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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꿈꾸는 님들, 광화문 무단 횡단은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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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꿈꾸는 님들, 광화문 무단 횡단은 어떻습니까?

[초록發光] 8차선 대로 보행권

수도권 광역 단체장 예비 후보들 사이에서 버스 공영제와 무상 교통 도입을 둘러싼 논쟁이 경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진보 정당 일각에서 지난 몇 차례 선거에서 제안되었던 정책이 지평을 넓힌 셈이니 일단 매우 반가운 일이다. 다만 이 공방이 기술적 또는 경제적 현실성이나 개별적 제도 도입 문제로 좁혀지지 말고, 도시에서 이동하는 것에 관한 모든 권리에 대한 논의를 열어젖히는 마중물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단적으로 말해, 지금의 정책 논의는 버스든 자가용이든 도시 철도든 간에 차량으로 이동하는 권리의 보장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더 원초적이고 보편적인 이동 수단은 보행(휠체어 이동을 포함하여)임이 분명하며, 차량을 타고 내리고 환승하며 집과 일터로 다니는 사이에도 보행이 빠질 수는 없다. 그만큼 마음 편히 즐겁게 걸을 수 있는 권리 또는 재미는 살만한 도시를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한국에서 '보행권'이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이었다. 가시적인 시작은 1993년 출범한 '녹색교통운동'을 중심으로 시민 단체들이 서울시청에서 종로5가까지 '보행권 신장을 위한 도심지 걷기 대회'를 감행한 것이었다. 지하도와 육교로 끊겨있는 사람의 길, 자동차의 위협과 소음으로 침해받는 인도와 골목길의 실태를 고발하며 횡단보도 설치와 보행자 가로 조성을 요구했다.

1996년에 만들어진 '걷고 싶은 서울 만들기 운동 본부'는 보행권 입법 운동을 본격화하여 이듬해에 '서울시 보행 환경 기본 조례' 공포와 보행 환경 5개년 기본 계획 수립이라는 결실을 거두게 된다. 비록 지방자치단체의 기본적 자세와 보행권 개선 사업의 근거를 만드는 정도의 상징적인 조례였지만, 그 자체로도 큰 의미였고 이후 다양한 후속 사업을 가능하게 했다.

비록 시민 사회에서 바랐던 바와는 다르게 전개된 경우도 많았지만, 서울시청 앞 광장과 세종로 광장 조성, 광화문과 시내 주요 도로의 횡단보도 설치는 서울 시민도 체감하는 결과들이다. 보행 조례 제정 운동의 중심에 섰던 '시민교통환경센터'는 '도시연대(걷고 싶은 도시 만들기 시민 연대)'로 개명하고 운동의 성과를 이어 인사동 가꾸기, 주민 참여 한 평 공원 만들기, 커뮤니티 디자인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갔다.

2002년 5월 발산역 장애인 리프트 추락 사고로 촉발된 장애인 이동권 쟁취 투쟁은 더 넓은 의미의 보행권 운동을 한 단계 진전시켰다. 이동권 투쟁은 도로 턱과 계단이 장애인들에게 얼마나 큰 사회적 '장애물'이 되는지, 그래서 왜 한국의 도시들에서 장애인이 보이지 않는 존재였는지,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와 시민이 어떻게 함께 변해가야 하는지를 깨우쳐주었다. 쇠사슬 결박과 점거, 단식을 되풀이하는 지난한 투쟁의 결과 이동권 투쟁은 저상형 버스 도입,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설치 같은 물리적 성과와 함께 사회의 인식도 바꾸는 성과를 거두었다.

'발바리(두 발과 두 바퀴로 다니는 떼거리)'들의 이른바 '떼잔차질'은 또 하나의 이동권 운동이었다. 영국에 본부를 둔 거리 되찾기(Reclaim the street) 운동이나 크리티컬 매스(Critical Mass) 운동처럼 세계 여러 도시에서 함께 벌어지는 자전거 타기 운동에 호응하며, 도심에서 떼 지어 자전거 타기 운동을 벌여온 이들이다.

