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피해 문제를 둘러싸고 몇 가지 중요한 논쟁거리가 있다. 첫째, 책임 소재 문제로 전적으로 제조회사가 책임져야 한다는 의견과 화학물질안전관리를 맡은 정부의 책임도 크다는 의견이다. 둘째,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건강 피해를 환경성 질환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다. 셋째, 정부에서 피해자를 지원한다면 어느 범위까지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환경부는 애초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고 했다. 다른 부처가 이미 다루고 있는 문제를 자신들이 뒤치다꺼리하기 싫다며 손사래를 쳤다. 자신들에게 책임이 향하는 게 부담스러워 그랬는지 모른다. 화학물질 안전관리 전반은 환경부의 몫이지만 제품 인허가와 안전관리는 산업통상부(당시 지식경제부)에 있고, 심지어 KC 마크를 받은 제품도 있었다. 환경부는 피해 대책 요구에 이를 지원할 근거가 없다고도 했다.
피해자 모임과 환경단체가 '화학물질 노출에 의한 환경성 질환'이니 환경보건법을 적용하여 피해 대책을 세우라고 요구할 때 환경부는 '가습기살균제 문제는 제품 하자에 따른 소비자 개개인의 문제이지 환경문제가 아니다'라며 환경성 질환이 아니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놀라웠던 점은 주무부서인 환경부 환경보건정책과의 당시 책임자는 필자가 환경보건법의 환경성 질환 관련 조항을 제시하며 피해 대책을 요구하자 그런 조항이 있느냐고 필자에게 반문했다. 그러면서 환경보건법은 환경성 질환 피해를 해결하기 위한 법이 아니고 그런 문제를 조사하기 위한 근거 법령이라고 주장했다. 어이가 없었지만 그 주장은 환경부의 공식 입장으로 다른 환경부 관리들에 의해 반복되었다.
국회의원들도 국정감사장에서 환경부장관에게 이 문제를 환경성 질환으로 풀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환경부장관은 마지못해 환경보건위원회에 안건으로 올리겠다고 답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환경보건위원회는 가습기살균제 문제는 환경성 질환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참석한 전문가 다수는 대기나 토양 등의 물리적 일반환경이 오염되어 발생하는 질환만이 환경성 질환이라고 했다. 제조과정의 공장에서 인근 환경을 오염시켜 주민들에게 발생하는 건강피해 문제만 환경성 질환이고 제품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제품의 하자이지 환경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 문제는 제품 인허가를 관장하는 산업부가 주관하는 제조물책임법에 해당하지, 환경보건법에 적용되는 게 아니라는 환경부의 의견이 반영된 결과였다.
그럴듯한 논리로 들리는가? 그렇다면 자동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으로 인한 대기오염과 그로 인한 천식과 폐암과 같은 질환은 어떨까? 건축물의 천장 텍스나 지붕 슬레이트에 들어있는 석면이 비산되어 발생하는 석면폐나 중피종암 등의 석면 질환은 어떤가? 이들도 모두 제품의 하자인가? 그렇게 본다면 왜 석면 문제를 환경부가 총괄하고 있는가? 자동차의 대기오염 문제는 자동차 생산 인허가를 담당하는 산업경제 관련 부서가 하면 될 일이다. 문구류와 어린이용 제품에 환경호르몬 물질과 중금속이 다량 함유된 문제에 왜 환경부가 나서는가? 환경보건법은 만들어진 이후 여러 가지 환경조사의 근거로만 이용됐을 뿐 실제 환경 피해 시민들을 위해 작동된 적은 거의 없었다.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환경부
정부 부처 간 책임 떠넘기기가 계속되자, 아이와 엄마를 잃은 유족과 산소호흡기를 착용한 어린이와 산모 등 피해자들이 환경단체 회원들과 함께 거리로 나섰다. 국회는 여야 모두가 반대 없는 결의안을 통과시키며 서둘러 피해 지원을 하라고 의견을 모았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와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모두 3개의 관련 법안이 제출되어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 제정을 추진했다. 환경부는 할 수 없이 구제법 제정에 협조한다는 입장을 세우고 세부 지원방침 마련에 나섰다.
