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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 프로게이머 천민기는 왜 투신해야만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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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롤 프로게이머 천민기는 왜 투신해야만 했나?

"열악한 환경, 승부 조작 충격으로 내 프로 인생 끝났다"

인기 온라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롤)'의 전 프로게이머였던 천민기(22‧닉네임 피미르) 씨가 승부 조작 사건을 폭로한 뒤 13일 투신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천 씨는 다행히 의식을 회복했지만, 22세 프로게이머가 목숨을 끊으려고 한 사건은 큰 충격을 주고 있다.

AHQ 코리아 팀에서 활동했던 천 씨는 이날 새벽 5시 13분 '리그 오브 레전드 인벤' 사이트에 'AHQ Korea 승부 조작 자백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천 씨는 "AHQ 코리아는 노OO 감독이 (불법 스포츠) 토토를 하기 위해서 만든 팀이고, 팀원들은 이 사실을 모른 채 승부 조작에 연루됐다"고 폭로했다.

천 씨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팀원들이 승부 조작에 가담할 것을 거절하자 감독은 시즌 중간에 숙소의 컴퓨터 등 연습 환경을 없애버렸고 팀이 해체됐다"며 "승부 조작만이 아니라 인생에 많은 힘든 일이 있어서 떠난다"고 적고 아파트 12층에서 뛰어내렸다.

AHQ 코리아는 대만 AHQ 기업의 이름을 따서 만든 게임단으로 롤 챔피언스 스프링 2013년 개막을 앞두고 창단됐지만, 본선에서 12강 탈락했다. 데뷔전에서 감독의 "져주기 지시"를 받은 천 씨는 12강에서 고배를 마시고 은퇴의 길에 접어들어야 했다.

프로게이머는 대부분 10대에서 20대 초중반이다. 프로게이머가 되면 숙소에서 숙식하며 잠도 제대로 못 잔 채 게임 연습을 한다. 10대에 데뷔하는 경우는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숙소 생활을 한다. 고된 길이다.

천 씨가 롤 인벤 사이트에 남긴 글을 토대로 2013년 롤 챔피언스 스프링에서 일어났던 일들과 선수들의 열악한 처우를 재구성해봤다.

ⓒ천민기 페이스북

2013년 4월 경기 출전을 앞두고 노 감독은 천 씨를 비롯한 팀원 5명을 불러 "져주기 지시"를 했다. 천 씨에 따르면, 노 감독은 "온게임넷에서 대기업팀에 져주지 않으면 본선 경기에 출전 못 하게 하겠다고 한다"는 거짓말을 했다. 당시 팀의 리더 김남훈 선수는 "난 못 하겠다. 그냥 실력대로 하겠다"고 거절했고, 천 씨와 여창동(닉네임 엑토신) 씨는 감독의 말을 믿고 '져주기'를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했다.

AHQ 코리아는 2013년 4월 6일에는 'KT 롤스터 B'와의 경기가, 4월 12일에는 'CJ 프로스트'와의 경기가 예정돼 있었다. 승부는 3전 2선승제로 판가름 나는데, 노 감독은 두 팀과의 경기 모두에서 선취점을 내주고 2 대 0으로 져주라고 지시했다. 천 씨는 그 근거로 6일과 12일 각각 치러진 "4경기를 살펴보면 모두 선취점을 내준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2 대 0으로 져야 한다"

그러나 막상 KT와 첫 경기에 들어가자 천 씨는 갈등했다. 4월 6일 'KT 롤스터 B'와의 1경기에서 AHQ 코리아가 승리를 거둬버린 것이다. 천 씨는 "(경기를 하는 동안) 계속 이기는 각이 보이는데, 노 감독이 '경기에서 져야 한다'고 한 지시와 내 눈에 보이는 승리 때문에 머릿속이 완전 뒤죽박죽이었다"며 "참다 참다가 이길 각이 보이기에 이겨버렸다"고 설명했다. KT와의 2경기에서는 기량에서 졌다고 했다. 결국 AHQ는 2 대 1로 패했다.

4월 12일 CJ 프로스트와의 경기가 열렸다. 천 씨는 "CJ전 때는 (감독이) 이거 이기면 진짜 출전을 못한다고 하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결과는 AHQ가 1, 2경기 모두 선취점을 내주고 2 대 0으로 패했다. 천 씨가 감독의 지시를 실행에 옮겼다는 것이다. 당시의 심경을 천 씨는 이렇게 밝혔다.

"KT와의 1경기 때는 이기고 싶다는 선수로서의 당연한 욕구에 지시를 무시하고 이겨버렸지만, (또 이기면) 경기 출전 못 하게 된다는 말이 너무 서글펐습니다. 어떻게 올라온 본선인데, 어떻게 올라온 프로 반열인데….

