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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의 야심, 거머리가 막을 수 있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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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의 야심, 거머리가 막을 수 있었다면!

[낮은 한의학] 문종의 건강학 ③

조선 왕의 건강을 살펴보는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전 대구한의대학교 교수)의 '낮은 한의학' 연재가 매주 수요일 계속됩니다.

이상곤 원장이 조선 왕의 건강에 초점을 맞춘 이유는, 당시 왕들의 모습이 오늘날 현대인의 그것과 아주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왕들은 산해진미를 섭취하였지만 격무와 스트레스, 만성 운동 부족 등으로 건강 상태는 엉망이었습니다. 이 원장은 "왜 왕처럼 살면 죽는지를 살펴보면 자연스럽게 현대인의 바람직한 건강 관리법을 알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번 연재의 주인공은 문종입니다. 알다시피, 문종은 조선 초기 나라의 기틀을 확실히 잡은 세종의 뒤를 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불과 2년 만에 세상을 뜨고, 단종이 그 뒤를 이었죠. 조카 단종을 왕에서 끌어내린 '비정한 삼촌' 세조의 얘기는 우리가 아는 대로입니다. 이런 비극 탓인지, 문종은 '병약한' 또 '무능한' 이미지가 컸습니다.

하지만 문종은 건강이 나빴던 세종의 사실상의 정치 파트너였습니다. 세종 말기에는 건강이 나빠진 아버지를 대신해 아예 왕 노릇을 대신하기도 했지요. 즉, 세종의 태평성대는 세종 혼자만의 업적이 아니라 문종 그리고 그 둘의 후원을 받았던 일군의 선비들의 합작품이었던 셈입니다.

만약 문종이 그렇게 빨리 세상을 뜨지 않았다면 조선의 역사는 또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은 오늘 이런 상상을 부추깁니다. <편집자>


문종 1년 8월 8일엔 다시 허리 밑에 작은 종기가 생긴다. 11월 14일과 15일엔 종기가 난 부위가 쑤시고 아프다면서 두통까지 호소한다. 이런 와중에 등장한 게 거머리 요법이다. 문종은 11월 16일 "어제 아침에는 차도가 있더니, 어제 저녁에는 쑤시고 아파서 밤에 수질(거머리)을 붙였다. 붙인 뒤에는 약간의 가려움은 있으나 어제 저녁 같지는 않다"고 했다.

이후 종기가 많이 회복되면서 정무를 재개하는 효험을 본다. 거머리를 이용하는 치료 방법을 <동의보감>에선 기침법이라고 한다.

"종기가 생겨서 점차 커질 때 물에 적신 종이 한 조각을 헌 데에 붙이면 먼저 마르는 곳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종기의 꼭대기다. 그곳을 먼저 물로 깨끗하게 씻어서 짠 기운이 없게 한 다음 큰 붓대 1개를 종기 중심에 세워 놓고 그 속에 큰 거머리 한 마리를 집어넣는다. 다음에 찬물을 자주 부어 넣으면 거머리가 피와 고름을 빨아먹는다. 그러면 헌 데의 피부가 쭈글쭈글해지고 허옇게 된다. 옹저의 피고름을 빨아먹은 거머리는 반드시 죽게 되어 있는데, 물에 넣으면 다시 살아난다."

이런 방법은 독이 심하지 않은 곳에만 써야 한다. 심할 때 쓰면 되레 피만 빨려서 이롭지 않다고 경고한다. 문종 2년 4월 23일, 그는 자신의 질병을 언급하며 회례연(설날이나 동짓날에 문무백관이 모여 임금에게 배례한 후 베풀던 잔치)을 중지할 것을 명한다.

"내 병은 급하지 않으니 그 증세(症勢)를 살펴보아서 26일에는 내가 마땅히 친히 나가겠다."

하지만 5월이 되면서 문종의 종기는 다시 악화일로를 걷는다. 당시 일본에서 사신이 왔지만 만나지도 못하고 정무를 모두 정지하면서 병이 낫기만을 기다린 것으로 기록돼 있다.

문종의 종기를 책임지면서 진료한 의사는 전순의다. <식료찬요> <산가요록> <의방유취>를 편찬한 당시 최고 명의였다. 세종 때는 일본에서 사신 일행으로 온 승려 숭태가 의술에 정통한 사실이 알려지자 흥천사에 데려다 놓고서 전순의로 하여금 직접 의술을 배워오게 할 정도로 국가에서 기른 인재였다.

5월 5일 전순의는 "임금의 종기가 난 곳이 매우 아프셨으나 저녁에 이르러 조금 덜하고 농즙이 흘러 나왔으므로 두탕(豆湯)을 드렸더니 임금이 음식의 맛을 조금 알겠더라고 하셨다"면서 호전의 신호를 알렸다. 전순의는 5월 8일엔 "임금의 종기가 난 곳은 농즙이 흘러나와서 지침(紙針)이 저절로 뽑혔으므로 찌른 듯이 아프지 아니하여 평일과 같습니다"라고 또 한 번 청신호를 알린다.

