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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개헌, 왜 "불가능"에서 "약속하라"로 바뀌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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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개헌, 왜 "불가능"에서 "약속하라"로 바뀌었나?

[개헌 짚어보기 1]노 대통령의 의지와 여론의 무호응 사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월 9일 긴급 기자간담회를 통해 '원 포인트' 개헌을 제안한 지 꼭 두 달만인 8일 정부의 개헌시안이 공개됐다.
  
  노 대통령은 이날 '헌법 개정 시안 발표에 즈음한 기자회견'에서 "5년 단임제는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고 선언하며 "이제 4년 연임제를 통하여, 대통령과 여당이 임기 마지막까지 책임을 다하면서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개척해나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헌 자체에 대한 여론이 엇갈리고 특히 노 대통령 임기 내 개헌에 대해선 부정적 여론이 많은 상황이다. 하지만 이제 정부의 공식 시안이 제출된 만큼 개헌안 자체에 대한 논의를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에 <프레시안>은 이날 개헌시안 발표 및 이와 관련한 노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을 중심으로 △'차기 대통령 임기단축 약속 시 개헌 발의 유보'를 골자로 하는 노 대통령의 새로운 제안에 담긴 정치적 의미 △노 대통령이 핵심적 개헌 요인으로 지목한 '고질적 여소야대 문제'의 허실 △개헌시안의 쟁점 사항인 '궐위 시 잔여임기 처리 문제' 등을 짚어본다. <편집자>

  
  노무현 대통령은 8일 기자회견에서 "오늘 저는 새로운 제안을 드리고자 한다"며 한나라당 등이 차기 정부 하의 개헌을 당론과 대통령 후보 공약으로 약속한다면 "개헌 발의를 차기정부로 넘길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차기 대통령의 임기를 (5년 중의) 1년 가까이 단축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라며 "(차기 대통령의 임기 중에) 이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도 지금 제가 제안한 내용의 개헌은 반드시 발의하고 통과시킨다는 것이 당론으로 분명하게 표현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그간 "차기 정권에서 개헌은 불가능하니 반드시 현 정권 임기 내에 개헌을 해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한 바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제안한 내용을 이 논리에 대입하면 '불가능한 조건'을 내건 셈이다.
  
  이에 대해선 '개헌에 대한 절박감과 진정성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는 청와대 관계자들의 주장과 '개헌 부결 시 정치적 부담을 낮추기 위한 퇴로 모색과 동시에 한나라당의 정치적 책임을 가중시키기 위한 족쇄'라는 해석이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여전히 "차기 정부에선 불가능하다" 면서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스스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요구하는 것은 말바꾸기 논란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노 대통령은 "차기 정부에서는 개헌이 불가능하다"며 "이건 제 인식이 맞다"고 다시 한번 못을 박았다.
  
  노 대통령은 "다만 차기 정부에서 항상 개헌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고 다음 대통령이 임기를 조정해줘야만 개헌이 가능해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은 "차기정부에서 개헌을 하면 된다고 자꾸 말하니까 차기정부에서 개헌이 되려면 이와 같은 요건을 갖춰줘야 믿을 수 있지 않겠냐는 질문을 던지는 것과 별 다름이 없다"고 자신의 제안에 실린 무게를 낮추기도 했다. 또한 노 대통령은 "다음 정부에서 (개헌을) 하겠다는 확약에 가까운 제안이 나온다면 물론 받을 것이지만 '왜 다음 정부인지' 아울러 설명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기도 했다.
  
  '퇴로모색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노 대통령은 "퇴로를 모색할 가능성이 없다"며 "되든 안 되든 발의가 목적이라면 거침없이 발의하면 그만이지만 저는 개헌발의가 아니라 개헌 자체에 목적을 두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부결 이후'에 대한 고민
  
  어떻든 간에 '개헌을 하고 싶다'는 노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는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분명히 확인됐다. 하지만 '하고 싶다'와 '할 수 있다'는 분명히 다르다.
  
  또한 '실패한 이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동안 위력을 발휘하던 '중도 하야설'이 힘을 잃은 지 오래기도 한 상황이고 어쨌든 노 대통령은 내년 2월까지 대통령 직을 수행해야 한다. 4월 초 발의-6월 초 부결이 되더라도 8개월이 남는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노 대통령 자신이 가능성이 없다고 이미 말했고 한나라당이 받아들일 리 만무한 제안이 나온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차기에 개헌한다고 했으니 그게 가능하도록 약속을 하라는 말"이라며 "그게 아니면 지금까지 (개헌을 약속하고 싶은 마음도 없으면서) 거짓말을 해 왔으니 거짓말을 했다고 시인하라는 것"이라고 답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개헌이 부결되면 청와대의 정치적 부담이 크지 않겠냐'는 질문에 "우리는 발의를 하고 국회에서 부결되면 그냥 부결되는 것이지 우리가 부담될 것은 없다"며 "그 대신 부결시킨 쪽은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나라당이 제안을 안 받고 부결 가능성이 높아도 쭉 간다. 발의는 분명히 한다"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의 그간 발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다만, 이번 제안은 야당, 언론, 미온적인 국민여론들에게 분산돼 있던 반(反)개헌의 책임을 한나라당, 나아가 개헌논의에 응하지 않는 후보에게로 집중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개헌이 안 될 경우, 차기 정부에서 개헌하면 된다고 말한 사람들이 과연 약속을 지키는지 퇴임 후에라도 끝까지 추적해 책임을 묻겠다"고 말하던 노 대통령의 결기가 그대로 묻어나는 대목이다.
  
  실패에도 명분은 필요하다
  
  한때 꿈틀거리는가 싶던 '임기 내 개헌' 찬성 여론이 정체된 지도 한참이다. 시민사회의 후원을 기대한 적도 있지만 노 대통령이 진보논쟁에 뛰어들고, 한미FTA 협상 타결이 임박한 상황에서 이를 기대하기도 힘들다.
  
  발의 시점을 못 박지는 않았지만 이제 정말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발의를 하면 공은 완전히 국회로 넘어간다. 게다가 범여권에서조차 개헌의 총대를 멜 사람들의 지분은 크지 않다.
  
  결국 '부결 이후'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2.13 합의 이후 남북관계는 물론, 북미관계도 완연한 해빙무드이고 남북정상회담이라는 빅이벤트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개헌'에 언제까지 목 매고 있을 수도 없다.
  
  제안을 거둬들일 순 없겠지만 실패의 명분만은 확실히 해두는 것이 '부결 이후'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라는 생각을 했음직 하다.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겠지만 임기 내 개헌에 대한 여론이 반전될 경우 대선 정국에서 한나라당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카드로 써먹을 수도 있겠다.
  
  또한 공을 대선주자들에게 던져놓은 이상, 분열로 치닫고 있는 한나라당 대선주자 간의 이견을 벌릴 수 있는 카드로서의 가능성도 생각했을 수 있겠다.
  
  탄핵 때처럼 여론이 움직이지 않는 걸 어떻게 하나
  
  하지만 분명한 것은 대연정에 이어 노 대통령의 '진정성'이 담긴 두 번째 정치적 카드라는 개헌도 현재까진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한나라당이나 언론의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여론 자체가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탄핵 당시 한나라당과 언론을 심판하며 노 대통령을 엄호했던 그 여론이 꿈틀거리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노 대통령이 다시 어떤 카드를 사용해서 그 여론에 불을 당길 수 있을지, 두고봐야 알 일이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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