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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 '카트리나 모멘트'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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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 '카트리나 모멘트' 될까?

[강원택-이철희 대담] "안철수 흔드는 야당, 박근혜에게는 '대박'"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후 6.4 지방선거를 향해 숨가쁘게 치닫던 정치권은 멈춰섰다. 어린 학생들을 지키지 못한 정부를 질타하고 민생을 돌보지 못한 스스로를 반성하기도 한다. 이 '잠깐 멈춤'이 어떤 결과를 낼까. 정치는, 정치와 전혀 관련없어 보이는 사건에 의해 가장 정치적인 영향을 받기도 한다. 국민들의 안전과 민생이라는 정치의 본령으로 돌아오는 게 우선이다. 선거의 유불리는 그 다음 문제다.

<프레시안>은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와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의 대담 자리를 가졌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다음 날인 지난 17일이다. 온 국민이 황망함에 휩싸인 시점, 그럼에도 예정된 일정을 바꾸기가 어려웠다. 강 교수와 이 소장은 모두 "지금 세월호 사건의 파장을 분석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는데 공감하며, 현 정국과 향후 정치권 전망에 대한 조심스러운 진단을 내놓았다.

대담의 초점은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 고공행진, 그리고 새정치민주연합 창당 이후 복잡해진 야권의 현실에 대한 진단이었다. 강 교수는 박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과 관련해 "지지도라는 게 허상일 수 있다. 신기루 같은 것이다. 지나친 자신감은 좋지 않다"고 했고 이 소장은 "앞으로 '현실화'되는 과정을 밟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른바 '의제화된 지지율'(이철희 소장)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지지율 자체를 기획 의제로 만들어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결과라는 셈이다. 이 소장은 "지금 국정 운영은 '1인 시스템'이다. 당은 당대로, 관료들은 관료대로 대통령만 바라보고, 언론은 정부를 견제하지 않고 박수만 쳐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소장은 "대통령을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이 박 대통령은 '폴(poll)생폴사'라고 하더라. 지지율에 굉장히 집착한다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강 교수는 6.4지방선거와 관련해 "유권자 입장에서 이번 선거는 박근혜 대통령을 좋아하더라도, 그와 관계없이 정치적 불만을 표하기가 쉬울 것이다. 중앙 권력을 놓고 다투는 게 아니기 때문"이라며 "대통령 지지율은 65% 이상 가지만 유권자들은 지방선거에서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야당의 상황에 대해서는 쓴 소리가 이어졌다. 강 교수는 새정치민주연합의 현 체제를 구(舊)민주당, 그에 앞선 구(舊)열린우리당으로 분석했다. 즉 2003년 체제가 10년 넘게 이어져오고 있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열린우리당 시절부터, 이른바 '정당 개혁'이라고 추진돼 왔던 것들이 대부분 정당 구조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당내 리더십이 약화되고, 결속력이 약화되고, 당 리더십이 약화됐다"고 분석했다. 겉모습만 바뀌었을 뿐, 야당은 근본적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관련해 '영국 노동당 모델'에 주목했다. 노동당이 18년 야당 생활을 청산한 배경에는 뼈를 깎는 변화 의지와 함께, 토니 블레어라는 인물, 즉 새로운 리더십을 만들어낸 것이 주요했다는 분석이다.

이 소장은 현재 야당에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도 없고, "리더십"이 탄생할 토양도 만들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초 무공천 논란'을 겪은 안철수 대표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일단 권한을 주고 책임을 물어야 하는데, 야당 의원들은 안 대표가 권한을 갖기도 전에 '흔들기'부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이는 야당 안에 정권 교체에 대한 '절박한 의지' 자체가 없다는 지적으로 이어진다. "민주당의 주인은 당원이 아니라 국회의원"이라는 쓴 소리도 나왔다.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2003년 열린우리당 시절부터 진행되 왔던 '원내정당화'에 따른 '부작용'일 가능성이 높다. 당 조직은 없고, 국회의원 개별적 이익만 존재한다. 진정한 '새정치'는 결국 정당 개혁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다음은 강 교수와 이 소장의 대담 전문이다. <편집자>

▲가운데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철희 소장, 강원택 교수, 임경구 선임기자 ⓒ프레시안(최형락)


"대통령 지지율은 기획된 것…'폴(poll)생폴사'라는 말도"

프레시안 : 세월호 사건으로 정치권 일정이 올스톱이다. 무엇보다 신속한 구조가 이뤄지질 기대한다. 조심스럽지만 이 문제가 정치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짚어보는 것으로 시작해야겠다.

강원택 : 가슴 아픈 일이 터졌다. 실종자 가족들의 마음이 얼마나 무겁겠나. 이 사건을 곧바로 정치적 해석과 연결시키기는 무척 조심스럽다. 다만 사고 이전의 상황에 근거한 일반론으로부터 말을 해보자면,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68.5%(KBS-미디어리서치 조사)를 찍었더라. 취임한 지 1년이 더 지났는데 이 정도면 대단한 기록이다. 그와 동시에 나온 뉴스가 김기춘 실장이 NSC(국가안전보장회의)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면에는 청와대 행정관을 사칭한 사기꾼이 잡혔다는 내용도 나왔다. 68.5%라는 지지율이 권력을 잡고 있는 사람들이 자만에 빠지게 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은 아닌가. 이제 지지율이 더 올라가기는 힘들 것이고, 이런 저런 이유로 지지율이 빠지거나, 권부 내에서 어떤 일들이 생기지 않을까 예상을 했는데, 사고가 터졌다. 앞으로 잘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지지도라는 게 허상일 수 있다. 신기루 같은 것이다. 지나친 자신감은 좋지 않다.

