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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인과 김희애, 진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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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유아인과 김희애, 진짜일까?

[TV PLAY] jtbc 드라마 <밀회>

얼마 전 한 포털 사이트에서 말론 브란도에 대한 글을 읽었다. '메소드 연기'의 대가로 불리는 그의 연기에 대한 평가를 읽다 새삼 배우의 연기 방식에 대한 여러 생각이 연이어 떠올랐다. 단지 배역을 연기하기보다 배역 그 자체가 되는 기술을 의미하는 '메소드 연기'는 말론 브란도가 그랬듯, 압도적인 에너지를 품고 있다. 배역 자체가 카리스마를 갖고 있지 않더라도 팽팽하게 부푼 풍선을 눈앞에 둔 것처럼 긴장하고 그래서 몰입하게 된다.

반면, 배우의 실제 모습이라고 추측하는 어떤 성격적 특성이 배역과 만나는 지점이 보이는 연기도 있다. 이 경우 보는 사람은 생각이 많아진다. '지금 저 모습이 100% 연기일까?'라는 궁금증은 때로 몰입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때로 더욱 풍성한 해석의 구름판이 되어주기도 한다. 최근 jtbc 드라마 <밀회> 속 두 배우를 보면서 후자의 연기가 주는 재미를 만끽하고 있다. 오혜원과 이선재는 김희애라는 여자, 유아인이라는 남자에 대한 상념을 불러일으킨다.

▲ <밀회>에서 오혜원을 연기하는 김희애와 이선재를 연기하는 유아인. ©jtbc

지난 4회 방송에서 혜원은 경찰서 유치장에 갇힌 선재를 빼냈다. 그런데 자신이 직접 한 것이 아니라 남편 준형(박혁권)을 움직였다. 그것도 당사자인 준형은 모르게. 다미(경수진)를 통해 선재의 난처한 상황을 알게 된 혜원은 직접 힘을 쓰는 대신 준형에게 선재가 있는 곳을 알려준다. 덕망 높은 동료 교수에 대한 열등감으로 실력 있는 제자 선재와 끈끈한 사제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준형은 결정적인 순간에 눈앞에서 사라진 선재와 재회하는 것이 그저 기쁠 따름이다.

그런데 혜원이 자신이 쓴 각본대로 선재의 상황을 알리는 전화를 받은 준형을 태연한 얼굴로 바라보는 장면에서 기시감이 들었다. tvN <꽃보다 누나>에서 김희애의 존재감을 각인시킨 장면이다. 공항에서 차편을 알아보느라 헤매는 이승기를 위해 김희애가 자신이 알아낸 방법을 슬쩍 알려줘 그에게 공을 돌리고 뒤에서 바라보던 그때 말이다.

비슷한 상황이지만 선사하는 감흥은 달랐다. <밀회>의 장면이 술수처럼 느껴진다면 <꽃보다 누나>는 배려로 보였다. 여기에는 물론 혜원이 여러 사람의 요구를 받아 처리하는 입장에서도 누구에게도 적이 되지 않는 주도면밀한 수완가라는 점이 크다. 동시에 시청자의 입장에서 그런 혜원과 <꽃보다 누나>의 김희애 사이,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실제 김희애라는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다는 심증 혹은 착각을 갖게 된다. 오랫동안 모델로 활동한 화장품 광고 속 이미지도 한몫을 거든다. 웬만한 일에는 쉽게 당황하는 법이 없을 것 같은 우아하고 평온한 여자, 똑똑하고 명확한 성격이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드러내 괜한 적을 만들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라는 이미지 말이다.

한편, 선재는 유아인의 불안한 기운에 기댄다. 개인적으로 최근 유아인의 필모그래피는 꽤 아쉬웠다. SBS 드라마 <패션왕>과 <장옥정, 사랑에 살다>, 영화 <깡철이>는 작품 자체의 완성도는 물론 유아인이 연기하는 인물의 매력이나 완결성에 있어서도 의구심이 드는 선택이었다. KBS 청소년 드라마 <반올림>으로 데뷔한 이래 밑바닥 인생을 사는 10대 소년부터 사극의 임금까지 다양한 인물을 연기한 유아인이지만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작품은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종대다.

가진 게 너무 없어서 먼 미래를 상상하지 못하고 당장의 현실만을 살아가는 종대에 대해 유아인은 "종대는 뭔가를 받아들이거나 이해하는 과정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던 캐릭터예요. 내가 종대고, 종대가 나고. 정말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내뱉었던 호흡과 말과 표정들이 진짜, 내가 두 번 다시 가질 수 없는 진짜배기였던 거죠. 아무 생각 없이 한 거니까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라고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다.

©jtbc

이처럼 유아인은 항상 '진짜'에 집착하는 듯 보였다. 그것이 배우 유아인과 유명인 유아인의 삶에도 영향을 끼쳤다. 늘 불안해 보였고 어떤 의미로는 또래의 다른 누구보다 건강해 보였다. 아웃사이더나 청춘이라는 표현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결국 권력의 서클 안으로 들어온다고 해도, 물리적으로 더 이상 청춘이라 불릴 수 없는 나이가 된다고 해도 쉽사리 손상되지 않을 것 같은 기운이 종대를 연기하는 유아인에게 있었다.

그래서 <밀회>의 선재가 보여주는 가진 것 없는 자의 당당한 가벼움은 유아인이라는 남자의 매력과 조우하면서 극대화된다. 선재는 혜원에게 "제가 잘할 수 있어요. 선생님한테 백 퍼센트 진심이라 거짓말 같은 거 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너무 어른인 척도 말고 그냥 저 사랑하시면 돼요. 밑질 거 없잖아요. 분명 제가 더 사랑하는데"라고 말했다. 방망이를 스치기는커녕 내밀 엄두도 못 낼 직구 같은 고백이다.

어떤 배우들은 배역 너머에 자연인으로서 자신들의 그림자가 비치는 것을 꺼린다. 배우를 둘러싸고 쓸모없는 사생활이나 정치색 논쟁이 잦은 탓도 있을 것이고, 온전히 배역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진짜 연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밀회>의 혜원과 선재를 연기하는 김희애와 유아인의 표정과 몸짓을 보면서 이런 상념을 펼치는 건 취향의 영역일 수도 있다. 제작진이 배우를 선택할 때 배역에 어울림을 중시해 이미지 캐스팅을 할 수도 있지만, 어떤 배역을 맡겨도 무리 없을 연기력을 중시할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투박하지만 위력적인 위의 저 대사를 말하는 유아인의 표정은 최근 일련의 아쉬운 필모그래피를 거치며 행여 그가 잃은 게 아닌가 걱정했던 고유의 매력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그리고 김희애가 갖고 있는 기존의 이미지가 앞서 언급한 <밀회>의 장면에 재밌는 긴장감을 더했다. 글 속에 누워 있던 배역이 배우의 몸을 거쳐 생명을 얻어 일어나는 순간을 목도하는 재미 혹은 오해일지도 모를 상념을 더해 배역과 배우 사이를 제멋대로 오가는 재미, 김희애와 유아인을 통해 새삼 시청자의 이 고유한 즐거움을 깨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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