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 공동선언과 10.4 합의는 남북관계가 가야 할 길과 해결해야 할 과제를 제시했다. 그런데 왜 이념 논란인가? 왜 정치적 논란의 대상으로 삼는가? 이해하기 어렵다. 남북합의는 특정한 정파의 이익을 넘어선다. 이번 논란에서 안철수 의원 측이 남북문제를 국내정치의 도구로 활용한 점은 매우 개탄스럽다. 이념논란을 앞장서서 부추긴 점도 이해하기 어렵다. 7.4 공동선언, 남북기본합의서, 그리고 6.15와 10.4의 의미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7.4 공동선언이 정치적 거래의 대상인가?
6.15와 10.4를 삭제하자는 사람들에게 7.4 공동선언을 삽입해서 타협하자는 사람들이 있다. 박정희를 참배한 세력의 정치적 체면을 세워주자는 뜻인가? 그러나 안타깝게도 7.4공동선언은 그럴만한 역사적 맥락을 갖고 있지 않다.
유신세력이 7.4 공동선언을 자랑스러워할까? 그렇지 않다. 남북관계의 역사를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박정희 정권은 7.4 공동선언의 발표를 원하지 않았다. 1972년 4월 24일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평양을 방문해서 김일성을 만나고, 5월 29일 박성철 비서가 서울을 방문해서 박정희 대통령을 만났다. 공동선언은 이후락의 방북 당시 논의했다. 박성철은 5월 박정희를 만난 자리에서 공동선언 발표를 제안했다. 그러나 박정희는 거부했다.
당시 하비브 주한 미 대사는 “외교가에 알려져 있고 한국 정부 내에서도 아는 사람이 적지 않아 곧 알려질 것”인데, 왜 공개하지 않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다 남쪽이 공개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북한의 평화공세였다. 북한은 6월 21일 샐리그 해리슨을 초청하여 4단계 군축안을 발표한다. 데탕트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 할 수 없이 박정희 정부는 그 이후 정홍진과 김덕현 라인을 통해 공동선언 문안 작성을 위한 실무접촉을 가졌다. 그렇게 마지못해, 소극적으로, 할 수 없이 7.4 공동선언 공개에 합의한 것이다.
7.4 공동선언이 서울과 평양에서 각각 발표되었을 때, 박정희 정부 내부에서 이 선언을 어떻게 평가했을까? 매우 부정적이었다. 김종필 총리는 다음날 국회에 나가 “북한은 공산주의자들이 불법으로 형성하고 있는 하나의 집단이기 때문에 국가라고 인정할 수 없고, 공동성명을 발표했다고 해서 공산주의자들이 변하지 않았으며, 북한의 전쟁 도발 위험성은 상존한다.”고 강조했다. 7월 7일 국무회의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낙관을 경계하면서, “반공교육은 변함없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해 11월 하비브 대사를 만난 김종필은 “이후락이 자신의 개인적 위신 때문에 협상을 서둘렀다.”고 평가 절하했다.
당연히 7.4 공동선언을 발표할 때, 박정희 정부는 이행할 의지가 없었다. 남북조절위원회를 통한 대화는 몇 번 지속되었지만,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다. 다만 국내 정치적 용도는 분명했다. 그해 10월 17일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다. 명분은 “남북대화의 적극적 전개와 급변하는 주변 정세에 대응할 필요”였다. 누구나 알다시피 7.4 공동선언은 유신체제의 명분이었다.
남북관계의 역사에서 7.4 공동선언은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합의라는 역사성은 있지만, 기념할 만큼의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지 않다. 7.4를 넣는 것이 유신세력에 대한 존중의 의미라면, 그것은 틀렸다. 유신세력 스스로 7.4 공동선언을 자랑스러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 시대착오적인 타협을 강조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왜 6.15와 10.4를 부정한 이명박을 따라 할까?