이철희 : 실종자들의 무사 생환을 먼저 기원한다. 가족들에게도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나도 당장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연결해 말하고 싶지는 않다. 강 교수의 말을 받아 풀어보자면, 지금 보면 박 대통령이 관료들을 중용한다. 그런데 행정가로서 박근혜 대통령은 잘 보이지 않았다. 큰 의제를 잡고 가는 것은 좋은데,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행정 수반이다. 세월호 사고가 오로지 대통령의 잘못일 수는 없다. 그러나 행정을 빈틈없이 꼼꼼하게 챙긴다는 면에서 박 대통령이 무언가 허점을 보여줬다고 본다. 어찌됐든 68.5%라는 (지지율의) 허상은 앞으로 현실화되는 과정을 밟게 될 것 같다.

강원택 : 국가적 재난에 대한 위기관리 능력이 도마에 올랐다. 어떻게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지금 임기 1년을 넘겼다. 외교적인 면모 등은 '폼'이 조금 나는데, 사실 지속성은 없다. 내부 지지율에는 크게 영향을 안 미친다. 그렇다면 실제로 사람들의 피부에 와 닿는 박 대통령의 구체적인 정책이 뭔가? 그게 별로 안 보인다. '규제개혁'을 한다면 그것을 통해 국민에게 뭔가를 줘야 하는데, 그 '뭔가'가 없다. 68.5%는 대통령에게도 나쁜 지지율이다. 국민들이 과도한 기대감만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 이번 사건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국민적 불만이 쌓여갈 수 있다. 이를테면,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뀌어서 안전을 강조해 온 게 이 정부다. 그런데 경주에서 리조트 붕괴 사고가 터지고 이번에 또 터졌다. 지금 당장 어떤 영향을 준다기보다는 장기적으로 영향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정도 사건이면 국민들의 기억에 각인이 될 수밖에 없다.

이철희 : 이번 사건(세월호 사건)이, 국정 평가가 바뀌는 '카트리나 모멘트(2005년 카트리나가 미국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후 수습과정에서 부시 행정부의 무능이 드러나 지지율이 급락했다. 재해로 인한 지지율의 변화 계기를 '카트리나 모멘트'라고 한다. 편집자)가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에게 질문들이 생길 것이다. '대통령이 과연 무얼 해야 하느냐'는 문제 제기를 하게 될 것이다. 지금 지지율은 잘 기획해 끌어올린, 이른바 의제된 지지율이다. 그러나 높은 지지율은 굉장히 위험할 수 있다. 전부 대통령만 쳐다보게 만든다. 지금 국정 운영은 '1인 시스템'이다. 당은 당대로, 관료들은 관료대로 대통령만 바라보고, 언론은 정부를 견제하지 않고 박수만 쳐 주고 있다. 박 대통령은 수습 과정에서 표면적으로는 그림을 잘 만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이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할 것이다. '대통령이 뭘 해야지?' 하는 질문들 말이다.

강원택 : 이번 사건이 당장 어떤 영향을 미친다기보다는, 높은 지지율의 허상이 드러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위험성을 지적하신 것 같다. 어쨌든 이번 일은 대통령이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는 사건이 됐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와 별도로, 우리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정치권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지방선거에도 이번 사건의 여파가 있을 수 있다.

이철희 : 지금 상황을 보자. 박 대통령이 지원하는 후보들은 죽을 쑤고 있는 상황이다. 김황식 후보가 대표적이다. 정몽준, 남경필, 원희룡, 홍준표, 다 친박이 아니다. 이 사람들이 지방선거에서 당선돼 모두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대통령은 부담스러워진다. 선거는 이겼는데 대통령의 불안요소는 커지게 된다. 이번 사건이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칠지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문제의식은 던지게 될 것 같다. 후보들이 박근혜 마케팅을 하겠지만 얼마나 효과를 볼지는 모르겠다.

프레시안 : 높은 지지율의 허점을 지적했는데, 대표적인 게 남재준 국정원장 유임이다. 대통령이 지지율에 취한 것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든다.

▲이철희 소장. ⓒ프레시안(최형락)
이철희 :
그래도 예민한 부분에 대해서는 좀 신속하게 대응하는 편 아닌가. 증거 조작 문제는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과 다르게 신속하게 대응했다. 문제는 남재준 원장을 경질 못한 것이다. 여당도 아무 얘기를 안 한다. 지금 상황을 아무도 허물고 싶지 않은 것 같다. 박 대통령이 시장 위주의 개혁을 해보겠다고 의제를 던졌는데, 개혁 과제를 감당하기에 김기춘, 남재준이 적당한 사람인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쯤 박 대통령이 어떤 변화를 줄 수 있다고 봤는데, 그냥 버티고 있다. 국정원 2차장을 사퇴시키고 원장을 보호한다는 것은 이 체제를 갖고 가겠다는 것이다. 솔직하게 뭔지 잘 모르겠다. 박 대통령이 던진 개혁 의제들은 모두 쉬운 과제들이 아니다. 그런데도 의제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편해서 계속 쓰겠다는 것인지 걱정스럽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현오석 부총리로 되겠나. 개혁을 선거 이후로 미뤄놓겠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선거 이후에도 이 시스템이 그대로 간다면 이런 미스매치들이 균열로, 부작용으로 나타날 수 있다.

