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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이 대학의 존재 이유인가?

[기고] 상상력을 잃어버린 당신들에게 묻는다

3년 전 서른이 갓 넘은 한 작가가 죽었다. 모 신문사에서 집중 보도된 탓에 과장도 있었고 그의 죽음이 다가온 느낌은 여러 갈래의 비참함을 낳았다. 그의 죽음은 발전가능성이 풍부했던 젊은 작가의 궁핍한 실상을 알리는 동시에 많은 작가들의 마음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나또한 그랬다. 작가라는 것이 4대 보험이 가입되는 것도 아니고 어떤 단체에 가입을 하더라도 막강한 권력자(?)가 없으면 많은 수의 작가들은 글을 쓰기 위해 돈 버는 일을 찾아야하는 아이러니를 일으키게 한다. 다행히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일을 했으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비교적 넉넉한 편이다. 작가들에 비해서 말이다. 그런 가슴 아픈 일이 있었음에도 작가의 길을 가고자 문예창작과를 지원하는 사람들은 많아지고 있다. 

오랜 기간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계속 돈을 벌어야했기에 집과 가까운 대학교 야간학부의 문예창작과를 검색했다. 그곳이 서일대학교 문예창작과다.  그곳에서 난 스물의 어린 벗들과 공부했다. 시, 소설, 희곡, 아동문학의 장르를 따라가는 데 토할 만큼 힘들었고 머리에 들어오는 지식을 소화하지 못해 이불을 뒤집어쓰고 운 적도 여러 번이었다. 내가 도대체 스물에도 안 하던 공부를 서른이 넘은 나이에 이 아이들과 씨름하며 공부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던졌다. 하지만 그곳에서 대학은 단지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 사람을 생각하는 문예 진리를 실천하는, 창작이라는 큰 주제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누릴 수가 있었다. 어느 학과를 가던 마찬가지지만 무엇을 어떻게 배우는가에 따라 삶의 질이 많이 달라진다. 내가 배우고 내가 확인했던 그곳 서일대학교 문예창작과는 그런 곳이었다.

서일대학교가 시끄럽다. 학과 폐지가 결정된 것이다. 그 중 문예창작과도 폐과 대상이다. 전문대의 특성은 기술자를 키우고 제대로 된 직업인을 길러내는 곳이라 한다. 문예창작과, 연극과 등 예술학부는 전문대에서 가르치면 안 된다는 이상한 소문이 돌았고 가장 큰 이유는 취업률이었다. 언제부터 학교가 학생들의 취업에 관심을 기울였는지 의심스럽다. 학생들의 학습권을 뺏고 이제 갓 입학한 새내기들의 희망을 빼앗고 돈 안 되고 취업률이 낮다는 획일적인 이유를 들어 폐지한다는 것 자체가 상상력의 부재이며 존재가치의 상실이다. 전문대를 선택하는 학생들은 예술학부에 대한 선택마저 할 수 없다는 말인가. 

예술학부를 졸업해 번듯한 직장을 갖는 이가 얼마나 될 것이며 취업을 위해 예술학부를 지원하는 친구들이 얼마나 있을까. 피땀 흘려 글 쓰고 몇 년이 걸리던 내가 쓰고자하는 방향을 향해 부단히 노력하는 어린 친구들의 상처는 누가 씻어줄 것인가. 자신의 20대가 들어있는 학과가 폐지된다면 작가가 된다한들 그 헛헛한 마음은 누가 위로해 줄 것인가. 14학번 후배는 나에게 이야기한다. “우리가 취업을 원했다면 문예창작과를 지원하지도 않았다”고. 15학번의 후배가 들어오지 않는다면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은 누구에게 보상받을 것인가. 만만찮은 등록금을 내고 들어온 이 어린 벗들에게.

문예창작과의 필요성에 대해서 오래전부터 말이 많다. 나또한 글 쓰는 것에 대해 다른 방법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그 길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요성 여부를 떠나 학과의 폐지는 모두에게 납득이 가야하는 것이며 모두가 수긍해야 하는 것이다. 진행되어온 폐지 수순도 아니었고 소수의 학생들만이 수업이 끝난 강의실에서 그 이야기를 궁색하게 들어야했다. 대학이라는 곳이 이윤을 쫓는 기업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 

아무 말 없이 시키는 대로 공부하고 등록금 내고 그러려니 관심도 없던 스물의 친구들에게 학교의 일방적 결정은 어마어마한 상상력을 제공해 주었다. 이 학생들이 이렇게 분연히 떨쳐 일어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현 사회에 순응하며 살아온 그들이 스스로 대자보를 쓰고 스스로 피켓시위를 하고 스스로 저항의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들은 연대의 힘을 느낄 것이며 실패의 맛도 볼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충분히 가져가야하는 희망이며 분노이다. 그것을 발판으로 그들의 글은 더욱 깊어질 것이며 더욱 강해질 것이다. 

돈이 되지 않으면 가차 없이 내버리는 사회, 군말 없이 무조건 따라야한다는 사회, 법의 잣대로 평등의 틀을 갈아엎는 사회에서 이 학생들은 아니 나의 후배들은 부당에 대항하는 법을 스스로 깨우쳐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바로 서일대학교 문예창작과의 벗들이다. 설령 그들이 졸업 후 궁핍한 생활을 한다 해도 그들은 그들만의 상상력으로 헤쳐나갈 것이며 그들의 힘으로 이겨나갈 것이며 온전한 그들 자신으로 살아갈 것이다. 옆에서 보는 우리들이 설령 혀를 끌끌 차는 일이 있을지라도. 

가진 것을 쥐고 큰소리치는 상상력 부재의 당신들이여 스스로 일어서는 학생들을 보고 제발 상상력을 키우시라, 폐지만이 수순인지를.

글쓴이 : 유현아
제15회 전태일문학상 시부문 수상하며 작품활동 시작
제4회 조영관문학창작기금 수혜
시집 『아무나 회사원, 그밖에 여러분』(2013, 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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