이때 기획재정부가 끼어들었다. 구제법 제정을 전제로 마련한 지원 예산을 트집 잡으며 구제법을 만들지 말라고 했다. 국가 예산을 가습기살균제와 같은 개별 제품 피해 지원을 위해 사용할 수 없고, 이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특별법을 만들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기재부의 입장은 국회에 보낸 문서에 극명하게 나타났다. '가습기살균제 문제의 시시비비는 법원이 가릴 문제'라는 것으로 국가기관인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 결과도 모른 체했다. 기재부의 입장은 피해 대책을 외면한 채 재판에만 매달리는 가습기살균제 제조업자의 입장과 다르지 않았다. 예산권을 쥔 기재부의 횡포에 여당인 새누리당도 휘둘렸다. 구제법 제정이 중단되었다. 기재부는 환경부가 이미 아니라고 입장을 정리한 바 있는 '환경성 질환' 카드를 사용하라고 환경부를 을렀다. 지원은 하되 구상권을 행사해 되찾아와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환경부는 잘못을 인정하거나 사과 없이 종전 입장을 갑자기 180도 바꾸어 '가습기살균제 피해는 환경성 질환'이라고 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원인과 피해는 달라진 게 없다. 정부의 논리와 입장이 완전히 달라졌을 뿐이다. 환경부는 전문가들이 참가하고 있는 환경보건위원회를 정부의 입장을 언제나 지원하는 거수기로 취급했다.
이번에도 그랬다. 4월 2일 오후에 열린 환경보건위원회 회의에서 정부의 피해 지원 범위가 논의되었다. 조사위원회의 판정 중에서 1등급인 '가능성 확실'과 2등급인 '가능성 높음'만을 지원해야 한다는 안과 3등급인 '가능성 낮음'도 포함하는 안 두 가지가 제시되었다. 정부지원금은 구상권을 통해 제조사로부터 돌려받아야 한다는 기재부의 조건이 우선시 되었고, '가능성 낮음'의 3등급은 구상권 행사로 환수가 어려울 것이라는 법률적 판단이 제시되었다. '가습기살균제 성분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현재 피해자들의 상태는 어떠한가'라는 환경성 질환 문제는 제대로 검토되지 않았다.
정부의 구상권 행사는 법률과 행정전문가들이 모여 풀어야 할 문제이지 환경보건전문가들이 모인 환경보건위원회에서 다룰 문제가 아니다. 환경보건위원회는 '가능성 낮음' 판정 사례의 피해 질환이 가습기살균제 사용과 어느 정도의 관련이 있는가, '가능성 없음' 판정을 받은 사례는 정말 가습기살균제와 무관한가, 요양급여가 필요한 건 아닌가, 질환을 안고 살아야 하는 경우는 어떻게 국가가 보살필 수 있는가 등을 검토해야 하는 기구가 아닌가? 그런데 환경부는 '환경성 질환' 문제를 다루는 기관이라기보다 기재부에 좌지우지되어 '구상권 행사'에 매달리는 기재부 부속기구처럼 사고하고 행동했다. 이러한 환경부의 태도는 담보 조건을 따지는 대부업자나 원금 회수를 중요시하는 은행 대출담당 부서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환경보건위원회는 이번에도 환경보건과 환경성 질환 문제 해결을 위한 전문기구라기보다는 기재부와 환경부의 관료적 입장을 뒷받침하는 통과의례라는 비난을 자초했다.
구상권에만 매달리는 환경부, 담보 조건 따지는 대부업자?
정부에 묻고 싶다. 기재부와 산업부, 그리고 총리실 공무원들이 들어줬으면 한다. 지난 3년간 거리에서, 국회공청회장에서, 묻고 또 물었던 질문이다.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단순한 제품 하자에 의한 소비자와 제조사 간 분쟁 사건인가? 연간 80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사용하다 신고된 피해만 사망 144명, 환자가 300명이 넘는 사건이 언제 또 있었나? 엄마 뱃속의 태아부터, 영유아, 어린이, 청소년, 산모, 70~8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피해자가 그야말로 전국의 남녀노소에 이르는 문제를 국가가 해결하지 않으면 국가는 누구를 위해 있는 것인가? 수백 명을 죽고 다치게 한 '살인 제품'을 만들고 팔아먹은 '살인 기업'을 왜 그냥 두는가?