강원택 : 드레스덴 선언이라든지, 대북 정책을 내용적으로 보면 다 유화적인데 실제로 포진돼 있는 사람들은 매파 중의 매파다. 그래서 실제로 실현하고 추진하려는 정책적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공허하게 들린다. 높은 지지율이 이런 상황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모든 게 다 잘 돌아가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높을 때가 위험한 상황이다. 그 때 관리를 해야 한다. 지방선거에 이겨도 문제, 져도 문제인데, 현재 박근혜 정부의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게 되면 정무적인 문제가 불거질 것이다. 여당과 관계, 야당과 관계가 중요해질 것이다. 어차피 지지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현직 대통령과 거리를 두는 세력들이 생길 것이다. 지금 보면, 새누리당에 친박이 아닌 몇몇 후보들은 당선이 유력해 보이는데, 그 사람들이 앞으로 가만히 있겠나. 어느 순간 지지율이 50% 이하로 떨어지면 그 동안 잠재돼 있는 모든 문제들이 드러날 것이다.

이철희 : 누가 분석하기를, 정부 내는 아니지만 상당히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현오석 부총리를 왜 안 바꾸는 것이냐'고 하니까, '대통령이 현오석 부총리를 바꾼다고 달라질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더라. 현오석 부총리는 대통령이 시키면 하는 그런 역할이라는 것이다.

강원택 : 그게 사실이라면 큰일이다.

이철희 : 그러니까 시스템을 짜는 데 있어서 '어떤 사람을 써서 대중들이 원하는 바를 맞출까'가 아니라, 그냥 내가 말하는 대로 하는 편한 사람을 쓴다는 것이다. 인사가 이런 식으로 가면 항상 뒤탈이 날 수밖에 없다. 그게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앞으로 관건은 6월 지방선거 이후 (시스템에) 변화를 줄 것이냐 하는 부분이다. 여당이 선거에 이기면 국정원 대선개입 논란 같은 것은 정리되니까. 반대로, 선거 결과에 상관없이 이 시스템으로 가겠다고 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일지는 잘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박 대통령이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인사를 하거나 국정을 운영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대통령을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이 박 대통령은 '폴(poll)생폴사'라고 하더라. 지지율에 굉장히 집착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가면 어렵다.

"지방선거, 박근혜 좋아해도 정치적 불만은 표출될 것"

강원택 : 박 대통령이 당선된 후 뭐가 달라졌나. 피부로 와 닿는 게 별로 없다. 지방선거가 상당한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보는데, 결국은 서울이 관건이다. 서울을 이기면 (박 대통령이) 조금 더 유리하게 갈 수 있겠지만, 진다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나오게 될 것이다. 언론들의 태도도 변하게 될 것이다.

이철희 : 확실히 그것은 있는 것 같다. 언론이 박 대통령을 기본적으로 보호하려고 한다. 나쁜 의제는 거의 쟁점화 시키지 않고 잘 하는 것은 언론이 굉장히 키워준다. 정상회담 갈 때마다 대통령의 패션을 얼마나 많이 보도했나. 지금 지지율은 만들어진 지지율이기 때문에 그것에 의지하고 가면 위험해질 수 있는 것이다. 지방선거는 무승부로 결론이 나지 않을까 싶다. 현재로선 경기도는 여권이 강하고, 충청도는 지금 야권이 강세다. 서울에서 이긴 쪽이 '우리가 이겼다'고 할 수 있다.

강원택 : 유권자 입장에서 이번 선거는 박근혜 대통령을 좋아하더라도, 그와 관계없이 정치적 불만을 표하기가 쉬울 것이다. 중앙 권력을 놓고 다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중간 선거는 언제나 여당이 진다. 대통령 지지율은 65% 이상 가지만 유권자들은 지방선거에서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을 것이다.

이철희 : 엄밀하게 말하면 대통령 지지율도 아니지 않나. 국정지지율이다. 국정 현안별로 지지율을 따지면 그렇게 높지 않게 나온다. 그래서 현재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약간 가공된 게 있는 것 같다. 물론 지나치게 폄하할 필요는 없다. 과거 정부에 비하면 덜 소란스럽다고 대중들은 느낀다.

강원택 : 너무 소란스러웠던 지난 정부에 비하면 안정감이 있다. 지난 총선을 보면,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야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결속력이 생긴 측면이 있다. 그 사람들에게는 목표가 분명했던 것이다. 이번엔 좀 다르다. 김황식 후보는 '김기춘 실장과 가끔 통화한다'고 할 정도로 실력을 자랑했다. 그래도 여론 지지도가 안 나온다. 박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가 높지만 선거 때 그것은 별개의 결과가 될 수 있다.

