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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과 협동조합이 아이들을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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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마을과 협동조합이 아이들을 키운다

[마을주의자]<9>춘천 고탄리 마을선생님 윤요왕

교육부에서 발급해준 한 장의 증명서에서 그는 좀처럼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춘천별빛산골교육 사회적협동조합'. 2005년 방과후학교 '송화공부방' 문을 열고 지난 10여년의 마을공동체사업 여정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오래 기다렸어요. 어렵게 받았어요. 아무래도 협동조합이란 게 행정 공무원들에게도 아직 익숙한 개념이나 업무가 아니잖아요. 더군다나 일반 협동조합이 아닌 사회적협동조합이라 중앙행정기관인 교육부의 인가까지 받아야하니 절차와 과정이 만만치 않았어요. 하지만 인가증을 이렇게 힘들게 손에 받아들고 보니 그저 종이 한 장이 아닌 지난 세월의 무게가 묵직하게 느껴지네요."

춘천별빛산골교육 사회적협동조합 윤요왕 이사장(43세)은 애쓴 보람과 기쁨을 굳이 감추지 않는다. 그에게 이 인가증은 그동안의 노고를 위로하고 공적을 치하하는 상장이나 훈장과 다름없어 보인다. 마을공동체를 되살리는 고역에 헌신하는 여느 마을활동가들의 노정이 으레 그러하듯, 윤 씨도 누가 시키지 않았으나 스스로 자초한, 그렇다고 아무나 할 수 없는 고되고 외로운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 춘천별빛산골교육 사회적협동조합 윤요왕 이사장(왼쪽)과 사회적협동조합 설립 인가증. ⓒ정기석

윤 씨가 터를 잡고 있는 춘천 사북면 고탄리 일대에는 협동조합이 하나 더 있다. 산골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살아가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려고 지난해 설립한 춘천산골마을협동조합이다. 사북면에서 생활권이 비슷한 가일리, 고성1·2리, 고탄리, 송암리, 인람리 등 6개리 주민 350여 명이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일종의 '지역공동사업 통합지원센터'로 목적과 성격을 규정할 수 있을듯 하다. 말 그대로 마을사람들끼리 서로 돕고, 함께 사는 자조, 자립, 자치의 공동체조직.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친환경 영농조합, 농산물마케팅 등 이런저런 마을공동체사업들을 벌이면서 서로 다른 마을들끼리 시행착오와 갈등을 피할 수 없어 안타까웠어요. 이런 문제들을 지역주민들이 공동으로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해결하는 이른바 '컨트롤타워'가 있다면 지금보다 효율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책임감도 있고 역량도 갖춘 마을리더와 마을실무일꾼들이 그곳에서 유기적으로, 조직적으로 결합하고. 그동안은 기능단체별로 법인도 따로 설립하고 운영도 각자 알아서 하는 식이었죠. 그러다보니 서로 이견을 조율하기도 어렵고 의사결정이나 실행구조도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었죠. 목소리 큰 사람, 머리수가 많은 마을이 아무래도 더 힘을 쓰고…. 마을사람들이 피로와 실패가 쌓이면서 모두 각성을 한 거죠. 더 이상 안 되겠다고, 힘을 한데 모으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겠다고."

고탄리 일대 주민들은 농촌지역개발사업을 비롯한 정부의 다양한 지원사업에 있어서 지역에서도 눈에 띄는 수혜자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은 그다지 잘 굴러가지 않았다. 기대했던 성과나 소득이 창출되지 않았다. 오히려 부채는 늘어가고 생활이 어려워졌다. 반목과 갈등으로 마을 발전은 계속 한계상황으로 치달았다. 그런 마을사람들에게 협동조합기본법 시행은 일종의 복음처럼 들렸다. 주민들은 결단을 내렸다. 더 이상 반목하고 갈등하지 말고, 서로 협동하고 연대하기로. 그래서 파이을 함께 더 키워보기로.

