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양반 참 독하네."
마루야마 겐지의 책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고재운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_는 그렇게 독한 말들로 빼곡하게 채워진 책이다. 작정하고 썼다는 느낌이 확 와 닿았다. 도대체가 여지를 두지 않았다.
책을 열면 언제나처럼 목차를 먼저 일별한다. 이 책의 목차를 훑어보면서 희죽 희죽 웃음이 나왔다. 몇 개를 나열하면 이렇다. 목차 맞다.
경치만 보다간 절벽으로 떨어진다
풍경이 아름답다는 건 환경이 열악하다는 뜻이다
텃밭 가꾸기도 벅차다
구급차 기다리다 숨 끊어진다
고독은 시골에도 따라 온다
고요해서 더 시끄럽다
윗사람이라면 껌뻑 죽는다
다른 소리를 냈다간 왕따 당한다
심심하던 차에 당신이 등장한 것이다
돌잔치에 빠지면 찍힌다
친해지지 말고 그냥 욕먹어라
이주자들과만 어울리면 사달 난다
시골에 간다고 건강해지는 건 아니다
어쩌면 나는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었다. 목차만으로도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다. 각각의 목차에서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할 것인지조차 눈앞에 불을 보듯 훤했다. 어쩌면 나 역시 이런 목차와 거의 유사한 책을 준비 중이기에 '확인할' 필요가 더 강했을 것이다.
"처음 수확한 야채를 식탁에 올렸을 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거의 느껴 본 적이 없는 감동에 젖습니다. 농경민족으로서 본능이 깨어나 피가 꿈틀거리고 환희에 찰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시골에서 꿈꿨던 이상적인 삶의 모습임을 실감합니다. 하지만 다른 감동과 마찬가지로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습니다. 농작물의 이모저모를 얼추 이해하게 된 단계에서 순식간에 빛이 바랩니다. 우선 너무 많이 거둔 야채가 고민거리가 됩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수확해야 하는 일에 진절머리가 나고 말 것입니다. 소금에 절이고 된장찌개에 넣고 다른 것에 곁들여도 다 먹어 치울 수가 없습니다." (39쪽)
내 한 뼘 텃밭의 상추를 며칠째 뜯어 먹고 있을 때, 이제 텃밭을 시작한 귀촌 1년 차 후배가 의기양양한 웃음으로 "저희 상추예요!" 라며 내 집 문을 두드릴 때 나는 왜 모든 폭력이 정당화될 수 없는지 화가 난다. 법적으로 상추 시즌에 옆집에 상추를 선물할 경우, 최대 견적 일백만 원 까지 주먹질은 허용된다는 군郡 조례를 제정할 필요가 있다.
이 책에 대한 나의 예측 절반은 맞았지만 절반은 빗나갔다. 아니 어쩌면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출발점 자체가 틀렸다. 대부분의 '시골 관련' 책들은 '이주'를 전제로 시골의 실상에 대해서 나열하는 방식이다. '이런 일들이 있으니 내려오는 그대들은 참조하라'가 기조다. 일종의 시골생활 팁이거나 에피소드다.
그러나 마루야마 겐지는 진심으로 '시골 행'을 말리고 있었다. 말리는 척 하다가 결국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식으로 훈훈하게 끝내는 것이 나의 예상 시나리오였는데 초지일관, 곁눈 길 한 번 주지 않고 하드코어 스타일로 밀어 붙인 것이다. 아니, 책이 이런 식으로 끝이 나버리면 시골 지자체 열에 열의 정책인 '인구배가운동'은 가망이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 각급 지자체 중 '귀농·귀촌지원'을 맡고 있는 부서는 이 책을 금서목록에 올릴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갱유(坑儒)는 하지 못해도 소리 소문 없이 분서(焚書) 할지도 모르겠다.