프레시안 : 지지율의 내용적 측면에서, 경제민주화와 복지 후퇴 같은 정책적 평가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 같은데 이유는 뭐라고 보나.

이철희 : 두 가지다. 첫째는, 그래도 과거보다는 나아졌다는 것이다. 이전 정부보다는 나아졌으니, 순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으로 보고 그에 대해 대중들이 평가를 해 주는 것이다. 두 번째, 그 문제를 야당은 아직도 '약속 프레임'으로만 걸고넘어지니까 대중들에게는 식상할 수 있다. 약속 프레임으로 가더라도, 결국에는 복지와 경제민주화의 내용을 가지고 덧붙이고 진화시켜야 한다. 정면으로 붙어서 '우리 대안은 이렇다'고 하면서 가야 하는데 시작도 '약속 프레임', 끝도 '약속 프레임'이니 식상해진 것이다. 야당은 '찬반 구도'에서는 잘 싸운다. 대표적인 것이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경우다. '무상급식을 할 거냐, 말 거냐' 싸움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찬반 구도'가 아니다. 누가 더 잘하느냐 하는 '우열 구도'다. 그런데 왜 약속을 깨느냐 하는 얘기만 하고 있다.

"야당은 '프랜차이즈 정당', '골목대장'들만 모였다"

▲강원택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강원택 :
야권 역시 새정치 약속을 못 지켰다. 야당이 여전히 무기력한 것 같다. 저는 야당 이야기가 나오면 '자기들 스스로 발목을 잡은 것'이라고 한다. 열린우리당 시절부터, 이른바 '정당 개혁'이라고 추진돼 왔던 것들이 대부분 정당 구조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당내 리더십이 약화되고, 결속력이 약화되고, 당 리더십이 약화됐다. 기초공천 문제도 보자. 민주당 의원들이 모두 지방의 영주처럼 행세해 왔는데, 자기 영역을 건드리니 벌떼같이 일어난 것 아닌가. 최장집 교수가 '프랜차이즈 정당'이라고 했는데 좋은 표현이다. 민주당 의원들이 다 편의점을 하나씩 갖고 있다. 기본적으로 내 점포만 잘 되면 된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은 이런 구조여서 뭔가 결집력을 보이거나 추진력을 보일 수 없는 것이다.

이철희 : 민주당의 주인은 국회의원이었다. 지도자가 없었다. 국회의원, 즉 골목대장들이 모여서 '우리끼리 공존하며 적당히 먹고 살자'였다. 기초공천 문제도 그렇다. 나는 정당 공천제가 맞다고 보는 사람이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이 기초공천 문제를 끌고 온 과정을 보면, 지도자를 희생양으로 삼아서 (무공천에서 공천으로) 뒤집어버렸다고 볼 수 있다. 기초공천을 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어떤 대가를 치르고 있나. 유일한 상품인 안철수를 죽인 것이다. 지도자도 안 나오고 당원 주권도 없는 국회의원의 전유물 정당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물론 무공천을 합당의 명분으로 한 건 난센스였다.

이런 얘기를 하면 욕을 먹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 정작 민주당에서 정당공천 폐지를 공약을 한 사람은 왜 침묵하나. 자신이 결자해지 하겠다는 결단을 왜 못 내렸나. 앞으로 지도자가 자기 소신 가지고 뭔가를 하기 어려운 풍토를 만들어 놓았다. 뭘 하려고 해도 '당신이 뭔데' 그러면 할 말이 없게 된다. '자해 집단'이 돼 버린 것이다. 국회의원 기득권만 지켜지고 당원들 권리는 다 죽었다. 그러니 프랜차이즈 정당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한심한 모습이다.

강원택 : 현재 모습은 지난 2003년 열린우리당부터 시작된 원내정당 추진의 정치적 결과라고 본다. 그것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주장했던 사람들이 결국은 자기들 기반을 허물어버린 역설적인 모습인 것이다.

이철희 : 열린우리당을 만들었을 때 원내정당을 추진하며 지구당을 없앴다. 그 주역들이 새정치연합의 지금 주역들이다. 10년 째 장기집권 하고 있는 것이다. 야당의 정당사로 보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아직도 2003년 체제다. 열린우리당 체제다. '486 세대'는 지지부진하고 지도자도 없다. 필요할 때 집단적 에너지를 못 낸다. 아무 지향점은 없지만 한 시대를 같이 했다는 이유로 동질성은 있다. 결국 이익집단이 돼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86은 그것부터 인정해야 한다. 2000년부터 출마하기 시작해 4번의 선거를 치른 그들이 어엿한 당권주자, 대권주자 하나 없다는 사실,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

강원택 : 열린우리당 당의장 재임 기간은 평균 4개월 반이었다. 그러니 리더십이 만들어질 수가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 당정분리는 했는데 당이 강력한 리더십을 갖는 것을 원치 않았다. 지금 새정치연합 의원들은 자기가 당선되는 게 더 중요하다. 그러니 자기희생이 없다. DJ나 YS는 과감한 물갈이를 했었다. 김문수, 노무현, 이재오, 그리고 486들, 이런 사람들이 정당 안에 들어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토대들을 만들어 놓았다. 그들이 정당 안에서 큰일들을 하지 않았나. 그러나 지금은 그런 자기 개혁의 힘이 내부적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다음 총선에서도 공천 때 난리가 나겠지만, 아마 현역 의원들이 대부분 다시 출마를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프레시안 : 열린우리당 시절 시작된 10년간의 정당 개혁이 결국 자해적 결과로 나왔다는 얘기 같다.

