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정말로 외면할 수 없는 존재인가? 아니 외면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KBS 새 주말 드라마 <참 좋은 시절>은 이렇게 묻는다. 열여덟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난 소년이 15년 만에 귀향을 한다. 그는 왜 그 긴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고향을 찾지 않았을까. 수형자의 몸으로 갇혀 있었던 것도, 저 멀리 이국에서 살았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참 좋은 시절>의 동석(이서진)은 그 15년 동안 검사가 되었고, 고향 경주로 발령을 받아 돌아왔다.
그도 그럴 것이 동석의 가족은 참 만만치가 않다. 아직 극 중에 등장하지 않은 채 사람들의 입에만 오르내리는 아버지는 동석보다 먼저 가족을 떠난 난봉꾼이고, 남한테 험한 소리 한 번 제대로 못 해본 어머니 소심(윤여정)은 남편 없는 집에서 자리보전한 시아버지와 결혼하지 않은 쌍둥이 시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남편의 첩이라며 어느 날 들이닥친 여자 영춘(최화정)과 남편의 자식이라며 대문 앞에 놓여 있던 아들 동희(옥택연)와 어린아이 지능에 멈춰 있는 동석의 쌍둥이 누나 동옥(김지호), 이혼하고 돌아온 장남 동탁(류승수), 그리고 동탁과 동희의 자식들까지, 모두 소심의 집에 있다. 이들이 모두 동석의 가족이다.
게다가 동석이 고향을 떠난 또 하나의 이유인 첫사랑 해원(김희선)도 있다. 경주 최고의 부잣집 둘째딸이었던 해원은 동석을 열렬히 좋아했지만, 그 집에서 식모로 일하는 소심과 돈 없으면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 해원 어머니는 결국 동석이 해원을 버리고 경주를 떠나게 된 이유였다. 그리고 15년 동안 해원은 아버지를 잃었고 집이 망했으며 유학을 도중에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아버지의 복수와 남은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대부업체 직원이 되어 억척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참 가혹하다 싶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고향을 떠난 열여덟 소년은 어엿한 검사가 되었지만, 가족은 더 늘었고 목에 걸린 가시 같던 첫사랑은 전과 다른 처지가 되어 있으니 말이다.
처음에는 아무리 그래도 15년 동안 단 한 번도 고향에 돌아가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까칠하긴 해도 나쁘다고 할 수 없는 동석의 성격상 고향에 돌아가 가족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다시 그들의 삶 속으로 엮여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동석은 어머니에게 용돈을 보내드릴 수는 있어도 그의 거칠한 손을 마주잡고 심란한 속을 어루만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에는 늦게라도 풀어야 하는 숙제들이 있다. 가족이라는 숙제도 그렇다.
<참 좋은 시절>은 이경희 작가의 전작 KBS <꼭지>와 SBS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를 떠올리게 한다. 복닥복닥 살아가며 사랑과 상처를 주고받는 가족 이야기이면서 평범하지 않은 관계에서 사랑을 느꼈지만 결국 손을 놓았던 남녀가 오랜 시간이 지나 재회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동석만이 아니라 해원 역시 가족으로 인해 사랑을 놓쳤고 그 가족을 떠나 유학 중이었지만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돌아왔다. 다시 가족 속에서 상대방을 마주 보게 된 동석과 해원이 이번에는 서로 껴안을 수 있을까.
낳고 길러준 부모와 한배에서 난 형제와 같은 뿌리를 지닌 친지와 거리를 두고, 단지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옳다 그르다 이전에 무척 어렵다.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고는 해도 여전히 가족 중심적인 관계에서 나고 자라는 우리 사회에서 가족과 물질적, 정신적, 경제적 연을 끊고 살기란 정말 어려운 법이니까. 그래서 동석은 지난 15년 동안 어깨를 누르는 무게와 등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으로 분명하게 알고 있었지만 애써 돌아보지 않았던 가족과 그들 속에서 자신의 삶을 다시 마주해야 한다.
좀처럼 굳은 표정을 풀지 못하는 동석을 지켜보는 마음이 참 답답하면서 한편으로 기대가 된다. 그가 힘들었던 지난날이 알고 보니 '참 좋은 시절'이었음을 깨닫게 되든지 지금까지는 아니었어도 앞으로 올 날을 '참 좋은 시절'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지켜보면서, 어쩐지 위로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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