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파나이의 공정무역기구 PFTC의 의장 로메오 카팔라의 명복을 빕니다.
열흘 전 페이스북을 통해 필리핀의 공정무역단체 파나이공정무역센터(PFTC)의 의장인 로메오 카팔라가 총격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사건은 3월 15일 토요일 저녁 무렵 파나이섬 일로일로 주 오똔 군의 공설시장 앞에서 발생했다. 외국에 있는 부인을 대신해 91세의 장모와 저녁거리를 준비하러 나온 길에 닥친 불행이었다.
그의 죽음은, 아로요 정권기 악명 높았던 필리핀의 정치적 살인의 수법과 동일했다. 복면이나 헬멧으로 얼굴을 가린 오토바이를 탄 2명의 남성이 인접거리에서 머리에 두 번, 총격을 가했다. 총격 직후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사망선고 뿐이었다. 범인은 아직 윤곽도 잡히지 않은 상태다.
필자는 지난 번 <프레시안>의 다른 지면을 통해 PFTC의 설립자인 루스 살리토라는 여성에게 씌어진 '내란음모’ 사연을 소개하며, 한국의 공정무역 운동인 착한 무역을 넘어서 연대를 위한 노력을 좀 더 해보자고, 그 사회의 정치사회적 문제들도 함께 보자고 제안한 바 있다.(관련기사 : '착한 설탕' 팔다 '내란 음모'로 엮인 기막힌 사연)
다행히 유럽과 한국의 공정무역단체들의 지원이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겠으나, 루스에게 덧씌워졌던 내란음모 사건은 (물론 아직 끝난 것은 아니지만) 연말연초를 별 일 없이 보내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듯 했다. 이제 파나이에서 큰 불상사는 없겠거니 생각했는데, 로메오 살해사건은 주민조직화를 위해 노력하던 현장 활동가들에 대한 공격이 파나이에서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충격적으로 절감케 했다.
필리핀에서의 정치적 살인은 매우 악명이 높다. 이 비사법적인 살인사건들은 아로요 집권 이후 급작스럽게 증가했다. 그녀가 집권한 후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적극 지지와 필리핀판 테러와의 전쟁인 '반란예방 프로그램(Counter-Insurgency Program)'을 선언한 직후부터 죽음의 행렬은 이어졌다. 2010년 인권단체의 진상위원회가 밝힌 정치적 살해와 실종 사건, 그리고 경찰과 군에 의해 강제구인 및 고문 사건까지 합치면 2001~2010년 사이 총 1200건이 넘는다. 일주일에 2~3건씩 필리핀 각지에서 이런 사망사건이 아로요 집권 10년 동안 이어져왔던 셈이다.
이렇게 희생된 사람들은 진보 진영의 정치인, NGO 활동가, 언론인, 인권운동가들이었다. 생명은 소중하다며 피임과 낙태를 제한하는 카톨릭국가 필리핀인데, 어느덧 이 죽음의 리스트엔 성직자들도 포함되기 시작했다. 주로 지방에서 발생했던 정치적 살해는 2005년을 기점으로 마닐라 인근에서도 발생하기 시작하면서 2006년에 정점에 달했다.
죽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건 발생 직후에는 지방의 보수적인 일간지들이 "살해당한 사람들이 사실은 신인민군(NPA; New People's Army) 혹은 필리핀 남부 다바오 섬의 산악지대를 근거로 활동하는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 Moro Islamic Liberation Front)과 관련이 있다"는 확인할 수 없는 기사를 내보내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2차적 가해도 이어졌다. 로메오도 마찬가지이다. 지방의 보수적인 일간지들은 "파나이섬 NPA 그룹의 숨겨진 지도자, 카팔라의 죽음"이란 타이틀을 단 기사를 버젓이 내보내며, 고인과 PFTC에 대한 2차 공격을 자행하기도 했다.
필리핀에서의 비사법적 살인 사건의 희생자와 발생빈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자 국제사회의 수많은 인권단체들, 나아가 UN과 최고의 우방국인 미국 정부마저도 일련의 살인사건을 멈추기 위한 노력을 필리핀 정부가 방기하고 있다고 공식 비난하였다. UN차원의 특별수사관이 파견되기도 했는데, 그의 보고서에는 "죽음의 상당수가 정부의 반란예방 프로그램과 연계되어 있음"을 시사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국내외 시민사회와 우방의 압력의 심해지자 2006년 아로요 정부도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겠다는 대통령 긴급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조사위원회는 1년 간의 활동 끝에 인정된 114건의 저격사건 중 절반정도를 기각하고 58건만 정치적 살인으로 인정했다. 저격혐의로 체포된 범인은 단 3명에 불과했다. 조사위원회 발표 직후 필리핀군은 "반란예방 프로그램은 성공적이며, 중부와 남부 산악지대의 공산반군의 활동이 눈에 띄게 줄었음"을 자랑스럽게 발표하였다. 이 와중에도 죽음의 행렬은 이어져갔고, 군은 2010년 아로요의 퇴임 직후 이 프로그램을 중단한다고 발표하였다.