이철희 :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당 안에서 컸지만, 정당의 힘을 얻어 대통령 후보가 된 사람은 아니다. 비유하자면, 정당이 아니라 운동으로 성공한 정치인이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대통령이 되자마자 당정 분리를 선언하고, 정치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정치 개혁을 했다. 결국 지구당을 없애 지역 조직이 해체됐다. 그런데 진보와 보수가 싸우는데, 스스로 조직을 해체한 진보가 무엇으로 보수에 대적하나. 그런 의미에서 자해적 개혁이라는 말이 나온다. 미국의 진보도 그런 반성을 하고 있다. 오픈프라이머리를 도입했지만 성적은 더 안 좋아 지고, 강한 후보도 나오지 않는다는 분석이 있다. 지금도 우리 선거법이나 정치관계법은 현직의 기득권을 강고하게 하는 방향으로 맞춰져 있다. 그러니 기득권 내려놓으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강원택 : 지구당 없앴지만 의원들은 지역에 개인 사무실을 가지고 있지 않나. 결국 지역에서 경쟁자가 나오지 못하는 구조다.

이철희 : 기초공천 하지 말자는 건 나름 일리 있는 얘기다. 정당에 지구당 단위가 없는데 지구당 단위로 기초 공천을 한다는 것도 논리에도 맞지 않다. 차라리 기초공천을 하자고 하려면 기초자치단체 차원에서 풀뿌리 정당 조직을 복원하자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논의와 함께 가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지 않나. 결국 국회의원이 자기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게 된 것뿐이다.

ⓒ프레시안(최형락)


"야당은 지금도 2003년 체제…열린우리당에서 시작된 '자해적' 개혁의 결과"

프레시안 : 자해적인 정당 개혁의 결과물이 기초공천 논란으로 나타난 것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정당이 거꾸로 가다 보니 안철수라는 인물이 부각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이제 합당에 대한 기대 심리도 위축됐고, 결과적으로 안철수 대표도 리더십도 타격을 입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상당히 어려운 처지에 놓였는데.

강원택 : 박근혜 대통령의 가장 믿을만한 우군은 새정치민주연합인 것 같다.(웃음) 어떤 경우에도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지율은 올라가지 않고 있다. 그게 중요한 포인트다. 합당했을 때도 합당의 명분이 너무 궁색했다. 조금 더 멋있는 모양새를 만들어야 했다. 안철수 대표도 독자적으로 창당 작업을 하다 보니 힘들어서 덜컥 들어간 것 같은데, 기초 무공천이 새 정치의 모든 것인 양 만들어놓았다. 그게 빠져 버리니 '그렇다면 새 정치는 뭔데'라는 다음 질문이 나오는 것이다. 그에 대해서 대답을 못하고 있다.

이철희 : 정당이 인물을 키워주는 시스템이어야 하는데, 대표 자리만 가면 망가진다. 당 대표 출신으로 큰 정치인이 야권에 있나. 대표가 되면 망가진다. 그야말로 리더십의 무덤이다.

강원택 : 흔들어버리죠.

이철희 : 당 대표 자리가 힘든 자리다. 보수정당은 좀 다르지만, 야당 대표는 죽음의 자리다. 이번 무인항공기 사건을 보자. 북한의 짓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걸 증명하는 객관적 증거는 엉성하다. 그래도 여권은 관성적으로 북한 쪽으로 연계시키려고 한다. 익숙한 선택이다. 그런데, 그에 대한 야당의 대응을 보면, 싸움을 왜 꼭 그렇게 할까 싶다. 정말 문제가 있다면 팀을 짜서 연구를 해야지, 개인이 당과 상관없이 불쑥 던져 논란을 야기한다. 그러면 지도부는 부담이 되니 '그러지 말라'고 한다. 이런 모습들이 실망을 준다고 본다.

프레시안 : 창당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난관에 봉착한 새정치민주연합이 상황을 타개할 방안이 있을까.

