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정세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동북아 지역 전반에 거대한 권력의 지각변동이 전개됨에 따라 지정학이 이행기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동북아 정세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는 한반도 역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큰 시름에 직면해 있습니다. 동북아 이행기는 중장기적으로 전개될 것이기 때문에 중장기적 분석과 전망이 필요합니다. 사건이나 상황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거시적인 분석이 절실한 이유입니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 직속 동북아시대위원장을 역임하고 이후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장을 지낸 경남대학교 이수훈 교수와 함께 동북아 정세를 조망하는 [이수훈의 동북아시대] 연재를 시작합니다.
이수훈의 동북아시대는 일차적으로 동북아 지역 정세 변화를 객관적으로 살펴본 뒤 미·중 관계, 중·일 관계 등 주요 양자 관계를 점검할 예정입니다. 동시에 북핵문제, 영토갈등, 역사문제 등 핵심이슈들에 대한 끈도 놓지 않을 것입니다. 이같은 분석과 전망을 통해 평화와 공동번영의 동북아 지역 질서를 만들어가기 위한 한국의 선택과 전략 및 구체적 외교 방안을 제안할 것입니다.
북한의 서해 NLL 근방 해안 사격훈련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던 지난 3월 31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이수훈 교수 연구실에서 이수훈 교수와 박인규 <프레시안> 이사장의 첫 대담이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연설에 포함된 대북 제안이 상대방인 북한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상대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해상사격과 미사일 발사에 이어 북한은 지난 30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핵시험도 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한반도에 4차 핵실험의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는 상황인데요. 이와 관련해 이 교수는 그간 북한의 행태를 봤을 때 4차 핵실험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여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6자회담의 중요성”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교수는 “6자회담 중단은 결국 북한의 핵 능력이 증강되도록 방치한 것이나 다름없다”라며 “6자회담 재개나 비핵화를 위해 좀 더 체계적이고 심각하게 노력했어야 하지 않나”라고 반문했습니다. 북핵을 해결하려는 어떠한 수단도 사용하지 않은 것이 결국 북한의 핵 능력을 증강시켰다는 분석입니다.
한편 지난주에는 헤이그 핵안보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일 3국 정상이 한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이 회담에 대해 이 교수는 한일 양국의 정상이 취임 이후 처음 만났다는 외교적인 의미는 있지만 내용적인 측면으로 보면 오히려 한일 간 갈등을 확인하는 자리였다고 평가했습니다. 게다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독일을 방문한 자리에서 중·일 간 뇌관인 난징 대학살을 거론하면서 동북아를 둘러싼 과거사 문제는 지금보다 증폭될 우려가 있다고 진단하기도 했습니다. 다음은 대담 주요 내용입니다. <편집자>
프레시안 : 헤이그 핵안보 정상회의에서 미국의 중재 아래 한미일 3국의 정상이 모였다. 이번 회담이 한미일 동맹을 재확인하는 자리가 됐다는 분석도 있지만 한미일 3각 군사동맹이 부활하면서 한반도 긴장과 갈등이 고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한미일 3자 정상회담의 성격과 의미를 진단해 본다면?
이수훈 : 한일 양국 정상이 취임 후 1년이 넘도록 냉랭한 관계를 유지하는 속에 정상회담도 열지 못하다가 미국의 중재 하에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는 것은 외교적 의미가 있다. 그런데 한일 관계 차원에서 보자면 양국 정상이 마주 앉았다는 것 외에 별다른 의미가 없다. 한일 관계가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는 모멘텀을 얻었다고 평가할 만한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오히려 현재 양국의 냉랭한 관계를 다시 한 번 확인한 것 아닌가 싶다.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의 성사 배경이 한일 간 문제를 풀어보려는 의도보다는 크림 반도의 러시아 귀속 문제로 촉발됐다는 점을 생각해 보더라도, 이번 회담으로 한일 관계의 모멘텀을 만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크림 반도 귀속 문제는 동북아 정세와 뗄 수 없는 상황에서 전개됐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에 시사하는 바도 적지 않다. 이를 당시 정상회담과 연결시켜보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러한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3국 간 정상회담이 필요했을 것으로 본다. 국내정치적으로도 그렇고 국제 외교무대에서도 크림 반도의 러시아 귀속은 오바마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 이렇듯 사면초가에 빠진 오바마가 돌파구를 찾은 것이 바로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이라고 본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회담의 최대 수혜자는 오바마라고 생각한다.