그리고 또 묻는다. 환경부의 어처구니없는 조치를 보고 난 뒤에 드는 질문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해결하자는 여야 국회의원들의 결의는 어디 갔는가? 구제법을 제정해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용의는 없는 것인가? 환경부는 가습기살균제 문제를 환경성 질환으로 생각하긴 하는 것인가? 국회가 확보한 예산으로 환경성 질환 피해자를 지원하면서 한 사람이라도 더 구제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원금 회수가 우선인 대부업자처럼 행동하면 되겠는가? 기업의 손톱 밑 가시에만 관심 있는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의 폐를 굳게 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가습기살균제 사건 피해자의 피눈물을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기존 질환자나 노약자가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면 더 크고 쉽게 피해를 입지 않느냐'는, 부인 잃은 남편의 호소가 들리지 않는가?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의 적극적인 초동 조치로 가습기살균제는 시장에서 퇴출되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의약 관련품이 아닌 생활용품이지만 심각한 건강피해를 야기한 이 제품을 의약외품으로 지정하고 까다로운 안전심사를 통과해야 판매할 수 있게 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었지만 같은 소를 두 번 잃진 않았다. 이제 더 이상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고 있다. 질병관리본부가 전국의 큰 병원 84곳을 대상으로 추적 조사한 결과다. 이러한 조치 이후 2년이 넘도록 가습기살균제를 팔겠다는 회사는 한 곳도 없다. 시장에서 완전히 퇴출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내용은 지난 1월 미국호흡기중환자학회지라는 국제학술지에 논문으로도 보고되었다. 가습기살균제 제조회사들이 자기네 제품의 잘못이 아니라고 우기며 소송 중이고, 의료계 일각과 산업부나 기재부 같은 부처가 진짜로 가습기살균제 제품이 그런 피해를 일으켰을까 하는 의문을 품는 상황에서 가습기살균제가 시장에서 퇴출된 후 추가 피해가 보고되지 않고 있다는 조사결과는 다른 어떠한 반대 주장과 논리에도 맞설 강력한 팩트다.
800만 명이 넘는 국민이 가습기살균제라는 살인제품을 구입해 사용했다. 이들 모두 잠재적인 피해자이다. 그중 144명이 사망자로 신고했고 300명 넘는 사람들이 환자로 신고했다. 태아부터 80대 노인까지 모든 연령층이 포함되어 있고 그 중에서도 영유아와 산모가 가장 많다. 국회에서 사실상의 만장일치로 피해 지원 결의안이 통과되었고 구제법안이 3개나 제출되었다. 그리고 108억 원의 지원예산이 확보되었다. 이 돈은 국민의 혈세로서 최소한의 지원인 '병원비와 장례비'에 국한하기로 되어 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 신고자 모두가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것이 확인되었다. 이 중 절반가량이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급성 폐질환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되었고, 다른 절반은 급성 폐질환 판정 기준으로 볼 때 가능성이 낮거나 확인하기 어려웠다. 조사위원장인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백도명 교수는 "폐 이외의 다른 장기의 영향이나 다른 질환이 더 악화되었을 가능성에 대해 추가적인 판정 기준이 필요하다"고 국회토론회에서 밝혔다. 한편 국회는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며 국가의 화학물질 안전관리를 강화한 화학물질등록평가법을 제정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모두 '병원비와 장례비' 지원돼야
이런 상황에서 예산지원 대상을 어떻게 정하는 게 옳은 것일까? 1안은 환경부나 기획재정부의 입장으로, 원래 이 사건은 제조회사가 책임져야 하지만 억울한 피해자가 많고 소송판결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 국회의 요구에 의해 국가가 긴급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지원예산이 제조기업에 구상권을 행사해 되찾아와야 한다는 전제가 중요하므로, 지원금이 회수될 가능성이 높은 대상 즉 관련성이 높거나 확실한 신고대상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2안은 시민단체의 입장으로, 가습기살균제 피해는 법에서 인정한 환경성 질환이고 원인 제거로 더 이상 피해가 나오지 않는 상황이며 국가의 화학물질안전관리 실패로 인한 측면이 크므로 지원 여부 판단은 지원금의 회수 가능성이 아니라 관련성이 있는 모든 신고 대상에게 지원해야 한다. 즉 환경복지와 환경정의의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안타깝게도, 환경부는 이미 1안으로 결정했다.