강원택 : 일단 위기감이 공유가 돼야 한다. 그런데, 일정한 지분을 가진 '소영주'들은 자기가 먹고 사는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것을 깨는 리더십을 만들거나 누가 내부적으로 싸워져야 한다. 그런데 다들 그런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집권 못하면 큰일 난다는 위기감이 있어야 한다. 영국 노동당의 모습이 떠오른다. 1979년부터 18년 동안 야당을 했다. 바꾸어 말하면 18년 동안 실패를 한 것이다. 그래서 '뉴'를 붙여 '제3의 길'을 내세우고 토니 블레어를 앞세워 변화된 모습을 보였다. 그 정도의 변화가 되니 유권자들의 신뢰도 회복한 것이다. 지금 새정치연합은 각자도생 분위기 하에서 그런 리더십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이철희 : 영국 노동당은 그래도 블레어를 만들어내는 당과 조직이 있었지 않나. 여기는 그게 없다는 게 문제다. 반드시 집권해야 하겠다는 결기를 분명히 보여주는 사람도 많지 않아 보인다. 정치에서 중요한 문제는 아닐 수 있지만 하나의 지표가 되는 것이 있다. 바로 책임지는 모습니다. 야당이 총선, 대선에서 내리 졌음에도 당에서 책임지는 차원에서 불출마를 선언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책임지고 국회의원 배지를 던지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나오는, 그 정도 수준의 결기는 보여줘야 하지 않나. 그래야 유권자들도 당에 애정이 생기고 지켜보고 싶은 마음도 생길 것 아닌가. 국정원의 대선 개입이 잘못된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나. 다 안다. 그런데 주야장천 '특검하자'고만 하면 국민들도 지겨워진다. 그것과 더불어 삶의 문제를 제기해 민주주의 여부가 아니라 '가난한 민주주의' 프레임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시종일관 '저쪽이 반칙했거든요' 이런 얘기만 하는 것이다. 이런 이슈로 지방선거 치르면 안 된다.

프레시안 : 야권이 주장한 '약속 프레임'은 이제 깨졌는데, 다른 쪽으로 방향 전환이 용이해 보이지 않는다.

이철희 : '약속 대 거짓'도 의미가 있다. 나는 정당 공천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최근에 민주당의 한 토론회에서 '이 정도까지 왔으면 그것을 뒤집는 게 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신 '약속 대 거짓' 프레임이 기초공천 문제에만 적용되나? 다른 약속을 위반한 것도 많이 있지 않나. 민생, 즉 먹고 사는 분야에서 약속을 깬 부분들이 있다. 그것을 함께 '약속 대 거짓' 프레임에 같이 갔다면 (무공천을 철회하지 않아도) 그림이 된다. 이렇게 주장했는데, 동의하지 않더라. 어려운 길이기 때문에 싫은 것이다.

강원택 : '약속 프레임'은 이제 '새 정치'도 약속을 안 지키게 됐기 때문에 이제 유효하지 않다. 나는 무상버스 얘기 나왔을 때 너무 뜬금없다고 생각했다. 옛날에 무상급식으로 재미를 봤으니 이제는 버스로 가보자? 정말 이 사람들은 먹고 사는 것에 대해 고민 안 하는구나, 그런 느낌이 들었다. 국정원 댓글 사건도 그렇다. 국정원 댓글, 정말 나쁜 짓이다. 그런데 그 댓글 때문에 승패가 바뀌었다? 그건 아니지 않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못됐다'고 인정하지만, 그것이 그 정도로 심각하게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생각은 안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변했는데, 야당은 아직도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야당 대표가 풍찬노숙을 해도 국민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 무상급식을 실제로 해보니 장단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반값 등록금? 이제는 그것도 장단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무상' 시리즈, 이제 다 지나간 것이고 평가도 해본 것들이다. 새롭게 주제를 발굴해야 하지 않나. 예를 들어, 사교육 문제를 해결한다면 세금 더 내겠다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노인 빈곤 문제, 이런 것도 있다. 그런 문제에 대해 야당이 다가서야 하는데 여전히 정치적인 이슈만 잡아내려 하고 있다.

이철희 : 무상버스 이슈는 그것으로 파문을 일으켜서 찬반 구도를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찬반 구도를 만들어 세게 한번 싸워보든지 해야 할 것 아닌가.

강원택 : '이 산이 아닌가봐' 하고 내려와 버린 것 같다.

이철희 : 논란이 되니 아예 꼬리를 내려버린 것 아닌가. 먹고 사는 문제에서 쟁점이 안 생기도록, 쟁점을 안 만들려는 게 보수의 전략이다. 그러면 쟁점이 형성되도록 무상버스 이슈를 진화시켜야 했다. 그래야 하나의 큰 전선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게 실력이다. 그런데 어떤 후보가 버스공영제를 내세우니 후발 주자가 더 센 것을 던지면서 엉망이 돼버렸다. 먼저 고민한 사람이 화를 낼만한 모양새가 됐다. 야권은, 무얼 던질 때 준비 없이 던지는 게 일종의 고질병이다. 당과 소통도 없다. 그러니 김상곤 후보 인지도가 오르지 않는 것이다. 그 분이 자신 있는 분야는 교육과 복지 아닌가. 본인의 브랜드인 교육과 복지로 의제를 잡는 것이 맞지 않았을까. 병원의 영리화 문제가 심각하다면, 건강 복지 같은 어젠더로 의제를 삼는 게 더 먹히지 않았을까. 그런데 느닷없이 (서울 경기 출퇴근자) 125만 명을 대상으로 하는 교통 복지를 내놓고 거기에 무상을 붙여놓으니, 사람들 사이에서는 '충분한 고민 없으니 일단 지르고 보는구나' 하는 말들이 나오는 것이다.

프레시안 : 민주당이 소위 '진영의 의제'에 너무 결박돼 있는 것 같다. 그런 강경론이나 원칙론에서 자유롭지 못해 결국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히는 사례들이 많이 있었다.

