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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가입 기간' 집착하는 정부, 속셈은 공적 연금 죽이기?

[복지국가SOCIETY] 기초연금법안, 국민연금 사각지대만 늘릴 것

눈과 귀를 막은 정부의 정책 형성 과정

'모든 어르신에게 기초연금 20만 원'이라는 대선 공약이 지난 대선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데 이견을 다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해 9월 '국민연금 가입 기간 연계를 통한 소득 하위 70% 어르신에 대한 차등 지급'안을 제시하고, 결국 같은 해 11월에 동일 내용을 골자로 하는 '기초연금법 제정안'을 발의하였다. 이 안이 결정되는 과정에서 사회적 논의와 제대로 된 공청회나 토론회는 없었다. 단지 정부의 일방적인 결정과 통보, 언론과 정부 기관을 통한 여론몰이만 있었다.

그리고 지난 2월 국회에서 '기초연금법 제정안' 입법을 위한 여∙야∙정 협의체가 가동되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2월 국회에서 정부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기초연금 7월 지급'이 불가능하다는 일정상의 이유를 들어 입법을 강하게 시도했으나 이는 야당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공은 지금의 4월 국회로 넘어왔다.
지난 4월 1일 새정치민주연합이 기초연금을 소득과 연계하여 차등 지급하자는 대안을 제시했지만, 정부와 새누리당은 국민연금 가입 기간과 연계할 것을 고집하며 이를 거부했다. 정부·여당은 소득 연계 차등 지급으로 재정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에도,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길수록 적게 받도록 하는 국민연금 가입 기간과 연계 방안에 집착하는 것이다.

최근 한 새누리당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국민연금 가입 기간과 연계'가 핵심이며 다른 요소들은 상당 부분 양보할 수 있다는 말까지 하였다. 도대체 왜 정부·여당은 이렇게 국민연금 가입 기간과 연계하는 방안에 목을 매는 것일까?
국민연금 가입 기간 연계에 집착하는 이유

국민연금 가입 기간 연계의 의도는 궁극적으로는 기초연금을 10만 원에 묶어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안에 따르면, 전체 노인 중 70%가 최소한 10만 원을 보장받을 수 있다. 국민연금 가입은 의무 조항이기 때문에, 앞으로 국민연금에 가입해야 하는 사람들은 실업하지 않는 한 20년 이상 가입하게 된다. 이미 상당 기간 가입한 40~50대도 대부분 이 기준을 넘어서며, 10여 년이 지나면 국민연금 가입자 대다수가 20년 가입 기간을 넘어설 예정이다.

따라서 기초연금 수급자 중 10만 원 이상 받을 사람은 별로 없게 된다. 이런 결과를 놓고 보면, 가입 기간 연계안에는 기초연금 지급을 최소화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유추할 수 있다. 더군다나, 기존의 기초노령연금은 2028년까지 A값(국민연금 가입자 평균 소득)의 10%(현재 가치로 20만 원)까지 인상하도록 법이 규정하고 있다. 이를 후퇴시켜 10만 원으로 기초연금을 묶어 두는 것은 미래의 지출에 대한 선제공격인 셈이다.
이러한 목적은 소득 증가와 연동해 책정하는 현행 기초노령연금액을 물가 인상과 연동하도록 바꾸려는 시도에서도 드러난다. 일반적으로 소득 증가율이 물가 증가율을 상회한다. 따라서 물가 증가율을 기준으로 하면 그만큼 기초연금에 드는 정부 지출은 줄어든다. 한 연구에 따르면, 물가 연동 급여율은 올해 A값의 10%로 시작하지만 2027년에는 평균 소득의 7%로, 2036년에는 5%로 반 토막이 난다. 따라서 2036년부터는 현재의 기초노령연금보다 더 낮은 급여를 받게 된다.
▲ 3월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대한은퇴자협회, 한국노년유권자연맹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연금과 연계한 기초연금제도를 철회하고 모든 노인들에게 20만 원을 지급하는 보편적 기초연금을 도입하라'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집착이 낳은 '예상치 못한 결과'

