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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우리가 '이성애적' 사랑 뜻 바꾸자한 이유는…

[기고] 쟁취하기 어렵지만 반드시 이뤄낼, 같은 ‘사랑’

'사랑.' 누구에게나 가슴 설레는 단어다. 그 상대가 누구든 말이다. 혹자는 부모자식을, 혹자는 (이성의) 연인을, 혹자는 또다른 누구를 떠올릴 수 있는 단어다. 그런 점에서 국립국어원이 2012년 "이성애 중심적인 언어가 성소수자 차별을 낳는다"며 사랑의 정의를 바꾸자는 제안을 받아들여 사랑을 비롯해 연애·애정·연인·애인 등 다섯 단어의 뜻을 성 중립적으로 바꾸었다는 건 매우 환영할 일이었다. 

하지만 기독교단체 등에서 "동성애를 조장한다"며 재수정을 요구하자, 국립국어원은 결국 지난 1월 사랑의 뜻을 2012년 개정 이전으로 되돌렸다. 이에 따라 '사랑'은 "어떤 상대의 매력에 끌려 열렬히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에서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으로 사전적 정의가 '다시' 바뀌었다. 

언론 보도를 통해 뒤늦게 '들통'날 만큼 매우 조용히 진행된 이 '백러시'는 여러가지 석연찮은 느낌이 든다. 2012년 당시 국립국어원에 '사랑' 단어 뜻 개정을 청구했던 경희대 학생이 최근 사태를 접하면서 든 생각을 <프레시안>에 기고했다. 편집자

2012년 겨울, 사랑의 정의에서 ‘남녀’, ‘이성’ 등의 성(性)을 나타내는 표현이 사라졌다. 보다 성중립적인 ‘사랑’, ‘연애’, ‘연인’ 등 5개 단어는 단순한 단어들이 아니었다. 언어에서조차 소외되고 있던 누군가를 우리 사회가 포괄하는 한 걸음이었고, 앞으로의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작은 씨앗이었다.
  
시민교육 수업에서 조별활동을 하며 우리 조는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 성소수자들에 대한 몇 가지 자료들은 우리 조의 현장활동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할지 가닥을 잡아주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에 대한 ‘이반 검열’과 따돌림에 대한 사례(동성애자를 고발하게끔 하는 설문지, 상담에서 커밍아웃을 한 청소년의 가족에게 아웃팅을 하고 학내 따돌림을 주도한 사례 등)를 모은 자료집, 트랜스젠더 여성이 성폭력을 당한 사건에서 강간죄의 객체는 ‘부녀자’이기 때문에 트랜스젠더에 대해서는 강간죄를 인정할 수 없다며 한 단계 낮은 죄가 부여된 사례 등 성소수자들은 누구나 보호받아야 하는 학교, 병원, 법원 등의 장소에서조차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차별은 언어에서도 기인했다. 당연하다고 여기고 사용하던 언어에 그 사회의 가치가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언어에 대한 캠페인으로 조별 활동의 가닥을 잡았다. 5명이 각자 파트를 나눠 기사, 판례 등을 수집해 수업에서 발표하였고 인식과 제도적 변화를 만들기 위한 활동을 고민했다.
  
물론 이런 생각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 의해 제기되어 왔었다. 실제 우리와 같은 시기에 활동한 ‘국제앰네스티한국지부 대학생네트워크(이하 앰대)’는 사랑 뿐 아니라 가족에 대한 보다 폭넓은 정의 개정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었다. 우리 조는 오프라인에서는 서명 참가를 집중하기 위해 앰대의 서명용지를 받아서 연대활동을 하는 한편, 우리의 목소리를 직접 전하기 위한 온라인 서명을 함께 기획했다. 학교 내 뿐 아니라 시청과 광화문 등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며 피켓 하나와 서명판을 들고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성소수자를 비하하는 사람들(“동성애 반대하면 서명 안 해도 되죠?” “야 너같은 레즈들 서명하래” 등 희화화 하는 발언 등)도 만났다. 반대로 언어 안에 녹아있는 차별을 다시 생각했다며 우리를 지지해주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다. 온라인 서명은 시작한지 며칠 되지 않아 세 자리 수를 넘어갔다.
  
