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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체제 노조는 '어용'? 암흑 속 빛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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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정희 체제 노조는 '어용'? 암흑 속 빛이 있었다!

[프레시안 books] 남화숙의 <배 만들기, 나라 만들기>

1.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 최강서 그리고 김진숙으로 기억되는 곳이 있다. 앞의 네 명은 이미 이 세상에 없고 김진숙만 소금꽃 나무로 살아있다. 먹고살기 위해 들어간 공장에서 먹고살기 위해 싸우다 결국 살아남지 못한 이들의 고혼이 떠도는 곳, 한진중공업이다. 한여름 뙤약볕 속의 용접 불꽃이 살점을 파고들고 고공 추락으로 뇌수가 두부처럼 으깨지는 곳이 조선소라 한다. 80년대 이후 파업과 투쟁, 해고와 구속, 손배가압류 그리고 의문사와 자살과 크레인 농성이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처럼 반복되는 곳, 한진중공업이다.

한진중공업의 개체발생의 역사는 어쩌면 한국의 계통발생의 역사를 반복하는 것처럼 보인다. 식민지 시기 조선중공업으로 출발해 해방 이후 대한조선공사라는 국영기업으로 이어지다 결국 민영화되어 한진중공업으로 귀결된 과정은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역사를 상징하는 듯하다. 그것은 곧 권력이 시장에 넘어가는 천로역정처럼 보인다.

▲ <배 만들기, 나라 만들기>(남화숙 지음, 남관숙·남화숙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후마니타스
헌데 역사의 스포트라이트가 환하게 비추는 국가와 시장에서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삶과 투쟁이 있음을 증거하는 책이 있다. 남화숙의 <배 만들기, 나라 만들기>(남관숙·남화숙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가 그것이다. 이 책은 대한조선공사 노동자들의 꿈과 희망이자 자랑이었던 노동조합의 역사를 긴 호흡으로 추적하고 있다. 멀리 식민지 시기부터 1980년대에 이르는 긴 세월동안 대한조선공사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의 역사에 또 다른 빛을 비추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책의 스포트라이트는 1960년대를 정조준하고 있다. 한국의 노동운동과 관련한 기존의 연구는 일제 시기와 해방공간의 폭발적 운동을 다룬 다음 70년대로 넘어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더욱이 박정희 체제가 성립되어 경제개발과 근대화론이 압도하던 1960년대는 노동운동의 암흑기로 여겨졌다. 4․19혁명으로 고양되던 노동운동이 5․16으로 압살되어 기나긴 동면에 들어간 것으로 이해된 것이다. 그렇기에 1970년 전태일의 분신은 새로운 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기점처럼 여겨졌다.

물론 전태일의 분신은 그 자체로 거대한 사건임이 분명했다. 그것은 급속한 자본주의적 산업화가 초래한 현실이 무엇인가를 상징적으로 웅변하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전태일의 그 강렬한 불꽃이 70년대를 찬란하게 비출수록 60년대는 점점 더 암흑기가 되어갔던 것도 사실이었다. 역으로 전태일의 빛을 더욱 밝게 하기 위해서라도 60년대 운동은 어둠 속에 놓여 있어야 했다.

60년대와 70년대의 명암이 극적으로 갈리는 이러한 역사 인식에 이 책은 신선한 충격임이 분명하다. 이 책은 기존의 통념화된 노동운동사 인식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제기가 된다고 하겠다. 대한조선공사 노동조합의 역사를 추적해 또 다른 빛나는 노동운동의 역사가 있었음을 드러냄으로써 60년대를 암흑으로부터 구해내고 있다.

이 책이 비춰주는 시대는 다만 1960년대뿐만이 아니다. 멀리 일제시기와 해방공간 그리고 노동법 제정 과정을 포함해 1950년대까지 시야에 넣고 거의 전 시기에 걸친 조선공사 노동운동을 살펴보고 있다. 단위 사업장의 노조 운동을 이렇게 긴 시야에 넣고 분석한 연구 성과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 책은 좁게 단위사업장의 노동운동만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상은 대한조선공사 노동조합이지만 결국 한국사회 전체의 역사를 조망할 수 있게 해준다.