환경부는 애초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고 했다. 다른 부처가 이미 다루고 있는 문제를 자신들이 뒤치다꺼리하기 싫다며 손사래를 쳤다. 자신들에게 책임이 향하는 게 부담스러워 그랬는지 모른다. 화학물질 안전관리 전반은 환경부의 몫이지만 제품 인허가와 안전관리는 산업통상부(당시 지식경제부)에 있고, 심지어 KC 마크를 받은 제품도 있었다. 환경부는 피해 대책 요구에 이를 지원할 근거가 없다고도 했다.
피해자 모임과 환경단체가 '화학물질 노출에 의한 환경성 질환'이니 환경보건법을 적용하여 피해 대책을 세우라고 요구할 때 환경부는 '가습기살균제 문제는 제품 하자에 따른 소비자 개개인의 문제이지 환경문제가 아니다'라며 환경성 질환이 아니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놀라웠던 점은 주무부서인 환경부 환경보건정책과의 당시 책임자는 필자가 환경보건법의 환경성 질환 관련 조항을 제시하며 피해 대책을 요구하자 그런 조항이 있느냐고 필자에게 반문했다. 그러면서 환경보건법은 환경성 질환 피해를 해결하기 위한 법이 아니고 그런 문제를 조사하기 위한 근거 법령이라고 주장했다. 어이가 없었지만 그 주장은 환경부의 공식 입장으로 다른 환경부 관리들에 의해 반복되었다.
국회의원들도 국정감사장에서 환경부장관에게 이 문제를 환경성 질환으로 풀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환경부장관은 마지못해 환경보건위원회에 안건으로 올리겠다고 답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환경보건위원회는 가습기살균제 문제는 환경성 질환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참석한 전문가 다수는 대기나 토양 등의 물리적 일반환경이 오염되어 발생하는 질환만이 환경성 질환이라고 했다. 제조과정의 공장에서 인근 환경을 오염시켜 주민들에게 발생하는 건강피해 문제만 환경성 질환이고 제품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제품의 하자이지 환경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 문제는 제품 인허가를 관장하는 산업부가 주관하는 제조물책임법에 해당하지, 환경보건법에 적용되는 게 아니라는 환경부의 의견이 반영된 결과였다.
그럴듯한 논리로 들리는가? 그렇다면 자동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으로 인한 대기오염과 그로 인한 천식과 폐암과 같은 질환은 어떨까? 건축물의 천장 텍스나 지붕 슬레이트에 들어있는 석면이 비산되어 발생하는 석면폐나 중피종암 등의 석면 질환은 어떤가? 이들도 모두 제품의 하자인가? 그렇게 본다면 왜 석면 문제를 환경부가 총괄하고 있는가? 자동차의 대기오염 문제는 자동차 생산 인허가를 담당하는 산업경제 관련 부서가 하면 될 일이다. 문구류와 어린이용 제품에 환경호르몬 물질과 중금속이 다량 함유된 문제에 왜 환경부가 나서는가? 환경보건법은 만들어진 이후 여러 가지 환경조사의 근거로만 이용됐을 뿐 실제 환경 피해 시민들을 위해 작동된 적은 거의 없었다.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환경부
정부 부처 간 책임 떠넘기기가 계속되자, 아이와 엄마를 잃은 유족과 산소호흡기를 착용한 어린이와 산모 등 피해자들이 환경단체 회원들과 함께 거리로 나섰다. 국회는 여야 모두가 반대 없는 결의안을 통과시키며 서둘러 피해 지원을 하라고 의견을 모았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와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모두 3개의 관련 법안이 제출되어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 제정을 추진했다. 환경부는 할 수 없이 구제법 제정에 협조한다는 입장을 세우고 세부 지원방침 마련에 나섰다.
