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구미시 공단동에 있는 J업체에서 삼성전자 휴대폰 부품을 만들던 비정규직 파견노동자 유모(21.경북 문경)씨가 근무한지 석달 보름만에 '주 68시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 목숨을 잃었다.
유가족은 "장시간 노동과 스트레스가 직접적 사인"이라며 지난 14일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를 신청하는 한편, '근로기준법'(연장근로시간 한도초과・휴게시간 미달) 위반 혐의로 J업체 장모 사장을 지난 11일 고용노동부 구미지청에 고발했다. 또 고용노동부의 허가를 받지 않고 유씨를 J업체에 파견해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무허가파견)'을 위반한 혐의로 T업체 이모 사장도 구미지청에 고발했다.
민주노총 구미지부에 따르면, 유씨는 지난해 10월 5일 아침 7시 42분 숨을 거뒀다. 4일 저녁 8시 30분부터 야간근무를 하던 중 5일 새벽 5시 '속이 불편하다'고 휴게실에 갔다 새벽 6시 45분 몸이 굳고, 숨을 쉬지 않는 상태로 발견됐다. 병원에 이송됐지만 1시간만에 목숨을 잃었다.
부검결과 사망원인은 '원인불명 심정지'. 그러나 부검감정서는 "내인성 급사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해부학적으로 규명키 어려운 내적질환으로 사망했을 가능성도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시점까지 2시간가량 급성 발병이 일어났고, 20대 초반, 영양상태 양호, 자던 중 심정지가 발생한 점을 고려하면 "부정맥 등에 의한 급성심장사"나 "원인불명 청장년급사증후군"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두 질환 다 과로・스트레스가 발병 원인이라는 것도 부검감정서는 짚고 있다.
유씨는 T파견업체에 고용돼 지난해 6월 20일부터 삼성협력업체인 J업체 2공장에 비정규직으로 파견됐다. 학자금과 생계비 마련을 위해 시급 4860원을 벌러 공장에 취업한 것이다. 그렇게 유씨는 숨지기 전 석달 보름간 삼정전자 휴대폰 부품(케이스)을 만들었다. 생산라인에 배치돼 하루 종일 앉아 프레스기에 마그네슘 제품을 넣고 압축공기로 이물질을 제거, 프레스기로 부품을 빼는 동작을 반복했다.
근무형태는 2주단위 주야 12시간 맞교대로 1일 12시간 근무할 때도 있지만 야간에서 주간으로 교대할 때는 16시간, 주간에서 야간으로 교대할 때는 20시간을 일했다. 특히 유씨는 재해발병 전 4주 동안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평균 주 68.75시간, 재해발병 전 12주 동안은 평균 주 68.83시간을 일했다. 고용노동부가 '만성 과중 업무' 판단기준으로 명시한 주 60~64시간을 초과한 수치다.
뿐만 아니라 휴무일에 쉰 경우도 거의 없었다. 7월에는 7일, 8월에는 하루, 9월에는 사흘 밖에 못쉬었고, 추석에는 특근을 했다. J업체가 물량에 따라 비정규직 해고를 반복하고, 개인별 작업량이 낮거나 휴무가 많으면 "근태성적"을 이유로 파견직부터 해고해 휴무를 신청하지 못한 것이다.
유씨의 어머니 정모씨는 21일 평화뉴스와의 통화에서 "담배도 술도 하지 않던 건강한 아들이었는데, 20시간 일하고도 엄마를 돕겠다던 착한 아들이었는데 믿기지 않는다"며 "집에 내려와서 피곤에 지쳐 잠만 자던 마른모습이 생각나 눈물만 난다"고 말했다. 또 "장시간 노동과 스트레스에 시달려 목숨을 잃은 아들을 소모품 취급하고 사과 한마디 없는 업체 사장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산업재해가 인정되지 않으면 법정 싸움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이경호 노무사는 "과로와 스트레스 이외 사인 유발 요인이 전혀 없다"며 "법원 판례를 봐도 비슷한 사례를 산재로 인정한 경우가 있다. 추가 자료를 제출해 산재 승인을 받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태선 민주노총 구미지부 사무처장은 "불법파견노동자에 대한 장시간 노동과 최저임금 위반 문제는 구미공단에 벌어지는 일상"이라며 "이번 사고는 시스템에 의해 벌어진 문제다. 정부와 지자체가 책임을 갖고 문제 해결에 앞장서야 다시는 이런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J업체 김모 차장은 "사망원인에 대해서는 유족과 서로 입장차가 있다. 장시간 노동이 원인인지 아닌지 따져볼 문제"라며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그만큼 사실규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T업체 대표는 평화뉴스가 수차례 전화통화를 시도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앞서 20일 유가족과 민주노총 구미지부, 정의당, 녹색당, 노동당은 J업체 앞에서 추모 기자회견을 갖고 "장시간 노동과 최저임금에 시달리다 숨진 청년이 허망하게 우리 곁을 떠났다"며 "청년의 죽음을 외면하고 감추는 사업주와 지자체, 정부는 책임 지라"고 촉구했다. 특히 "사건 5개월이 지났는데도 사업주에 대한 아무런 처벌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산업재해 신청이 받아들여지고 사업주에 대한 유죄가 선고돼 억울한 청년의 죽음이 다시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한편 고용노동부 구미지청은 16일부터 J업체에 근로감독관 2명을 보내 현장감독을 벌이고 있다.
평화뉴스=프레시안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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