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선거의 경험을 기억하자
2010년 지방 선거에서 무상 급식 공약을 계기로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 논쟁이 정치적으로 촉발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보편적 복지를 통해 민주당 후보들이 전국적으로 약진했다. 무상 급식 공약이 초등학교에 다니는 300만 명의 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던 것은, 중산층조차도 살림살이 너무나 어려워져 자녀의 숫자에 따라 매달 5만~10만 원의 급식비를 절감하는 것이 절실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고정 지출을 절감할 수 있으리라는 경제적 기대 외에도, 무상 급식이 전체 지방 선거를 관통하는 핵심 이슈가 됐던 이유는 또 있다. 자신의 가족에게 직접 해당하지 않지만, 적어도 아이들이 먹는 것으로 차별당하지 말아야 한다는 우리나라의 보편적 평등 의식이 국민적 공감대를 얻었기 때문이다. 지방 선거의 결과를 수긍할 수도, 무상 급식이라는 보편적 복지를 용납할 수도 없었던 한나라당의 오세훈 시장은 무상 급식 실시 여부를 두고 2011년 8월 24일 시장직을 건 주민 투표를 강행하였고, 선거 결과는 시장 사퇴와 보궐선거로까지 이어졌다.
보편적 무상 급식에 대한 국민의 선택을 보면서 이를 시대정신이라고 파악한 민주당은 2010년 10월 3일 전당대회를 통해 당 강령에 '보편적 복지'를 채택했다. 한나라당도 2012년 1월 정강·정책 제1조에 '복지국가'를 명시하고, 같은 해 2월 박근혜 의원 주도로 새누리당으로 개명한 뒤 대통령 선거에서 기초노령연금을 모든 노인들에게 지급한다고 하는 등 민주당에 결코 뒤지지 않는 각종 공약들을 내세우면서 총선과 대선 승리를 일구었다.
지난 2010년 선거를 통해 당선된 범야권 후보들은 지방 정부 정책을 통해 다양한 보편적 복지 정책을 시행해왔고, 이들 정책들이 지역 주민의 삶을 조금씩 변화시키면서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지방 선거를 두 달 앞둔 현 시점에도 중앙당은 합당과 창당 정치에 바빠서 자당 소속 단체장들이 만들어낸 보석과 같은 성과들을 제대로 발굴하고 정리하여 공통 공약으로 재생산하는 작업을 못 하고 있는 것이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보편적 복지'가 시대적 대의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표'가 된다는 것을 피부로 직접 느꼈던 단체장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다양한 '보편적 복지' 공약들을 준비하고 있다.
기초노령연금 '선 지급'을 선언하자
여야가 정치적인 논쟁에 매몰되어 기초노령연금의 7월 지급 여부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민주당은 국민연금과 연계하여 차등 지급하는 것과 지급액을 물가와 연동하여 지급하는 조항 때문에 법안 통과를 저지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대통령 공약을 왜곡하고 개악한 조항이 들어간 법안 때문에 발목이 잡혀 있다는 말은 쏙 빼 버린 채, 민주당이 협조하지 않아서 기초연금을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고 선전하면서 전국 곳곳에 현수막을 내걸고 있다.
어떤 방안으로 가더라도, 약속된 20만 원을 받기로 한 353만 명의 노인들은 조바심을 내며 빨리 여야가 합의하여 법안을 통과시키길 바라고 있다. 국민연금과 연동하면서 10만~20만 원을 차등 지급받게 되는 노인들조차도 우선 줄 것은 주고 나중에 추가로 더 주기를 바라고 있다. 반면 기초연금 지급액을 소득이 아니라 물가와 연동하는 정부안 때문에 2036년에는 가입자 평균 소득의 5퍼센트로 반 토막이 난 금액을 받을 예정인 40대와 50대의 국민은 아직 그것이 별로 와 닿지는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새누리당의 목소리가 점점 더 크게 울려 퍼지고 있다.