특히 전진한의 활동을 통해 노동법 제정 과정과 그 의미를 분석한 부분은 기존의 통념을 깨는 신선한 시각이 돋보인다. 기존 노동운동사 연구가 일제 시기 적색노조 운동, 해방 공간의 전평 등 사회주의적 전망 속에서 이루어진 운동에만 주목했다면, 이 책은 반공주의적 노동운동의 의미를 새롭게 분석하고 있다. 결국 제헌헌법과 1953년 전쟁통에 제정된 노동법에 스며들어 있는 또 다른 운동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때,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는 '준법투쟁'을 위해 자기 몸을 불살라야만 되었던 극단의 시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조선공사 노조 운동 또한 동일선상에서 이해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해방공간 좌파 주도의 노동운동이 궤멸되고 말았음에도 불구하고 조선공사 노조는 새로운 운동을 구성해냈다. 이 책의 백미는 이 조선공사 노조 활동을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생동감 있게 복원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박정희 체제가 성립된 이후의 노동운동을 '어용'이라는 한 마디로 간단하게 치부했던 그간의 풍조에 도발적 문제제기를 한 셈이다. 국가 주도의 'nation building' 과정 속에서 노동운동이 어떻게 존재했고 또 운동했는가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오늘의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도 요령부득일 것이다.

특히 60년대에 이미 임시공, 양성공, 파견공과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끌어안으려 한 조공노조의 경험은 현재 상황에 비추어 큰 울림을 준다. 더 많은 이윤을 위해 피지배 집단을 분할 지배하고자 하는 전략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배 세력의 흔한 술책이었고 이는 1960년대도 예외가 아니었다. 공감의 열정 대신 이익의 이해타산을 통한 경쟁이야말로 자본주의와 자유주의가 오랫동안 강조해온 가치이자 윤리였고 어느덧 한국사회에서도 관습과 상식이 되었다. 그러나 최소한 1960년대 조공노조는 이를 호락호락 받아들이지 않았고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음으로써 비로소 연대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1960년대 조선공사의 노조 운동은 당대 최고였다. 그것은 다만 국영기업과 조선업이라는 특정 영역을 넘어 당대 노동운동의 정수와 같은 것이었다. 조공노조원 스스로 강렬한 자부심과 긍지를 숨길 수 없을 정도로 빛나는 것이었다.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이 책 전체가 그 이유를 설명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으로 일관된다고도 하겠다.

이와 관련해 인상적인 대목은 조공노조가 평등과 존엄을 강조하면서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생활임금 쟁취를 위해 노력했고 또 매우 성공적으로 관철시켰다는 점이다. 단적인 예로 앞서 말한 비정규직과의 평등한 연대를 실현했다는 점과 퇴직금 누진제를 관철시켰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중요한 조건은 바로 아래로부터 조합원의 힘이 올라올 수 있도록 한 내부 민주주의의 작동이었다. 아래로부터의 압력과 내부 민주주의의 힘이 너무 강해 강력하고 신속한 지도력의 행사가 어려울 정도였다는 점은 한편으로 조공노조의 투쟁을 어렵게 만들기도 했지만 궁극적으로 노조 운동의 알파요 오메가일 것이다. 현재 민주노총과 노동운동이 직면한 비정규직 문제나 현장과 유리된 관료화 경향 등에 비추어 매우 시사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하나 주목되는 부분은 조공노조가 당대의 정치적, 이념적 조건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유연하게 운동을 전개했다는 점이다. 박정희 체제가 내세운 근대화와 민족주의를 전유해 저항 담론으로 활용한 것은 두고두고 음미해 볼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즉 "경제발전의 원동력은 노동"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다든지 일감이 일본으로 넘어가는 문제를 민족주의적 담론으로 비판한 것 등은 당대의 지배적 가치와 연동된 전술이었다고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전략은 양날의 칼임이 분명했다. 발전주의와 민족주의는 지배세력의 전가의 보도였고 이를 활용한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들의 다리 한 쪽을 던져준 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상 모든 운동이 진공상태에서 벌어질 수는 없었듯이 조공노조 또한 자신들을 둘러싼 지배적 담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고 그 조건을 전유하기 위한 구체적 실천의 사례들을 보여주었다. 요컨대 이 책은 조선공사 노조가 평등주의와 민주주의, 인간다운 삶에 대한 빛나는 투쟁들을 엮어냈음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역작이라고 하겠다.

2.

▲ 조선소 노동자들의 모습. (이 사진은 본 기사의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프레시안(여정민)
이 책이 암흑처럼 여겨졌던 1960년대 노동운동에 찬란한 빛을 비추어 준 것은 틀림없지만 그 빛은 숙명적으로 자신이 만든 그림자를 동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그 그림자는 단지 빛의 어두운 구석이 아니라 깊이 사유해야 할 화두일 것이다.

