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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1등이 평생 대접받는 한국, 희망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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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1등이 평생 대접받는 한국, 희망이 없어!

물리학자 김대식, 법학자 김두식 형제의 저서 <공부논쟁> 기자 간담회

형제가 함께 책을 썼다. 여기까지는 별로 특별할 게 없다. 하지만 그 형제가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김대식 교수와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김두식 교수라면 사정이 조금 달라진다. 한국사회에서 소위 '최고 엘리트'라고 일컬을 수 있는 형제가 쓴, 심지어 책 제목도 <공부논쟁>(창비 펴냄)이다. 공부 잘 하는 법이라도 가르쳐 주려나, 라는 기대가 일 법도 하다. 하지만 프롤로그부터 그 기대는 산산조각난다.

▲ <공부 논쟁>(김대식·김두식 지음, 창비 펴냄). ⓒ창비
"항상 시한폭탄" 같았고 "전략전술도 동지도 없었"으며 "누구하고도 의논하지 않고 아무 데나 글을 썼"던 형 김대식 교수에 대해, 김두식 교수는 "그런 좌충우돌로는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고 믿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김대식 교수가 "졸지에 '꼴통보수'의 상징"이 되어버렸던 글(<조선일보>에 실린 칼럼 '주한 미군 사령관에게')로 소문의 중심에 선 이후, 김두식 교수는 거의 매주 형과 함께 등산을 하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지금껏 몰랐던 형의 다른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제가 형을 지켜온 게 아니라 형이 저를 지켜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 덕분에 매번 저의 주장을 다른 각도로 점검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공부논쟁> 9쪽)

이번 책 <공부논쟁>에서 두 사람은 "공부, 엘리트, 탁월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작업에 집중했다. '본인들이 최고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입장에서 배부른 소리 아니냐?'는 반론은 여기서 그다지 소용 없을 것 같다. 오히려 그 코스를 경험했기 때문에, 그리고 지금은 동료와 후배와 제자들을 보면서 그 폐해를 좀 더 객관적으로 취합할 수 있기 때문에 쓸 수 있던 글이기 때문이다.

4월 15일 점심, 광화문의 한 한식집에서 김대식·김두식 형제의 기자 간담회가 열렸다. 김두식 교수는 먼저 김대식 교수의 문제의식을 요약정리하면서, '한국의 노벨상'에 관해 도발적인 시각을 제기했다. "한국인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노벨상을 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도인이 한국에서 공부해 박사 학위를 딴 다음, 한국의 인프라를 활용한 연구로 노벨상을 탄다면 그게 진짜 한국의 노벨상이다."

▲ <공부 논쟁>의 저자 김대식(왼쪽)과 김두식. ⓒ창비 제공

이는 곧장 '한국' 대학교는 '이류'라는 패배감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다. "한국의 명문대를 졸업하고 미국의 명문대로 유학 가서 그곳에서 박사 학위를 딴 다음 한국에 돌아와 좋은 대학 교수가 된다는 코스"를 밟은 뒤, 그 교수들이 "제일 똑똑한 애들은 유학을 가고 이류밖에 안 되는 애들과 함께 연구하려니 미국에서만큼 좋은 퍼포먼스를 못 낸다는 불평"만 늘어놓는 나라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김대식 교수는 그 말을 이어받아, '한국에 집을 지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전 세계적으로 학문의 전통을 놓고 봤을 때, 유럽과 미국은 사실 같은 전통이라고 본다면 그 외에 유일하게 학문적으로 자신들만의 축을 세운 나라가 일본이라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 일본 사람들은 유학을 포기하고 국내에서 연구했다. 그렇게 동종교배하며 몇 십 년이 흐른 뒤 일본만의 독한 DNA가 생긴 거다. 그 기초 위에서 노벨상을 받은 일본인이 15명인데, 그중 13명이 일본에서, 그것도 대부분 지방 국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딴 사람들이다. 우리는 흔히, 일본도 노벨상을 탔으니 우리도 조금만 열심히 하면 일본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기본 구조가 다르다. 솔직히 지금 상황에선, 한국은 어렵다."

