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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천재경영'은 이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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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천재경영'은 이제 끝났다

[편집국에서] 자본주의의 새 갈림길에서 길 잃지 않기를

바둑 1단 아홉 명이 머리를 맞대면, 바둑 9단 한 명을 이길 수 있을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초등학생의 지혜를 아무리 긁어모은들, 대학 수학 문제를 풀 수는 없다. 비슷한 이치다. 집단지성을 무조건 신뢰할 수 없다고 보는 것도 그래서다.

태권도 1단 아홉 명이 힘을 합치면, 태권도 9단 한 명을 이길 수 있을까. 이건 가능해 보인다. 몸으로 하는 일에선 뛰어난 개인의 역할에도 한계가 있다.

우리가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은 대부분 바둑과 태권도의 중간쯤이다. 흔히 정신노동이라 불리는 일도, 가만히 뜯어보면 대개는 컴퓨터 앞에서 하는 단순작업일 뿐이다. 전통적인 정신노동의 영역이 전산작업으로 꾸준히 대체되고 있는 점이 그 증거다. 글쓰기는 흔히 정신노동으로 분류되지만, 간단한 기사 작성 정도는 컴퓨터가 해낼 날이 멀지 않았다고 한다. 오로지 인간의 정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컴퓨터에 의해 대체될 리 없지 않은가.

반대로, 흔히 육체노동이라 불리는 일도 실제로는 정신노동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자동화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지금도, 여전히 사람 몸으로 하는 일이 꽤 남아 있다는 점이 그 증거다. 얼핏 단순해 보여도, 막상 해보면 고도의 감각과 판단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다.

일터의 노동이 모두 바둑 두기와 같다면, 뛰어난 개인을 골라내 그에게 전권을 주는 게 효율적인 해법일 게다. 모두 태권도 대련과 같다면, 무조건 하나로 뭉치는 게 효율적이다. 그러나 대개의 노동은 그 중간이므로, 경영자들은 고민에 빠진다.

뛰어난 개인의 권한을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나. 그들에게 어떤 수준의 보상을 해야 하나.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누가 과연 뛰어난 개인인가. 그들을 골라내는, 납득할 만한 기준을 만드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누군가 뛰어난 성과를 낸다면, 그건 그의 역량 때문인가. 아니면 주변의 도움 때문인가. 뛰어난 개인인 줄 알았던 이가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그건 그 개인의 잘못인가. 아니면 그를 선발하고 일을 맡긴 측의 잘못인가.

질문은 꼬리를 물고, 고민은 깊어진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한 사람의 비범한 천재가 수만 명을 먹여 살린다”라고 말한 게 1995년 5월이다. 이 무렵, 이른바 ‘천재경영’의 시동이 걸렸다. 사장보다 월급을 많이 받는 ‘S급 인재’를 스카우트하라는 지시가 주요 계열사에 내려갔다. 사업부문의 성과에 따른 보상 격차도 커졌다. 하후상박(下厚上薄, 아랫사람이 많이 받고 윗사람은 적게 받는다는 뜻)이라는 전통적인 급여체계도, 상후하박(上厚下薄)이라는 미국식 급여체계로 바뀌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며 급격히 도입된 신자유주의 사조 역시 이런 흐름을 가속화 했다.

그 결과가 지금의 삼성이다. 삼성그룹에서 가장 실적이 좋은 계열사가 삼성전자다. 삼성 직원들은 흔히 “삼성에는 삼성전자와 삼성후자가 있다”라는 농담을 한다. 전자(電子)가 아니라 전자(前者)라는 농담이다. 삼성전자 안에서도 사업부에 따라 처지가 다르다. 삼성은 국내 1위기업이라는 위상에 비해서는 기본급이 낮은 편이다. 대신, OPI, PS 등으로 불리는 독특한 성과급 제도가 있다. 무선 사업부 등 실적 좋은 부서가 많이 받는 편이다.

같은 해에 삼성에 입사해서, 똑같이 회사에 충성했어도, 똑같은 삼성맨이 아니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직원과 실적 나쁜 계열사의 한직에 있는 직원은 사실상 다른 회사 사람이다. 성과급 규모에 따라 연봉이 천양지차다.

내부 경쟁도 점점 치열해지는 쪽으로 진화했다. 삼성종합기술원과 삼성전자가 비슷한 연구과제를 수행하는 일도 있다. 다른 계열사끼리 경쟁을 붙이는 게다. 같은 회사 안에서 비슷한 경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다른 팀끼리 경쟁을 붙이는 게다.

‘뛰어난 개인’을 골라내서 그에게 많은 보상을 하는 쪽으로 진화해 온 삼성 조직의 지난 20년 역사엔 이해할 수 있는 면도 있다고 본다. 앞서 정신노동의 특징에 대해 이야기 했다. 개인의 능력에 따라 성과의 차이가 크다. 삼성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기술수준이 고도화 된 것과 관계가 있다고 본다. 회사가 생산한 부가가치에서 지식이 차지하는 비율이 늘었다는 것. 이처럼 지식기업으로 진화하면서, 구성원들에 대한 보상 차이가 확대되는 건,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도 어느 정도껏이다.