근본적으로 따져 보면, 우리나라가 기초노령연금 제도를 도입한 이유는 인간적인 노후를 보내기 위해서이다. 그러려면 모든 사람이 필수적으로 최소한의 경제적 자원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연금 앞에 '기초'라는 형용사를 단 것이다. 기초노령연금 외에 이러한 '기초'를 제공해 주는 것으로는 국민연금이 있다. 노년기의 생활을 위해 수백만 원은 아닐지라도 최소한의 가처분 소득을 반드시 보장해 주어야 한다. 위 두 제도는 이를 위한 수단이다.
지금 기초노령연금을 받는 노인들은 국민연금에 아예 가입하지 못했거나 가입했어도 기간이 짧다. 그래서 정부안대로 하면 거의 모두 20만 원을 받는다. 마치 노년을 위한 '기초'가 달성되는 듯하다. 하지만 앞서 보았듯이, 현재 국민연금에 가입해야 하거나 가입한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은 나중에 기초연금을 10만 원만 받는다. 현재와 미래 사이의 모순이 생겨난다. 그러면 국민이 국민연금 가입을 회피하는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국민연금 임의가입자 증가율과 가입자 수가 모두 감소했다. 정책 과정에서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라는 '예상치 못한 결과'가 생겨난 것이다.
특히 국민연금 가입 회피는 저소득층에서 더 심각하게 나타나리라 예상된다. 20년 가입 기간을 기준으로 하면, 현행 국민연금은 가입자가 낸 보험료보다 매달 21만~33만 원을 더 받게 되어 있다. 현재 비정규직 평균 임금은 대략 130만 원이다. 이 경우, 국민연금 보험료는 11만7000원이고 20년 후 받을 수 있는 국민연금 수령액은 34만7860원이다. 자신이 낸 보험료보다 약 23만 원을 더 받는다.

만약 정부안이 시행된다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3만 원을 더 받기 위해 국민연금에 가입할까? 그들의 판단은 아마도 'NO'일 것이다. 국민연금 무가입으로 기초연금 20만 원을 받을 수 있다면, 당장 현실에서 한 푼의 생활비가 아쉬운 사람들은 보험료를 생활비로 쓰는 것이 더 합리적인 결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겪을 상대적 박탈감도 사회 문제가 될 수 있다. 2012년 국민연금통계연보에 따르면, 월 소득이 125만 원 이하인 가입자의 비중이 무려 38.3%에 달한다. 이들은 자신들보다 더 소득이 높은 사람들이 기초연금을 더 받는 것을 용납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현 제도 하에서 고소득자임에도 국민연금에 늦게 가입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기초연금 수급액에서 역진 현상이 생길 것이다. 따라서 저소득층이 국민연금에 대해 갖는 불신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 가입 기간 연계가 가져오는 이러한 부정적 효과들은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의 공적 연금 체계의 근간인 국민연금을 약화시킬 수 있다. 노후 생활의 '기초'를 다지기 위한 기초연금이 또 다른 '기초'인 국민연금을 해하는 모순을 가져오는 것이다.
국민연금 사각지대 늘어날 것

국민연금 가입 회피 요인은 현재 우리나라가 해결해야 하는 국민연금 사각지대 문제와 직결된다. 2011년 12월 기준으로 18~59세의 경제활동인구 중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들은 약 19%로 624만5000명에 이른다. 여기에 주부로서 가입하지 않은 경우를 더한다면 18~59세 인구 중 30% 이상이 가입하지 않은 상태이다. 특히 비정규직의 경우가 더 심각한데, 2009년도 기준으로 보면 비정규직 노동자가 국민연금에 가입한 비율은 37.6%에 불과했다.

이러한 국민연금 사각지대는 당장 해결해야 하는 문제 중 하나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정부의 기초연금안은 오히려 주부와 비정규직 같은 저소득층이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도록 하는 유인을 제공함으로써 공적 연금의 개선 방향과는 모순된다.
사실, 사각지대에 속한 국민들은 노후 준비를 위해 국민연금에 가입하여 국민연금도 받고 기초연금 10만 원(현행 기초노령연금법대로라면 2028년에 20만 원)을 받는 것이 총액상으로는 이득이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은 낮은 보험료를 내는 사람일수록 더 높은 수익을 받을 수 있기에 놓치기에 아까운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러한 점들을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당장 돈이 없어서 현실적 결정을 하는 것이다.

