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접경에 병력을 늘리면서 크림반도 사태에 이은 제2의 군사 점령을 감행할 수 있다는 서방의 우려가 커졌다.
미국의 토니 블링큰 백악관 국가안보 담당 부보좌관은 러시아군 수천명이 우크라이나 동부 국경에 집결해 우크라이나를 위협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러시아의 마음을 돌려 침략하지 않도록 할 가능성이 매우 작다"고 우려했다고 AP통신이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외무장관도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냉전 종식 25년 만에 유럽에서 인정된 국경선을 불법으로 바꾸려고 한다"며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만큼 위험천만한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필립 브리드러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령관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동부 국경의 러시아군은 이미 전투태세가 확고한 상태다. 브리드로브는 "우크라이나와의 접경 지역에 배치된 러시아군은 대단히 규모가 크고 잘 준비돼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러시아의 트란스니스트리아 병합 가능성을 경고했다. 트란스니스트리아는 1990년 몰도바에서 분리·독립을 선언한 친러 성향의 자치공화국이다.
우크라이나에서도 우려가 크다. 안드리 파루비 국가안보·국방위원회 위원장은 "푸틴의 목표는 크림반도가 아니라 우크라이나 전체"라며 "국경에 집결한 러시아군이 언제라도 공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안드레이 데쉬차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23일 미국 ABC 방송의 '디스위크' 프로그램에서 "푸틴의 속셈을 몰라 무슨 결정을 내릴지 알 수 없다"며 "이 때문에 지난 주보다 사태가 한층 더 위험해졌다"고 경고했다.
미국 의회 야권에서는 버락 오바마 정부가 러시아군의 위협에 맞서 우크라이나에 소형 무기와 의료품 등을 지원해야 한다는 촉구가 나왔다.
공화당 지도부의 마이크 로저스(미시간) 하원 정보위원장은 23일 NBC 방송의 '밋더프레스' 프로그램에 출연해 "우크라이나가 자국을 지키도록 소형 무기, 의료품, 무선장비, 방어태세 무기체제(defensive-posture weapon systems) 등을 지원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우크라이나 동부는 전통적인 친(親)러시아 지역으로 이곳은 현재 크림반도 때처럼 러시아로의 편입이나 자치권 확대를 주장하는 주민 집회가 잇따르고 있다. 러시아로의 병합이 확정된 크림반도의 세르게이 악쇼노프 자치공화국 총리는 "(친러 지역인) 우크라이나 남동부의 미래는 러시아와의 굳건한 결속에 달렸다"고 23일 강조하기도 했다.
한편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위원장 후보인 장클로드 융커 전 룩셈부르크 총리는 EU가 러시아의 또 다른 침공 표적으로 꼽히는 몰도바와의 협력협정 절차를 대거 앞당겨 대(對)러시아 방호벽을 쳐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몰도바는 애초 EU와의 협정을 내년께 체결할 예정이었으나 러시아의 군사 위협이 강해진 만큼 협정 체결을 수주 내로 시급히 성사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EU는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합병한 러시아의 군사 팽창주의를 꺾고자 주요 인사에 대해 자산동결과 여행금지 등 제재를 내놨으나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이 보복 제재에 나서면서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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