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지난해부터 논의되었던 '경기도 생활임금 조례안'을 반대하고 있다. 경기도의회는 지난해 12월 경기도에서 생활임금을 시행하기 위한 권고 수준의 조례를 통과시켰는데, 김 지사가 이 조례안에 대해서 재의를 요구했고, 결국 지난 2월 임시회에서 부결되었다.
김 지사는 생활임금 조례안을 반대하면서, "최저임금법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에서 소속 직원에 대한 임금을 책정하여 지급할 의무가 있을 뿐 이외의 추가적인 법적 의무를 부여하는 상위 법령의 규정은 없다"고 주장했다. 얼핏 듣기에 그럴싸해 보이지만 다소 아리송하다.
차근차근 따져보자. 최저임금법 제6조 1항은 "사용자는 최저임금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에게 최저임금액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최저임금법에 위반"된다는 표현은 최저임금법에 의해 결정된 최저임금 이하의 금액을 임금으로 지급한다는 의미이다. "최저임금법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에서 소속 직원에 대한 임금을 책정하여 지급할 의무"는 소속 직원들에게 최저임금법이 결정한 최저임금 이상의 금액을 임금으로 책정하여 지급한다는 의미이다.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생활임금은 '공공부문이 소속 노동자들에게 적정한 임금을 보장해야 하지 않는가?'하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이 때문에 최저임금법 운운하고 있는 김 지사의 생활임금 반대 논리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김 지사는 법정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위법하거나, 법적 근거가 없다고 말하고 싶은 걸까? 김 지사의 레토릭은 매우 교묘하게, 사용자가 최저임금법에 따라 소속 노동자에게 최저임금보다 더 높은 수준의 임금을 보장하는 것이 반드시 준수해야 할 법률상 의무임을 감추고 있으며, 법정 최저임금을 최고임금으로 이해하고 있는 김 지사의 인식을 확인시켜줄 뿐이다. 도청의 인식이 이러하면 경기도의 어느 민간업체가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겠는가?
참여연대는 지난주 김 지사에게 생활임금 조례안에 왜 반대했는지 질의서를 보냈다. 김 지사의 반대 논리는 대여섯 개쯤 되는데, 답변이 오면 공개할 예정이다.
1994년 미국 최초로 볼티모어에서 생활임금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내용은 단순하다. 이 조례에 따라 시와 각종 계약을 맺는 민간 업체는 해당 노동자에게 6.10달러를 지급해야 했다. 이후 미국 사회는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을 확대해 갔고, 공공부문이 지향해야 할 노동자에 대한 책임을 강화해나갔다. 2014년의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올해 예산이 17조 원인 경기도가 소속 기관과 직·간접적인 고용 관계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적정한 임금을 보장하고, 최저임금 150%를 기준으로 생활임금을 설정했을 때, 약 3억 원 정도가 필요하다는 정책 대안을 반대하고 있다. 1997년 미국은 이미 직접 고용 관계를 넘어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보조금을 받거나 세금에 의해 재정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민간 업체에 소속 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할 임금의 최저 기준으로 연방 최저임금보다 30% 이상 많은 금액을 제시했다. 이것이 지방자치단체가 노동시장에서 모범적인 사용자로서 그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1994년 이래 생활임금 조례는 미국 전역에서 시행 중이다. 그리고 현재 미국의 여러 주에서 최저임금을 인상하기 위한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시애틀 시장이 제시하고 있는 최저임금은 시급 15달러다. 오바마 대통령이 최저임금을 인상하는데 사활을 걸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현재 미국의 연방 최저임금은 시급 7.25달러이고, 오바마 대통령의 최저임금 인상안은 시급 10.10달러이다. 공화당의 반대로 상황이 어려워지자, 연방정부와 계약한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행정명령으로 인상했다. 중앙정부는 연방 수준의 최저임금을 올리고, 지방자치단체는 주 단위의 최저임금을, 혹은 공공조달과 연계한 생활임금이란 제도로 노동자의 임금을 현실화하고 있다.
생활임금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주요 선거공약으로 대두하고 있다. 노동자에게 더 많은 임금을 보장하겠다는 후보가 선거 전면에 나서니 고무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저임금 노동이란 문제가 정치권에서도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는 생각도 든다. 생활임금 제도를 통해 근로 빈곤, 저임금 노동을 해결하기 위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확인하고, 그 역할을 강조하고 싶다. 그리고 납세자이자 유권자인 우리에게도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공공시설을 관리하고,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들이 보장받는 노동의 대가가 얼마인지 한 번 확인하는 과정은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낸 세금이 그들의 생계를 보장하고 있다. 그런데 그 보장 수준을 보장하지 않았을 때 법에서 정한 징역을 겨우 면할 수 있는 기준 바로 그 위라면 잠깐 멈춰 서서 무언가 고민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이 고민이 사회적 연대의 시작이다. 그래서 생활임금은 공공성의 확대임과 동시에 납세자와 노동자 간의 '의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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