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영 익숙하지 않은 저자 이름과 아리송한 제목의 책이 출판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 책은 한 인터넷 서점의 '올해의 책'으로 등극했으며 책을 좀 본다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었다. 한 해 뒤 그의 대담과 강연을 엮은 책이 출간되었으며 올해 안으로 그의 두꺼운 데뷔작이 번역된다고 한다. 자국인 일본에서도 '혜성처럼 나타난'이란 수식어를 붙이고 다니는 사사키 아타루다.
평론가 사사키 아쓰시는 <현대 일본 사상>(송태욱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에서 1980년대 이후 일본의 '사상'이 출판 시장의 한 장르로 자리 잡고 시장 가치라는 평가 기준에 의해 스타 사상가를 배출해 온 과정을 메타적으로 그리고 있다. 거기에 등장하는 "플레이어(사상가)"의 이름은 국내에도 잘 알려진 아사다 아키라, 가라타니 고진, 아즈마 히로키 등이다. '혜성'이나 '신성'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자동적으로 이런 그림을 떠올림과 함께 사사키 아타루 역시 그 맥락 속에 언젠가 배출되어야 했던 스타 한 명 아니겠는가 하는 선입견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현실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고 폐쇄계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무력감에 시달리는 '읽고 쓰는 사람들'에게 글과 앎 편에 서서 이 이분법을 그만두자는 그의 이야기는 어떤 식으로든 자극제가 되지 않았을까. 그런 정체성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지나칠 정도로 무력감을 느끼는 시대이며, 그래서 유행하고 비판 받기를 반복하는 '인문학-힐링' 담론은 역으로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리고 사사키 아타루의 이야기는 어쩌면 '힐링'의 속성과 그것에 대항적인 속성을 동시에 품고 있기에 기묘한 매력을 지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류의 역사와 위대한 사상을 긴 호흡으로 꿰며 진지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목소리와 표정을 수시로 바꾸며 쇼맨십을 발휘하는 그의 강연은 과연 기묘한 데가 있었다. 그의 강연은 '청와대 앞 작은 서점'이자 문학·예술과 관련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공동체인 길담서원(대표 박성준)이 창립 6주년을 기념하여 사사키를 한국에 초청하며 이루어졌다. 지난 2월 25일 저녁 길담서원에서 첫 번째 강연을, 다음날 26일 정동의 북 카페 '산 다미아노'에서 두 번째 강연을 열었고 '프레시안 books'는 두 번째 강연을 취재했다. 주제는 "우리들이 '혁명'이라고 부르는 것, 우리들이 '종교'라고 부르는 것", 이제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볼 차례다. (강연 동시 통역=길영숙 통역사)
방금 아주 멋진 피아노 연주를 들었으니, 음악 이야기로 시작해 볼까요? 제 외모를 보고 느끼셨겠지만, 저는 음악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클래식에서 랩 음악에 이르기까지요. 고백하자면 저는 뮤지션이 되는 데 좌절한 경험이 있는 철학자입니다. 저는 그것을 결코 수치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긍지로 여기지요. 역사 속에서 음악가를 지망했으나 음악가가 되지 못하고 철학자의 길을 간 사람이 두 명 있는데 누군지 아시나요? 니체와 루소입니다. 이런 위대한 선배들이 있는데 부끄럽게 생각할 리가 있나요. (웃음)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음악에는 7~8만 년 정도의 역사가 있다고 합니다. 춤은 더 오래되었겠지요. 인류가 원숭이에서 인간이 된 이후부터 아마 춤은 계속 추어 오고 있었을 겁니다. 반면에 인간이 문자를 만들고 읽고 쓴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고작 5000년에 불과합니다.
음악은 굉장히 오래된 선배에 해당하는 장르라고 할 수 있고 그에 비하면 문학이나 독서는 비교적 신생의 장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독서란 매우 고루한 일이라는 생각은 엄청난 착각입니다. 역사 속에서 보면 읽고 쓰는 행위, 독서를 하고 책을 쓰는 행위는 아직까지 어린 아이에 불과한 예술이라는 겁니다. 방금 들으신 음악은 '충분히 성숙한 예술'에 해당하고요.