▲ 영화 <관상>의 문종(김태우). ⓒface-reader.co.kr
지침은 종기 사이에 꽂아둔 종이 심지로 추정된다. 종이 심지에 대한 <동의보감>의 기록은 이렇다.

"침을 찔러 고름이 나오지 않으면 건강한 환자에겐 털 심지를 꽂아 넣고 허약한 환자에겐 종이 심지를 꽂아서 계속 고름이 나오게 해야 한다. 만일 부은 것이 내리지 않고 아픈 것이 멎지 않으면 빨리 고름을 빼낸 다음 탁리하는 탕약을 먹어서 원기를 돋워야 한다."

종이 심지가 빠지고 나자 실제로도 처방에 탁리의 방법을 썼다. 당시 기록을 보면 허후가 5월 12일 종기의 차후 조리법을 조목조목 설명한다.

"큰 종기를 앓고 난 후에는 3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완전히 회복되니, 조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이 종기 난 곳은 날로 차도가 있으니 신 등은 모두 기뻐함이 한이 없습니다. 다시 날로 조심을 더하시고 움직이거나 노고하지 마시어서 임금의 몸을 보전하소서. 또 듣건대, 전하께서 조금 갈증이 나면 냉수를 좋아하신다 하니, 무릇 종기가 갈증을 당기는 것은 그 보통의 증상입니다. 갈증을 그치게 하는 방법은 약을 먹어서 속을 덥게 하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고는 탁리의 대표적 약물인 십선산을 처방한다. 십선산의 탁리법을 설명한 조문엔 증상이 악화돼 위험해지는 경우를 이렇게 설명했다.

"종기가 초기에는 도드라져 올라오며 부었다가 5~7일이 되면 갑자기 꺼져 들어가서 편평해지는 것은 속으로 몰리는 증상이다. 이 때는 빨리 내탁산과 속을 보하는 약을 써서 장부를 보하여 든든하게 해야 한다. 막을 뚫고 들어가는 것은 제일 나쁜 증상이다. 막이 뚫리면 열에 하나도 살 수 없다."

문종 2년 5월 14일 기록을 보면, 전순의는 은침으로 종기를 따서 농즙을 짜냈다. 두서너 홉의 농을 짜냈다고 기록돼 있는데 지금으로 말하면 360밀리리터 정도의 엄청난 양이다. 전순의는 의정부와 육조에 "임금의 옥체가 어제보다 나으니 날마다 건강이 회복되는 중이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전순의나 신하들의 바람과는 달리 5월 14일 문종은 세상을 달리했다. 조정의 대소신료들은 호전되고 있다는 보고만 믿다 문종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 망연자실했다. 대사헌 기건은 전순의를 강력히 탄핵했다.

"대저 독이 있는 종기는 처음엔 미미하게 나타나며 등에 있는 것은 더욱 독이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터인데도 이에 말하기를 '해가 없다'고 하였으니, 그 죄를 용서할 수 없는 것의 첫째입니다. 몸의 기운을 피로하게 움직이는 것은 등창에서 크게 금하는 것인데도 이를 아뢰지 아니하였으니, 그 죄를 용서할 수 없는 것의 둘째입니다. 음식물의 성질이 반드시 병과 서로 반대되면 해로움이 있고 꿩 고기 같은 것이라면 등창에서 크게 금하는 바인데도 날마다 꿩 고기 구이를 드렸으니, 그 죄를 용서할 수 없는 것의 셋째입니다. 등창에서는 농하여 터지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데, 그것이 농하지 아니하였는데 이를 침으로 찔러서 그 독을 더하게 하였으니, 그 죄를 용서할 수 없는 것의 넷째입니다."

꿩고기 구이를 수라에 올린 건 <식료찬요>를 지은 식치(食治)의 일인자치고는 큰 실수였다. <본초강목>은 꿩 고기를 이화(離火)의 음식이라고 규정한다. 닭과 꿩은 같은 종류이기 때문에 꿩을 야계(野鷄)라고 한다. 그러나 쪄서 요리를 하면 닭은 색깔이 변하지만 꿩은 색깔이 붉게되므로 오행으로 보았을 때 화(火)의 음식이라고 규정한다.

종기는 본래 혈에 열이 심해서 생긴 것으로 화의 작용으로 보는 질병이다. 질병의 양상으로 보았을 때 더 악화할 위험이 있는 음식을 수라에 올린 건 있을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전순의는 어의에서 전의감 청지기로 전락한다. 특히 봄에 꿩 고기를 먹는 건 부작용으로 치질, 부스럼, 습진을 유발한다. 마침 이때는 문종이 치질을 앓은 시점이다.

<동의보감>의 '옹저문'은 종기의 원인을 밝히며 "분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자기의 뜻을 이루지 못하면 흔히 이 병이 생긴다"라고 규정했다. 술과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고 오직 성군의 길을 가고자 했던 문종에게 세 번의 홀아비 신세가 얼마나 부담이 됐는지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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