그는 "파라오의 피라미드를 짓는 노예가 돌멩이를 하나 더 얹었다고, 그걸 노예의 피라미드라고 부를 수 없지 않는가"라면서, 해외 명문대 유학에만 집중하면서 외국에서 연구하는 주제를 따라잡느라 바쁜 상황에서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아무도, 자기도, 다른 사람도 (한국에서 새로운 게 나올 수 있다는) 기대를 안 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게 내 문제의식이었다." 그러면서 교수를 시킬 게 아니면 박사과정 학생을 왜 뽑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해외 유학파가 아닌 국내 출신 박사를 더 많이 교수로 임용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해외의 '아웃소싱'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김대식 교수. ⓒ창비 제공

이는 곧 '이공계 위기'의 허구론으로 이어졌다. 김대식 교수는 "공부를 제일 잘하는 학생들이 이공계에 오는 게 아니라 의대로 다 빠진다"는 호들갑이 교수들의 게으름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했다.

"나를 포함해서 서울대 교수들이 다 오랫동안 편하게 놀았다는 생각이 든다. (웃음) 서울대 교수의 사회적 지위는 연구를 잘 해서 나온 게 아니라,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데리고 있기 때문에 생겼다. 그러다보니 성적 좋은 학생들이 의대로 빠진다는 데에서 위기감을 느끼고 이슈화하는 거다. 사실 아무것도 아닌데."

김두식 교수는 영재 교육의 허구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소위 영재로 일컬어지는 아이들의 아버지가 교수인 경우가 "이상하게 많다"면서, 사실 어떻게 보면 "교육 환경이 중요한 것이고, 특별한 재능이라 부를 수 있는 건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더 맞다고 했다. 한국의 공부 현실에선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서른 살이 넘어 번아웃(burnout)된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 1등한 것으로 평생 먹고 사는 지위가 확보되는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즉 공부하는 기회를 10대 중반 성적으로 결정짓는 게 아니라 20대 중반까지로 늦춰주지 않는다면, 100세 수명시대에 "15살에 인생이 결정된다는 건 논리적으로도, 사회 발전에 있어서도 옳지 않다"라고 했다.

이는 대학 입시 제도에 대한 문제 제기로도 연결된다. '평준화 세대'였던 두 형제는, 오히려 그처럼 '점수' 하나만으로 실력을 평가받았던 시기가, 단순 암기 주입식 교육이라고 비판받았던 그 시기가 오히려 여러 명에게 기회를 더 많이 준 시기가 아니었나 하고 반문한다. "입시 제도가 너무 복잡해지면서, 더 좋은 시스템을 만들려는 노력이 더 많이 가진 자들에게 유리한 시스템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완전 평준화 제도와 지금의 제도를 근본적으로 검토할 시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김두식) 그들은 창의성을 '가르쳐야' 하고, 고등학생이 논문을 쓰거나 혹은 자기소개서를 위해 대학 실험실에서 같이 실험하겠다고 청하는 지금의 상황이 '번아웃'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지적했다.

▲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김두식 교수. ⓒ창비 제공

김두식 교수는 "어쨌든 이 책은 '누워서 침 뱉기'일 수밖에 없다"면서, <공부논쟁>에서 비판하는 내용 대부분을 형제인 두 저자 역시 공유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우리도 똑같으니까 남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라고 체념하기보단, 읽는 사람도 좀 웃으면서 형제의 날카로운 대립에서 빚어지는 파열음을 즐기며 함께 토론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서로 너무 달랐던 두 사람이 책을 준비하며 나눈 대화를 통해 서로의 장점을 발견하고 서로의 관점에 귀 기울였던 것처럼, <공부 논쟁> 독자들 역시 이 날것의 논쟁을 통해 '알면서도 쉬쉬 했던' 한국식 공부의 문제점들을 논의하기 시작하는 발판이 되는 것이 이 책의 최종 목표라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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