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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호텔 규제 완화, 대한항공 소원수리?

[편집국에서] 학교 옆 호텔 건설 규제도 '죄악'인가

지난 20일 공영방송 KBS는 물론 다른 공중파 방송들과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 동원 가능한 거의 모든 미디어가 일제히 이른바 '규제개혁 끝장토론'을 전국에 생중계했다. '규제개혁 끝장토론'은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민간합동 규제개혁점검회의다.

국무총리 이하 각 부처 장관 등 정부 관계자 그리고 경제단체장, 기업인, 소상인 등 무려 160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런 형식의 토론회도 유례가 없는 일이고, 더욱이 전국에 생중계된 것도 처음이다. 회의 7시간 중 무려 4시간이 생중계됐다. 그러자 공중파 방송 3사를 모두 정책방송 KTV처럼 동원한 '정치쇼'라는 야권의 반발이 거셌다.

하지만 이날 한 유력 신문사 정치부장은 사석에서 "대박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권 지지율이 3%는 올랐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매우 정치적이며, 긍정적인 평가였다.

박근혜 대통령이야 전혀 정치적으로 의도한 행사가 아니었을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정말 일자리 창출을 막고 있는 '암덩어리 같은 규제'들을, '원수 같은 규제' 들을 그렇게 쳐부수라고 공무원들에게 지시했는데도 '복지부동'을 하는 공무원들이 꿈쩍도 하지 않자 국민 앞에 직접 나서 강력한 '규제개혁 의지'를 보여준 것일 뿐이라고 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규제개혁 장관회의 및 민관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에서 7시간 여의 토론을 주재했다.ⓒ연합뉴스


대통령의 진정성 의심하는 야당 "지방선거 앞둔 '정치쇼'에 불과"

그런데 대통령이 주재한 회의를 생중계로 지켜본 시청자들 중 나이 지긋한 분들 중에 "정말 감동적이고, 너무 재미있었다"고 찬사를 보내는 분들이 적지 않았다. 그분들의 반응을 보니, 우리나라는 민주주의를 하기에는 민도가 아직도 낮은 것 같았다. 왕조의식이 남아있지 않고는 이런 반응이 나오기 어렵지 않은가. 대통령을 절대권력을 가진 '현대판 왕'쯤으로 생각하지 않는 한, 국민을 상대로 만기친람을 하는 듯한 행사에 감동을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조선의 왕도 그랬지만, 정말 민주주의 체제의 대통령이라면 대통령의 의지를 생중계로 국민에게 보여준다고 해서 국민을 괴롭히는 규제들이 사라지게 할 수 없다. 그런데 독재 체제에 가까운 나라의 대통령이라면 일부 규제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의지가 먹혀들 수 있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규제개혁이 아니라 특정세력에 대한 '소원수리'에 불과한 것이 될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토론회에서 "무조건 안 된다고 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입장에서 '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길이 없으면 길을 찾는 적극적 자세로 규제를 개혁해야 한다"는 소신을 강력하게 밝혔다.

하지만 토론회에 대한 여야 반응은 상당히 달랐다. 새누리당은 "강력한 규제혁파 의지를 밝힌 것"이라며 환영일색이었다. 반면 야권에서는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권의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 규제개혁을 명분으로 포장한 ‘정치쇼’라고 혹평했다.

규제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주제다. 대통령이 규제개혁에 강한 의지를 보인 것이 비판받을 일이냐는 반문이 나올 수 있다. 불필요한 규제라든가, 시대가 달라지면서 지금은 걸림돌만 되는 규제라면 없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번 토론회를 보면 마치 규제 자체가 악인 것처럼 매도하는 흑백논리 식으로 전개됐다. 대중은 흑백논리처럼 단순명쾌한 구도를 좋아한다. 그래야 전달이 잘 되고 감동도 받는다. 하지만 감동의 뒤끝은 부작용이기 쉽다.

박 대통령은 규제개혁은 경제혁신과 재도약을 위한 핵심 열쇠이자 일자리 창출이라고 강조하고 "공직 사회가 규제개혁에 저항하거나 미온적 태도를 갖는 것은 죄악"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들도 박 대통령처럼 생중계로 의지를 밝힌 것은 아니지만, 규제개혁을 외쳤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어느새 규제의 총량은 다시 늘어나고 있다. 어떤 규제를 없애면 다른 규제가 더 많이 늘어나는 식으로 진행된 것이다. 역대 정부의 대통령들은 박 대통령보다 규제개혁 의지가 부족해서였을까?

정부는 이번 토론회를 통해 규제의 수를 상당히 줄이겠다고 목표치도 제시했다. 2017년까지 규제 20%를 없앤다는 양적 목표를 설정한 것이다. '규제완화=일자리 창출’이라며 마치 규제를 경제활동에 있어서 악의 근원으로 단정하는 듯한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규제의 양을 축소하겠다는 목표 설정이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한다.

누가봐도 분명한 불필요한 규제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규제는 대부분 이익을 보는 쪽과 피해를 보는 쪽이 갈리는 것이다. 대체로 이익을 보는 쪽은 소수일지라도 힘이 세다. 이익을 보는 쪽은 여론 조성 능력도 세다. 이익을 보는 쪽은 치열하게 뭉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재벌공화국' 소리를 듣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경제양극화가 극심하다는 대한민국에서, 규제를 둘러싼 갈등에 정부가 나선다면 누구 편을 들까? 바로 이에 대한 신뢰가 형성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이 직접 나서 규제개혁을 외칠 때 다른 한 쪽에서는 "재벌의 소원수리를 위한 분위기 조성"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게 된다.

김기식 민주당 의원은 "이번 회의는 경제민주화 셀프 종료 선언 이후 노골화된 박근혜 정부의 친재벌·친기업 정책노선을 규제개혁이란 이름으로 포장하기 위한 정치 기획"이라고 이런 의혹을 대변했다.

