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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는 북한의 반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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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는 북한의 반면교사?

[정욱식 칼럼]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면서 일부 서방 언론과 전문가들이 던지고 있는 질문이다. 미국과 러시아 등 강대국 정치의 희생양으로 전락하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양상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겠냐는 것이다.

물론 그 양상은 예측하기 힘들다. 강대국들이 핵보유국 우크라이나의 내정에 간섭하거나 주권을 침해하는 일이 없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거꾸로 더욱 끔찍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가령 우크라이나가 다량의 핵무기를 보유한 상태에서 나토(NATO)나 유럽연합(EU) 가입을 시도했다면, 러시아의 반발 수위는 훨씬 컸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은 더욱 절망적인 후회를 토로하고 있는 것 같다. 파블로 리자넨코(Pavlo Rizanenko) 의원은 3월 9일 자 <유에스에이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만약 당신이 핵무기를 갖고 있다면, 다른 사람이 당신을 침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20년 전에 핵무기를 포기한 것을 두고 “우크라이나 내에서는 우리가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후회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7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진행된 반전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 우크라이나는 현재 서방을 지지하는 서부와 러시아를 지지하는 동부로 나뉘어져 심각한 갈등을 겪고있다. ⓒAP=연합뉴스

세계 3위의 핵보유국 우크라이나의 비핵화

1991년 12월 소련이 해체되면서 독립한 우크라이나는 하루아침에 미국과 러시아에 이어 세계 3위의 핵보유국이 되었다. 약 1,900개의 전략 핵탄두와 2,300개의 전술 핵무기가 이 나라의 영토에 남게 된 것이다. 핵무기의 면면도 가공할 만했다. 우크라이나는 당시 176기의 SS-19 및 SS-24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들 미사일 한 기에 6~10개의 전략 핵탄두 탑재가 가능했고 개당 폭발력은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의 20배가 넘었다. 또한 44기의 전략폭격기 및 다량의 공대지 전술 핵미사일도 보유하고 있었다.

당연히 국제사회는 우크라이나를 비롯해 구소련으로부터 다량의 핵무기를 물려받은 카자흐스탄과 벨라루스의 ‘비핵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쉽게 비핵화에 동의하지 않았다. 자국 내 핵 포기 반대 여론도 높았고 신생 독립국가로서 안보 및 경제 문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92년 11월에는 “가장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국가에 핵무기를 판매할 의사가 있다”고 말해 국제사회를 발칵 뒤집어놓기도 했다.

그러자 미국과 러시아 등 강대국들은 당근책을 제시했다. 비핵화된 우크라이나의 안보를 보장하고 핵폐기 비용과 기술, 그리고 경제 지원을 해주겠으니 제발 핵을 포기하라는 것이었다. 밀고 당기기 협상이 거듭된 끝에 채택된 것이 요즘 언론에서 간혹 언급되고 있는 ‘부다페스트 합의’이다.

94년 12월에 우크라이나, 미국, 러시아, 영국 정상이 부다페스트에 모여 양해각서에 서명했는데, 그 핵심적인 골자는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들 세 나라는 “우크라이나의 독립과 주권과 국경선을 존중하고 우크라이나의 영토적 통합과 정치적 독립에 반하는 무력 사용 및 사용 위협을 자제한다”고 약속했다. 또한 이 협정 이행에 문제가 생길 경우 4자 간 회담을 개최한다는 조항도 있다. 당시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 약속을 받아내고서 비로소 핵 포기를 선택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오늘날.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가 부다페스트 협정을 위반했다며 4자 회담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자 3월 5일 미국, 영국, 우크라이나 외교 수장들이 파리에서 만났다. 그러나 러시아의 외무장관은 파리 체류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북핵 문제에 미칠 영향은?

우크라이나 사례는 강대국 주도의 핵정치의 기만적인 모습을 새삼 드러내주고 있다. 핵무기를 갖고 있거나 개발 중인 나라에 핵을 포기하면 엄청 좋은 미래가 열릴 것처럼 약속했다가, 막상 핵을 포기하면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3년 전 리비아를 대했던 미국의 태도가 그랬고, 오늘날 우크라이나를 대하는 러시아의 태도가 그렇다.

이에 따라 북핵 문제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이 걱정된다. 북한은 2003년 핵개발을 포기했다가 8년 후에 서방 국가들의 지원 속에 리비아 반군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았던 카다피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아마도 북한 지도부의 이러한 다짐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목도하면서 더욱 강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언제든 뒤집어질 수 있는 강대국의 약속을 믿고 강력한 억제력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말이다.

그러나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두 가지 노력이 시급하다. 하나는 북핵 동결이다. 핵무기가 늘어나고 안보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그걸 포기하게 만드는 것은 더더욱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북한이 선포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 노선’은 재래식 군사력의 부담을 줄여 경제발전에 투입하고 그 대신 핵 억제력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하루빨리 북핵을 동결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건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가능하다. 북핵 동결과 한반도 평화협상 개시 및 대북 경제제재 해제나 완화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협상하면 상호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불가역적인 신뢰 구축이다. 확고부동한 신뢰가 생기지 않는 한, 북한의 핵 포기를 유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이건 대단히 힘들다. 리비아 및 우크라이나 사례가 보여주듯, 정치적 공약이나 문서 상의 약속은 언제든 백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 북한이 남한의 보수 정권과의 합의를 이루면, 그 합의 이행은 이후 남한 정권의 변화 여부와 관계없이 지속성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건 대북 협상에서 박근혜 정부가 행사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지렛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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