아마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일본에서는 젊은 학생들이 책을 너무나 안 읽는 것이 문제시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젊은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자네들은 젊으니까 보수적인 것에만 의존하지 말고 새로운 것에 눈을 좀 돌려보라고요. 이런 현상은 우리가 읽고 쓰는 것에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이쯤에서 자기소개를 드리겠습니다. 사사키 아타루라고 합니다. 저는 일본 혼슈의 최북단인 쓰가루 출신입니다. 현재 지명으로는 아오모리 현이지요. 고대에 그곳엔 에미시나 에조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본토의 기준에서 '야만인'이었던 제 조상들은 천황으로 이어지는 가계인 야마토 정권에 저항을 해 왔습니다. 상당히 끈질기게요. 한반도가 고구려·백제·신라로 분할되어 있던 때, 아니 통일 신라가 형성된 이후까지도 쓰가루는 여전히 독립국이었거든요. 비로소 굴복하기 시작한 것은, 한반도 역사가 고려 왕조 초기에 이르렀을 때부터입니다. 그 이전까지 제 조상들은 일본인이 아니었던 겁니다.
어쨌든 이 지역은 현재 일본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습니다. 그리고 남성의 평균 수명도 가장 짧고, 임금은 가장 낮은데 노동 시간은 가장 깁니다. 여러분들이 이때까지 봐 온 한국에서 강연을 한 일본의 지식인들과 제가 조금 다르다고 느낀다면, 아마 이러한 제 출신지와도 관련이 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일본의 지식인들은 도시의 돈 많은 집안에서 태어나는 경우가 많거든요.
자, 그렇다면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할까요? 어제(2월 25일) 길담서원에서 했던 첫 번째 강연과 주제는 사실상 같습니다. 우리의 개인적인 일들이 어떻게 법이나 정치, 나아가 신앙·종교와 이어져 있는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단숨에 구체적인 이야기로 들어가 보죠. 여러분 모두가 매일 보는 게 있지요? 바로 거울입니다. 남성분들의 경우 거울을 보며 면도를 한다거나 코털을 뽑지요. 여성분들은 화장을 위해 오랜 시간에 걸쳐 거울을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일상적인 거울이라는 것은, 사실은 굉장히 철학적인 도구입니다. 대체 무슨 얘기일까요?
여러분은 거울을 맨 처음 본 순간을 기억하나요? 어릴 적의 어떤 순간이겠죠. 아마 논리적으로 기억하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요, 자신이 이 모양으로 있다,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 라는 사실을 거울을 봄으로써밖에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직 거울을 본 적 없는 어린아이가 어떤 세계에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거울을 본 적 없다는 것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자신인지 모른다는 얘기입니다. 결국 자신과 세계를 구분하는 경계를 아직 모른다는 겁니다. 조르주 바타유는, 그러한 아이들이 커다란 대양 속 하나의 물방울 같은 형태로 존재한다고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세계 속에 녹아 있다는 겁니다.
이건 굉장히 무시무시한 일입니다. 자신의 쾌락이 세계의 쾌락과 마찬가지의 상태라는 것은, 그 전신이 아니 전 세계가 성감대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분리하는 것이 바로 거울의 역할입니다. 즉 거울이라는 것은 나 아닌 다른 것과 나를 분리해서 내가 이러한 형태라는 것을 단절된 상태로 보여주는 도구입니다.
'물체 자체는 인식하는 것도 지각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칸트는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것은 현상밖에 없다고 말했지요. 이야기가 점점 기묘해지죠? '물체 자체'가 대체 뭘까요? 한편으로는 굉장히 간단한 겁니다. 이 휴대폰을 거울이라고 해 봅시다. 여러분은 거울 자체를 볼 수는 없습니다. 어안이 벙벙하신가요? 우리가 거울을 본다고 했을 때, 우리 눈에 보이는 건 나 자신이지요. 다시 말해 거울 자체를 보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거울 자체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이것이 바로 칸트가 말하는 '물체 자체'의 의미입니다. 이처럼 거울은 굉장히 희한한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확실하게 존재는 하는데 인식할 수 없고 직접 볼 수 없는 것이 거울 말고 하나 더 있습니다. 그건 바로 여러분들의 얼굴입니다. 그야말로 거울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그것으로밖에, 당신의 얼굴은 볼 수가 없는 겁니다. 일종의 매개체를 통하지 않으면 인식이 불가하다는 것은 직접적으로 볼 수는 없다는 뜻이고요. 그러니까 거울은 그 자체를 직접 인식할 수 없는 도구이며, 동시에 응시되는 자기 얼굴을 직접 인식할 수 없게 만드는 기묘한 도구인 셈이지요. 다시 말해 거울은 자기 자신은 보이지 않는 것을 통해, 여러분들께는 '볼 수 있다'는 느낌을 전해주는 그런 도구입니다. 칸트는 경험 속에는 없는데 경험의 조건 자체를 제공하는 것에 대해 '초월론적'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에서처럼, 거울은 경험은 주지 않되 경험의 조건을 부여하는 지극히 철학적인 도구인 것입니다.