내용적인 측면을 살펴보면,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는 북핵문제와 비핵화였다. 미국은 회담에서 과거 자신들이 견지했던 입장보다 한층 더 강경한 태도로 나왔다.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만나서 북핵 6자회담을 재개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건을 조율하기로 합의했다는 내용이 나오면서 잠시나마 6자회담 재개에 대한 기대가 있었지만, 한미일 3자 회담에서는 이전보다 더 강한 북한의 선제적인 조치를 요구하면서 3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 간 후속 회의를 개최한다는 정도의 결과가 나오는 것에 그쳤다. 결국 북핵 문제에 대해 진전된 것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북한이 30일 외무성을 통해 성명을 발표한 것도 이러한 회담 결과에 대한 반응의 성격이 있다고 본다. 여전히 한미일이 북한에 핵을 포기하라는 메시지만 준 셈이니까 북한 입장에서는 강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프레시안 : 오바마의 4월 동아시아 순방 계획 초기에 한국은 순방 대상국에서 빠졌다가 다시 들어갔다. 정확한 인과관계는 알 수 없으나 한국이 이 회담에 참석한 것은 오바마의 ‘방한’이라는 선물을 받기 위해 양보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수훈 : 오바마 방한과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이 명확하게 인과관계에 따라 진행된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전혀 관계가 없다고 말하기도 힘들다고 본다. 회담에서 논의된 내용들을 보면 미국과 일본은 북핵에 대해 많은 요구를 했다. 또 중국 견제와 미사일 방어체제(MD) 등 자신들의 어젠다를 이야기했다. 이런 측면에서 두 가지의 이벤트가 관계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또 오바마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위에 나온 문제들을 논의하면서 국내정치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외교적 성과를 충분히 마련했다고 본다. 물론 회담 내용을 보면 미진하기 짝이 없지만,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수준의 내용은 나온 것이다.
프레시안 : 아베 입장에서는 악화됐던 한일 관계를 일단은 봉합했다는 성과를 남긴 것 같다. 아베도 이번 3국 정상회담에서 일정 부분 득을 봤다고 볼 수 있는데 우리는 어떤가? 일부에서는 앞으로 아베가 과거사를 부정하는 발언은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이라며 한일관계 악화를 막았다는 시각도 있는데?
이수훈 : 일단 이번 회담은 일종의 이벤트성 성격이 강했다. 또 한일 관계의 중요성을 생각해봤을 때 주판알 튕기듯이 득실을 따지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의문이 든다. 다만 이번 회담을 계기로 한일 양자 회담도 열리고 한일 관계를 개선하는 하나의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이번 정상회담이 미국의 중재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미국의 이러한 중재 역할은 역외 세력으로서 바람직한 행위였다고 본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중재로 한미일 3각 군사동맹이 강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데, 이 역시 일리 있는 지적이긴 하지만 전통적 의미에서 동아시아 안정자 및 역외 균형자 역할을 했다는 측면도 있기 때문에 높게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동북아에는 여러 갈등 요소들로 인해 국가 간 냉랭한 관계가 지속되고 있고 풀릴 조짐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이처럼 동북아 정세가 구조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에서 이를 순화시킬 행위자가 필요한데 그 행위자가 미국이었고, 그러한 균형자적인 역할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프레시안 : 동아시아가 불안정하고 갈등이 깊어지는 원인으로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과거사 문제, 또 하나는 북핵문제다. 과거사 문제는 한미일 정상이 한자리에 앉으면서 더 이상 악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그런데 북핵 문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북핵과 관련해 진전된 사항이 있다고 봐야 하나?
이수훈 : 우선 과거사 문제가 악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은 조금 섣부른 것 같다. 시진핑 주석의 발언으로 중·일 간 과거사 문제는 더 심각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베를린에서 쾨르버 재단의 주관으로 공개 강연을 가진 시 주석은 난징 대학살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당시 난징 대학살에서 30만 명에 이르는 중국인들이 “희생당했다”, “도살당했다”라고 표현하며 중국의 피해를 강조했다. 여기서 30만 명이라는 수치는 사실 중국의 역사학자 또는 정치적 뉘앙스를 담은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중국의 지도자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드러내놓고 밝힌 것이다. 중·일 간 관계를 생각할 때 시 주석의 이날 발언은 레드라인을 넘은 사건이라고 본다. 메가톤급 파장을 가져올 것이다.