이때 기획재정부가 끼어들었다. 구제법 제정을 전제로 마련한 지원 예산을 트집 잡으며 구제법을 만들지 말라고 했다. 국가 예산을 가습기살균제와 같은 개별 제품 피해 지원을 위해 사용할 수 없고, 이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특별법을 만들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기재부의 입장은 국회에 보낸 문서에 극명하게 나타났다. '가습기살균제 문제의 시시비비는 법원이 가릴 문제'라는 것으로 국가기관인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 결과도 모른 체했다. 기재부의 입장은 피해 대책을 외면한 채 재판에만 매달리는 가습기살균제 제조업자의 입장과 다르지 않았다. 예산권을 쥔 기재부의 횡포에 여당인 새누리당도 휘둘렸다. 구제법 제정이 중단되었다. 기재부는 환경부가 이미 아니라고 입장을 정리한 바 있는 '환경성 질환' 카드를 사용하라고 환경부를 을렀다. 지원은 하되 구상권을 행사해 되찾아와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환경부는 잘못을 인정하거나 사과 없이 종전 입장을 갑자기 180도 바꾸어 '가습기살균제 피해는 환경성 질환'이라고 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원인과 피해는 달라진 게 없다. 정부의 논리와 입장이 완전히 달라졌을 뿐이다. 환경부는 전문가들이 참가하고 있는 환경보건위원회를 정부의 입장을 언제나 지원하는 거수기로 취급했다.
이번에도 그랬다. 4월 2일 오후에 열린 환경보건위원회 회의에서 정부의 피해 지원 범위가 논의되었다. 조사위원회의 판정 중에서 1등급인 '가능성 확실'과 2등급인 '가능성 높음'만을 지원해야 한다는 안과 3등급인 '가능성 낮음'도 포함하는 안 두 가지가 제시되었다. 정부지원금은 구상권을 통해 제조사로부터 돌려받아야 한다는 기재부의 조건이 우선시 되었고, '가능성 낮음'의 3등급은 구상권 행사로 환수가 어려울 것이라는 법률적 판단이 제시되었다. '가습기살균제 성분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현재 피해자들의 상태는 어떠한가'라는 환경성 질환 문제는 제대로 검토되지 않았다.
정부의 구상권 행사는 법률과 행정전문가들이 모여 풀어야 할 문제이지 환경보건전문가들이 모인 환경보건위원회에서 다룰 문제가 아니다. 환경보건위원회는 '가능성 낮음' 판정 사례의 피해 질환이 가습기살균제 사용과 어느 정도의 관련이 있는가, '가능성 없음' 판정을 받은 사례는 정말 가습기살균제와 무관한가, 요양급여가 필요한 건 아닌가, 질환을 안고 살아야 하는 경우는 어떻게 국가가 보살필 수 있는가 등을 검토해야 하는 기구가 아닌가? 그런데 환경부는 '환경성 질환' 문제를 다루는 기관이라기보다 기재부에 좌지우지되어 '구상권 행사'에 매달리는 기재부 부속기구처럼 사고하고 행동했다. 이러한 환경부의 태도는 담보 조건을 따지는 대부업자나 원금 회수를 중요시하는 은행 대출담당 부서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환경보건위원회는 이번에도 환경보건과 환경성 질환 문제 해결을 위한 전문기구라기보다는 기재부와 환경부의 관료적 입장을 뒷받침하는 통과의례라는 비난을 자초했다.
구상권에만 매달리는 환경부, 담보 조건 따지는 대부업자?
정부에 묻고 싶다. 기재부와 산업부, 그리고 총리실 공무원들이 들어줬으면 한다. 지난 3년간 거리에서, 국회공청회장에서, 묻고 또 물었던 질문이다.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단순한 제품 하자에 의한 소비자와 제조사 간 분쟁 사건인가? 연간 80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사용하다 신고된 피해만 사망 144명, 환자가 300명이 넘는 사건이 언제 또 있었나? 엄마 뱃속의 태아부터, 영유아, 어린이, 청소년, 산모, 70~8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피해자가 그야말로 전국의 남녀노소에 이르는 문제를 국가가 해결하지 않으면 국가는 누구를 위해 있는 것인가? 수백 명을 죽고 다치게 한 '살인 제품'을 만들고 팔아먹은 '살인 기업'을 왜 그냥 두는가?