정치적 살해의 배후에는 전직 대통령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가 있다. 필리핀 정계의 난맥상을 보려면 아로요만큼 좋은 샘플이 없다. 전직 대통령의 딸인 그녀는 부통령으로 선출되었지만 에스트라다 대통령이 부정부패 혐의로 탄핵된 뒤 대통령직을 승계, 재선을 거쳐 총 10년간 권좌를 누렸다. 재임기간 중엔 반민중적 신자유주의 드라이브로 인심을 잃어갔는데, 그 와중에 부정선거, 선거자금 유용, 뇌물수수 등 온갖 비리와 추문도 끊이지 않았다.
대통령 임기를 1년 앞두고 정계은퇴도 아니고 하원선거 입후보를 선언했는데, 논란이 있었지만 퇴임 한 달 전 선거에서 승리하더니 대통령직 인수인계가 끝나자마자 하원의원직 수락 선서를 하는, 정말 이해하기 난감한 정치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2011년엔 재임 중 비리사건 중 일부의 전모가 드러나 법원의 체포영장이 발부되었고, 휠체어에 앉아 출국을 시도하다 체포되는 모습이 생중계되기도 했다. 이렇게 그녀도 권불십년인가보다 싶었는데, 그녀가 간 곳은 감옥이 아니라 병원이었다. 희귀병을 이유로 7개월 가까이 병원에 누워 비난여론이 가라앉기를 기다렸을 뿐이다. 2012년에도 공금유용 논란이 번졌지만 그녀는 2013년 5월 중간선거에서 팜팡가 하원의원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또다른 논란이 번질 조짐이 보이자 지난 12월 다시 병원행을 택했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후속보도가 없는 것으로 보아 그녀의 무법자적 질주를 끝낼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리틀 아로요'들이 필리핀의 곳곳을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선출직 단체장과 상하원 의원은 지역별 세도가의 가족들이 나눠서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지역의 군, 경찰, 검사 측들과 갖가지 이해관계로 얽히고설켜 있으나 그런 상황은 개선의 기미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딱딱하게 구조의 일부가 되어 있다.
아로요는 물러났지만, 정치적 살인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필리핀의 인권단체 카라파탄은 로메오의 사건을 올해 발생한 11번째 정치적 살해 사건이라 선언하며, 아키노 정부에 이러한 죽음을 막을 행동을 촉구한 바 있다.
소위 필리핀의 정치엘리트들과 비교하면 카팔라 의장의 삶은 너무나 고귀했다. 필자는 2009년 8월 현지조사차 PFTC와 접촉한 이후 거의 1년에 한 번 정도씩은 파나이를 방문했었다. 방문할 때마다 PFTC의 변함없는 헌신성에 감사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렇게 훌륭한 조직을 공정무역 파트너로 삼게 된 것은 iCOOP생협에게 얼마나 행운인가!
현지에 있는 동안 몇 차례 로메오의 집안도 대단하고, 그는 이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의 죽음 후 기사를 보니 그의 큰형은 전직 다바오 대주교였다. 의사면허가 있는 그의 부인은 현재 캐나다의 대형병원의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필리핀 두뇌유출의 슬픈 단면이다.
그와 함께 했던 한 술자리에서 물어본 적이 있다. 부인이 캐나다 시민권도 있다고 들었는데, 그곳으로 갈 생각은 없냐고. 그가 웃으며 말했다. 자신은 고향이 좋다고, 벗들과 함께 이곳을 행복하게 만들어가고 싶다고. 내 기억 안의 로메오는, iCOOP생협의 지원으로 설립된 안티크공정무역센터(AFTC) 마스코바도 공장 착공식장에서 이빨 빠진 동네 할머니와 손잡고 박수 치며 춤추던 그의 모습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는 지난 3월 23일 27년 동안 그가 헌신했던 PFTC 소속 농민과 노동자 5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고향의 공동묘지에 묻혔다. 장례식이 거행된 성당에서 묘지까지 간간이 내리던 빗속에서 1시간 이상을 걸으며 로메오의 마지막을 지켜준 그들은 "Justice for Romeo Capalla"라는 글귀가 새겨진 옷을 갖춰 입었다.
3월 26일 오전엔 이태원의 필리핀 대사관 앞에서 로메오의 살인사건의 진상을 밝히는데 필리핀 정부의 책임있는 행동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iCOOP생협을 포함한 공정무역단체 관련자들이 마련한 자리였다. 직장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 나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이 글을 씀으로써 나는 내 방식으로 로메오와 진짜 작별을 고해야겠다.
“로메오, 이제는 편히 쉬십시오. 당신이 고향땅에 뿌린 공정무역의 씨앗을 지키기 위해 저도 힘닿는 대로 뭐든 해보겠습니다.”
독자들께, 이 살인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서명참가를 요청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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