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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3불 의식',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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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3불 의식',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공공성 연속 기고] 시대정신으로서의 공공성

한국사회에서 공공성(公共性)에 대해 논의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여기에는 이러한 논의가 대두된 시대정신과 당위성이 자리한다. 공공성을 위해서는 이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그와 함께 공공성이란 말로 우리 사회가 무엇을 지향하며, 또 그 안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지를 밝히는 학문적 작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이런 작업이 해명될 때, 뒤 따르는 논쟁들, 예를 들어 무상급식이나 버스공영제는 물론, 다양한 형태로 거론되는 공공성과 복지 문제, 우리사회의 민영화 논의들이 올바르게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조심스럽게 거론되는 공간복지 문제는 물론, 자본주의의 요구에 따라 전방위로 벌어지는 사영화(priavatization) 논란, 국가와 정부기관에 의해 이루어지는 온갖 공공사업은 이런 이해 없이는 결코 정당하게 제시되지 못할 것이며, 또한 시민들에게 올바르게 수용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현실은 한 마디로 말해 이 사회를 이끌어갈 규범과 원리를 설정하지 못한 데서 따르는 혼란과 갈등을 겪고 있다. 일제에 의한 제국주의적 식민시기를 거치면서, 또 군부독재와 이후 경제세력에 의한 사회의 과두독점체계는 시민들에게 그들이 벌이는 공적논의의 정당성을 의심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것은 그 이전 시기 자명하게 받아들여졌던 성리학적 가치규범과 원리는 물론, 그에 따른 공동체 정신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대신할 새로운 가치규범은 설정되지 않은 데 따른 혼란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말해 "더 이상 아니"지만, "아직 있지 않은" 가치규범과 원리 사이의 갈등과 긴장인 것이다.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자신들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공공성으로 대신하는 이른바 수구집단의 행태일 뿐이다. 이들은 다른 집단에 비해 한국사회의 거의 모든 기득권을 소유하면서 여론과 정책 결정과정에서 과잉대표되고 있다. 이들의 모순되고 불일치한 행태를 역사적 경험으로 학습한 대다수 집단은 명시적으로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이 사회의 수많은 공적담론과 공적기관, 공적단체들이 실은 사익에 종사하는 집단일 것이란 피해의식을 지니고 있다. 문제는 이런 의식이 정당한지가 아니라, 시간이 갈수록 그런 인식이 일반화되고 있다는 데 있다.

얼마 전 창립된 '한국정책재단'의 창립기념 심포지엄의 발표문, "한국인 그 마음의 행로"에 의하면, 한국인은 심각하게 '3불' 의식을 느끼고 있다. 제도나 규범에 대한 불신, 눈높이보다 초라한 현재에 대한 불만과 함께 미래에 대한 대책이 없는 데서 오는 불안이 그것이다.

이런 '3불'을 근거 없는 낭설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이러한 불안이 온갖 형태의 사회현상으로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저조한 출산율, 청년 실업, OECD 1위를 놓치지 않는 자살률은 물론, 바닥을 헤매는 소득재분배율과 사회적 불균형은 어디서 유래하는 것일까? 공공기관과 국가는 물론, 언론과 법이 기업집단과 이들 소수 기득권층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인식을 넘어서지 않는 이상 한국사회의 온갖 사회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국가기관의 불의함, 법의 불공정한 적용, 사회 전방위로 확산되는 부패와 무규범의 혼란, 언론의 편파성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런 불의함을 보면서 이를 고발하거나 위안을 받아야할 학문공동체나 교회조차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인식이 과연 과도한 편견일까?

그 빈자리를 전통에의 회귀와 잊혀진 전통과 풍습에 대한 그리움으로 대신하려 한다. 풀뿌리 공동체, 품앗이와 골목문화, 마을만들기 등의 노력은 이미 산업화와 근대를 경험한 우리에게는 결코 그 시절의 아름다움처럼 그렇게 재현되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일 뿐이다.

공공성이 주목받고 논의되는 배경에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이 자리하고 있기에 공공성은 시대정신이라 말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것이다. 그러기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과도하게 사익 체계로 반동적으로 움직이는 사회를 반성하고 이를 교정할 대안적 사유를 마련하는데 있을 것이다. 이것이 공공성 논의란 한 가지 이름으로 재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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