현행 기초노령연금법은 기초연금 지급액을 소득과 연동하면서도 국민연금과는 연계하지 않고 있다. 민주당은 이러한 현행 기초노령연금법을 그대로 두되, 우선 기초연금 지급액만 20만 원으로 올리도록 개정하고, 나중에 충분한 시간을 두고 논의하자는 방안을 내놨지만 이는 거의 알려져 있지도 않다. 그런데 이미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올해 기초연금에 대한 예산을 수립해 두고 있다. 기초연금 재원은 중앙 정부가 50퍼센트를, 광역시와 도가 10퍼센트, 기초 지자체가 40퍼센트를 지출하게 되어 있다.
지방 정부 입장에서는 막대한 예산이 추가로 드는데, 실제 정책의 성과는 박근혜 대통령이 가져가는 구조이다. 이런 시점에서 기초연금을 7월에 지급할 수 있도록 국회에서 기초연금 법률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야권의 지자체장들이 모두 모여 지방 정부가 준비해 둔 예산만큼이라도 '선 지급'하겠다는 선언을 할 것을 제안한다. 물론 해당 법률안이 통과되면 새로운 법률에 맞추어 지급해야 하겠지만, 적어도 현재 준비된 예산보다 지급 규모가 축소될 가능성은 없으므로 하루를 일 년처럼 기다리며 마음 졸이고 계시는 어르신들에게는 매우 기쁜 소식이 될 것이다.
이름을 조금 다르게 하여 지급하거나 '선 지급 후 정산'을 한다면, 어르신들에게 대통령 공약으로 약속한 기초연금을 법률안이 통과되기 전에 우선 지급하였다고 해서 감사원의 감사를 받거나 법적으로 문제가 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동시에 이는 지방 정부들이 중앙 정부의 예산 분담률을 더 높이도록 압박하여 지방 정부의 재정 부담을 완화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선언은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가 상호 교류하고 경쟁하면서 보편적 복지국가를 만들어가는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지난 대통령 공약을 지방 정부에서 먼저 실천하자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는 4대 중증질환을 국가가 보장하겠다고 약속하였다. 4대 중증질환에는 간병비 등 3대 비급여도 포함되지만, 이에 대한 대책은 아직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현재 논의되는 수준으로 보면 시행되더라도 매우 선별적으로 되고 있어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실질적으로 낮추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반면 이미 서울시립의료원 등이 보건복지부 시범사업으로 시행하고 있는 '보호자 없는 병원' 사업은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다. 이용자들의 만족도도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지방자치단체들이 먼저 '공공 간병인 제도'를 공공 병원에서 시작하고, 이 기준을 만족하는 민간 의료기관들과도 양해각서(MOU)를 맺어 순차적으로 확대하자는 공약을 제시할 수도 있다.
보건복지부가 해당 정책을 확정하거나 관련 법률이 통과된다면, 이에 소요되는 예산을 지방정부에서 지출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정책 시행 이후에도 중앙 정부의 법적 기준보다 더 지원할 수 있으므로 지역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매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가 못 하는 정책, 000은 합니다"라는 슬로건이 전국적으로 나붙으면, 중앙 정부가 좀 더 진전된 형태로 의료의 공공성과 보장성을 높이는 정책을 시행하도록 압박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노인 간병 분야도 사각지대가 많다. 노인 610만 명 중 60만 명 이상이 중증 장기 와상 노인인데, 현재는 1등급과 2등급만 입원 치료 대상이고 3등급의 경우 방문 간호만 급여를 하고 있다. 간병 지원 대상자는 21만5000명뿐이다. 노인 간병 부담 때문에 이혼하기도 하고 현대판 고려장이 벌어질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 이에 박근혜 대통령 후보는 장기 요양 등급 4등급과 5등급을 신설하여 치매 환자는 노인장기요양보험 대상자에 우선 편입하고, 신체장애가 있는 독거노인 및 차상위 계층 노인이 노인장기요양보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화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런데 어르신들의 간병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제안된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대상자를 확대하겠다는 공약도 치매 등 일부 질환의 경우만을 등급 예외자로 포함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장 후보들이 공공 요양시설(nursing home)을 지어서 자녀의 소득과 관계없이 필요가 있는 지역의 중증 와상 노인들을 돌보고, '탁노소'와 같은 노인주간보호시설을 운영하여 맞벌이 부부의 간병 부담을 완화한다면, 실질적으로 지역주민들의 돌봄 부담도 줄일 수 있고, 사회서비스를 통해 지역 사회의 고용도 창출할 수 있다.