대한항공의 호텔 건립 계획 지원 사격?

사실 이번 토론회에서 재벌기업과 관련한 민감한 규제 갈등은 전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이른바 민생과 관련된 규제피해 사례가 주로 거론됐다. 국민 대다수가 피해를 보고 있는 규제를 사례로 제시하면 누가 공감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런 '민생 관련 규제'조차 내가 그 입장이라고 생각하고 언뜻 들으면 정말 쓸 데 없는 규제가 있다고 공감이 가다가도 곰곰히 사회 전체를 따져보면 섣불리 규제를 없애기 어려운 사연들이 적지 않다.

나아가 IMF 사태라든가 카드대란, 저축은행 사태, 최근의 동양그룹 사태처럼 나라를 뒤흔들거나 경제적으로 수많은 피해를 양산한 금융사태들을 보면, 그 결정적 배경에 규제 완화와 규제 미비가 있다. 이런 사태들을 살펴보면, 오히려 중요한 분야일수록 규제개혁은 규제완화가 아니라 규제강화로 가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이 있다.

현재 '규제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정부가 밀어주고 있는 '재벌 소원수리'로 의심받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대한항공의 호텔 건설사업이다. 이미 이 문제는 지역사회를 넘어 정치 쟁점까지 되고 있다는 점에서 '규제개혁'을 외치는 박근혜 정부의 진정성의 바로미터로 여겨지고 있다.

정부는 규제개혁 점검회의를 통해 학교 인근에 호텔 설립을 허용할 수 있도록 관련법 개정에 착수하기로 했다. 왜 갑자기 이런 '규제개혁'에 나서는 것일까. 알고보니 대한항공이 서울 풍문여고와 덕성여고, 덕성여중이 있는 부근에 호텔건립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사업은 학교 주변 200미터 이내에 호텔과 여관 등이 들어설 수 없는 현행 학교보건법에 따라 서울중부교육지원청으로부터 불허 결정을 받았다. 학교 인근에 호텔이 들어설 수 없다는 것은 2012년 6월 대법원이 대한항공이 중부교육지원청을 상대로 낸 행정소송에서 "학습권은 지켜져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려 다시 한번 타당성을 인정받은 규제조항이다.

지구단위계획 변경권을 가지고 있는 종로구와 최종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서울시도 대한항공이 호텔 건립을 노리는 부지는 도심 명소와 연계되는 북촌의 거점공간으로서 공익적으로 활용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구체적으로 서울시는 경복궁-북촌-인사동-국립현대미술관으로 이어지는 문화벨트를 조성할 계획이다.

그런데 20일 규제점검회의에서 한 사업가가 "300여 명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관광호텔계획을 세우고 관할 구청에 사업계획 승인을 신청했으나 처리가 불투명한 상태"라고 호소하자 유진룡 문화체육부장관이 동업자인양 "전혀 예측 불가능한 기준을 가지고 규제를 해 우리도 미치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 역시 "학교 보건법 시행령이 최대 관심사"라면서 "시기에도 안 맞는 편견으로 청년들이 취직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막고 있다는 것은 거의 죄악"이라고 편들었다.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분이 걸린 사업이라면 이를 막는 규제는 다른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은 고려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죄악이라는 것인가?

이미 정부는 유흥주점과 도박장 같은 유해시설이 없는 관광호텔에 대해 학교 주변에서도 영업을 허용하는 관광진흥법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했으나 야당의 반대로 일단 무산됐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기세로 보아 이 법의 국회 통과가 밀어부쳐질 것으로 보인다. 이 법이 통과되면 중소기업과 개인사업가 등이 추진하고 있는 38개의 호텔 건립 계획이 빛을 볼 가능성이 커지며, 그만큼 일자리 창출 등의 경제효과가 생긴다는 점이 부각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논리는 일부에게 돌아갈 일자리라는 '떡고물'로 국민의 입을 막고 대부분의 과실을 자본에게 안겨주겠다는 특혜적 발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회도 감사원도 규제 양산하는 개혁 대상?

게다가 박 대통령은 의원입법으로 규제가 양산되고 있어 제한을 가해야 한다는 발언까지 했다. 의원입법 규제에 대해 심의장치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국회 위에 이미 행정부가 군림하고 있다는 것을 은연 중 드러낸 것으로 오해를 살 만한 발언이다.

민주당은 즉각 "우리와 같은 대통령제인 미국은 3권분립 원칙에 따라 행정부의 법률안제출권 자체가 없다"면서 "우리나라는 행정부가 법안제출권까지 가진 조건에서 의원 입법 심사제도를 마련하겠다는 것은 의회의 입법권을 약화시키고 삼권분립의 원칙을 훼손하는 반민주적 발상"이라고 반발했다.

그뿐이 아니다. 박 대통령은 "규정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국민과 기업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집행한 공무원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소 문제가 생기더라도 감사에서 이에 대한 책임을 면책해주겠다"고도 말했다.

이 역시 대통령이 법률과 규정에 의해 행정부를 감사하는 독립기구인 감사원이 실제로 정치적 독립을 하지 못하고 있고, 이에 따라 정치선진국들처럼 우리도 감사원을 국회에 설치하도록 개혁해야 한다는 논의를 무색케 하는 발언이다.

민주당은 "감사 면책 운운"한 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도 "감사원의 기능과 권한을 침해하겠다는 발상"이라고 성토했다.

경제정책이 어려운 것은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공동체를 위한 규제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규제개혁 끝장토론'이 규제완화로 이익을 보는 쪽을 정부가 편들면서, 마치 규제완화가 모두의 이익인 것처럼 포장하는 데 앞장선 이벤트가 아니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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