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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침몰', 어린 학생들이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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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침몰', 어린 학생들이 당했다

컨트롤 타워 붕괴…허상으로 드러난 '안전 대한민국'

'세월호' 참사는 재난 대응 시스템에 구멍 뚫린 최악의 '정부 실패' 사례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참사 발생으로부터 사흘 동안, 정부는 위기 대응의 컨트롤타워 기능을 상실한 채 부실한 초기 대응, 부처 간 책임 떠넘기기로 일관했다.

초동 대응의 실패는 무엇보다 뼈아프다. 해양경찰청 상황실로 침몰 신고가 정식으로 접수된 건 16일 오전 8시 58분. 그로부터 1시간이 지난 10시 경 해경, 해군, 소방방재청 등에서 출동한 헬기 16대, 선박 24대가 현장에 도착했다. 바다에 뛰어든 사람들을 구조하기에도 벅찬 규모로, 선체 내부의 구조작업에는 손을 써보지도 못했다. 일부 구조자들은 "배가 기울기 시작한 한참 후에야 해경 경비정이 왔다"고 했다.

이후 상황이 심각해진 12시 30분에 헬기 28대와 선박 55척이 출동했다. 헬기 31대와 선박 60척으로 규모가 불어난 건 오후 3시 경. 그러나 이미 세월호는 오전 10시 31분에 뒤집혀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뒤였다. 선박이 완전히 침몰한 후에야 구조 장비와 인력이 현장에 도착한 것이다. 이른바 '골든타임(사고 후 30분)'은커녕 재난 수습의 성패 분기점인 사고 후 3시간도 허비해버렸다. 그사이 '전원 구조', '승객 대부분 구조' 등의 어이없는 보도가 정부기관을 출처로 타전됐다.

재난의 대응, 복구 등에 관한 사항을 총괄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도 허둥댔다. 중대본이 가동되기 시작한 건 오전 9시 45분. 중대본은 안전행정부 장관이 중앙본부장을, 제2차관이 차장을 맡는다. 중앙본부장은 부처별 역할 분담을 지시하고 지원 방안을 관할한다.

그러나 중대본은 해경이 취합한 정보를 2차 전달하는 중계기구 역할만 했다. 그조차 사고 발생 20시간이 지나도록 탑승객 명단과 구조자, 실종자 숫자를 파악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혼선이 거듭되자 강병규 안전행정부장관은 "구체적인 발표는 해경 쪽에서 할 것"이라며 책임을 미루고 빠져나가기에 급급했다. 중대본의 혼선은 18일에도 계속됐다. 이날 오전 11시 경 잠수 요원들이 세월호 내부 진입에 성공했다고 발표했으나, 이내 이 소식은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다. 해경은 선체 진입이 아니라 공기 주입이라고 정정했다.

해양수산부도 중대본의 혼란과 맞물려 초기 활동에 미미했다. 실종자, 구조자 집계에서 안행부와 엇박자를 내 혼선을 키웠다. 해수부 소관인 피해자 지원 문제도 실종자 가족들이 박근혜 대통령 앞에서 "구조 현황 등에 대한 정보가 부실하다"며 대책을 요구할 정도로 원활하지 않았다. 해수부와 해경은 사고 원인과 관련한 '권장 항로' 문제로 다른 설명을 하기도 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도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해수부의의 '해양사고(선박) 위기관리 실무 매뉴얼'에 따르면, 위기 발생 시 지휘 체계는 대통령→중앙안전관리위원회(국무총리)→국가안보실(위기관리센터)→중앙사고수습본부(해수부)→수색구조본부(해양경찰청)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해수부가 안행부에 초기 지휘권을 넘겨 이렇다 할 활동을 하지 못하는 사이, 국가안보실도 정확한 상황 판단에 실패했다. 이로 인해 사고 초기부터 국가안보실로부터 상황을 수시로 보고받았다는 박 대통령이 사고 첫날인 16일 오후 중대본을 방문한 자리에서 "(사고자 집계에) 무려 200여 명이나 차이가 있었는데, 어떻게 그런 큰 차이가 날 수 있느냐"고 되묻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정부는 뒤늦게 18일 정홍원 국무총리가 전남 목포 서해지방해양경찰청에 상주하며 세월호 침몰 사고를 직접 챙기고 부처 간 조율을 맡기로 했으나, 구멍난 지휘 체계와 부처별 불협화음을 봉합하고 실종자 구조에 성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이처럼 지난 사흘 간 정부의 주먹구구식 대응이 사고 규모를 키운 것으로 드러나면서 박근혜 정부가 내건 '국민 안전'은 공허한 구호로 전락했다.

현 정부는 기존의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개명할 정도로 안전 우선을 정책 목표로 제시했다. 유정복 전 안행부 장관은 올해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이전 정권에서는 해마다 대형사고가 발생했지만 지난해에는 50년 만에 그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그러나 유 전 장관의 발언 사흘 뒤 마우나리조트 붕괴 사건이 발생해 학생 10여 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사고 수습을 담당하던 유 전 장관은 인천시장 출마 차 자리에서 물러나 정부의 안전불감증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 달 간의 안행부 장관 공백기를 거쳐 지난 2일 취임한 강병규 장관은 취임사에서 "동일한 유형의 안전사고가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한편, 취임 후 첫 일정을 재난안전상황실 방문으로 소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세월호 참사를 통해 강 장관 역시 재난 대응에 낙제점을 받았다는 평가다.

국토해양부에서 분리해 해상 안전의 주무부처로 독립한 해수부 역시 안전 대책에서 허점을 보였다. 지난해 10월 경북 포항 앞바다에서 파나마화물선이 침몰해 9명이 사망하고 2명이 실종됐고, 올해 4월 초에는 전남 여수 공해상에서 몽골선적 화물선이 침몰해 2명이 사망하고 11명이 실종되기도 했다. 올해 초 여수와 부산에선 잇달아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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