먼저 박정희 체제의 근대화 프로젝트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저자는 이를 50~60년대 저류를 형성한 대중의 근대에 대한 열망과 이에 대한 국가 반응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는 물론 적절한 지적이지만 좀 더 복잡한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즉 대중의 근대에 대한 열망은 다양한 가능성을 갖는 것이었지만 박정희 체제가 이를 생산력주의적으로 전유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즉 4․19혁명은 생산관계를 포함한 사회 변혁적 전망과 생산력주의 양자 모두를 포함한 것이었으나 박정희 체제는 이를 생산력주의적 문제설정으로 환원했다고 보인다. 다시 말해 경제적 문제설정을 특권화함으로써 개발주의를 전면화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둘째, 조선공사 노동자들이 보여준 집합적 정체성 문제이다. 저자는 가부장적 남성이자 노동자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엘리트층이었고 일제 시기 이래의 숙련공이자 경남지역이라는 지역적 통합성이 강렬했던 존재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특징을 가진 조공 노동자들의 집합적 정체성을 어떻게 집약해서 설명할 수 있는가에 대한 자세한 언급이 필요하다고 보인다. 또한 구해근, 신원철 등이 지적하고 있듯이 장인 전통이 부재한 한국의 1세대 산업 노동자들이라는 특징이 조공노조 운동에서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었는지도 궁금하다. 숙련공이기는 하지만 장인 전통이 부재하기에 작업 과정과 작업장에 대한 자율적 장악이 미약했다고도 보이는데, 이에 대한 분석과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조공 노동자들의 집합적 정체성과 관련해 흥미로운 분석 중의 하나는 민주주의이다. 저자는 민주주의에 대한 강렬한 열망과 신념을 설명하면서 엘리트 지식인들의 근대화 프로젝트와 군대 경험의 의미를 강조했다. 전자는 이론의 여지가 크지 않지만 군대 경험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 전쟁을 통해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건 경험이 과연 어느 정도 내면화될 수 있었을까에 대한 의문이 든다. 형식적 포섭은 가능했겠지만 실질적 포섭은 의문의 여지가 크다고 판단된다. 게다가 수직적 계열화를 강조하는 군대 규율과 민주주의는 배치되는 것 아닌가 한다. 1960년대 조공노조의 전성기를 이끈 허재업과 같은 권위 있는 노조 지도자조차 버겁게 만들었던 조공 노동자들의 아래로부터의 거친(?) 민주주의와 군대 경험이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가 궁금한 것이다.

해방 이후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지배적 가치, 제도, 관습, 담론으로 관철되어 간 것은 분명하다. 특히 해방 이후 민주주의는 좌우 모두의 가치였으나 전쟁 이후 좌파적 지향은 소거되고 자유 민주주의로 일색화하였다. 게다가 전쟁 이후 민주주의를 제외하고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쓰일만한 담론 자원은 거의 사라졌다. 즉 자유 민주주의는 지배 이데올로기로 출발한 셈인데 50년대를 거치며 저항 담론으로 확장되었고 4․19는 그 극적인 결과였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가 기표와 기의가 어긋난다는 점이다. 발화 주체에 따라, 맥락에 따라 기표와 기의가 어긋나면서 민주주의는 지배와 저항을 넘나들며 정치적 효과를 산출했다고 보인다. 조선공사 노동자들이 발화하고 실천한 민주주의가 체제가 발화하고 실천하는 그것과 동일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인가는 큰 의문이다. 동일 기표로 발화되었지만 서로 다른 지시대상을 가리키는 역설 속에 민주주의를 둘러싼 경합관계가 형성되었다고 보인다.

셋째는 민족주의와 근대성에 입각한 노조의 수사학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이다. 조공노조는 수많은 성명서와 문서들을 통해 민족주의와 국가발전 이데올로기에 근거해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고자 했다. 이는 일종의 되받아쓰기 전략(writing back)을 구사한 것으로 보이는데, 국가가 천명한 가치에 근거함으로써 자신들을 보호하고 정당화하고자 한 것으로 판단된다. 사실 피지배층이 지배층의 지배 이데올로기와 전혀 다른 담론으로 저항을 실천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오히려 지배층이 공언한 가치와 담론에 근거해 자신들의 정치적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하겠다.