또 시 주석의 이날 발언은 기존의 중·일 관계 관례를 비춰봤을 때 공식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역사에 남겨둔다는 일종의 무언의 합의가 있었던 사항이다. 중·일 간 잘 관리했어야 할 민감한 부분을 시 주석이 건드린 것이다.
2010년 후진타오가 중국의 핵심이익이라며 영토주권을 강조한 바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당시 센카쿠 열도(尖角列島, 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를 둘러싼 영토 갈등이 생겼는데, 이번 시 주석의 발언은 이것에 버금가는 발언이다. 이로 인해 앞으로 동북아에서 중·일 간 갈등이 노골적으로 부딪히는 단계로 진입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우리의 입장도 곤란한 상황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중국이 “우리가 너희들 안중근 의사 기념관 짓는 거 도와줬잖아. 이번엔 우리 도와줘야지”라고 요구하면 우리는 딱히 거절할 명분이 없다. 중국의 요구를 들어줘서 중국과 함께 과거사 문제에 보조를 맞추는 상황이 되면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을 통해 조금이나마 봉합을 시도하고 있는 한일 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북핵 문제는 동북아의 뇌관이기도 한데, 그 폭발력이나 해결의 어려움, 구조적인 차원에서 보면 북핵 문제는 역사 문제와 거의 동급이라고 본다. 그런데 이번에 이 두 문제가 같이 터진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우리가 핵 안보를 위해 헤이그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을 하는 와중에 북핵 및 과거사 관련한 문제들이 터졌다는 것이다. 역사상 동북아라는 배가 최근과 같은 난기류를 만난 적은 거의 없었다. 현 상황은 대규모의 폭풍, 즉 동북아라는 배가 난파할 수 있는 정도의 폭풍이 예고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프레시안 : 헤이그 정상회담에서는 미·중 정상회담도 열렸다. 유의미한 성과가 있다고 보나?
이수훈 : 아쉬운 부분인데 미·중 간 입장 차이가 많았다. 미·중 관계가 ‘적어도 올해는 순탄하게 흘러갈 수 있겠다’라고 전망할 근거가 거의 없었다. 한미일 정상회담도 그렇고 한중,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북한 비핵화 문제에 대해 중국의 역할을 주문했는데, 이것은 좀 성숙치 못한 요구라고 봐야한다. 왜냐하면 중국은 중국대로 그 주문에 응하는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미일이 “그건 우리와 맞지 않다”면서 중국의 노력을 전혀 평가하지 않았다. 그들의 주문에 의해 중국이 노력한 것인데 그것을 제대로 평가해주지 않은 것이다.
이러다 보니 중국이 어떤 방식으로 대북 중재외교를 펼칠 수 있겠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이런 측면에서 중국과 미·일 간 노선 차가 상당히 크다고 본다. 이렇게 해서는 동북아에 상존하는 대립·갈등을 헤치고 나가기 힘들다.
드레스덴 선언, 북한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이 현지시간으로 28일 드레스덴 공대에서 연설을 통해 남북관계와 통일에 대한 구상을 밝혔다. 그런데 이번 선언에는 비핵화가 다소 강조돼있는 것 같다.
이수훈 : 비핵화를 해야 교류협력을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했는데, 적어도 교류협력과 북한의 비핵화 문제 해결을 투트랙으로 가야 한다고 밝힌 것으로 보인다. 비핵화에만 매달리면 드레스덴에서 밝힌 교류협력은 하기 힘들어진다. 병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 다른 해석으로는 그간 박 대통령의 발언이나 정부의 입장을 종합했을 때 북핵이 해결돼야 나머지 교류협력사업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투트랙이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고 해도 현 정부가 북한의 비핵화 문제에서 일정한 진전 없이 독자적으로 교류협력만 속도를 낸다는 입장을 가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프레시안 : 인도적 지원과 남북 경제협력 등을 이야기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이수훈 : 이번 연설에는 일종의 백화점식으로 많은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그런 내용들이 담긴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북한이 연설이 끝나자마자 해안포를 쏘고 있고 박 대통령에 대한 비방도 이어가고 있다. 또 핵실험까지도 새로운 형태로 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북한이 핵실험을 예고한 셈인데 그동안의 패턴이나 북한이 압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현재 상황들을 봤을 때 북한은 4차 핵실험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다.
