고도 여러 차례 있었다. 중국 역시 강력히 사전 경고를 했고,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자 강력한 규탄과 함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결의에 찬성표를 던졌다. 그러나 북한은 아랑곳하지 않고 핵무기 능력을 비약적으로 늘려왔다. 북·중 관계도 크게 출렁거렸다가 다시 회복되곤 했다.
북한이 남한 정부의 예측처럼 실제 핵실험을 강행할지는 미지수이다. 박근혜 정부는 위성사진을 판독한 결과 “정치적 결정만 남았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의 민간 전문가들은 <38노스>를 통해 풍계리 핵실험장의 움직임이 분주해지고 있지만, 핵실험이 임박한 것 같지는 않다고 분석했다. 미국 국방부와 국무부도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필자는 북한의 핵실험 준비 여부를 판단할 정보도 능력도 없다. 그러나 북한의 성명을 보면 단기간에 핵실험을 강행할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언론과 정부는 북한의 핵실험 임박설의 근거 가운데 하나로 북한이 3월 30일 “핵억제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핵시험도 배제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 것을 들고 있다. 그러나 그 앞에 달린 조건을 간과하고 있는데, “미국이 이것을 또다시 ‘도발’로 걸고 드는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이것’은 북한의 추가적인 로켓 발사를 의미한다. 미국이 북한의 로켓 발사를 또다시 유엔 안보리에 회부해 대북 규탄이나 제재를 시도하면 북한은 4차 핵실험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한 달 가까이 지나도록 로켓 발사를 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로켓 추가 발사→유엔 안보리 대응→4차 핵실험’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1단계에서 자제하고 있는 것이다.
설사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하더라도 “상상할 수 없는 대가”를 초래할 “게임 체인저”가 될 지도 의문이다. 중국이 제재 수위를 높일 가능성은 확실해보이지만, 그것이 북한에 큰 불안과 충격을 안겨줄 정도로는 가지 않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은 6자회담 재개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한-미-일은 6자회담 재개보다는 3자 안보협력 강화에 방점을 찍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일본을 방문해 아베 신조 정권이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지지하고, 센카쿠(尖角)/댜오위다오(釣魚島) 분쟁과 관련해서도 미·일 동맹의 적용 범위라고 말했다. 미국 대통령이 이러한 입장을 천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중국은 분개하고 있다. 그리고 오바마가 한국을 방문해 미사일 방어체제(MD)와 합동군사훈련을 고리로 삼아 한-미-일 삼각동맹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일 동맹이 강화되고 한미동맹이 강화되고 한일관계를 연결해 한미일 삼각동맹을 추진할수록 중국에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커지는 법이다. 이는 동북아 지정학의 불변의 법칙에 가깝다.
또 한 가지. 북한이 정반대 의미의 ‘게임 체인저’가 될 가능성이다. 북한이 핵능력을 강화할수록 강력한 제재를 자초해 체제의 존망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아니라, 강해진 핵능력을 바탕으로 한반도의 현상변경을 추구할 가능성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 한국과 국제사회의 시선은 풍계리로 모아져 있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은, 아니 오히려 더 큰 문제는 영변에 있다. 미국 정보기관과 민간 연구소는 북한이 영변 우라늄 농축 시설을 두 배로 늘리는 확장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있다고 분석한다. 5메가와트 흑연감속로도 가동 중에 있다고 한다. 30메가와트 실험용 경수로도 완공을 앞두고 있다.
북한이 이들 핵시설을 총가동하면 매년 5개 안팎의 핵무기를 추가로 만들 수 있다. 현재는 5~10개 정도인데, 매년 이 정도 숫자를 늘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핵실험은 핵무기의 질적 개선을 위한 것이다. 핵물질 생산은 핵무기의 양적 증강을 위한 것이다. 실효성의 여부를 떠나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면 추가 제재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핵물질 생산을 막거나 생산 시 제재를 가할 방법은 현재의 접근법으로는 없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을 달리해도 핵실험과 추가적인 핵물질 생산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있다. 6자회담의 문을 여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북한은 이미 미국과의 2.29 합의를 통해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 중지, 영변 핵시설 가동 중단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단의 복귀를 약속한 바 있다.
북한이 광명성을 발사해 그 약속을 깨지 않았느냐고? 그러나 2.29 합의 어디에도 위성 발사를 유예한다는 언급은 없었다. 위성 발사체가 탄도미사일로 전용될 수 있고, 북한이 발사를 강행한 것은 분명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부실한 합의를 해놓고 과잉 대응에 나선 것도 사태를 꼬이게 한 주요 원인이었다. 또한 2.29 합의에 담긴 북한의 약속에는 “건설적인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이라는 조건과 미국의 대북 영양 지원이라는 반대급부가 있었다. 그러나 북미 대화나 6자회담이 단절된 지 오래고 미국의 대북 지원도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다.
지금 한미 양국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북한에 6자회담 재개의 사전 조건으로 2.29 합의를 먼저 이행하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는 것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다. 그러나 이 길을 걷는 사이에 북한의 핵 능력은 강화되어왔고 이 길을 고집할수록 북핵은 강해질 것이다.
또 하나의 길은 6자회담을 열어 북한에 2.29 합의 약속을 재확인 받는 것이다. 2.29 합의의 큰 구멍인 북한의 위성 발사 문제도 의제로 넣을 수 있다. 이게 가능하겠느냐고? 충분히 가능하다. 대북 제재를 완화하고,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상을 개시하며, 남한은 6자회담 10.4 합의에서 약속한 대북 중유 지원을 재개하고 미국은 2.29 합의에서 약속한 바를 이행하겠다고 하면 말이다.
두 가지 길을 비교해보면 대한민국 국익과 안보에 이로운 길은 자명해진다. 박근혜 대통령이 오바마를 만나 핵심 의제로 삼아야 할 것도 바로 이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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