한편 거울은 단순히 이미지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제가 거울을 본다고 칩시다. '아 여기에 헌팅캡을 쓴 수염 난 기분 나쁜 아저씨가 있다!'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겁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거울을 볼 때 거기에 비치는 것은 나다, 라고 알고 있다는 겁니다. 거울을 보면서 '저건 누구야'라고 말하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겠지요?
하지만 거울을 보면서 '앗, 여기 내가 한 사람 더 있네!'라고 말해도 곤란하겠지요. 그러니까 여러분은 거울을 보며 '이건 내가 아니다'라고 인식한다는 말도 됩니다. 결국 우리는 거울을 볼 때 '이건 나야'와 '이건 내가 아니야'라는 모순되는 두 가지 명제를 동시에 받아들인다는 이야기입니다. 거울을 보면서 '넌 누구냐' 혹은 '내가 한 사람 더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느 쪽이든 좀 위험한 거겠지요. (웃음)
헤겔의 변증법, 모두 들어본 적 있을 겁니다. '에, 그게 뭐였더라?' 이런 느낌이겠지만요. 하지만 변증법은 굉장히 단순합니다. 헤겔은 'A는 A이다. 또한 A는 A가 아니다'라는 아주 단순한 사고를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고이자 변증법적 사고라고 했지요. 음, 말을 풀어보니 다시 어려워진 듯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게 바로 거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건 나이지만 동시에 내가 아니다, 라는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은 매일 면도와 화장을 하면서 헤겔의 변증법적 사고를 하고 계신다는 겁니다. (웃음)
라캉이 유아의 발달에 있어 거울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거울이라는 것은 단순한 이미지도 아니고 물체도 아닙니다. 거기엔 비유적으로 말해, 말이 심어져 있습니다. 거울은 굉장히 신비롭고 복잡한 장치입니다. 말과 물체와 이미지가 복합적으로 섞여 있는 몽타주이자 기계인 것이지요. 장치, 기계, 몽타주라는 표현을 왕왕 쓰는 프랑스 현대철학자들의 담론들은 바로 여기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좀 더 나아가보자면, 자기 자신, 즉 자아라는 것은 이렇듯 일종의 장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매일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화장이 지워진 곳은 없나, 면도할 때가 되지 않았나 확인하는 행위 또한 굉장히 복잡한 행위라고 볼 수 있어요. 결코 자연스러운 일, 당연한 일이 아닌 겁니다.
이 거울과 관련된 사고를 국가나 정치 차원으로 끌어올려 응용해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국의 국기를 보면서 이건 내 나라의 국기이고, 내 나라이며, 이것이 바로 내 자신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바람에 펄럭거리는 깃발 그 자체가 나 자신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좀 머리가 이상한 거겠죠.
뒤집어 말해, 나라가 국기를 갖고 있는 것은 그게 바로 거울과 비슷한 기능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거기에 자기 자신을 투영하고 그것을 사랑하는 겁니다. 일종의 나르시시즘이라 볼 수 있겠죠. 하지만 나르시시즘이란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프로이트는 그것이 병적인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거기에 '그것은 내가 아니다'라는 명제가 작용하는 한 건강한 일이라고요. (물론 그와 다르게 일본인이 일본 국기를 보고, 혹은 한국인이 한국 국기를 보고 '저건 나 자신이다'라고 받아들인다면, 즉 국가의 상징과 나 자신이 분간이 안 된다면 그것은 자연스럽고 건강한 애국심이 아니라 문제가 있는 애국심일 겁니다.)
아마 여기 모인 여러분 가운데엔 내셔널리즘에 대해 의문시하는 분들이 상당수일 텐데요. 그러니 다른 예를 들어 보죠. 자기가 취미 삼아 축구팀을 만든다고 해봅시다. 팀의 컬러는 역시 파란 색이 좋겠다, 라든가 멋진 엠블럼을 만들어 보자, 라는 이야기가 나올 겁니다. 그건 우리가 우리이기 위한 거울을 만들어낸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인간이라 하는 것은 어떤 공동체를 만들든 이런 거울에 해당하는 것을 만드는 작업으로부터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깃발, 배지, 엠블럼, 마크…… 이런 것들을 통하지 않고 무엇을 통치하거나 운영하는 데 성공한 적이 없습니다.