일종의 통일 정책 및 방안이라고 할 수 있는 드레스덴 선언에 대해 ‘우리가 보기에는 좋은 내용들이 들어가 있는데 왜 상대방이 여기에 찬물을 끼얹는 대응을 했을까’를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가 통일 방안의 한 파트너인 북한의 대한 인식이 너무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나 싶다. 북한이 진짜 원하는 것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정책의 파트너로 생각한다면 그 파트너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 있어야 하고 분명한 분석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박 대통령이 이번 연설에서 북한에 ‘복합 농촌 단지’를 함께 만들자고 했는데, 북한이 지금과 같은 정세에서 그러한 사업들을 정말 원할까? 북한은 스스로를 핵도, ICBM(대륙 간 탄도미사일)도 갖고 있는 강성국가라고 인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농촌단지와 같은 교류협력만 이야기한 드레스덴 제안은 북한에 통하기 쉽지 않다.
통일 정책이라고 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정책이기 때문에 우리 입장에서는 통일 정책이 곧 대북정책이다. 북한이 이런 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일지에 대한 정책적 검토가 있어야 한다. 현 정부의 통일 정책이 일방통행식인데, 상대는 어떨지를 생각해보고 접근해야 드레스덴 선언과 같은 대북 제안이나 구체적인 프로젝트들도 수용되고 이를 기반으로 실무적 회담까지 끌고 갈 수 있는 것이다.
프레시안 : 최근 사실상 민간 교류가 잘 안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여기에 한미는 상륙 작전을 염두에 둔, 북한으로서는 도발로 볼 수밖에 없는 쌍용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말로는 통일을 이야기하면서 행동은 이런 식으로 하고 있는데, 이 모든 것들이 6.4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이수훈 :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정부가 교류협력을 하겠다고 선언했으면서 정작 교류는 잘되지 않는 모순적 현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남북 교류협력을 제대로 하지도 안하는데 협력사무소를 개설하겠다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한미연합 군사훈련을 포함해 안보를 소홀히 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미국과 군사 동맹을 맺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들이 북한과 교류협력을 하는 데 있어서 남한에 내재돼있는 구조적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문제는 이런 것을 어떻게 지혜롭게 관리하면서 진행시킬 수 있는지 여부다. 훈련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지 않고 조용히 할 수도 있지 않은가.
국내 정치와 연관성도 일정 부분 있다고 본다. 대통령도 정치인이라는 점, 특히 박 대통령은 선거를 많이 해 본 대통령이기 때문에 지방선거를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또 국내 정치가 남북관계와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전개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해 대선 당시 NLL 논란이 불거졌다는 점이 이를 아주 잘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 지방선거 예를 들어보면,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천안함 사건 같은 불행한 일도 있었고 이를 선거에 이용하려고 하는 정부 여당의 시도도 있었지만, 지금은 통일을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 효용이 어떻게 될지 좀 더 시간을 두고 따져 봐야한다. 다만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가운데 등장한 통일 담론의 정치적 효용은 일정 부분 발생할 것이다. 이것이 남북관계고 한반도 현실이라고 본다.
북한 미사일 이어 해안포까지··· 군사적 위협 이어가는 이유는
프레시안 : 북한은 현시점에서 한미일이 보조를 맞추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태가 4월 중순까지, 즉 김일성 생일인 태양절까지(4월 15일) 가지 않겠냐고 전망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교류협력만 이야기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아니면 북핵 문제와 관련해 일정한 진전이 있어야 다른 문제가 풀린다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하는 것인가? 박근혜 정부의 행보를 어떻게 보고 있나?
