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6일, 식사하면서 일본 NHK 뉴스를 보다가 그만 수저를 놓고 말았다. 뉴스 도중 나온 속보 때문이었다. 과거 북한에 의해 납치된 일본인 요코타 메구미(橫田惠) 씨의 노부모와 그녀가 북한에서 낳은 딸 김은경(26)씨가 몽골에서 만났다는 내용이었다. 북핵 문제, 광명성 3호 발사 등으로 북·일 관계가 몇 년째 정체상황에서 벗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기에 더욱 놀라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떤 배경이 있었던 걸까?
필자의 머릿속에는 ‘작년 5월 이지마 이사오(飯島勳) 내각관방참여가 극비리에 방북하려 했던 것과 관련이 있는 걸까?’, ‘조선총련 본부 건물이 매각될 위기에 처하자, 이를 막기 위한 북한과 이 상황을 납치문제 진전에 이용하려 한 일본 사이에 이뤄진 거래인가?’ 등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이후 북일 적십자 회담, 북일 정부 간 협상 재개 등으로 일이 커지자 언론 및 전문가들도 이에 대한 해석을 내놓기에 바빴다. 그 중에는 ‘북한의 경제난 타개 의도와 한국의 조바심을 일으키려는 일본 외교의 속셈’이 배경일 것이라는 해석이 주류를 이뤘다.
한편, 이산가족 상봉이 언제 있기는 했었냐는 듯 지난달 말부터 한반도에는 또다시 군사적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북한이 동해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유엔 안보리는 이를 비난하는 언론 성명을 채택했다. 이에 다시 북한이 서해에서 포탄 사격 훈련을 실시하고 우리 군이 대응 사격을 하면서 4년 전 연평도 포격 사건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북한은 한술 더 떠 미국의 도발이 계속된다면 새로운 형태의 핵실험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야말로 동북아 정세가 한순간에 얼어붙어 버린 것이다. 이에 대해 언론 및 전문가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에 대한 불만”, “쌍용훈련에 대한 맞대응 성격”, “유엔 안보리의 규탄 성명에 대한 항의” 등으로 그 의도를 해석했다.
중국의 부상 속도 못 따라가는 우리의 의식 변화
이와 같은 언론 및 전문가들의 해석에 필자도 상당 부분 동의하지만, 한편으론 좀 아쉽다는 느낌도 드는 것이 사실이다. 왜 그럴까?
중국이 부상하고 다방면에서 그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우리는 항상 중국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중국의 부상 속도에 비해 우리의 인식 변화는 그렇게 민첩한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북·일 관계 진전이나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에 대한 해석을 접하고 느꼈던 ‘아쉬움’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북한 경제의 중국 의존도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상점에서 물건을 거래할 때 북한 화폐보다 중국 인민폐 사용을 더 선호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실제로 코트라(KOTRA)는 ‘2012 북한의 대외무역동향’ 보고서에서 북한의 대중 무역 의존도가 88.3%에 이르렀다고 분석했는데, 이쯤 되면 사실상 중국 경제권에 편입되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우리 경제의 대미(對美) 의존도를 빗대어 “미국이 기침을 하면, 한국은 감기몸살에 걸린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제 북한 경제는 “중국이 기침을 하면 폐렴에 걸릴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 북한에서 강조하는 최고의 가치가 ‘자주’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북한 스스로도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있을 텐데, 최근 일본과의 접촉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북한은 납치 문제가 일본을 유인할 수 있는 아주 효과적인 카드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일본의 대북 접근에도 중국 요인이 상당히 작용했을 것이다. 이번 핵안보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유럽을 방문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프랑스에서의 ‘비즈니스 외교’에 이어 독일에서는 ‘과거사 외교’를 펼쳤다. 독일의 과거사 청산 노력을 치켜세우면서 똑같은 전범국인 일본을 비판한 것이다. 심지어는 “일본 군국주의는 난징시를 침략해 30여만 명의 중국 군·민을 학살하는 전대미문의 참상을 저질렀다”며 국가 최고지도자로서는 이례적으로 국제무대에서 특정 국가(일본)를 강력 비판했고, 이에 일본은 “극히 유감”을 표명했다. 이 정도면 중·일 관계는 이제 갈 데까지 간 모양새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으로서는 중국 견제 차원에서라도 북한에 접근할 필요를 느꼈을 것이다. 북한이 중국의 영향력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중국의 국제적 역할이나 위상은 그만큼 감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국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하는 북한
그렇다면, 최근 북한의 군사적 행동은 중국과 관련하여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중국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안정’이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다는 말이 있다. 어떤 판단을 하는 데 ‘안정’이라는 가치를 대단히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유구한 역사 속에서 수많은 정변을 경험한 중국인에게는 ‘안정’이야말로 최고의 가치가 될 수 있다는 말은 꽤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특히 중국의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오늘날 더더욱 주변 환경의 안정은 필수적이다.
실제로 2011년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이 발표한 <중국의 평화발전>(中国的和平发展)백서에서는 중국의 대외공작(외교)과 관련하여 중요한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국가 발전을 위해서 평화와 안정적인 국제환경을 만드는 것이 대외공작의 중심 임무”라는 부분이다. 즉, 중국은 아직 더 경제 성장(발전)에 집중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안정적인 대외환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에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대단히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으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대외공작의 중심 임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한반도의 불안이 미국을 아시아로 끌어들이는 동인이 된다는 점에서 더더욱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하면, 북한의 긴장 조성은 중국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 미국의 대북 압박을 견제하라는 독촉의 의미가 담겨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례로 한미가 22년 만에 최대 규모로 실시하고 있는 쌍용훈련에 대해 북한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을 때, 중국은 ‘신형 군사관계’를 외치며 미국의 척 헤이글 국방부 장관을 그들의 첫 항공모함인 랴오닝호에 탑승시키는 세러모니를 펼쳤다. 당연히 북한으로서는 이런 중국의 행동이 달갑지 않을 것이다. 최근 북한의 군사적 긴장 조성이 중국으로 하여금 한반도 문제와 관련하여 더 적극적으로 대미교섭에 나서라는 외교적 제스처일 수 있는 이유다.
이와 같이 최근 동북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사건들의 배경에 중국 요인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이를 간과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너무 커버린 중국과 이에 대한 주변국들의 반응, 급박히 돌아가고 있는 동북아 정세의 퍼즐을 맞추는 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포인트가 아닐까?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