내셔널리즘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인 의식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현재 일본의 상황을 예로 들어 보자면,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핵발전소를 가동하고 싶어 하며 나아가 그것을 해외로 수출하려 하는 일본 정부를 비판하며 시위에 나서는 사람들이 있겠지요. 반 내셔널리즘의 잣대로 보지 않더라도 얼마나 멍청한 짓입니까? 저 역시 이런 탈핵 시위에 여러 차례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시위를 벌일 때 보면, 그들 역시 깃발이라든가 마크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느 쪽이든, 우리들은 거울에 해당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이야깁니다. 자기 자신이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어떠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라는 것을 알고 있으려면 거울로서 작용하는 뭔가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픽션(Fiction)이란 말을 아시겠지요? 만들어진 이야기나 허구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어원인 라틴어의 '픽티오넴'은 그야말로 '만들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말씀드린 거울의 특성은, 그야말로 픽션에 해당합니다. 자, 그러면 이것을 또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볼까요?
저는 베르그송과 들뢰즈라는 철학자를 좋아합니다만, 지금 이 시간부터는 그들을 비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베르그송은 '시간의 철학자'입니다. 그는 시계나 눈금 같은 것들을 통해서 정량적으로 잴 수 있는 것은 진정한 시간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를테면 사랑하는 연인과 한 시간을 보낼 때와 싫어하는 상사와 한 시간을 보낼 때, 그 두 시간은 다를 것입니다. 베르그송은 그러한 진정한 시간의 경험과 측정 불가능한 시간을 '지속'이라고 했습니다.
베르그송은 영화가 막 탄생했을 무렵에 활동한 철학자입니다. 그런데 그는 영화의 시간이 진정한 지속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왜일까요? 그에 따르면 영화라는 것은 정지되어 있는 화상인 사진, 즉 필름 한 장 한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것을 빠른 속도로 연속적으로 넘기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일종의 만화 같은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정지되어 있는 것을 스피디하게 운동시켜보았자 그것이 지속의 시간이 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베르그송은 훌륭한 철학자이고, 저 역시 굉장히 존경합니다만, 이 주장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괴롭게도 전 들뢰즈의 의견 역시 잘못되었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들뢰즈 역시, 베르그송과 마찬가지로 영화는 모두 '정지된 화상을 연속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제겐 이것 자체가 의심스럽게 생각됩니다. 사진은 정말 정지되어 있나요? 다시 묻겠습니다. 사진은 정말 정지화면인가요? 여러분은 '무슨 소리야'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이제부터 '사진은 정지되어 있지 않다'는 제 주장에 대해 세 가지 증거를 들어보겠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 보면, 셔터스피드라는 게 있지요. 셔터를 열고 렌즈에 화상이 잡히기 전까지 시간은 반드시 흐르고 있습니다. 1초 이하의 정말 짧은 순간이라 할지라도 셔터를 누른 이후부터 그것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때가지 시간은 틀림없이 경과합니다. 손 떨림 사진, 즉 번져 있는 사진이 왜 나오는 걸까요? 사진이 정말 정지화상이라면 우리가 사진을 찍을 때 손이 떨리지는 않겠지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봅시다. 1826년의 일입니다. 이 시기에 다게르와 니에프스라는 최초의 사진가가 탄생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당시에는 카메라 기술이 발달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피사체가 5,6분 정도 가만히 참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기묘한 도구도 만들어졌지요. 카메라에 찍히기 위해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각도로 뒷목을 붙잡아주는 도구였습니다.
나다르라고 하는 프랑스의 위대한 사진가가 있습니다. 빅토르 위고나 발자크 등 유명한 작가들도 이 사람에게 사진을 찍혔는데요. 굉장히 많이 흔들렸다고 합니다. 아마 침착하지 않았나 봅니다. 바그너와 보들레르도 사진을 찍혔는데요, 이들은 잘 안 움직였다고 합니다. 잘 나오기를 바라면서 꿋꿋하게 가만히 있었겠죠. (웃음) 어쨌든 사진이라는 것은, 애초부터 시간의 경과를 전제로 한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한 순간이라고 해도 셔터를 누르고 그것이 올라오기까지의 시간은 반드시 흐른다는 거지요. 이것이 첫 번째 증거입니다.