광주시민들이 애국가를 부르며 자유 민주주의를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지배 이데올로기는 불가피하게 기표와 기의의 미끄러짐을 보여준다. 따라서 조공노조의 기의가 체제의 그것과 어떠한 관계에 있었는지가 분석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이 문제는 조공노조 운동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도 중요하다. 60년대라는 암흑기(?)에 이루어진 조공노조의 운동은 과연 당시 체제가 그어놓은 경계선을 넘을 수 있었을까에 대한 질문이 필요할 것이다. 80년대 이후 일반화된 '노동해방'이란 기표는 대단히 모호하기는 하지만, 체제 경계선을 넘나드는 기의를 산출해냈다고 보이는 반면 조공노조의 운동은 체제가 설정한 가치와 담론 너머로 자신들의 전망을 투사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민족국가 건설 프로젝트를 수용하면서 진행된, 게다가 외부가 거의 없는 조건 하에서, 스스로가 최고의 운동임을 외롭게 자각할 수밖에 없었던 조공노조의 투쟁은 국가가 그어놓은 선 안으로 끊임없이 회귀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저자도 강조하듯이 60년대 박정희 체제는 유신체제와 달리 상당한 정도로 노동운동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상태였다. 자본과 노동의 조화와 융화를 강조한 민족주의 언설도 그러했고 60년대 초반 인민주의적 대중정치를 통해 보여준 지향도 그러했다. 그러나 체제가 스스로를 변형시키는 순간 조공노조의 운동도 더 이상 존속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민족주의와 근대화는 조공노조의 정당성을 확인시켜주는 것이자 무엇보다 국가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고 하겠다. 70년대 팽종출 지부장 시절의 조공노조는 두 개의 정당성이 어떻게 밀착될 수 있는가를 보여준 셈이었다.

즉 민족주의와 근대화를 이용하는 것은 양가적 효과를 낸다고 보인다. 한편으로는 사측을 압박하고 국가를 등에 업는 것이자 스스로 국가주의의 품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기도 했다. 대중이 기존의 지배적 가치에 입각해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한다고 했을 때, 문제는 그 이데올로기를 내파하는 실천으로 연결될 수 있는가이다.

넷째는 조공노조의 투쟁이 공장 담을 넘어설 수 없었던 사정에 대한 질문이다. 가족이나 시민들의 동참, 국영기업체 노조와의 연대 모색, 상급 단체와의 협력 노력 등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그래서 가장 선진적이기는 했지만, 끝내 조공노조는 공장 담을 넘는데 실패했다. 이는 물론 당시 노동운동 진영 전체의 문제이기도 할 텐데, 가장 선진적인 조공노조는 외로운 늑대처럼 게토화된 셈이었다. 이는 앞서 얘기한 체제가 그어 놓은 선을 넘는 문제와도 관련된다고 하겠다. 즉 개별 사업장의 투쟁은 어느 정도 용납될 수 있지만 연대의 문제가 제기되는 순간 체제의 허용 범위는 급속도로 좁아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조공 노동자들의 평등주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이다. 60년대 내내 조공노조는 하후상박의 원칙을 적용하는 등 강한 평등주의적 지향을 보여주었다. 저자는 단지 기회의 평등이 아니라 결과의 평등, 즉 실질적 평등을 구현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 것으로 평가했다.

주지하듯이 급속한 산업화 과정은 자본주의적 시장의 경쟁을 급속도로 강화시킨다. 사회적 재생산 과정의 경쟁 시스템으로써 교육 부문은 말할 것도 없고(소위 평준화는 경쟁의 확산과 장기화를 초래했다.) 노동시장 내의 경쟁, 작업장 내의 경쟁도 더욱 격화되고 있었다. 물론 1960년대 작업장 내에 연공급 대신 직무급과 성과급을 도입하려는 시도는 그리 성공적이지 않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인 것이었고 70년대 이후로는 상황이 달라진다고 생각된다. 1960~70년대를 통해 사실상 경쟁 자체를 거부하거나 부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다만 공정한 경쟁에 대한 압력이 강화될 뿐이었다. 기회의 평등을 강조하는 공정한 경쟁의 압력이 대세를 이루는 조건 하에서 조공노조의 실질적 평등을 위한 노력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손문상)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조공노조의 빛을 다시 보게 되었고 또 그 그림자를 사유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그림자를 동반하는 것이었다 해도 빛은 그 자체로 찬란한 것이며 그림자를 없애는 것은 빛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빛을 던지는 것이다.

임한식, 허재업, 김옥생 그리고 박정부, 조공노조가 빛나던 시절 같이 빛나던 이들이다. 우리는 이들의 이름과 그 빛나던 시절을 수십 년 간 다시 암흑 속에 처박아 두었다. 수십 년 뒤 우리는 어느덧 박창수, 곽재규, 김주익, 최강서 그리고 김진숙을 까맣게 잊어버려 또 다른 역사학자의 고투를 기다리게 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의 그림자를 없애기 위해 또 다른 빛을 던져야 되지 않겠는가. 허재업과 박정부가 박창수와 김진숙의 오래된 미래였다면 오늘의 우리에게 오래된 미래는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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