그리고 또 묻는다. 환경부의 어처구니없는 조치를 보고 난 뒤에 드는 질문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해결하자는 여야 국회의원들의 결의는 어디 갔는가? 구제법을 제정해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용의는 없는 것인가? 환경부는 가습기살균제 문제를 환경성 질환으로 생각하긴 하는 것인가? 국회가 확보한 예산으로 환경성 질환 피해자를 지원하면서 한 사람이라도 더 구제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원금 회수가 우선인 대부업자처럼 행동하면 되겠는가? 기업의 손톱 밑 가시에만 관심 있는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의 폐를 굳게 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가습기살균제 사건 피해자의 피눈물을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기존 질환자나 노약자가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면 더 크고 쉽게 피해를 입지 않느냐'는, 부인 잃은 남편의 호소가 들리지 않는가?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의 적극적인 초동 조치로 가습기살균제는 시장에서 퇴출되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의약 관련품이 아닌 생활용품이지만 심각한 건강피해를 야기한 이 제품을 의약외품으로 지정하고 까다로운 안전심사를 통과해야 판매할 수 있게 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었지만 같은 소를 두 번 잃진 않았다. 이제 더 이상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고 있다. 질병관리본부가 전국의 큰 병원 84곳을 대상으로 추적 조사한 결과다. 이러한 조치 이후 2년이 넘도록 가습기살균제를 팔겠다는 회사는 한 곳도 없다. 시장에서 완전히 퇴출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내용은 지난 1월 미국호흡기중환자학회지라는 국제학술지에 논문으로도 보고되었다. 가습기살균제 제조회사들이 자기네 제품의 잘못이 아니라고 우기며 소송 중이고, 의료계 일각과 산업부나 기재부 같은 부처가 진짜로 가습기살균제 제품이 그런 피해를 일으켰을까 하는 의문을 품는 상황에서 가습기살균제가 시장에서 퇴출된 후 추가 피해가 보고되지 않고 있다는 조사결과는 다른 어떠한 반대 주장과 논리에도 맞설 강력한 팩트다.
800만 명이 넘는 국민이 가습기살균제라는 살인제품을 구입해 사용했다. 이들 모두 잠재적인 피해자이다. 그중 144명이 사망자로 신고했고 300명 넘는 사람들이 환자로 신고했다. 태아부터 80대 노인까지 모든 연령층이 포함되어 있고 그 중에서도 영유아와 산모가 가장 많다. 국회에서 사실상의 만장일치로 피해 지원 결의안이 통과되었고 구제법안이 3개나 제출되었다. 그리고 108억 원의 지원예산이 확보되었다. 이 돈은 국민의 혈세로서 최소한의 지원인 '병원비와 장례비'에 국한하기로 되어 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 신고자 모두가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것이 확인되었다. 이 중 절반가량이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급성 폐질환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되었고, 다른 절반은 급성 폐질환 판정 기준으로 볼 때 가능성이 낮거나 확인하기 어려웠다. 조사위원장인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백도명 교수는 "폐 이외의 다른 장기의 영향이나 다른 질환이 더 악화되었을 가능성에 대해 추가적인 판정 기준이 필요하다"고 국회토론회에서 밝혔다. 한편 국회는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며 국가의 화학물질 안전관리를 강화한 화학물질등록평가법을 제정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모두 '병원비와 장례비' 지원돼야
이런 상황에서 예산지원 대상을 어떻게 정하는 게 옳은 것일까? 1안은 환경부나 기획재정부의 입장으로, 원래 이 사건은 제조회사가 책임져야 하지만 억울한 피해자가 많고 소송판결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 국회의 요구에 의해 국가가 긴급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지원예산이 제조기업에 구상권을 행사해 되찾아와야 한다는 전제가 중요하므로, 지원금이 회수될 가능성이 높은 대상 즉 관련성이 높거나 확실한 신고대상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2안은 시민단체의 입장으로, 가습기살균제 피해는 법에서 인정한 환경성 질환이고 원인 제거로 더 이상 피해가 나오지 않는 상황이며 국가의 화학물질안전관리 실패로 인한 측면이 크므로 지원 여부 판단은 지원금의 회수 가능성이 아니라 관련성이 있는 모든 신고 대상에게 지원해야 한다. 즉 환경복지와 환경정의의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안타깝게도, 환경부는 이미 1안으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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