자전거는 주말의 레저 활동이 아닌 일상의 이동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들의 요구 투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도로교통법상 엄연히 '차량'으로 분류되어 있는 자전거는, 이와 같은 집단적 투쟁 없이는 다른 차량들에게 차량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도시의 자전거 친화성을 점수로 표시한 코펜하게나이즈 인덱스. 서울은 순위권에 들지 못한다. ⓒcopenhagenize.com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에는 서울시 차원의 보행권 배려도 향상되고 있는 느낌이다. 주말마다 열리는 광화문 광장 시민 장터도 볼만하고, 연세로를 대중교통 전용 지구로 만든 것도 과감한 시도다. 2013년 1월 발표된 '보행 친화 도시 서울 비전'에는 생활권 보행자 우선 도로 도입, 이면 도로 제한 속도 강화, 교통 약자 보행 환경 개선 같은 계획들도 포함되었다.

도시 계획에서 '코펜하게나이제이션(Copenhagenization)'이라는 용어가 있는데, 보행자와 자전거 라이더를 위해 자동차의 점유 공간을 줄여간 코펜하겐의 정책과 도시 디자인을 의미하는 말이다. 서울시와 한국의 도시들이 이런 점에서 코펜하겐을 닮아간다면 참으로 환영할만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아쉬운 것은 도로 상에서 사람의 우선성으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까지 보행권 운동은 주로 차와 사람을 분리시켜서 사람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자동차가 멈춘 몇 십 초 간의 횡단보도, 자동차가 넘기 어려운 과속 방지턱 너머에서 보행자는 잠시 숨을 돌리는 것이다.

이만큼도 큰 진전이지만 도로의 주인이 자동차라는 현실에는 변함이 없다. 보행자는 잠시 도로를 빌려 눈치 보며 재빨리 지나야 하는 처지다. 보행권 운동도 자동차와의 전면전을 하는 대신 골목길과 동네 지키기로 후퇴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도로의 주인은 누구인가? 이는 제도나 물리적 구조물 이전에 상식과 관행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가령 유럽의 여러 도시들은 횡단보도가 있건 없건 신호등이 있건 없건 사람들은 거리낌 없이 차도를 횡단하고, 자동차들은 이러한 보행자들을 의식하여 조심스레 운전하고 금세 차를 멈춘다. 깜빡이는 파란 신호등을 보며 종종걸음을 치는 것은 한국인 관광객뿐이다.

자전거 통근 족들이 승용차의 경적 소리에 위협받기는커녕 교차로 신호의 우선권을 부여받는 많은 도시들이 있다.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만들까? 말할 것도 없이 집단적 경험이 축적된 역사이며 경로 의존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보행자, 장애인, 라이더의 권리를 확장시켰던 것 역시 역사다.

그렇다면, 예를 들어 서울 4대문 안 8차선 대로 막 건너기 운동을 기획해볼 수는 없을까? 도심의 도로는 '차도'가 아니라 사람과 자동차가 나누어 이용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리는. 자동차는 그 하드한 몸체와 가공할 힘 때문에라도 사람과 자전거를 먼저 피해서 조심해 다녀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수시로 대로를 건너는 사람과 자전거들 때문에 승용차 운전이 불편하고 귀찮고 느린 행위가 된다는 것을. 그리하여 승용차를 대체하고 보행자와 공존하는 트램 같은 안전한 대중교통 수단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촉구하는 운동 말이다.

물론 도로를 마음껏 건너기는 일정하게 위험을 감수하는 투쟁일 것이다. 떼잔차질이 떼로 모여 감으로써 비로소 안전해지는 것처럼, 함께 모여 걸어야 덜 위험할 것이다.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걸어야 더욱 안전해질 것이다. 그러나 할 가치가 있는 투쟁이다. 도시 공간 교통의 정치적 위계를 둘러싼 권리 투쟁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사상가 앙리 르페브르가 주창한 '도시에 대한 권리'가 차 없는 날 행사나 때때로 불현듯 전개되는 도심 촛불 시위로 제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8차선 대로 보행권이 무상 교통만큼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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