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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곤 표 무상버스', 공영제 도입 없이는 반쪽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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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김상곤 표 무상버스', 공영제 도입 없이는 반쪽짜리

[박점규의 동행]<26>준공영제는 버스업자에게 퍼주기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무상버스 논쟁이 뜨겁습니다. 혁신학교와 무상급식으로 유명해진 김상곤 교육감이 경기도 지사에 출마하면서 제기한 무상버스가 일거에 6.4 지방선거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여당과 보수 신문들은 ‘나라 거덜 내는 공짜 버스, 경제 망치는 공짜 버스’라며 총공세를 퍼붓고 있습니다. 야당 내에서도 버스공영제라는 의제가 ‘공짜’ 논쟁으로 번진 것과 실현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최대의 논쟁과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민주버스협의회 박상길(43) 의장은 버스 노동자들의 오랜 숙원인 버스공영제가 지방선거의 핵심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이 반갑습니다. ‘공짜 버스’ 논쟁도 좋습니다. 제대로 토론이 이루어진다면 대중교통의 공공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버스공영제와 무상버스 논쟁이 반가운 이유

박상길 의장은 15년 전인 1999년 9월 서울버스에 입사해 마을버스부터 시작해 시내버스와 공항버스를 운전하면서 버스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송파구 장지동에서 혜화동까지 가는 63-1번 버스(현재 301번 버스)와 천호동에서 인천공항으로 가는 606번(현재 6006번) 공항버스가 그의 오랜 벗이었습니다.

지금은 서울에 버스 중앙차로가 만들어지고, 준공영제를 실시하면서 많이 달라졌지만 예전에만 해도 버스 운전은 한마디로 전쟁이었습니다. 회사는 출퇴근 시간에 ‘마당 배차’를 했습니다. 버스가 차고지로 들어오면 쉬지 않고 바로 내보냈습니다. 1분 배차, 2분 배차로 차를 ‘잡아’ 돌렸습니다.

버스 기사는 돈을 많이 벌어 와야 했습니다. 출퇴근 시간에 어떤 정류장에서 승객들이 많이 타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다른 회사 버스보다 먼저 가기 위해 곡예 운전을 했습니다. 이 때문에 신호 위반을 한 적도 적지 않았습니다. 버스 교통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 김상곤 경기도지사 예비후보(전 경기도 교육감)와 원혜영 예비후보(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연합뉴스

승객의 안전을 담보로 곡예운전을 했던 시절

승객의 안전을 담보로 무리하게 운전하며 돈벌이를 해야 하는 풍경은 이제 서울에서 많이 사라졌습니다. 2004년부터 시행된 서울시 버스 준공영제 때문입니다. 당시 시내버스 회사들 중에 80%가 적자였고, 황금 노선을 가진 20% 정도만 흑자였습니다.

서울시는 중앙차로를 만들고 버스노선을 조정하면서 회사들에 버스를 한 대 운행할 때 들어가는 유류비와 인건비 등 표준운송원가의 부족분 전액을 보조해 주었습니다. 초기에는 혼선이 있었지만 준공영제가 안착하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출퇴근 시간 1~2분 간격이던 배차 시간은 4~7분 간격으로 바뀌었습니다. 다른 업체와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되고, 곡예운전이나 신호위반을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전쟁이 사라졌기 때문에 버스기사는 친절해졌습니다. 서울버스는 안전하고 친절한 버스가 되고 있습니다.

준공영제는 버스 노동자들의 삶도 바꾸어놓았습니다. 무엇보다 임금 체불이 거의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서울시가 개입해 버스 회사들이 돈을 떼어먹기 어려워진 것입니다. 일주일은 오전, 일주일은 오후 근무를 하면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지 않아도 됩니다.

학자금을 비롯한 복지도 좋아졌습니다.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60세 정년까지 보장되고, 65세까지 촉탁직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마을버스와 임금 차이가 70~80만 원가량 나니까 한 버스회사 대표이사는 대놓고 마을버스 기사들에게 500만 원씩 내놓으라고 하기도 하고, 뇌물을 주고 입사하려는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안전한 버스, 안정된 일터로 변한 서울 버스

서울에서 시작한 준공영제는 인천, 대전, 광주, 대구, 부산 등 6대 광역시로 확산됐습니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의 핵심 화두가 된 경기지역은 여전히 버스 민영제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경기도도 유류보조금, 적자 및 환승보조금 등을 지급하고 있지만 전액을 보조해주지는 않고 있습니다.

경기도 부천에 소신여객이 있습니다. 84년 전인 1930년에 만들어진 버스회사로 부천을 중심으로 31개의 노선을 운행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구조조정과 임금삭감이 이루어졌습니다.

900명에 달하던 인원은 702명으로 줄어들었는데, 150명 가까운 비정규직 노동자가 쫓겨났습니다. 정규직 노동자들도 임금 10%와 상여금 20%가 깎였습니다. 한국노총 자동차연맹을 탈퇴하고 민주노총 서울·경기지역버스지부에 가입한 13명의 노동자들이 싸우고 있습니다.