이 입장에서 보면, 기초연금이 우리나라 사회 안전망의 기초인 국민연금을 회피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결국 정부의 기초연금안은 하나의 '기초'가 또 다른 '기초'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또 이는 현재의 노인 빈곤율 세계 1위라는 불명예를 이 땅에 지속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합리적 사고의 부족인가?

정부는 기초연금이 국민연금 수령액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기초연금은 국민연금과는 별도의 제도이고 기초연금 수령액이 국민연금에 의해 차등 조절될 뿐, 그 반대는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수령액뿐만 아니라, 정부안이 연금 사각지대를 더 양산한다는 점이다. 국민연금 수령액은 이미 가입된 사람들에 한해서 적용되지, 아직 접근 자체가 안 되는 사람에게는 의미가 전혀 없다.
정부안이 미래 세대의 부담을 경감해 주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 또한 납득하기 어렵다. 지금의 20~30대는 원래 법이 보장해주는 기초연금을 절반도 받지 못할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국민연금 사각지대는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 이를 수정할 정책들이 마련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지금 추세대로라면 지금의 20~40대 중에서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약 3분의 1 정도가 될 상황에 처해 있다.

기초연금 제도가 저소득층이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도록 하는 유인을 제공한다면,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20~40대는 스스로 노후를 준비하지 못하는 불이익을 당하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우리 후손들은 이들의 노후 보장을 위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즉, 현 기초연금안은 미래 세대의 부담을 경감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오히려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현 정부의 정책 입안자와 정책 결정자들의 합리적 사고 능력에 의문이 생긴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관련 요인들을 모두 통제하고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합리성이 제한적으로만 발휘된다는 점이 정설이라고 하더라도, 국민연금 가입 기간 연계의 결과는 명확하게 보이기에 그런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 정부 기초연금안이 통과되면, 2036년에는 5%로 반 토막이 난다. 20~40대 세대에게 불리한 제도다. ⓒ프레시안(최형락)

의도된 공적 연금 죽이기?

만약 정책 참여자의 합리성이 부족하지 않다면, 정부가 공적 연금을 최소화하려는 의도적 술수를 썼다는 결론밖에 남지 않는다. 현재 정부가 국민연금 가입 기간 연계안을 밀어붙이는 행태는 '제한적 합리성'을 넘어선 것이나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정책 결정 과정의 합리성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다양한 수준에서 논의와 협상을 한다. 그런데 이번 기초연금의 경우 이러한 과정들이 철저하게 무시되었다. 다양하고 타당한 비판들이 있었음에도 정부·여당은 논의 자체를 피해왔다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정부·여당이 '공적 연금의 최소화'라는 목표를 위해 사회 공론화를 생략하고 정책을 밀어붙인다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달리 말하면, 이 안을 추진하는 핵심 세력은 국민연금 가입 기간 연계가 가져올 결과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국민연금을 흔들기 위해, 기초연금을 실질적으로 없애기 위해 이 안을 추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 발 더 나아가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 등의 공적 연금을 최소화하고 대신에 현재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민간 보험을 확장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의구심마저 든다.
기초연금의 끝은 국민적 연대의 약화

궁극적으로 정부의 기초연금안은 '우리는 하나이고 계층 및 세대 간에 서로 협력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국민적 연대'를 크게 훼손할 것이다. 지금의 20~40대는 기초연금에 대해 불만을 갖게 되고, 세대 간 갈등이 증폭될 우려가 있다. 국민연금 제도도 주부나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배제함으로써 남녀 갈등과 계층 갈등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러한 배제가 깊어갈수록 국민연금은 모든 국민을 위한 보편적 제도가 아니라, 사회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으로 변모될 수 있다. 이는 사회보장 제도가 근본적으로 가져야만 하는 국민 간 협조와 협력이라는 원칙을 깨뜨릴 것이다.

국민적 연대는 단순히 대통령이 국민 통합을 말로써 외친다고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서로 협력할 제도를 만들어주고, 실제로 모두 그러한 제도의 열매들을 공유할 때 가능하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정부의 기초연금법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전면적으로 시작해야 하며, 그 내용도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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