저서 속에서 그는 후에 유명해진, 아주 감동적인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어느 날 하버드대학에서 실험용으로 만든, 그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는 방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가 실험실에 들어갔을 때, 어땠을까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아야 마땅한 그 실험실에서 그는 두 가지 소리를 듣게 됩니다.
여러분, 아주 고요한 공간에서 '지잉~' 하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바로 그러한 소리, 신경이 흔들리는 소리를 존 케이지는 듣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또 하나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심장의 고동 소리였습니다. 거기서 존 케이지는 자못 감동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안심하라, 음악은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우리 스스로 소리를 내고 있으니까. 우리가 살아 있는 것이 곧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다. 음악은 사라지지 않으므로, 그것의 미래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요.
소리라는 것은 진동이지요. 제가 이 막대기를 딱, 하고 치면 흔들리게 되고, 그것이 공기를 경유하여 여러분 고막에 도달하게 되는 겁니다. 소리는 진동이며, 진동이란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살아 있는 한, 움직인다는 것이지요. 계속 흔들리며 떨리고 있죠. 멈출 수 없는 겁니다.
지금부터 10초를 그냥 날려보겠습니다.
이 10초 동안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이 10초간, 우리는 늙었습니다. 죽음에 가까이 다가선 거죠. 점점 썩어 들어가고 있습니다. 듣기 싫으실 테지만, 사실입니다. 10초간 늙었고, 썩어 갔고, 언젠가 시체가 되어버립니다. 그런데 시체가 된 이후에도 정지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썩어가는 과정은 계속해서 진행되거든요. 언젠가는 뼈만 남게 되겠죠. 그런데 뼈만 남았다고 해도 멈출 수 있을까요. 안 됩니다. 수천 년 동안, 뼈가 갈색으로 퇴화되고 부분적으로 훼손되는 과정이 진행됩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사물에게도 변함없이 일어나는 과정입니다. 이를테면 이 손수건을 봅시다. 아무 것도 안 하고 30년간 나둔다고 하면, 너덜너덜해질 겁니다. 100년 후엔 흔적도 없이 사라질지도 모르죠. 이것 역시, 10초 동안에 점차로 너덜너덜해진 겁니다. 초마다 조금씩 너덜너덜해지지만, 우리는 그것을 그 시간엔 결코 인식하지 못하고 10년, 20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인식하게 되는 것이겠지요.
스콧 피츠제럴드는 '인생이라는 것은 붕괴의 과정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슬픈 일이 아닙니다. 피츠제럴드는 일반적으로 봤을 때 두렵거나 슬픈 과정들을 참 기묘하게도 기쁜 과정으로 그려내는 재주를 가진 작가이기도 했지만요. 어쨌든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겁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계속해서 움직이고, 그것은 곧 붕괴의 한 가운데에 있다는 뜻이란 겁니다.
세 번째 증거로 넘어가겠습니다. 프랑스의 비평가 롤랑 바르트는 여러 사진에 대해 논한 바 있습니다. 그 가운데 1865년 알렉산더 가드너라는 사진가가 루이스 페인이라는 젊은이를 찍은 사진이 있습니다. 아주 잘 생긴 청년인 페인이 신비로운 모습으로 먼 곳을 응시하는 매력적인 사진이지요. 루이스 페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그는 당시 미 국무부 장관이었던 윌리엄 수어드를 암살하는데 실패하고 투옥된 청년이었습니다. 그 사진은 사형 집행 직전에 찍힌 것입니다.
바르트는 이 사진을 보고 마음이 흔들립니다. 이 사람은 이제부터 죽으러 가야만 하니까요. 그의 죽기 직전 모습이라는 거죠. 그런데 이렇게 기묘한 일도 있나요? 바르트가 그 사진을 보고 있을 때, 루이스 페인은 이미 죽고 이 세상에 없습니다. 사진 속의 루이스 페인은, 이제 곧 죽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인 데도요. 그 사진 속의 현재는 그러니까, 잃어버린 미래를 담고 있는 겁니다. 사진 속의 현재에서 그는 아직 '죽을 수밖에 없는' 상태에 있으며, 바로 그 상태에 있다는 것이 사진에 찍혀 있는 겁니다.