"먼저 기존에 추진하던 4개 사업단을 중심으로 조직을 통합하고 전문화했어요. 친환경농법 영농사업단인 '행복한 곳간', 체험사업단 '행복한 시간', 건축사업단 '행복한 공간', 그리고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교육사업단 '춘천별빛산골교육 사회적협동조합' 등이죠. 여기에 독거노인 등 마을 어르신의 긴급지원서비스를 위한 '산골마을119', 되살림 장터, 대동놀이 등 마을 주민들의 생활과 지역공동체 회복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실사구시적인 사업을 펼친다는 계획이에요."

협동조합을 마을공동체의 기반이자 중심으로 삼겠다는 포석이다. 마을 주민 사이에 반목과 갈등이 아닌 협동과 연대를 공동체정신을 공유하겠다는 의지다. 이로써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함께 사는 생기 있는 마을공동체를 이루겠다는 당찬 포부다. 마침내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져 건강한 삶과 환경이 유지되는 생태공동체마을을 가꿔가겠다는 게 윤씨의 각오다.

▲ 춘천 사북면 고탄리 전경. ⓒ정기석

인권운동가에서 농촌마을공동체 운동가로

윤씨는 지난해 여름 서울에서 처음 만났다. 정의당 정진후 의원실이 주최한 '농촌마을교육공동체 구축과 활성화 방안' 국회토론회 자리였다. 발제자와 진행자의 관계였다. 농촌유학과 작은 학교 살리기, 마을학교 활성화 등 '농촌마을교육공동체'의 필요성과 구축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목적이었다. 그때 사단법인 농촌유학전국협의회사무처장의 자격으로 행사의 기획에서부터 진행까지 일사불란하게 주도하는 윤 씨의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알만 한 사람은 다 아는 인권운동가 출신이었다. 천주교 인권위원회, 원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사무국장, '우리땅 미군기지 되찾기 원주시민의모임' 사무국장 등으로 억울하고 힘겨운 사람들이 있는 현장을 찾아다니고 지킨 열혈인권운동가였다. '사람 사는 세상'을 이루기 위한 투쟁현장에서 다져진 그의 몸과 영혼을 이끈 곳은 역시 억울하고 힘겨운 농민들이 살고 있는 농촌현장이었다. 대학 시절 농활을 하면서 마음에 품어두었던 춘천 고탄리로 2003년 귀농을 결행한 것이다.

"그때 농활을 하면서 다짐했던 결심이 현실이 된 거죠. 귀농 첫해는 머슴살이 비슷한 견습농부 생활이었죠. 아는 선배집에서 숙식을 하며 농사도 배우고 사람도 배우고 세상도 배웠어요. 고된 노동의 의미, 농산물과 농민의 가치에 점점 눈을 뜨기 시작했고요. 돌이켜보면 풀 한포기, 돌 하나도 자연의 섭리에 의해 존재하고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던 소중한 시절이었어요."

그리고 그는 농촌의 현실로 눈을 자연스레 돌리기 시작했다. 농촌의 힘겨운 현실이 점점 크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도시에서 인권운동가로 잔뼈가 굵은 그의 주특기가 여지없이 발휘됐다. 송전탑 건설 반대운동, 방과후 공부방, 지역아동센터, 협동조합, 농촌지역개발사업 등에 이르기까지. 농촌을 '사람이 살만한 곳'으로 고쳐보려는 그의 행보를 더욱 다그친 결정적 계기는 교통사고였다.

"공부방 앞 도로에서 중학생 아이가 차에 치였어요. 학교를 마치고 버스에서 내린 아이가 공부방으로 건너오다 그만 사고가 난거죠. 다행히 아이는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마을주민들은 법 앞에 한없이 무력했어요. 상습적 사고다발구역이라 과속방지턱이나 무인카메라 등을 줄기차게 요구했지만, 법과 돈 앞에 소용이 없었어요. 국가에서 관리하는 '지방 국도'라 방지턱은 법적으로 안 되고, 무인카메라는 교통량도 적은데 설치비용이 비싸니 안 된다는 회신만 돌아왔죠. 무척 화가 나고 안타까웠어요. 최소한 농촌의 노인들이나 아이들이 자기가 사는 마을 앞에서 죽거나 다치는 어이없는 사고는 막아야 하지 않나요. 법이나 돈보다 사람이 먼저 아닌가요."