지난 2012년 기준으로 삼성 임원의 평균 연봉은 11억7000만 원이다. 이는 직원 평균 연봉인 6400만 원의 17.6배에 달한다. 삼성전자는 격차가 더 크다. 임원 평균 연봉은 53억 원으로 직원 평균 연봉인 7000만 원에 비해 74배 많다. 이는 30대 대기업 임원과 직원의 연봉 격차가 약 13배(2011년 기준)라는 것과 비교하면, 두드러지게 높은 수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서 한국기업은 급격히 미국을 닮아갔다. 미국 기업, 특히 금융 회사의 특징이 직원과 경영진 간 임금 격차, 그리고 직원 간 임금 격차가 크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이런 흐름을 선도한 기업이다. '74배'(삼성전자의 임원과 직원 사이의 연봉 격차)와 '13배'(30대 대기업 평균치)라는 수치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젠 물줄기가 바뀌었다. '다보스 포럼'이 열리는 나라, 기업인과 금융인의 천국, 스위스에서 기업 경영진의 연봉에 제한을 두자는 주민 발의가 나온 게 얼마 전이다. 최고 연봉과 최저 연봉의 격차를 12배 이내로 제한하자는 내용이다. 비록 부결됐지만, 지지가 만만치 않았다. 또 기업 임원 연봉을 이사회에서 정하는 관행에 제동을 거는 법안은 통과됐다. 앞으로는 주주 총회에서 정해야 한다. 이 정도만 되도, 기업 경영진이 그간 받아왔던 턱없이 높은 연봉은 깎일 수밖에 없다. 소액 주주들이 이를 용인할 리 없으니 말이다.

'지식 자본주의'라는 말을 유행시킨 것도 스위스 다보스 포럼이다. 지식 노동은 개인 역량에 따른 격차가 클 수 밖에 없으므로, 구성권 사이의 연봉 격차가 커지는 게 당연하다는 논리도 함께 유포됐다. 그런데 스위스에서도 이젠 임원과 직원 사이의 지나친 연봉 격차에 대해선 제동이 걸렸다. 세계 자본주의의 물줄기가 바뀌었다고 한 건 그래서다.

지난 6일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숨진 고(故) 황유미 씨의 7주기였다. 반도체 공장에서 직업병이 생긴 건 삼성만이 아니다. 삼성 고위 임원들은 그래서 억울하다고 한다. 왜 삼성만 탓하냐는 게다. 그러나 삼성에서 직업병 발병율이 유독 높은 것도 사실이다. 왜 그럴까. 노동조합이 없다는 것도 한 이유다. 현장 노동자들이 몸으로 느끼는 위험에 대해 호소하고, 항의할 창구가 없다는 것. 다른 이유는 지나친 경쟁이다. 기본급이 적고 성과급이 높은 구조에선 경쟁이 과열될 수밖에 없다. 이런 문화에선 현장 노동자들조차 꼼꼼한 안전관리는 한가한 일이라 여길 수 있다. 삼성전자 공장에서 일했던 이들의 증언이 이를 뒷받침한다.

직원보다 74배 높은 연봉을 받는 삼성 임원들이 그에 걸맞은 성과를 내는지는 모르겠다. 삼성 직원들도 잘 모른다고 한다. 뛰어난 인재를 판별하는 합리적인 기준이 있는 것인지, 성과급 책정이 어떤 기준에 따라 이뤄지는 것인지, 삼성 직원들도 궁금해한다. 다들 아는 건 조직 내 경쟁의 밀도가 꾸준히 높아졌다는 것. 다만 물이 천천히 끓어오른 냄비 속 개구리가 뛰쳐나오지 않는 것처럼 버틸 뿐이다.

기업 활동은, 수학 문제를 풀거나 시를 짓는 일과 전혀 다르다. 정신 활동의 비율이 높아지는데도 한계가 있다. 실제로 제품을 만들고 파는 활동 대부분은 몸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몸으로 하는 일에선 사람 사이의 역량 차이가 크지 않다. 앞서 태권도 9단 한 명이, 1단 아홉 명을 이길 수 없다고 한 건 그래서다. 세계 최상위급 기술기업이 된 삼성전자는 이제 새로운 방향을 찾을 때가 됐다. '몸으로 하는 일'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는 문화, 몸이 상하지 않는 방식으로 일하는 문화를 만드는 게 숙제일 게다.

스위스에서 비롯된 자본주의의 새로운 방향은, 이건희 식 '천재경영'의 종언을 알린다. 황유미 씨의 죽음은 삼성에서 '몸으로 하는 일'이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자본주의의 새로운 갈림길에서 삼성이 길을 잃지 않기를 기대한다.

▲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숨진 고(故)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 딸의 영정을 손으로 쓰다듬고 있다. ⓒ프레시안(최하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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