기말고사를 앞두고 비전보고서(기말과제)를 작성하기 위해 500명 남짓한 온라인 서명과 자료들을 모아 국민신문고에 단어 정의 개정을 요구하는 청원을 제출하는 것으로 우리의 시민교육 활동은 일단락되었다. 부득이하게 일찍 정리해야 했지만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이미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지표들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지표는 2012년 11월 국립국어원이 사랑의 정의를 바꾸며 단순한 지표를 넘는 성과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사랑을 바꿔낸 것은 시민교육을 수강한 우리 조 말고도 앞서서 이를 고민한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2012년의 단어 개정이 더욱 뜻 깊은 성과였으며 드디어 우리 사회가 보다 평등한 곳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생각은 2014년 3월 31일 언론을 통해 뒤늦게 알려진 대로, 다시 단어 정의를 되돌린 국립국어원에 의해 부정당했다. 2012년 단어 정의를 개정했을 때는 성소수자들에 대한 언어적 차별에 대한 제기를 받아들였다던 국립국어원은 이번엔 ‘전형적 사랑’이라는 개념을 들먹이며 재개정의 이유를 말한다. 그리고 사랑에 대한 정의는 6개가 있으며 그 중 하나에 ‘남녀’를 표기한 것 뿐 이라는 식으로 이번 재개정의 의미를 축소하려 하고 있다.
  
이번 재개정을 바라보는 국립국어원의 철학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번 사안은 정치적이고 철학적이며 생각보다 명료한 다음 쟁점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랑의 정의에 굳이 남녀를 표기해야 하는가?”
  
여기에서 중요한 부분은 ‘굳이’라는 부분이다. 반드시 남녀, 이성 등 이성애적 표현이 들어가야만 사랑의 정의가 가능한가? 시민교육 수업에서 우리 조의 활동, 앰대의 활동, 그리고 이에 대해 힘을 모았던 사회 각계각층의 활동들은 이 물음의 답이 ‘아니다’라고 대답하고 있다. 그리고 국립국어원 그 스스로도 2012년에 단어 정의를 개정함으로써 가치판단을 내렸다. 이성애적 표현이 없어도 사랑을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엄연히 존재하는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표현을 보다 포괄적인 의미로 바꾸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표기하자는 선언이었다.

언어엔 당연히 그 사회의 가치가 반영된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는 ‘구성되는’ 것이며 계속해서 뜻이 바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립국어원은 이 점만을 강조하며 이번 재개정 역시 민원과 항의를 반영하여 이루어진 것이며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일면 맞는 이야기인가 싶지만 결국엔 책임회피일 뿐인 이런 대답만이 지금 국립국어원이 견지하는 입장의 전부이다. 지금 국립국어원은 “왜 2012년엔 사랑의 정의를 개정했으며 왜 1년 만에 이를 뒤집었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이런저런 다른 말로 주제를 돌리고자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국립국어원의 안일한 태도에 맞선 움직임은 벌써 시작되었다. 다시 ‘사랑’의 정의를 평등하게 만들기 위한 구글 서명은 1주일도 안 되는 기간 동안 1000명이 넘는 참가를 기록했다. 4월 2일엔 국립국어원 앞 피켓팅을 진행했고, 정기적으로 만들어 갈 예정이다. 동성애자인권연대, 무지개행동 등 성소수자단체를 비롯한 인권단체들도 이번 문제에 대해 청원운동을 벌여 국내·외가 함께 대응해야 하는 일로 확대할 준비를 하고 있다. 또한 더 많은 시민들이 국립국어원의 ‘사랑’이 어떻게 변해갈 지 관심으로 지켜보고 참여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활동을 기획 중이다.

다시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참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 글을 읽은 여러분도 한 번 고민해보시길 바란다. 다름을 틀림으로 배척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벽을 쌓는다. 언젠가 그 배제와 차별은 나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자는 것이 그렇게 잘못된 것인가. 결국 사랑은 사랑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쟁취하기 어렵더라도 언젠가는 꼭 이뤄내고 싶은, 그런 같은 ‘사랑’을 함께 만들어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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