이수훈 : 한국의 동북아 외교는 남북관계를 잘 관리하면 나머지를 비교적 순탄하게 풀어나갈 수 있다. 그렇지만 남북관계가 꼬여있으면 굉장히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든다. 지난 2월 14일 남북 간 고위급회담을 성사시키고 이산가족 상봉 합의했음에도 뭔가 잘 안 되고 있는데, 이는 북한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우나 고우나 북한을 우리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협상·대화·회담할 상대로 본다면 저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략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다각적인 인식을 할 수 있다. 이런 것을 하면서 통일대박론 이야기하고 통일준비위원회 만들고 해야 한다. 이런 흐름을 타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그 흐름을 타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우선 북한이 핵실험을 한 번 하면 남북 간 교류협력·협상·대화할 모멘텀이 다 없어져 버린다. 지금이라도 드레스덴 선언의 후속조치를 마련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북한에 대한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인식의 변화가 없다면 아무리 뭘 한다고 해도 그것은 상대방이 배제된 가운데서 벌어지는 일방적인 담론이기 때문에 호응을 얻기가 어려워진다.
프레시안 : 한국이 북한을 대등한 협상 파트너로 끌어낸다고 해도 결국 핵문제는 미국이 나서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현재 미국 입장에서는 북핵 문제가 ‘대중공세’라는 측면에서 굉장히 좋은 명분이고 빌미가 될 수 있는 것 같다. 더 나아가면 미국이 북핵이라는 좋은 구실을 포기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북핵 문제는 북한이 스스로 뚫고 나오지 않으면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는데?
이수훈 : 현실적으로 미국이 북핵이라는 좋은 구실을 포기하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갖고 있는 레버리지가 상당히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한국 대통령이 움직이면 미국, 일본, 중국 모두 움직일 수 있다. 북한도 고위급회담을 통해 대화의 장으로 끌어낼 수 있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동력은 한국에 있다.
일각에서는 우크라이나의 크림 반도가 러시아에 귀속되는 것을 보고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와 북한의 핵은 성격이 많이 다르다. 우크라이나에 있던 핵무기는 소련이 개발한 핵무기를 배치한 것이다. 소련이 해체된 후 더이상 핵을 배치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해서 폐기한다고 합의가 된 것이다. 그래서 1994년 부다페스트에서 우크라이나, 미국, 러시아, 영국 정상이 모여 우크라이나의 영토, 주권 보장 및 경제지원을 해준다는 3가지 조건을 걸고 양해각서를 체결하면서 핵이 폐기된 것이다. 이는 마치 우리가 전술핵무기 갖고 있다가 비핵화 선언을 하면서 미국이 가져가도 되겠다고 한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북한의 경우는 좀 다르다. 온갖 국제적 압박과 제재를 뚫고 부족한 자원을 동원해서 천신만고 끝에 갖게 된 핵폭탄이다. 따라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우크라이나와 비슷한 방식을 쓸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크림 반도의 러시아 귀속이 북한으로 하여금 ‘저런 일도 일어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한 것 같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보면서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이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약소국이 자신을 지킬 아무런 수단이 없으면 강대국들이 저렇게 쳐버린다는 것을 느꼈다는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이라크부터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중국이든 남한이든 자신들을 병합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을 것으로 본다. 체제 안보라는 측면에 대해 더 불안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된 것이다.
프레시안 : 그럼 우리 입장에서는 북한이 4차 핵실험까지 가는 것을 막으면서 대화 모멘텀을 만들어 내는 것이 급선무인가?
이수훈 : 과거 북한 핵실험을 돌이켜보면 중국이 대화로 문제를 풀려고 많이 노력했지만 별다른 효과는 없었다. 그런데 지금도 중국 외에는 북한에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국가가 없다. 문제는 북한은 핵실험과 관련해서는 중국 이야기도 듣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자신들의 방식대로, 예고대로 갈 가능성이 높다.
이래서 6자회담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여기서 얻어야 한다. 이번에 북한이 새로운 형태의 핵실험이라고 해서 수소폭탄이다, 우라늄이다 라면서 다양한 예측을 하고 있는데 6자회담이 가동됐으면 적어도 북핵이 관리는 됐을 것이다. 6자회담을 열지 않아 북한의 핵시계가 계속 돌아간 것 아닌가. 플루토늄이 계속 생성되고 있고.
6자회담 중단은 결국 북한의 핵 능력이 증강되도록 방치한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북한이 핵을 가지려는 것은 좋은 시도는 아니지만, 6자회담이라든지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노력을 좀 더 체계적이고 심각하게 해야 했지 않나 싶다. 여기에 소홀했던 점이 오늘과 같은 결과로 나타난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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