강원택 : 정당의 약화와 관련 있는 문제다. 당은 현실 정치에 토대를 두고 있는 것이다. 일정부분 유연해야 하는 면이 있는데, 지금까지 보면 '올 오어 나씽(All Or Nothing)'이다. 국가보안법 문제를 보자. 과거에 열린우리당 시절, 한나라당이 양보했던 그 정도로만 바뀌었어도 지금 세상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당이 약화되니, 외부의 목소리에 응답만 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당이 먼저 (시민단체 등을) 설득하고 '이번에는 참으라. 이번에는 이렇게 간다. 다음에 더 진전시키자'고 하든지, '집권을 위해 우리가 이 정도는 양보해야 한다'고 하든지, 힘을 발휘해야 하는데 그것을 못하니 끌려가게 되고, 진영 논리에 포획된다. 그래서 결국 김상곤 후보처럼, 개별 후보의 튀는 행위가 여기저기에서 나오고, 그에 대한 책임은 당이 다 뒤집어쓰게 되는 일들이 계속 벌어지는 것이다.

이철희 : 기초연금 문제도 그렇다. 다들 논리가 있다. 그런데 입장을 바꿔놓고 보자. 새정치연합이 만약 지금 집권당이고 다수당이어서 하고 싶은 게 있다고 치자. 그런데 야당이 계속 안 된다고 하고 발목을 잡으면 용납 하겠나? 이긴 자는 어느 정도는 하고자 하는 것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야당은 '우리 대안은 이런 것이다' 하고 대중들에게 알리면서, 지금은 힘이 없으니 끌려간다고 해야 한다. 계속 막고 있는다고 야권에 대한 지지율이 올라가나. 결국 문제는 다시 리더십이다. '이 문제는 풀어주자'고 하면 '당신이 뭔데'라는 말이 돌아오는 분위기가 돼 있다. 정치는 타협이다. 입장 바꿔놓고 보자.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새누리당이 발목 잡아서 안 된 게 얼마나 많았나. 그런데 그 똑같은 모습을 야당이 재현 하고 있다.

강원택 : 의석이 작은 야당은 주도할 수 없다. 견제하고 문제점을 찾아내는 게 역할이다. 어떤 면에서 지금 야당은 주어진 힘보다 많은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철희 : 130석이 작은 의석이 아니다. 하나의 팀으로 움직인다면 큰 힘이 된다. 그런데 전혀 팀플레이가 되고 있지 않다. 숫자는 많은데 각각 따로 놀고 있다. 그러니 새누리당 입장에서 130석 야당이 무섭지 않은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야당의 지금 상황은 박근혜에게 '대박'"

프레시안 : 개혁공천 문제를 얘기해보자. 지금은 개혁공천이 시작부터 지분나누기로 비쳐진다.

이철희 : 언론에서 '지분나누기'라고 물타기를 한다. 야당은 지금 무엇을 해도 분열의 프레임으로 보게 돼 있다. 당장 친노, 비노 갈등이라고 언론에서 쓴다. 종편을 보면 다 친노, 비노 얘기다. 사실 논리적으로 모순이다. 기초공천을 안한다고 했던 정당이, 기초공천을 하게 되니 중앙당이 직접 뛰어들어 공천에 개입하겠다? 어색하지 않나. 그러나 현실을 보면 기초단체장 16명이 물갈이 대상이라고 하는데, 그것조차 못하면 아무것도 못한다. 선의의 희생자 없이 개혁이 되나.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강원택 : 계파, 계파 할 때마다 떠오르는 게 박정희 정권 시절의 신민당이다. 크게 두 개의 계파가 있었다. 이철승으로 대표되는 중도통합론이 있었고, 한쪽은 저항하자는 쪽이 있었다. 주류 비주류 있었지만, 그때가 지금의 새정치연합보다는 훨씬 나아 보인다. 일단 당권이 정해지면 당권을 잡은 사람에 의해 당이 일사분란하게 갔다. 지금은 그때만큼도 당의 리더십이 만들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저마다 각자도생하니 그저 130개의 개인 연합체처럼 돼 있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스스로 내부 역량을 결집할만한 능력도 의제도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대박'이지.

이철희 : MB정부를 보자. MB정부는 야당 때문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 때문에 손해를 많이 봤다. 그러나 지금 박 대통령에게는 MB정부 때의 박근혜 같은 사람이 없다. 진영 안에서 누리는 지위가 거의 유일적 존재다. 그러니 얼마나 안정적인가. 그러면 야권 쪽에서 강력한 대항마를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안철수를 영입해 당을 만들었다면 안철수를 주장으로 내세워 '박근혜 대 안철수' 구도를 당이 만들어 줬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을 못한다. 어떻게 보면 안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하면 안철수만 띄워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 보인다. 멀쩡한 정당이라면 지금은 안철수든 누구든 인물을 띄워야 한다. 그런데 붙어보기도 전에 넘어뜨려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안철수 대표가 선거 때 무슨 얘기를 할 수 있겠나.

강원택 : 모든 조직의 운영 원리는 권한을 주고 나서 책임을 묻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정말 자해적이다. 한 명이 돋보이는 걸 보지 못하니까 모든 사람이 '꼬맹이'로 남아 있는 것이다.