서울에서는 비정규직 버스기사가 거의 없지만 경기에서는 소신여객뿐만 아니라 부천버스 등 많은 버스회사에서 1년 계약직으로 버스기사를 채용하고 있습니다. 노동 강도도 심각합니다. 서울과 달리 경기는 격일 근무 또는 3일 근무 후 이틀 휴무 방식이어서 장시간 근무로 졸음운전 사고가 많습니다.

수원에서 사당과 화성을 운행하는 경진여객에서 살인적인 노동조건을 강요하는 바람에 운전기사들과 승객들이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고 폭로한 뒤 해고된 박요상 씨는 지금 수원시청 앞에서 무기한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조금씩이나마 안전하고 친절한 버스로 변화하고 있는 서울, 인천시와 달리 경기도의 버스 승객들은 안전을 위협받고 있고, 노동자들은 고용 불안과 임금 삭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연합뉴스
고용 불안과 임금 삭감에 시달리는 경기도 버스 노동자

전국에는 30만 명에 달하는 버스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는 8만 명이고, 한국노총 전국자동차연맹에 7만7000명, 민주노총 민주버스협의회에 3000명이 소속되어 있습니다.

이들을 고용하고 있는 버스 회사들의 규모는 200~300명 정도가 가장 많지만 소신여객처럼 ‘버스 재벌’도 많습니다. 서울의 경우 4개의 버스회사를 소유하고 있는 흥안과 신성, 경기도의 대원(KD), 인천의 선진 등은 1000~2000명 이상의 대자본입니다. 자식들에게 대대로 물려주며 가족경영을 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씨가 서울시장과 대통령 임기에 한 일 중에서 유일하게 잘한 일로 평가되는 버스 준공영제는 민영제에 비해 훨씬 나은 것은 분명하지만, 노동자 서민의 세금으로 버스업자들만 좋은 일을 시키는 반쪽짜리 정책입니다.

준공영제는 민간 회사가 노선 소유권을 갖고 버스를 운영하고, 지방정부는 노선을 관리하고 표준운송원가의 부족분을 시민의 세금으로 메워주는 제도입니다. 버스 공영제는 정부나 지자체가 버스와 노선을 소유하고, 버스를 직접 운영하는 체제입니다.

서울시는 공적인 성격의 버스 노선을 버스 업체의 사적 재산권으로 인정해주면서 노선 조정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연간 2000억 원 이상을 버스 회사에 갖다 주고 있습니다. 버스회사들이 보조금을 많이 받기 위해 연례행사처럼 ‘자본 파업’을 하거나 파주에서처럼 노선버스를 갑자기 폐지하는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준공영제이기 때문입니다.

버스업자 배만 불리는 반쪽짜리 버스 준공영제

경기도지사 후보인 원혜영 의원은 "준공영제는 버스업자들에게 돈 대주면서 공익 서비스를 해달라는 것에 지나지 않고 '공적 통제' 없이 시민의 세금만 퍼주는 어리석은 정책"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김상길 의장도 같은 생각입니다. 버스업자들이 이윤을 과도하게 책정하고, 적자폭을 부풀려 보조금을 더 받아가고, 장부상 직원을 만드는 등 비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도 준공영제에 있습니다. 지하철, 철도와 마찬가지로 버스 공영제를 통해 안전하고 저렴한 버스를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버스가 잘 다니지 않는 시골이나 산간에도 운행 횟수를 늘리고, 학교나 마을회관, 병원 등을 오가는 버스를 운행할 수도 있습니다. 경기도의 화성공단처럼 버스가 잘 다니지 않아 ‘울며 겨자 먹기’로 차를 구입해야 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출퇴근 시간 대에 버스를 집중적으로 배치할 수도 있습니다. 버스 공영제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전남 신안군은 2007년 임자도를 시작으로 지난해 군 전체로 버스 공영제를 시행했습니다. 14개 버스회사를 인수하고 65세 이상 주민들이 무상으로 버스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의 여러 도시, 미국 뉴욕과 캐나다 토론토 등에서도 버스 공영제와 무상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김상곤 후보는 지난 20일, 2015년부터 65살 이상 노인과 초·중학생부터 시작해 무상버스를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버스공영제와 병행해서 추진하지 않으면 버스 업자들의 배만 불리고, 그들의 권력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버스공영제 없는 무상버스는 버스회사 권력만 비대해져

박상길 의장은 버스 노동자들이 오랜 세월 동안 요구해왔던 버스 공영제 논의가 6.4 지방선거에서 활기차게 논의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걱정도 있습니다. 서울시는 현재 버스가 7500대 정도 되는데 너무 많아서 1500대 정도는 줄여야 한다고 합니다. 공영제가 될 경우 구조조정과 비용절감을 이유로 인원을 감축하고 비정규직을 확대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경기도의 버스 노동자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안전하고 친절한 버스는 불안정하고 나쁜 일자리인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양립할 수 없습니다. 박상길 의장은 대중교통의 공공성을 확대하는 버스 공영제와 안정된 일터에서 일하는 버스 노동자가 만날 때 안전하고 친절한 버스가 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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