농림축산식품부 통계를 보면 2013년 귀농·귀촌 가구가 3만2424 가구로 2012년 2만 7998가구보다 15.8% 증가했다고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전남 구례군도 인구 감소가 바닥을 쳤고 2012년부터 몇 백 명이 늘었다는 통계를 보여준다. 통계를 들먹일 필요도 없이 개인적으로 요청받는 귀농·귀촌과 관련한 취재 아이템 부탁은 과장하자면 일주일에 한 건은 될 것이다. 많은 매체들의 기획안에는 '귀농·귀촌 트렌드'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trend? 주로는 마누라와 새끼들까지 함께 등장하는 삶의 문제가 '동향이나 추세'로 정리당해도 되는 것일까? 개인적으로는 귀농·귀촌이라는 도매금 분류가 싫어서 '단지 서울에서 구례로 이사를 왔다'는 표현을 선호한다. 거처를 옮겼지 특별하게 사는 방식을 바꾼 것은 아니다. 매체들 입장에서 귀농·귀촌은 하나의 소재에 불과하다. 나는 옴니버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한 사람의 조연이 아니다. 내 인생이라는 영화를 이끌어 가는 스스로 유일한 감독이다. 마루야만 겐지는 책에서 끊임없이, 집요하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진정 홀로서기를 한 사람입니까. (…) 부모에게 의존하고, 학력에 의존하고, 직장에 의존하고, 사회에 의존하고, 국가에 의존하고, 가정에 의존하고, 술에 의존하고, 경제적 번영의 시대에 의존하면서 이럭저럭 수십 년을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홀로 설 기회를 그때마다 잃고, 그저 공부나 일을 하면서 겪은 혹독함 정도로 인식하고 있을 뿐입니다. 사실 당신은 자신에서, 세상으로부터 도피하고 또 도피해 온 것은 아닐까요. (…) 그래서 직장이라는 후원자를 빼앗긴 당신은 자신의 판단만을 강요받는 진정한 어른의 처지로 내몰리자 그런 어린애 같은, 너무나 허술하기 짝이 없는 발상에 휘둘리고 만 것은 아닐까요." (17~18쪽)
제대로, 스스로 결정해 본 적이 있느냐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나의 의지로' 살아 본 적이 있느냐는 것이다. 절대다수가 시스템의 부속품이 되어 밥을 해결하고 그 라인에서 이탈하는 것을 '실패'로 인식하는 사회에서 살다가 '월급이라는 아편' 공급이 중단되었을 때 내리는 '시골 행' 이라는 결정에 대한 의심 또는 우려인 것이다. 얼핏, 시스템 밖에서 내린 그 결정조차 시스템이 제공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거 너무 심하게 몰아붙이는 거 아냐?"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루야마 겐지는 당신의 결정을 하나하나 제거해 나간다. 마치, "자, 이래도 시골에서 살아 볼래?" 라고, 우리 동네 말로 '논두렁 깽패가 용석이 두들기듯' 몰아세운다.
이전에 위성채널에서 즐겨보던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쁘띠 프랑스> 라는 제목이었을 것이다. NHK에서 제작했는데 프랑스의 예쁘장한 시골 마을들을 다룬 목가적인 내용이었다. 두어 차례 주민회의, 우리 동네로 보자면 '개발위원회' 풍경을 보여 준 적이 있다. 안건 서류는 당연히 불어로 되어 있었고 문서의 편집 상태도 우리 마을 문건보다 세련되어 보였다. 어울리는 가디건을 입은 중년 아저씨들이 물론 쏼라쏼라 유창한 불어로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회의 안건은 우리 마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개똥 문제와 외지 것들 문제였다. 밖에서 바라보기에 시각적으로 달라보여도 사람 사는 일은 오십보백보였다. 나고 자라고 돈 벌고 결혼하고 자식 낳고 걱정하고 저녁 뭐 먹을지 궁리하고 똥 싸고 병 걸리고 죽는다. 사람 사는 곳은 별반 다르지 않다.
마루야마 겐지의 책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는 귀농·귀촌을 위한 친절한 지침서가 아니다. 귀농·귀촌 위키리크스에 가깝다. 일본과 한국이라는 무대의 차이가 있지만 내용의 90%는 국경이 불필요한 이야기다. 나는 요즘 이 책의 9장 4절, '모임에 도시락 대 주면 당선' 이라는 대목을 경험 중이다. 한 발 더 깊숙하게 민낯의 시골을 경험하는 중이다. 하루에도 아홉 번의 암울함과 한 번의 희망을 느낀다. 마루야마 겐지는 책의 마지막에서 딱 한 줄, 그의 방식으로 창을 열어 놓았다.
진정한 빛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만 빛납니다.
진정한 감동은 현실의 고단함 속에서만 만날 수 있습니다.
떠밀려 시골로 옮기려는 사람,
친구 따라 시골로 옮기려는 사람,
시골에서는 매일 숯불 피우고 삼겹살 구워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저 푸른 초원에 지뢰가 얼마나 많은지 확인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마루야마 겐지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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