프레시안 : 말씀하신 야당의 처지를 이번 선거에 대입해 보면, 야당은 당의 힘보다는 각 지역에서 후보들의 개인기로 돌파할 수밖에 없겠다.

강원택 : 그렇게 가고 있는 것 같다. 정당이 중요한데 정당이 중요한 역할을 못하고, 결국 개별 후보들이 정당 이름 걸고 뛰어야 하는 어려운 입장들일 것이다.

이철희 : 선거 전체를 관통하는 무언가를 야당이 만들어내지 못하면 투표율 문제가 생긴다. 여당 지지층은 행정권력, 입법권력을 다 잡고 있기 때문에 투표장에 이번 지방선거에서 투표열기는 떨어질 것이다. 문제는 야당이다. 새로운 의제를 만들어 지지자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내야 하는데, 그것을 제대로 하고 있나? 선거를 하나의 프레임으로 묶지 못하면 선거단위나 지역별로 찢어져서 선거가 치러지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유권자도 찢어진다. 권력자원이 부족한 야권이 열세일 수밖에 없다. 그나마 박원순 시장은 선전이 예상된다. '서울만은 내줄 수 없다'는 야권 지지자들이 많이 나올 것이다.

강원택 : 대통령을 지켜야지 하는 절박함은 여당 지지층에서 약한 것은 사실이다.

이철희 : 야권은 지금 전략이 없다. 정말 참담한 수준이다. 2012년 선거에 패배했는데 그 전략을 짰던 사람들, 반성도 안하고 책임도 안 진다.

강원택 : 아직 운동권 물이 안 빠진 것 같다. 무조건 선악으로 보거나 무조건 반대한다. 큰 한방이 아니라 차곡차곡 '잽'으로 가야 한다. 다른 측면에선 안철수든 누구든 내놓아서 스스로 변하고 있다는 '얼굴'을 만들어야 한다. 안철수 대표는 당내 기반이 없기 때문에 지방선거 이후 어떤 역할을 맡을지도 모르는데, 그냥 안 대표가 크는 것을 못 보겠다는 수준인 것 같다. 그러면 서로 다 죽는 것이다.

이철희 : 당권 투쟁이 이미 시작됐다. 차기 총선의 공천권을 누가 가지느냐 하는 다툼이다. 대권 경쟁은 없다. 당권경쟁에 유리하냐 불리하냐, 그것만 보고 지방선거를 대하는 것 같다. 요즘 상황을 보면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 이 말이 맞는 것 같다.

강원택 : 개인적으로 안철수 대표를 높게 평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독자 정당이 잘 됐으면 했던 이유는 양당제의 폐쇄적인 구조가 안철수라는 인물로 인해 좋은 쪽으로 자극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가장 나빴을 때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직후였다. 120석이 조금 넘었다. 이명박 정부 때 민주당이 가장 나빴는데, 90석 조금 못 가져갔다. 아무리 망해도 80석 이상 차지하는 것 아닌가. 양당제가 고착이 된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 새 인물의 등장이라는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올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철희 : 어쨌든 리더십이라는 것은 끌고 가는 힘이다. 안철수, 문재인은 같이 사는 길을 찾아야 한다. 상대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생각은 오산이다. 옛날에 YS, DJ도 힘들 때는 서로 끌어주고 밀어줬다. 만약 문재인 의원이 안철수 의원에게 힘을 실어줬다면 어떻게 됐을까. 문재인 의원도 훨씬 많은 박수를 받았을 것이다.

강원택 :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생각보다 잘 안 빠질 것이다. 주변의 스캔들 관리도 잘 되는 것 같고, DJ 이상 가는 충성스러운 지지자도 있다. 유권자들도 지방선거를 박근혜 정부에 대한 중간 평가로 심각하게 고려하지는 않을 것 같다. 다만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것에 대한 불만이 있다면 그게 표출될 것이다. 선거 결과에 따라서는 당 내 여러 잠재적 주자들이 제 목소리를 내면서 자기 존재감을 확인하려 할 것이다. 오히려 야당이 난감하다. 지방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야당은 변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철희 : 야당은 지금부터 2017년까지를 하나의 프로세스로 보고, 각각의 선거는 그 과정의 계기로 봐야 한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선거만 보고 가고 있는 것 같다. 다음 선거 때가 되면 또 허겁지겁한다. 큰 그림이 없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꼴, 그야말로 악순환이다.

강원택 : 그런 그림을 그릴 사람이 없는 것이다. DJ나 YS라고 하면 이번 선거, 다음 선거, 다 같이 놓고 갔을 것이다. 중간에 어떤 게 나오면 '양보하고 넘어가자', 그리고 어떤 부분은 '이것은 키워라' 했을 것이다. 어떤 선거가 진짜 목표라는 것을 확실히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야당은 당 차원에서 뭐가 안 된다. 장기적 측면에서 당의 방향이나 전략이 없다.

이철희 : 야당 내부에서 새로운 동력이 만들어지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안철수 의원이 야권 재편 과정에서 쓸 수 있는 유일한 동력이라고 봤는데, 지금은 소진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으니까, 지금부터라도 잘 살려야 한다.

강원택 : 좋은 표현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너무 심각하게 다 죽은 것처럼 말했지만, 아직 완전히 죽지는 않았다. 필요한 역할은 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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