윤 씨가 마을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는 방식은 늘 이런 식이다. 마을의 불행을 자기의 불행으로 감정이입하고 사고한다. 마을의 대소사를 앞장 서 챙기고 실천과 행동으로 옮기는 마을의 상머슴처럼.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는 홍반장'같은 정의의 사도처럼.

마을 머슴에서 마을 선생님으로

무엇보다 그는 마을 아이들의 선생님이다. 아이들은 그를 '산골쌤'으로 부른다. 산골유학센터와 지역아동센터 센터장이나 대표보다,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보다 '산골쌤'이라는 호칭이 더 마음에 든다. 더 어울린다.
"공교육에 지친 아이들에게 마음껏 보고, 듣고, 느끼게 하고 싶어요. '생각하는 힘'을 기르게 하고 싶어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수업 선택권'을 줘서 책임감을 부여하고 있어요. 요즘 아이들은 너무 풍족해서 대체 무엇을,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지 몰라요. 아예 생각도 하지 않잖아요. 좋으면 받고, 싫으면 떼를 쓰죠. 이곳 농촌으로 유학 온 아이들은 달라요. 도시에서 아무리 풍족해도 뭔가 모자라고 아쉬웠던 부분들이 채워지는 새로운 경험을 하는 거죠. 신기하고 신비롭게도. 그건 자연과 사랑, 그리고 마을과 공동체의 힘이라고 봐요."

인권운동가 출신답게 그는 '문제아'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깨물어서 더 아픈 손가락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아이도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를 앓고 있던 아이였다. 당초 학교에서는 이 아이의 유학과 등교를 반대했었다. 윤 씨는 학부모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서명 운동까지 벌여서 그 아이를 학교에 보냈다. 윤 씨에게 그 아이는 아픈 아이가 아니라, 그냥 아이였을 뿐이다. 마을로 유학 온 아이에게 마을사람들은 다른 아이들처럼 관심과 사랑을 골고루 나눠주었다. 이제 어엿한 중학생으로 성장했다.

"교육적 가치가 있는 곳은 바로 농촌이라는 자기확신이 있었어요. 그래서 2005년 공부방 문을 열고, 2010년에 4명의 유학생으로 산골유학을 시작했어요. 개인적으로도 육아문제로 애로를 겪었던 체험이 자극제가 됐다고 봐요. 초등학교 교사인 아내 정다운 선생이 출근하고 나면 농사를 지으면서 어린 딸을 돌보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거든요. 육아는 결코 부모들이 알아서 키워야하는 개인문제가 아니죠. 또 방과후에 갈 곳이 없는 농촌아이들을 보면서 안전한 공동의 놀이공간, 생활공간이 절실했어요. 아이들은 나라를 지탱하는 자산이고 미래인데."

▲ 권역커뮤니티센터에 자리잡은 춘천별빛산골유학센터와 지역아동센터. ⓒ정기석
어느덧 10년의 역사가 쌓인 춘천별빛산골교육센터는 한동안 마을회관을 개조해 쓰다, 지난해부터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으로 마련한 권역의 커뮤니티센터 '솔다원나눔터'를 임대해 사용하고 있다. 자칫 유휴시설로 방치되기 쉬운 농촌지역개발사업의 시설물을 마을공동체사업에 적절하게 활용하는 바람직한 사례로 평가된다. 2009년에는 보건복지부에서 지역아동센터로도 선정, 교육센터는 산골유학센터와 지역아동센터의 2개의 사업단위로 이루어진다. 여기에 5명의 선생님이, 25명의 유학생 아이와 25명의 원주민 아이들과 함께 부대끼며, 북적거리며 생활하고 있다. 마을에 사람 냄새가 나고 있다.

"고탄리를 비롯한 인근 농촌마을이 더불어 지속가능하려면 이 센터는 꼭 필요해요. 무엇보다 농촌 아이든 도시 아이든 농촌마을이야말로 살아있는 진정한 교육장이라는 생각이죠. 이 센터를 매개체로 우리 마을 사람들이 더 행복감을 느끼고, 더불어 잘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더 가질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어요."

마을과 협동조합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고탄리 마을선생님 윤요왕 씨. 도시에서는 인권운동으로, 농촌에서는 교육공동체운동으로 이타적인 삶을 살고 있는 그는, '남을 돕는 일'을 업보로 타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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