바르트는 또 다른 예도 들었습니다. 바르트는 자신의 어머니를 굉장히 사랑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굉장히 큰 슬픔에 빠지게 되지요. 그리고 어떤 사진을 계속해서 보게 되는데, 그 사진은 바로 어머니가 열다섯 살 시절에 찍은 사진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진 속 그 소녀는 자신이 나중에 롤랑 바르트를 낳게 될 거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낳은 아이가 자라서, 자신이 세상을 뜬 이후에, 자신의 열다섯 살 무렵의 사진을 보고 있을 거라는 사실 역시 모르고 있습니다. 사진 한 장 속에 아주 기묘한 형태로 그녀의 현재, 그녀의 아들의 현재, 그녀의 미래가 뒤섞여 있는 것입니다. 사진이라는 것은 이런 식으로 찍는 쪽과 찍히는 쪽의 과거, 현재, 미래가 교차하는 존재입니다. 즉, 시제를 혼란시키는 존재입니다.
조금 돌아서 가볼까요? 모리스 블랑쇼는 기묘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죽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죠. 대체 무슨 소리일까요? 알고 보면 아주 단순합니다. 위대한 철학자들은 단순한 데서 시작해 놀랄만한 결론에 도달하는 법이거든요. 모두가 흔히 있는 일이라 받아들이는 것을 아주 기묘하게 쓰는 재주가 있지요.
보통 행동이라는 것은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고, 마지막으로 결과를 보고 그것을 인식하며 종료됩니다. 커피를 마셔야지, 하면서 그것을 사고, 마시고, '내가 커피를 마셨구나' 하면서 커피를 마시는 행동이 끝나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께서 '자살'이라는 행동을 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언제 어떻게 죽기로 결심을 하고 밧줄을 사든 독약을 사든 계획을 실행에 옮깁니다. 그걸로 목을 맵니다. 그런데 거기에 기묘한 공간이 발생합니다. 목을 맨 사람의 의식은 점점 희미해져 가지요. 그러면서 보거나 듣거나 인식하거나 하는 능력이 점점 떨어지게 됩니다. 무슨 이야기일까요? 자기가 죽은 것을 확인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세상에서 가장 보기 어려운 것은, 바로 자신의 시신입니다. 아니, 자신의 시신을 보는 것만큼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죽는다는 것은 '완료'가 없는 것, 끝이 없는 것이며, 곧 완전하게 죽을 수는 없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자신이 죽었다고 확인 가능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는 겁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그래서, 블랑쇼의 말처럼 죽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종교라는 것에서는 '신은 가장 먼 곳에 계시지만, 너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처든 하느님이든 가장 고귀한 존재는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먼 곳에 있지만, 동시에 언제나 당신의 마음속에 있다고 하지요. 천국이나 극락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먼 곳에 있지만, 또한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고들 하잖아요.
가장 멀리 있고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도달할 수 없는 곳이라니, 어디일까요. 바로 당신의 시신이 있는 장소입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지만 절대로 볼 수도 도달할 수도 없는 그것은 바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시신이 있는 바로 그곳입니다. 그렇기에 모든 사자는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어느 문화에서든지 장례식이 있습니다. 장례식이 없는 문화란 존재하지 않지요. 그것은 죽은 사람을 잃은 산 자들이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행위라고 이야기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죽은 사람은 얼마나 슬플까요. 그리고 제가 무엇이 슬프다고 말하고 있는 걸까요. 사자 입장에서는, 스스로 죽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사실이 슬픈 것입니다. 그리고 장례식이란 본인이 죽었음을 알지 못하는 사자에 대해 그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하는 행위인 겁니다. 실제로 러시아 정교회의 장례식에서는 '너는 죽었다, 너는 죽었다'라는 말을 다 같이 합창하는 의식을 치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죽음이 곧 멈추는 것, 정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스스로의 죽음을 인식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곧 자신이 정지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죽을 수는 없다'라는 말은, 우리가 죽음을 향해 무한히 다가가는 어떤 운동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와도 같습니다. 다시 말해 이 세상에는 죽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히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붕괴의 운동을 계속하는 것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야기를 원위치로 돌리겠습니다. 여러분은 거울에 비친 본인의 모습을 정지된 화면이라고 인식하겠지만, 그건 허구입니다. 거울에 비친 여러분들의 모습도 정지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 근거 없이, 거울에 비친 본인의 모습을 정지 화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거울에 비친 그 상(像)은 만들어진 것, 날조된 것, 즉 픽션이라는 겁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거울에는 시간이 찍혀져 있다고요. 그것은 멈춰 있는 픽션이 어떤 의미에서 영원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겁니다. 영원이라는 건 어떤 뜻일까요. 간단합니다. 응원하는 축구팀의 엠블럼을 보았을 때, 자기가 속한 국가의 국기를 보았을 때, 여러분은 그런 것이 영원하다고 생각합니다. 엠블럼이나 국기 같은 것이 거울로 작용하는 한 그것은 불멸한 존재입니다.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 것, 부동의 것, 영원한 것을 픽션으로서라도 연출하지 않는다면, 인간의 공동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게 됩니다.