이기는 '한타'를 딜(deal) 안 하고 앞 비전, 앞 점멸로 던지고…(후반기 싸움에서 상대편을 공격하지 않고, 일부러 몸을 던져 죽어줬다는 뜻. <편집자>)."

▲ 리그 오브 레전드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지지 않고 비긴 날, 감독이 숙소 뺐다"

뒤늦게 선수들이 승부 조작에 문제를 제기하자 노 감독은 그제야 '토토' 이야기를 꺼냈다. 노 감독은 4월 24일 예정된 '나진쉴드'와 AHQ 경기에서 "(불법 스포츠) 토토에 나진이 2 대 0으로 이긴다는 데 돈을 걸겠다. 한 건 크게 치고 빠지자"고 말했고, 선수들은 거부 의사를 밝혔다. 경기 결과는 1 대 1이었다.

2 대 0이라는 결과가 안 나온 데 실망한 감독은 시즌 도중에 사업에서 손을 떼기로 마음 먹은 것으로 보인다. 천 씨는 "나진 팀과 경기가 끝나고 나서 숙소에 돌아와 보니, (감독이) 컴퓨터 3대를 팔아버리고 숙소를 정리하고 있었다"며 "(감독이 선수들에게) 관리실에서 나가라고 했고, 전기·수도·가스가 다 끊긴다고 말했다"고 했다.

당시 AHQ 선수들은 5월 1일 'LG-IM'팀과의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천 씨를 비롯한 선수들은 감독에게 "밀린 월급을 받고 우리가 나갈 것"이라고 말했지만, 감독은 "상금에서 50%를 떼어가는 것을 안 떼는 것으로 밀린 월급을 대신하겠다"고 버텼다. 선수들이 거세게 항의하자 결국 밀린 월급을 지급하고 상금도 선수에게 돌려주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천 씨는 "그렇게 일주일간 연습도 하지 못하고 LG전을 치렀다"고 했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시즌 기간, 밥 하루 두 끼에 무말랭이만 먹어"

천 씨는 숙소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항상 돈이 쪼들렸고, 밥도 하루 두 끼에 무말랭이만 먹었다"고 했다. 경기를 치르는 도중에도 식사가 부실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SKT전 때쯤이었나(4월 17일), 훈이 형(김남훈 선수)이랑 다 같이 합심해서 밥 얘기하니까 (감독이) 숙소 앞 식당에 얘기해서 외상 당겨서 배달시켜줬다"며 "식당 아저씨한테 돈은 줬나 모르겠다"고 적었다.

대만 AHQ 본사가 금전적 지원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선수들이 안 것은 나중이었다. 천 씨가 대만 본사 매니저와 연락한 결과, AHQ 본사는 장비만 지원하고 기업 이름만 빌려줬을 뿐이라는 답을 들었다. 대만 매니저는 "AHQ 본사는 팀에 금전 지원을 하지 않는다. 원거리 딜러(롤 게임을 하는 선수들의 다섯 가지 포지션 중 하나. <편집자>) 아버지가 갑부여서 밀어주겠다고 한 것으로 (감독에게) 들었다"고 말했고, 천 씨는 쓴웃음을 지었다. 원거리 딜러는 바로 자신이었던 것이다.

그는 "제 팬들은 알겠지만 우리 집 심하게 가난하다. (감독이) 나 가난한 거 알면서 (매니저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라며 "우리 아버지는 난방 안 되는 집에 15살 난 아들을 버려놓고 나가신 분이라는 말이 혓바닥에 올라왔지만 삼켰다"고 적었다.

천 씨는 AHQ는 오로지 '롤 챔피언스 스프링' 경기를 앞두고 급조된 팀이며, 감독은 불법 토토를 하기 위해서 이 팀을 만들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감독은 시즌 기간에 선수들의 숙소 잡는 돈, 기타 생활비, 컴퓨터, 월급을 빌려온 돈으로 마련했다가, 불법 토토로 '한 건'하고 '먹튀'할 계획이었다고 천 씨는 주장했다.

8강 진출에 실패한 천 씨는 프로게이머 세계를 떠났다. 그는 "솔직히 더 도전할 수도 있었고 잘할 자신도 있었지만, 숙소에서 겪은 말 못할 심리적 압박들과 승부 조작의 충격은 나를 쉽게 다시 연습에 매진할 수 있게 해주지 않았다"며 "그렇게 내 프로 인생은 끝났고, 이후부터는 1년 넘게 노력한 것에 대한 허탈함밖에 없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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