6.15공동선언과 10.4합의를 둘러싼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 초기에 벌어진 논쟁의 재연이다. 당시 야권과 시민사회는 이명박 정부에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의 이행을 촉구했다. 왜 남북합의를 부정하느냐고 물었을 때, 이명박 정부의 대답이 바로 “7.4 공동성명, 1991년 기본합의서, 6.15 공동선언, 10.4 선언 모두의 이행여부를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과거의 합의들도 있는데, 굳이 2개 합의만 내세우지 말라는 주장이었다.
남북 합의는 지금까지 진화해 왔다. 7.4 공동성명의 합의 사항은 1991년 기본합의서에 대부분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6.15 공동선언이후 남북관계는 합의의 시대에서 실천의 시대로 한 단계 발전했다. 10.4 선언 역시 6.15 공동선언이후 남북관계의 발전을 토대로 합의되었다. 그런데도 과거 합의를 병렬적으로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누가 보아도 최근 합의의 중요성을 깎아내리려는 의도였다.
북한은 6.15 이전 시대와 이후 시대를 구분할 만큼 2000년 6.15 공동성명을 중시한다. 이전 시대가 김일성 시대의 합의였다면, 6.15 부터는 김정일 시대의 합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1991년 기본합의서에 대해 북한은 소극적이다. 당시의 국제정세 때문이다. 사회주의권의 붕괴, 북한의 고립, 한국의 북방외교, 모두 북한의 입장에서 불리한 입장이었다. 나아가 노태우 정부는 한국이 유엔에 단독 가입할 수 있다는 공세적 외교를 전개했다. 그래서 북한은 기본합의서를 수세적 상황에서 너무 많이 양보했다고 판단한다. 북한이 기본합의서를 내세우지 않는 이유다.
6.15와 10.4는 과거의 남북합의 정신을 포함하고 있다. 동시에 현재의 남북관계 현안을 망라하고 있다. 진보 정부든 보수 정부든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두 개의 합의를 우회하기 어렵다. 왜 그런가? 두 개의 문서가 남북관계에서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들을 정리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궁금하다. 6.15공동선언과 10.4 합의를 삭제하자고 주장하는 세력은 도대체 남북관계를 어떻게 끌고 가겠다는 것인가? 지금이라도 두 개의 문서를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그리고 국내 정치적인 이유로 남북합의를 파기해도 되는가? 이명박 정부와 무엇이 다른가? 독일 통일을 말하면서, 우리는 기민당이 집권했을 때, 사민당의 동방정책을 계승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 정파의 이익에 민족문제를 이용하는 것은 냉전 반공세력으로 족하다. 그리고 우리는 지난 6년 동안 두 개의 합의가 파기되었을 때, 남북관계가 어떻게 되는지를 지켜봐 왔다.
남북관계의 비전은 얼마나 많은가?
남북관계를 국내정치로 이해하는 것은 낡은 사고다. 안철수 의원은 지금까지 이념의 위치만을 고려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내용을 제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안철수 의원은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를 비판한다. 그것이 새 정치의 계기라고 말한다. 얼마나 진정성 있는 주장일까? 그렇게 말하기 전에 우선은 NLL 논란에 대한 입장을 먼저 말해야 한다. 냉전 수구 세력들이 날조에 가까운 거짓말을 늘어놓을 때, 왜 침묵했는가? 냉전의 바다 서해를 평화의 바다로 어떻게 전환할 것인지를 제시한 적이 있는가? 신뢰를 강조하면서, 6.15와 10.4의 삭제를 주장하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념이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다. 점차적으로 잠재성장률 제로에 접어들고 있는 우리 시대에 북한이라는 다리를 넘어 북방으로 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시대는 미래지향적인 사고를 요구한다. 그런데 왜 과거의 낡은 이념논란으로 세월을 허비하는가? 수많은 청춘들이,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그리고 수많은 지역들이 평화와 경제의 선순환을 요구한다. 그런데 왜 미래의 문을 닫고 과거로 퇴행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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