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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 탓하는 대통령…정부는 왜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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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 탓하는 대통령…정부는 왜 있나

[편집국에서] 또 다른 90년대에 관한 기억

젊은 아버지는 새벽에 일 나가고 / 어머니도 돈 벌러 파출부 나가고 / 지하실 단칸방에 어린 우리 둘이서 / 아침 햇살 드는 높은 창문 아래 앉아 / 방문은 밖으로 자물쇠 잠겨있고 윗목에는 싸늘한 밥상과 요강이 / 엄마, 아빠가 돌아올 밤까지 우린 심심해도 할 게 없었네...

가사를 외우거나 따라 부르기는커녕, 듣는 것조차 진저리를 쳤던 노래가 정태춘의 '우리들의 죽음'이었다. 갓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에게 방송에 나올 리 없는 그 테이프를 손수 복사해 건넨 선배 뜻이야 모르지 않았으나, 대한민국에서 가난하게 산다는 것이 무얼 의미하는지를 굳이 그렇게 일깨워야 했나 싶었다. 어느 삐딱한 가수의 피해망상이 부추기는 사회 이간질이면 다행이련만, 차라리 진혼곡이라면 슬퍼하기만 하련만, 그의 노래는 1990년 3월 9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지하 단칸방에서 불에 타 죽은 다섯 살 배기, 세 살 배기 두 아이의 죽음을 사실 그대로 묘사해 내 영혼에 새겨 넣으려는 듯했다.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 드라마가 소환한 90년대의 아름다운 추억에 빠져있었다. 서태지와 H.O.T의 전성기를 내 20대가 겪은 대한민국의 모든 기록인 양 착각했다. '삐삐'라는 유물을 아이에게 자랑스레 설명하며 '네가 모르는 과거를 살아온 어른'인 양 까불었다. 그렇게 새카맣게 지워버렸던 90년대의 그늘진 기억을 생활고에 자살한 송파의 세 모녀가 끄집어냈다. 진저리쳤던 정태춘의 노래가 함께 떠올랐다. 국가로부터 최소한의 보살핌도 받지 못하고 죽은 두 아이와 세 모녀 사이에 24년의 세월은 한시도 흐르지 않았다.

페리호가 부안 앞바다에서 침몰한 게 1993년이다. 군사 독재의 터널을 빠져나와 '문민'을 표방한 정부에서 벌어진 일이다. 사고 원인은 과적. 승객과 화물을 너무 많이 실은 배가 2m 파도를 맞고 복원력을 잃어 뒤집혔다. 초동 대응에 실패해 292명이 사망했다. 사고대책본부는 실종자 집계조차 제대로 못하고 허둥댔다. "'대책본부' 간판을 내걸고는 있지만 어느 한 곳에서도 '책임지고 사건을 장악해 처리하겠다'는 태도를 찾아보기는 어렵다"(동아일보. 1993년 10월 13일자)고 기록돼 있다. 대통령은 "사고 원인을 철저히 규명해 응분의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사고 이튿날엔 현장을 방문해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최대한의 보상과 조속한 사태 수습을 약속했다.

언론은 일제히 "후진국형 참사"라고, "예고된 인재"라고 썼다. 하지만 그 언론들도 후진국형 초대형 오보를 냈다. 선장이 배를 버리고 살아남아 도망갔다는 '선장 생존설'을 앞다퉈 좇았다. 검찰과 경찰은 전국에 지명수배까지 내리며 난리를 쳤다. 그러나 선장이 침몰한 배 안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자 손바닥 뒤집듯 "(선장은) 원래부터 책임감이 강하고 성실한 사람"이라고 표변했다.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으면 천인공노할 파렴치범이었을 선장은, '다행히'(?) 죽음이 확인돼 하루아침에 국민적 영웅이 됐다.

사고 원인부터 사고 후 정부의 대응, 희생양 찾기까지 판박이인 세월호 침몰 사건이 21년 전의 서해 페리호 사건을 불러낸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자식 잃은 부모들 앞에서 최소한의 예의조차 저버린 행동들이 너무 버젓이 일어나는 지금이 실은 더 참혹하다.

안전행정부의 고위 관료는 사고 현장에서 기념사진을 찍겠다고 했다. 교육부 장관은 식음을 전폐한 실종자 가족들이 있는 자리에서 홀로 컵라면을 먹었다. 여당의 국회의원은 정부 대응에 비판적인 여론을 '종북'으로 몰았다. 급기야 차기 대선주자이자 서울시장 후보인 유력 정치인의 아들은 제 또래들의 희생 앞에 "미개한 국민 정서"를 들먹였다. 이들의 무의식적 가학성이 "주목받기 위해" 악성 글을 유포했다는 '일베' 회원의 일탈보다 나은 게 무엇인지 나로선 가려내기 힘들다.

돌아오지 않는 고도성장의 시대, '한강의 기적'을 추억하며 '세계화'를 추구한 90년대가 어떻게 내부로부터 붕괴해갔는지를 너무 쉽게 잊었다. 페리호 침몰,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를 거치며 실적주의, 한탕주의, 졸속행정을 지적했고, 언제 폭발할지 모를 성장의 그늘을 걱정했다. 도대체 이 나라에 정부가 존재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불에 그을린 주검으로 발견된 아이들 앞에서, 치솟는 전세값에 목숨을 버린 부모들 앞에서 우린 이 정도밖에 안되는지를 묻고 또 물었다.

페리호 사고 후 한 신문의 칼럼은 허망한 선진국 타령을 이렇게 질타했다. "선진국은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일 뿐 아니라 뒤진 자들의 삶과 그들의 인간적 가치가 바르게 지켜지는 나라이다. (…) 정부는 사고 수습책으로 책임자 문책과 규제 강화라는 전래의 방식을 답습하려 하고 있다. (…) 만약 우리사회의 소외된 주변부에서 인간적 가치와 존엄이 무참하게 훼손되고 그것이 우리사회의 공동체적 기반을 흔들어 놓는다면 우리 자신의 경제 형편이 조금 나아진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갖겠는가."(동아일보. 1993년 10월 16일자)

그럼에도 '소외된 주변부', '인간적 가치와 존엄'을 되돌아보지 않고 겉치레에 치중한 90년대는 IMF라는 초유의 사건으로 조금 나아진 것 같던 경제조차 모래성처럼 붕괴시킨 비극으로 끝났다. 더 많은 사람들이 생계 수단을 잃었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럼에도 소위 민주정부 10년과 두 번째 보수정부에 이르기까지 성장 일변도의 국가 기조는 어김없이 되살아나 오늘에 이른다. '제2의 한강의 기적'으로 경제를 살리고 통일로 대박을 치겠다는 정부에서도 먹고 살 길 없는 세 모녀는 자살을 했으며 차가운 바다 속에서 어린 학생들이 하나 둘 주검으로 떠오른다.

20년 전처럼 다시 묻는다. 정부를 책임지는 대통령은 무능한 정부에 대한 사죄에 앞서 먼저 탈출한 선장의 책임을 따져도 될 만큼 떳떳한가. 관료들과 언론들이 영혼 없는 조곡을 합창하는 사이, 우린 후대에 똑같이 반복될 비극적인 참사를 잉태해 가고 있는 건 아닌가. 도대체 이 나라에 정부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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