한 번 더 우회하도록 하지요. 유럽의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회화 작품들이 굉장히 발달해 있습니다. 이들처럼 아주 정밀한 회화 작품을 대량으로 보유한 다른 문화권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이슬람권에서는 건축이나 문양이 들어간 융단 같은 것은 발달해 있지만 아주 정밀하게 사실적으로 묘사한 회화 작품은 거의 없습니다. 어째서일까요?
이는 예수가 신인 동시에 사람이라는 설정에서 연원합니다. 예수는 신인가요, 인간인가요? 굳이 말하자면 신에 좀 더 가깝지 않느냐, 라고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감히 인간에 더 가깝지 않느냐, 라고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그저 하나의 인간인 예수가 그대로 신과 동일하다고 받아들여진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습니다. 그는 신이니까 로마군 따위는 무찔렀으면 됐을 텐데 왜 순순히 죽임을 당했을까요. 그것은 살해당함으로써 한 사람의 인간이란 사실을 증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며칠 뒤 부활함으로써 신이라는 것도 증명했습니다. 이건 정말이지 굉장한 겁니다. 일(1)이 곧 무한이라는 말과 마찬가지이니까요.
철저한 신앙 체계를 가진 이슬람권이나 유대교 문화권에서 하느님은 곧 무한입니다. 무한을 그리는 것이 가능합니까? 반복하겠습니다. 무한을 묘사할 수 있나요? 우리는 거울을 보고 비로소 형태가 경계 지어져 있다는 사실, 곧 유한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는 곧 무한을 묘사할 수 없다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이런 점에 있어 유대교나 이슬람교는 무한한 존재인 신을 묘사할 수 없었던 겁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하고 가치 있는 것은 그림으로 나타낼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비틀림 없는, 아주 똑바른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이기도 합니다. 유한하기 때문에 그림으로 묘사할 수 있는 겁니다. 여러분이 유럽의 유명한 미술관에 가서 하루 종일 그림 구경을 한다면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유명한 세잔이나 마네 같은 사람의 작품은 극히 일부고,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중세와 고대에 해당되는 시대의 작품들이란 겁니다. 거기서 우리는 무엇을 하게 될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그린 그림이 아주 많이, 많이, 많이 있다는 것을 목도하게 됩니다. 이 사람들, 왜 이렇게까지 시신을 좋아하는 걸까요? 하지만 기독교의 이러한 기묘함이야말로 유럽의 위대한 회화 작품들을 만들어낸 근본 이유였습니다. 그들은 언젠가 스스로가 신을 묘사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고 있었던 겁니다.
한 가지만 더 보완 설명을 하겠습니다. 유럽의 학자들은 종종 '왜 다른 종교 문화권에서는 근대가 탄생하지 못했는가' '우리 기독교 문화권에서만 근대를 탄생시킨 것 아니냐'라는 참으로 고의적인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근대라는 것은 신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 시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 그것이 탄생하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형태로 신이 세상을 떠나잖아요. 즉 기독교에는 신이 죽는다는 사실이 애초에 기본값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기독교는 신의 죽음과 그 시신을 칭송하고 받드는 그런 종교인 겁니다.
오해가 없다면 좋겠습니다. 저는 지금 기독교에 대해 비판적으로 말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잘 아시겠지만, 토마스 아퀴나스라는 위대한 기독교 학자가 있습니다. 13세기에 기독교의 교의를 만들어낸 사람이지요. 천재적 학자였던, '천사 같은 박사'라 불렸던 그가 저술한 신앙 관련 책에, 제가 지금 말씀드린 내용이 거의 다 나와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떠받들고 있는 것 아니냐'고 그는 적었습니다.
신이 한 명의 인간이기 때문에 신을 그릴 수가 있었고, 처음부터 신이 세상을 떠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신 없는 상태에서 세계를 그릴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근대를 만들 수 있었던 거죠. 이 다이내믹한 기독교의 힘은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윌리엄 블레이크라는 뛰어난 시인이 있습니다. 그는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진정한 이미지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미지, 즉 상이란 사진이나 거울이 그런 것처럼 정지되어 있는 것을 말하지요. 그러나 저는 이미지라는 것이 원래 정지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고, 정지되어 있는 것은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다만 운동하고 있는 어떤 것들을 정지한 것처럼 연출해서 보여줄 뿐인 겁니다. 그리고 바로 그곳이 신앙이 설계되는 장소입니다. 풀어서 말하자면, 우리는 그 정지되어 있는 이미지와 자기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주체를 만들어 낸다는 이야기입니다.
