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어른이 된 후엔 진정한 친구를 사귀기 어렵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어떤 면에선 맞는 말이지만, 내 경우엔 어른이 되어 뒤늦게 만난 친구와 훨씬 오랜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대학 졸업 후에 만난 친구도 있고, 서른이 넘어 알게 된 친구도 있다. 게다가 서른 살이 넘는 나이 차이에도 아랑곳없이, 나는 늘 그분께 극존칭을 쓰지만 내심 동갑내기 친구보다도 더 정답게 느껴지는 선생님도 계시다. 일 때문에 알게 되었지만 일이 끝난 후에 오히려 더욱 친밀해지고, 일과 전혀 상관없이 사람과 사람으로서 친해진 이들도 있다.
미국 드라마 <프렌즈>처럼 매일 똑같은 커피숍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수다를 떨지는 못하지만. 자주 만나지 못하더라도 늘 그 사람들이 나의 벗이라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 구석이 든든해지고 뜨끈해지는 사람들. 그 늦깎이 친구들이야말로 내 삶의 소중한 버팀목이다.
이렇듯 너무 늦게 만났기에 더욱 애틋해지는 사귐이 있다. 사람은 물론 장소와의 인연도 그렇다. 너무 늦게 알게 되었기에 더욱 깊이, 시도 때도 없이 그리워지는 곳들이 있다. 내겐 뮌헨이 그렇다. 10년 전 뮌헨은 처음 가봤을 때부터 왠지 부산이나 광주만큼이나 친밀감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그 신비로운 기시감의 뿌리는 알 수 없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뮌헨은 내가 살고 싶은 도시의 모습과 가장 많이 닮은 곳이기 때문인 것 같다.
뮌헨의 첫 인상은 바로 우주를 향해 거침없이 뻗어나갈 것만 같은 커다란 기차역이었다. 화려하진 않지만, '여기서 출발하면 유럽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말하는 듯한 뮌헨 기차역. 뮌헨 기차역에서 머릿속으로 프라하도 가보고, 베를린도 가보고, 파리도 가보고, 비엔나도 가보면서 나는 뮌헨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뮌헨을 여행하기도 전에 말이다. 뮌헨 중앙역은 사방이 무한대로 뻗어 있는 듯한 열린 느낌을 주었다. 트임, 열림, 뜨임. 뮌헨은 내게 그런 어여쁜 단어들을 떠올리게 했다.
일터가 정해지면 무조건 '집-일터, 일터-집'의 동선을 벗어나지 못하는 답답한 삶의 패턴을 고수하던 나는 여행을 통해 뭔가 평소와는 다른 습관을 가지게 될 때 기쁨을 느끼곤 한다. 밤에도 거의 술을 즐기지 않지만 낮에는 절대 술에 입을 대지 않던 나는, 뮌헨에 있을 땐 사실 매일 '낮술'을 마셨다. 정말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어디서 어떤 맥주를 마시든, 뮌헨의 맥주는 정말 눈이 튀어나오게 맛있었다. 물론 한 잔을 다 비우기도 전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저주받은 체질 덕분에 많이 마시지는 못했지만, 맥주를 마치 물이나 커피처럼, 어쩌면 그보다도 더 자주 마시는 뮌헨 사람들을 보며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하루에 무려 맥주 1만 리터가 넘게 팔린다는 이곳, 뮌헨 호프브로이는 워낙 유명한 관광지라 가격이 저렴하진 않다. 게다가 주말 밤에는 천여 명이 훌쩍 넘는 손님들이 매주 잔치를 벌이니 옆 사람의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다. 그 인산인해의 아수라장 속에서도 독일의 민속음악에 맞춰 마치 이곳에 두 사람만 있는 듯 꿈같은 표정으로 춤을 추고 있는 백발성성한 노부부의 모습이 무척 사랑스러웠다. 뮌헨 곳곳에는 호프브로이 뿐 아니라 향긋한 맥주를 언제든 싼 가격으로 마실 수 있는 카페나 펍이 많다. 떠들썩한 분위기가 부담스러운 여행객은 이곳을 살짝 구경만 하고 다른 펍에 가서 맥주를 마시기도 한다.
천천히 맥주를 마시며 바라보는 뮌헨 구석구석의 사람 풍경은 살갑고, 정겹고, 흥겨웠다. 뮌헨 광장의 푸르른 잔디밭에서 벌어지는 무료 클래식 공연에서 사람들은 맥주를 마시며 현악사중주를 듣고, 발라당 누워 책을 읽으며 음악을 듣기도 했으며, 과감하게 웃통을 벗고 온몸에 광합성의 축복을 골고루 전달하기도 한다. 전혜린의 수필에 등장하던 슈바빙 거리의 고즈넉한 풍경도, 자기 얼굴보다 커다란 아이스크림을 보물인 양 꼭 끌어안고 야금야금 핥아먹는 꼬마 소년의 회심의 미소도 정답기 이를 데 없었다.
원래 첫 번째 뮌헨 여행의 목적은 미술관 탐방이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한참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던 때, 신화를 묘사하는 그림 가운데 내 눈길을 멈추게 하는 것들은 유난히 뮌헨의 알테 피나코텍 미술관에 소장된 것들이 많았다. 과연 뮌헨의 박물관들은 정말 기대 이상이었다. 고대-중세-현대에 이르기까지, 단지 양적으로만 풍부한 것이 아니라 엄청난 섬세함과 지적인 배려로 가득한 공간 하나하나가 보는 이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게다가 인문학적 아우라가 물씬 풍기는 곳곳의 박물관 서점들은 어찌나 탐이 나던지.
그런데 뮌헨의 미술관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것들은 사람과 공간이 어우러지는 소소한 풍경들이었다. 나는 뮌헨에서 사람과 공간의 어우러짐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행복해지는 비법을 배웠다.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거리를 흘러가는 사람들, 거리의 풍경 하나하나를 소담스럽게 눈에 넣으며 산책하는 사람들, 밥 한 끼를 단지 후딱 해치우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과 오래오래 수다보따리를 풀어놓으며 몇 시간씩 노천카페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 박물관에서 단지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천천히 모사하며 거장의 숨결을 되짚어 보는 사람들. 그 아름다운 사람들은 단지 풍경의 양념이 아니라 풍경의 주인공들이며 풍경의 창조자이기도 했다.
그들은 공간을 단지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너른 품 안에 따스하게 안겨 있었다. 그들에게 뮌헨이라는 도시 공간은 자원이나 배경이 아니라 삶의 흔적이고 사랑의 기억이며 우정의 발자국이었다. 뮌헨에 멋진 박물관과 거대한 기차역이나 달콤한 맥주가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친절이나 배려라는 익숙한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뮌헨 사람들의 푸근한 미소 때문에 내게 뮌헨은 '태어난 고향'은 아니지만 '뒤늦게 만들어진 고향'이 되었다.
너무 늦게 친구가 되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안타깝고 그립고 애틋한 친구처럼, 뮌헨은 그렇게 내게 느리지만 깊게 다가왔다. 나는 뮌헨이라는 새로운 친구를 통해 배우고 싶었다. 남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의 중심을 찾아 자꾸만 멀리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머무는 바로 그곳을 언제나 더없이 완전한 세상의 중심으로 만들 줄 아는 삶의 지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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