민주당은 지난 대선에서 공공 산후조리원 공약을 내걸었다. 그런데 정작 공공 산후조리원을 먼저 실시한 곳은 민주당 소속의 지자체가 아니었다. 새누리당 소속의 강남구청장이 먼저 지난 3월 초에 개원했다. 2012년 기준으로 등록 산후조리원은 442개이고, 이들 산후조리원에 종사하는 인력은 5412명에 달한다(주승용 의원실, 2011년 국정감사 자료). 이를 통해 산후조리원에 가는 것이 이미 우리나라의 중요한 문화로 정착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산후조리원에 입원한 임산부는 하루 7033명이고, 영유아도 7023명이나 된다. 우리나라 전체 산모의 절반 정도가 어떤 형태로든 산후조리원을 이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제는 아이를 출산하는 데 드는 비용보다 산후조리원에서 지출하는 비용이 더 큰 것이 현실이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실정이다. 강남구와 같이 92억 원을 들여 별도의 건물을 짓고 산부인과 의사가 상주하는 고비용 방식이 아니더라도, 공공 건물을 활용하거나 민간 건물을 임대하여 공공 산후조리원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데는 연간 2억~3억 원 정도 예산이면 충분하다. 지역별로 한두 개의 공공 산후조리원을 운영하여 이용자들의 가격 부담을 낮추어 준다면, 인근에 있는 민간 산후조리원도 가격을 인하하게 되어 전체적으로 부풀려진 산후조리원의 가격 거품을 제거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민간 산후조리원의 인력과 시설을 점검하여 기준에 맞는 곳에 일정 정도 비용을 보조하는 준공영화도 동시에 추진할 수 있다. 세계 최고의 저출산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더 이상 시부모나 친정 부모가 산후조리를 감당할 수 없다. 산후조리원은 이러한 필요에 따라 자연발생적으로 자리 잡았다. 따라서 산후조리원에 드는 비용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는 것을 반대할 주민은 별로 없을 것이다.
복지국가 만들기와 지방 정부
복지국가가 필요한 이유는 1차적으로는 너무나 어려워진 민생을 챙기는 것이다. 국민의 일상적인 삶의 부담을 덜어주고 고정 지출로 나가는 생활비 부담을 '보편적 복지'를 통해 완화시키는 것이다. 복지국가가 필요한 2차적 이유는 좀 더 경제적 측면에 있다. 우선 수출이 아무리 늘어도 더 이상 고용이 늘지 않는 산업구조 고도화의 문제가 있다. 명목 GDP는 성장하는데 국민의 실질적인 가처분 소득은 늘어나지 않아 내수가 침체된 우리나라 경제의 해법으로서 복지국가 정책은 매우 유용하다.
지방 정부가 사용하는 예산은 연간 100조 원이 넘고, '재정 자주도' 측면에서 지방 정부가 집행하는 가용 예산은 전체 국가 예산의 50%가 넘는다. 지방 정부가 사회서비스를 제공해 고용을 창출하고, 보편적 복지 정책을 통해 개별 가계의 가처분 소득을 늘려준다면 그만큼 그 지역의 재래시장과 골목 상권이 활성화될 수 있다.
복지국가는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가 서로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가운데 때로는 경쟁적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2014년 지방 선거는 역동적 복지국가를 구체화하는 각종 복지국가 공약으로 채워 나가야 한다. 보편적 복지를 시대정신으로 인정하고, 이를 구체적인 공약으로 받아들여 선거 운동에 적극 임하는 후보들을 우리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복지국가 후보'라고 인증할 것이다. 이번 지방 선거에서 활약할 전국의 '복지국가 후보'들을 통해 대한민국의 역동적 복지국가는 한 걸음 더 전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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