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은 왜 볼까? (1) 책을 보지 않고도 아는 체 하려고. (2) 책을 주제로 한 이야기가 좋아서. (3) 살까 말까 망설이고 있어서. (1)과 (2)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을 위한 글은 아래 있으니 차근차근 보시면 된다. (3)의 사람을 위해 우선 짧게 답을 하고자 한다.
뒤로 갈수록 난이도가 높아져서, 절반을 지나면서부터는 역사책임에도 브라이언 그린이 쓴 <우주의 구조>(박병철 옮김, 승산 펴냄)의 난이도를 넘나든다. (넘어가기도 한다는 점에 유의!) 하지만 앞부분은 웬만한(?) 사람이면 이해가능하다. 물리 관련 분야 전공자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데, 스핀의 발견 과정 같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까지 꼼꼼히 다루었기 때문이다.
결론: 고민 말고 일단 구매하시라. 뭐 양자역학 책이 언제 아주 쉬운 거 봤나? 이런 서평까지 뒤적일 사람이라면 사는 것이 맞다.
자, 그럼 이제 본격적인 '서평스토리'다.
나는 <양자역학의 세계>(가다야마 야수히사 지음, 김명수 옮김, 전파과학사 펴냄)라는 대중과학서를 읽고 물리학에 뛰어든 사람이다. 지금 보면 정말 허름한 책이지만,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의 마음을 빼앗아버리기에 충분했던 모양이다. 그 이후 지금까지 양자역학을 공부하며 살고 있다. 그래서일까. 양자역학관련 대중서적이 나오면 한번 훑어보는 버릇이 있다. 물론 그러다가 사버리는 일도 다반사다. 최근 양자역학 관련 책들이 부쩍 많아졌다. 불확실성의 시대라 그런가, 아니면 양자정보의 시대라 그런가.
어렵기로 악명 높은 양자역학을 공부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일반인에게는 역사적 흐름을 따라가며 배우는 것이 가장 쉬운 길이다. 사실 전 세계 물리학과에는 '현대물리'라는 희한한 과목이 있다. 보통의 물리학과 과목은 어디서 긁어모았는지 온통 어려운 내용만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초인적인 노력으로 공부해도 따라가기 힘들다. 수업을 들을수록 아는 것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이 많아진다고 투덜거렸던 기억도 난다. 하지만 '현대물리'는 주로 양자역학의 역사나 훑어보는 한가한 과목이다. 양자역학이 주는 충격이 너무 심하므로 그 이유를 학생들에게 설명하는 거라 하겠다. 정말 힘들고 괴롭겠지만, 우리도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단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퀀텀스토리> 1부는 양자역학탄생 이전의 암중모색을 다룬다. 양자역학은 여타의 과학과 마찬가지로 뒤죽박죽 좌충우돌하는 가운데 그 모습을 조금씩 갖추어간다. 1905년 아인슈타인은 빛을 입자로 간주하여 광전효과를 완벽하게 설명했다. 하지만, 1920년대 초까지 대부분의 물리학자는 빛의 입자설을 믿지 않았다. 보어는 양자화조건을 발견하여 돌파구를 만들었지만, 나중에는 에너지보존법칙을 버려야한다고 주장하다 된서리를 맞는다. 조머펠트는 수소보다 복잡한 원자에서 보어의 이론이 거의 쓸모없음을 깨닫는다. 슈뢰딩거는 자신의 파동역학이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과 수학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을 증명하지만, 하이젠베르크는 파동역학을 쓰레기라고 비난한다.
이 좌충우돌의 과정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걸 보지 않고는 왜 양자역학이 그렇게 괴상한 형태로 되어 있는지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놔, 이렇게까지 해보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어. 미안하다." 바로 이게 요점이다.
2, 3부는 이 책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한 '해석논쟁'을 다룬다. 양자역학이 탄생한 직후 혼란은 극에 달하게 된다. 이론이 완성되었음에도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지를 두고 물리학자들 사이에 격한 논쟁이 오갔던 것이다. 서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비난하다가, 나중에는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두고도 싸울 지경에 이른다. 결국 아인슈타인은 신까지 들먹인다.
양자역학은 매우 인상적인 이론이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양자역학이 물리적 세계를 정확히 예견한다 해도, 자연의 비밀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신은 주사위놀음 같은 것을 즐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정론을 포기하고 확률로만 자연을 이해할 수 있다고 양자역학이 주장하는 데 대한 반발이다. 이 전쟁의 승자는 코펜하겐 해석의 지도자 보어였다. 슈뢰딩거와 아인슈타인은 각각 패러독스를 제시하며 양자역학의 불완전함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승자의 대열에 합류한다. 두 사람의 저주 때문일까? 이 두 가지 패러독스는 훗날 대형사고로 이어진다.
1960년대 초 입자물리학이 부딪힌 최대 문제는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입자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엔리코 페르미는 강의시간에 학생이 입자의 종류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그 많은 이름을 다 외울 수 있다면 물리학자가 아니라 식물학자가 되었을 걸세!"
"내가 그 많은 이름을 다 외울 수 있다면 물리학자가 아니라 식물학자가 되었을 걸세!"
이건 물리학자들의 미니멀리즘과도 배치되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다가 책을 집어던지고 싶은 유혹을 받을 수 있으니 주의요망이다. 그것은 물리학자들의 작명 센스가 형편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름을 보는 것만으로도 보통 사람들은 현기증을 느끼기 십상이다.
이런 것은 잘 피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만 챙겨보는 센스를 발휘해야 한다. 암튼 결국 쿼크라는 더 작은 기본입자가 도입되어 입자동물원이 정리되고, 표준모형으로 이 모든 것들의 특성을 이해하게 된다.
6, 7부는 슈뢰딩거와 아인슈타인이 던진 패러독스의 뒷이야기다. 이들이 주장하는 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것 봐. 양자역학은 이렇게 기괴한 결과를 준다고. 이래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 하지만, 결국 양자역학은 그렇게 기괴하다는 것이 밝혀진다. 양자역학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이상한 것이었다. 바로 결어긋남과 벨 부등식이다.
어쨌든 더 이상한 현상이 존재함을 알았으니 새로운 가능성이 생기게 된다. 이름 하여 양자정보, 양자컴퓨터 분야의 탄생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우리가 사는 우주가 유일한 우주가 아니라 평행우주가 있다는 데까지 도달한다. 6, 7부에서는 호킹복사, 초끈이론, 양자중력까지 다루고 있지만, 무리하게 너무 많은 내용을 다룬다는 느낌이다. 사실 이런 내용은 따로 책을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하지만 최근 양자정보 분야의 관심이 커지며, 벨 부등식과 결어긋남을 함께 집어넣는 흐름이 생겨나고 있다. <평행우주>(미치오 가쿠 지음, 박병철 옮김, 김영사 펴냄), <멀티 유니버스>(브라이언 그린 지음, 박병철 옮김, 김영사 펴냄)가 그런 예다. <퀀텀스토리>는 이런 경향의 결정판이라 할만하다. 덕분에 한 권의 책으로 양자물리, 입자물리, 양자정보, 양자중력의 역사 모두를 해결할 수 있다.
파인만은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과학의 역사를 통틀어 이 정도 정확도로 실험 결과를 예측해내는 이론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당분간 나오지 않을 거다. 아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지만, 가장 완벽한 이론. 대체 인간은 어떻게 이런 괴물을 만들게 되었을까? 이런 말을 듣고도 호기심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한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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