제겐 신앙이 없습니다만, 일본의 오래된 도시인 교토나 나라에서 위대한 불상을 보면 거부하려 몸서리를 쳐도 결국 두 손을 모아버리고 맙니다.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이지요. (여담이지만 일본인 스스로의 힘으로 위대한 불상을 조각할 수 있게 된 것은 중세 이후부터이고,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다수의 고대 불상은 대부분 한반도에서 도래한 사람들이 만든 것입니다.) 어쨌든 이렇게 정지되어 있는 이미지를 상연함으로써 신앙과 주체가 만들어진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 작업은 인간 세계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것입니다.
저의 스승이기도 하고 위대한 법학자이기도 한 르장드르는 말했습니다. 그러한 깃발, 배지, 아이콘, 엠블럼 등 이미지를 연출해서 보여주는 것 없이 인간 사회가 성립한 시대는 없었다고요. 이것은 굉장히 위험한 언설로 비칠지도 모릅니다. 르장드르도 오랜 기간 국수주의자가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고요.
그러나 그 외에 또 다른 방법이 있었을까요. 그런 이미지를 연출하는 것과 우리가 여러 사람들과 공생한다는 것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건 어쩌면 아주 가느다란 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가느다란 길을 지나지 않으면 미래를 향해 뻗은 커다란 길을 걸어갈 수 없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그런 이미지들은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만들어진 픽션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픽션이라는 것은 앞으로 우리가 그런 것들을 새롭게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뜻하기도 합니다. 완전히 새로운 이미지를 연출해내는 작업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사람과 사람 간의 유대관계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니체는 '수치스러운 기원'이라는 흥미로운 발언을 한 적이 있습니다. 대체 무슨 뜻일까요. 예를 들어봅시다. 일본의 머리가 이상한 우익들은 일본 국기를 굉장히 떠받듭니다. 그것이 찢어지거나 훼손되면 마치 자기 눈이 찢어진 것처럼 격한 반응을 보이죠. 한편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에서는 이 전쟁에 반대하던 젊은 학생들이 성조기를 일부러 태우거나 훼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 대법원은 이것에 대해 범죄가 아니라 표현의 자유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동시에 많은 미국인들은 성조기를 보면 모자를 벗고 가슴에 손을 얹는 자세를 취합니다.
결국 자국의 국기를 사랑하는 마음과 그것을 훼손해도 된다고 보는 생각은 모순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정말 자국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면 국기가 훼손되거나 불타도 '다시 인쇄하면 되지'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것이 불탄다고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은, 말하자면 거울을 보면서 '저것은 나다'라고 생각하는 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일본 국기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에 근거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입니다만, 사실 그것은 기껏해야 100년 정도의 역사를 갖고 있을 뿐입니다. 근대화를 통해 무리하게 만들어낸 가짜인 것이지요. 또한 일본에서는 매해 8월에 선조들의 명복을 기리는 춤인 '봉오도리'라는 행사를 하는데, 많은 일본인들이 이것을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이라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행사 역시 고작 4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식으로 대다수가 전통이라 믿고 있는 것은 사실 최근에 만들어진 것, 날조된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니체는 이렇듯 얼마 전에 제멋대로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지만 전통이라 믿기는 것들에 복종하라는 강압적인 태도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리고 '수치스러운 기원'은 바로 그 비판을 위한 사고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니체는 그리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그 부끄러운 기원을 파괴한다 하더라도 당장 희망적인 미래가 도래할 것이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요. 거기에는 폐허와 황야가 널리 펼쳐져 있을 뿐이라고요.
그 자리에서 저는 생각합니다. 한반도와 일본 열도 사이 불행한 역사의 새로운 기원을, 그 부끄러움 속에서 우리가 만들어낼 수는 없는 것일까 하고요. 그렇다고 제가 침략한 쪽이라는 사실을 덮어버리거나 면할 수는 없습니다. 그 사실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고요. 그렇기에 이런 말씀을 드릴 자격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공통의 기원을 만드는 것, 우리의 우정을 다시 구축하는 것, 그것은 정말로 불가능할까요? 이런 제 생각은 잘못된 것일까요?
여기까지입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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